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정신
청년 하용조 전도사에게 사영리를 배웠던 중3 시절 친구들과 저는 젊은 그의 열정에 며칠 동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열심히 다녔던 순복음교회 금요 철야 예배는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 시절에는 두 극단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쪽으론 한경직·하용조 목사 강해집을 읽으면서, 한쪽으로는 서남동·안병무·문익환·유르겐 몰트만을 초기 저서부터 전체를 탐독하며 민중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복음의 폭을 표상한다고 생각했었지요.
1980년대 말 온누리교회를 3년 정도 다녔습니다. 당시 하용조 목사는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 뒤에는 악마가 조종한다"는 말을 설교 중에 가끔 소금 치듯 하곤 했습니다. 아마 한 달 4주 설교 중에 한두 번은 짧게 운동권 비판을 하곤 했던 거 같습니다. 여러 번 밑줄 치고 읽었던 그의<마태복음>11권에도 그런 구절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그래도 성경을 다정하고 쉽게 풀어내는 그의 설교가 재미있고 핵심을 지적해서, 그의 설교집과 에세이집을 많이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늘 정의나 계급이나 예언자적 역사관이 없는 그의 설교가 아쉬웠고, 그래서 '순하기만 한 복음'이 늘 아쉬웠지만, 정의가 없더라도 성경을 이렇게 따뜻하게 전할 수만 있으니 좋다고 묵인했었죠. 실은 그 정도로 다정하게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목회자를 역사의식 가진 목사님 중에 제가 만나지 못했었죠.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와 문장은 달콤했지만 가끔 쓴 커피였습니다.
1998년부터 매년 9월 와세다대학에서 한국답사팀을 여행 이끌고 한국에 온 적이 있어요. 어느 해인가 종교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수원 무당을 만나고, 송광사 불교 견학 1박을 하고, 안동의 유교를 체험한 뒤, 서울에 와서 교회를 안내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샤머니즘-불교-유교-기독교'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균형 있는 교회를 소개하고 싶었으나, 일본어 동시통역을 제공하는 교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학생 25명을 인솔하고 갔던 교회가 온누리교회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온누리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요. 온누리교회 일본어예배부에서 정성스레 점심도 준비해주시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그때 그 예배에 동행했던 일본인 학생 중에 신실한 신자가 된 학생도 있습니다만, 요즘 일련의 사태를 보면 과연 젊은 하용조 목사가 역설했던 두란노 정신이 무언가 다시 묻고 싶은 시절입니다.
공안 형사, 공안 목사
이후 비도덕적인 이 장로를 대통령으로 지지했던 개신교의 집단적 몰상식이 있었습니다. 특히 온누리교회 어떤 부목사가 촛불집회 소고기 파동을 악마의 괴동이라느니 등 설교했었죠. 그때 그 촛불이 소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고소영'으로 상징되는 대통령의 독선에 반대하는 다중의 무의식적 반대 운동이었다는 것을 미국에서 자란 그 목사는 공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후 그러한 목사들이 일방적으로 지배층을 위한 설교를 나열할 때, 어어,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여러 자리에서 이근안의 강연을 듣는 두란노 아버지학교 소식이 <경향신문>에 기사화되었습니다. 유튜브에 가면 이근안 강의 동영상이 여러 개 있습니다. 이근안 씨를 이해해 보려고 그에 대한 자료와 그의 모든 동영상을 저는 보아 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애국자'로 표현합니다. 모든 인터뷰 동영상에서 그는 자랑스럽게 빨갱이 사냥을 했으며, 정권 교체의 희생양이라고 말합니다.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는 이렇게 강연합니다.
"내가 했다는 전기고문은 220볼트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손가락만한 AA 배터리로 한 것이다. 그걸 혓바닥에 넣었는데 꽤 짧더라. 몇시간 너 전기로 지지겠다, 공갈을 친 뒤 바닥에 소금물을 뿌리고(<경향신문> 2012년 1월 7일자)."
위의 말은 이근안 목사가 최근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했다는 <경향신문> 보도의 한 구절입니다. 이에 대해 두란노 아버지학교 측은 "이 씨는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졸업한 출신자에 불과하다"고 밝혔고, "이 씨를 공식적으로 초대·초청한 적도 없고, 강사 풀에서 관리하고 있지도 않다(<MBN뉴스>2012.1.9)"고 했지만,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이근안의 간증을 들었다는 기사나 블로그 글이 적지 않습니다. 2008년 5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태안의 '평화로운동산'에서 열린 태안 지역 '제1기 아버지학교'에 특별 강사로 이근안이 강연했다는 기사(<오마이뉴스> 2008.11.3)도 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자리를 베풀었다면 세세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경향신문> 기사와 블로그 글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두란노 아버지학교는 <경향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합니다.
값싼 용서
수업 시간에 인권과 용서에 대해 생각하면서 두 가지 장면을 학생들에게 보여 주곤 했습니다. 영화 '밀양'과 '우행시'에서 두 살인범이 행하는 태도를 보세요.
첫째, 영화 '우행시'에서 살인자 정윤수가 할머니가 용서한다 하자 벌벌 떨며 바닥에서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라고 콧물 눈물로 우는 윤수는 울며 할머니 보는 것조차 두려워합니다. 할머니의 감정에 짓눌려 손을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밖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감방에 돌아가서도 끙끙 앓으며 괴로워합니다. 온몸으로 울며 괴로워하는 눈물 자체가 피해자에게 '속죄의 보상'입니다.
▲ 온몸으로 울며 괴로워하는 눈물 자체가 피해자에게 '속죄의 보상'이다. 사진은 영화 '우행시'에서 살인자 정윤수가 피해 가족 할머니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 (영화 '우행시' 갈무리)
둘째는 영화 '밀양'에서 살인자가 너무도 자신 있고 떳떳하고 태연하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장면입니다. 피해자인 아이 엄마보다 신앙적으로 더욱 깨달았다는 높은 시각에서 내려 보듯, 용서받았다며 용서해 주러 온 피해자를 가르칩니다.
▲ 무엇이 용서받은 자의 태도인가. 영화 '밀양'에서 살인자는 피해 아이의 엄마가 용서해 주려 면회를 왔지만, 오히려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떳떳하게 말한다. (영화 '밀양' 갈무리)
무엇이 진정 용서받는 자의 태도일까요
성서가 가르쳐 온 용서는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온전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회개의 3R(Three R's of Repentance)이라고 부르는데, 첫째가 Repentance(회개), 둘째가 Restitution(보상), 그리고 셋째가 Reformation(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repentance이며,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보상하는 것이 restitution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치는 것이 reformation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온전한 회개라고 김영명 목사는(<숨어계신 하나님>IVP) 말합니다.
1972년 서독 빌리 브란트 수상이 비가 내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위령비 앞에서 무릎 끓었을 때, 그 행동 자체가 '보상'이었죠. 그런데 영화 '밀양'에서의 살인자는 피해자 앞에서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합니다. 물론 피해자 자체도 문제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밀양'의 살인자는 너무나 좋은 낯빛으로 신애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들을 수 있어 고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어요. 살인자가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죠. 이청준의 원작 <벌레이야기>는 너무 쉽게 남발하는 용서를 비판하는 소설이었죠.
나는 이근안의 자세에서, 영화 밀양에서 나온 사형수의 의연함을 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 엄마는 며칠을 구토하듯 역겨워하죠. 지금 제 상태가 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은 그 많은 사람들, 그 가족의 마음은 어떨까요.
공의 없는 몰역사 복음
이 글에서 저는 온누리교회 이야기를 먼저 썼습니다. 온누리교회가 요즘 이근안을 모시는 정신 나간 교회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들 중에 온누리교회 의식 있는 중진 사역자들이 있고요, 아직도 제 책장에는 하용조 목사님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제가 온누리교회 이야기를 쓴 이유는, 신문에 이름이 거론되어 안타까운 마음에 우려를 표하고 싶어서입니다.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여주교도소 1기생' 이근안 씨가 교육을 받았기에 좋은 아버지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말한다면 문제가 없었겠죠. 그렇지만 이근안씨는 목사 직분을 얻고, 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도덕적 권좌에서 선언합니다. 영화 '밀양'의 살해자처럼 하나님 이름을 빌어 스스로 용서합니다. 나아가 스스로 애국자라며 평가합니다. 공안 형사가 공안 목사로 탈바꿈 한 것입니다.
첫째, 이근안은 빨갱이들을 고문했다 하면서, 수많은 민주주의 양심수들을 빨갱이로 몹니다. 둘째, 설사 그들이 빨갱이였다 하더라도, 고문이 금지되어 있던 그 시기에 고문 기술자였단 자신의 행위를 '애국'이었다고 설교합니다.
이근안을 초청하는 교회들, 정말 저 말 들으면서 전혀 아픔이 없으신지요? 칠성판에 벌거벗겨져 누워 저 말 그대로 당해 봐야 알겠는지, 어떻게 저런 발언을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모셔 들을 수 있는지요? 이 씨에게 박수하는, 뇌 상태가 염려되는 한심한 영혼들이 염려됩니다. 그 한심한 영혼의 발신지에 '두란노 아버지학교' 이름이 일반 신문에 표기된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신문에는 두란노 아버지학교가 이근안을 두 차례 초빙한 것으로 나옵니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해서 이 글을 씁니다. 만약 <경향신문>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든지 정정 보도를 요구해야 합니다. 제 친구나 가족들 중에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교육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온누리교회와 두란노 아버지학교 이름이 신문과 방송에 아름답게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다시 이근안을 초청하는 교회에 묻습니다. 교회가 전도하고 싶은 것이 고작 '국가적 폭력의 육체화'인지요. '국가 이데올로기의 폭력(알뛰세르)'을 선행으로 간증하려는 이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는 행위야말로 '개독교'라는 단어를 생산해 내는 안티그리스도 원천지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개독교'라는 단어는 바로 기독교의 핵심지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채찍 맞고 고문받으셨던 예수님을 망각한, 공의 없는 몰역사, 헛복음
이근안이 했던 식으로 발가벗겨 당해 보면, 단 1분 만에 어떻게 반응할지, 아니 1초 만에. 바닥이 젖은 욕조 있는 방에 맨발로 섰을 때의 느낌, 욕조 옆 의자에 앉아 며칠이 지났는지 창문도 없는 방, 종일인지 며칠인지 형광등만 켜 있는 방에서 잠 못 자고 취조당할 때 그 공포를. 빈 공간, 빈 침묵 자체가 고문입니다. 당해 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 합니다.
아직도 고문 후유증으로 치과 의자에만 누워도 칠성판이 생각나 몸이 굳어 버리고 그대로 의식이 정지되어 버리는 분들, 치과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근안을 초청하는 교회들 제발 '폭력'을 전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응교 / 시인, 숙명여대 교수
첫댓글 v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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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원수를 사랑 하라" 라는 말씀이 저는 가장 힘이 들었습니다
삶가운데 체험하지 못한 분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잘 이해가 안됨니다 하나님 까지 거부되는 심정이 더군요
용서 란 주님께서 찿아오셨기에 가능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주님으로 부터 진정으로 용서 받지 못한 자는 회계 했다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회계 했다는 자는 아니 목회자라는 자가 강단에서 피해자 들께 또다시 분노를 사게 하는 행위는 회계를 했다고 말 할수 없습니다 그를 청강하는 교회나 단체는 크나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글 감사드림니다.
딴지는 아닙니다만 철자에 좀 주의를 ㅎ 회계가 아닌 회개로.. 죄송합니다.
글쎄요??....한국개신교가 정말 성경에 기초한 복음을 전하는 교회일까요??
현실은 뒤죽박죽이라서리 뭐라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구요....
군사정권까지는 그 권력에 부역[부합]한 대형교회당을 중심으로 이데올르기를 바탕에 깐 가짜복음이었구요.
그 영향으로 지금도 빨갱이 그러면 한쪽은 지고 한쪽은 이기는것 같은 양상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땅에 가치를 둔 것이 아닌데도 [그넘의 일제와 분단을 겪으면서 뒤틀려졌지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