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해 나타났나. 짝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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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진품 비교전시회에 나온 위조된 짝퉁 맥주들 / 사진출처 - 뉴시스)
지난 24일부터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는 이색 전시회가 열렸다. 관세청에서 주최한 일명 명품 진품과 짝퉁의 비교전시회, 1,000여점의 진품과 진품같은 짝퉁을 감상(?)할 수 있는 희귀한 전시회로 언론에 조명을 받았다. 최근 들어 사회 여러 분야를 망라하고 짝퉁논란이 한창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짝퉁에 대한 논란은 이전보다 활발해진데 비해 짝퉁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무덤덤해졌다고 할까. 짝퉁이 너무 흔해진 탓이기도 하다. 여기도 가짜, 저기도 가짜라면 궂이 가짜를 골라낼 필요조차 없어진다. 자의반 타의반 짝퉁에 관대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짝퉁자체에 있기보다는 짝퉁을 바라보는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유사 브랜드의 난립은 식품이나 외식업 쪽도 예외가 아니다. 위스키업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 정도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진짜와 가짜의 구분도 힘든 지경이다. 유난히 명품브랜드가 많은 것도 짝퉁 양산의 근원이기도 하다. 세상에 명품 없는 짝퉁은 없다. 명품일수록 유사 브랜드가 난립하고 미투(Me too)제품이 판을 친다. 짝퉁이 난무한다면 일단 그 제품의 브랜드 인지도는 확실해 구축됐다고 볼 수도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이다.
식품, 외식업계 유서 깊은 원조 논쟁
장류 선두 기업 해찬들은 15년간 키워 온 태양초라는 브랜드명이 문제가 됐다. 태양초는 햇볕에 말린 고추를 일컫는 고유명사. 때문에 현행 특허법상 태양초란 이름으로는 상표권 인정을 받지 못한다. 이런 경우 실제 브랜드를 키운 당사자에게 유사 브랜드 문제는 해법이 없는 전쟁 그 자체다. 롯데 자일리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일리톨은 식물에 주로 들어 있는 천연 감미료를 뜻하는 전문 용어로 이 역시 상표권 인정이 안된다.
그나마 이런 경우엔 원조 전쟁에서 승률을 기대하기가 비교적 쉽다. 태양초나 자일리톨 등은 모두 원조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종 업계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있다고 해도 사실 롯데 자일리톨 또는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 이라는 소비자 인식과 상표인지도를 넘어서기는 힘들다.
그러나 원조 구분 자체가 안되는 브랜드명일 경우 유사 브랜드에 의한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상표권분쟁이 가장 많은 사례가 바로 지역명을 딴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경우로 짝퉁에 의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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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장충동왕족발이다. 지난 2000년 대법원 판례(장충동의 배타적 상호 사용권 독점 불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족발 상호에 장충동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장충동족발이나 장충동원조족발 등의 미투(Me too) 브랜드보다 유난히 장충동왕족발을 그대로 사용하는 짝퉁브랜드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장충동왕족발의 브랜드 인지도에 있기도 하다. 85%에 가까운 장충동왕족발의 브랜드 인지도(2003년 갤럽조사)에 무임승차할 수 있기 때문. 앞서 얘기한 것처럼 명품일수록 브랜드 인지도가 높을수록 짝퉁은 난립하기 마련이다.
껍데기는 베껴도 내용물은 모방할 수 없어
장충동왕족발은 지난 2004년 자사의 지방 지사장들이 퇴사 후 세운 장충동 B&F와의 다툼이 법정으로 까지 번지는 원조 논쟁을 겪은 후 이전보다 강도 높은 짝퉁과의 전쟁을 선포해 대응해 나가고 있다. 전국체인망을 연계하는 콜센터(1588-5588) 개설과 온, 오프라인 매체를 통한 원조 광고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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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왕족발의 유사브랜드들)
물론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돼있다. 상표는 베껴도 진짜의 노하우와 시스템은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충동왕족발의 원조 논쟁으로 주목(?)을 받았던 장충동B&F의 경우 현재 가맹본부 자체가 없어진 상태, 장충동B&F로 본부를 옮겼던 장충동왕족발의 이전 가맹점들도 모두 컴백홈 했다. 장충동왕족발의 신신자 대표는 "가짜를 가장 먼저 알아 본 건 소비자였다"며 소비자가 알아주는 것이 진짜 명품이라고 말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
짝퉁의 난립에 비교적 관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만으로 명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진짜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 짝퉁이 난립하면 브랜드는 지적재산권을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데 외식업의 경우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피해가 더 직접적이다. 음식에 관한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고 진짜가 이룬 브랜드 인지도에 무임승차하는 가짜들은 노하우는 고사하고 제조 및 유통과정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회피하기 쉽다. 진짜 뒤에 숨은 가짜의 익명성 때문이다.
짝퉁을 만들어 파는 이들도 문제지만 짝퉁을 별 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도 반드시 근절해야 할 문제점이다. 지금 당장 우리 자신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고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짝퉁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짝퉁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시발점이며,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지는 한 우리는 소비자라는 이름의 잠재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