태풍과 강풍 등 기상악화 시 제주항이 피항지로 부적합 해 여객선들이 다른지방 항만으로 서둘러 피항 길에 오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26일 한국해운조합 제주지부에 따르면 태풍 ‘볼라벤’의 북상으로 제주 기점 7개 항로를 오가는 연안 여객선 11척 모두 오전 운항을 끝으로 타 지방 항구로 피항했다.
제주~목포 간 씨스타크루즈(1만5089t)를 비롯해 제주~완도의 한일카페리(6327t), 제주~삼천포 항로 제주월드호(4332t) 등 대형 여객선 9척 뿐만 아니라 소형 쾌속선 2척도 피항 행렬에 올랐다.
이들 여객선은 목포·완도·인천·삼천포·녹동항 등 7개 항구에 대피했다. 이로 인해 제주항 여객선 부두는 텅텅 빈 상태다. 또 제주해경 소속 1500t급 이상 중·대형 경비함도 목포항 등 전남에 있는 항구로 속속 대피했다.
제주의 해상 관문인 제주항이 태풍 때마다 어선을 제외한 대형선박의 피항에 무기력한 것은 항만 내 너울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선박이 부두에 정박하면 강한 바람에 밀려 선착장과 충돌할 우려가 높고, 닻을 내려 단단히 고정해도 선체 파손 위험이 따르고 있다.
제주항이 피항지로 부적합 해 선박들의 탈출이 이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자연지형을 이용하지 않고 100%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 인공항이어서 파도와 강풍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인천·목포항 등은 항만이 내륙으로 들어가 있고, 완도·녹동·여수항은 주위에 있는 섬들이 천혜의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제주항에 있는 대형선박은 모두 이곳으로 피항하고 있다.
여객선은 물론 화물선과 경비함까지 제주항에 정박해 있다가도 태풍이 다가오면 일부러 다른지방 항·포구로 가는 피난 행렬에 끼어들면서 경제·시간적 낭비와 함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해운업계 등에선 최대 8만t급 국제 크루즈를 비롯해 7개 부두, 21개 선석에 대형선박 21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제주항이 피항 기능을 못하는 것은 항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태풍 등 기상악화 시 해상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할 해경 경비함마저 타 지방으로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항만 여건의 열악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항은 최적의 입지여건으로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 들어온 만(灣)에 조성한 게 아니라 옛 산지포구에 시설 규모만 확대한 인공항”이라며 “방파제를 높이거나 확장해도 기술적으로 너울 유입을 막기 어려워 태풍이 내습하면 대형선박을 보호할 피항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문의 제주도 항만개발과 710-6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