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머리가 셋 달린 해룡(海龍)이 있었다. 그 용은 마을사람들에게
해마다 처녀를 한 사람씩 자기의 신부 감으로 바칠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에 응하지 않으면 어부들이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할 것이며 고깃배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집집마다 차례로
딸을 내어놓거나 그 대신에 노비를 사서 희생물로 바쳐야 했다.
한 김씨 성을 가진 집에는 온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모의 딸이 있었다. 그 집 차례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차양을 치고 그 처녀에게 혼례복을 곱게 입혀
해룡에게 보낼 준비를 했다. 그들은 물론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에 빠져 있었다.
용은 으레 세 개의 머리에서 불을 뿜으며 바다에서 나와 그 긴 꼬리로
처녀와 혼례상을 휘감고는 사라지곤 했다. 이튿날 처녀의 유골이
해변으로 밀려오면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그것을 거두어 묻어주었다.
그날도 용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때 준수하게 생긴 왕자 한 분이
금빛 배를 타고 나타났다. 왕자는 칼을 뽑아 용의 머리 중의 하나를 베어냄으로써
힘을 쓰지 못하게 했고, 그 덕에 김씨네 처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왕자와 처녀의 혼인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나 식을 거행하기 직전에 임금님이 보낸 사신이 나타나더니 한 마귀가
나라의 세 가지 보물을 훔쳐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또 왕자가 허락 없이
제멋대로 혼인을 하는 데 대해 부왕께서 진노하고 있다고 하면서,
왕자가 그 세 가지 보물을 되찾아오면 왕이 결혼을 허락할 것이라고 했다.
왕자는 처녀에게 백일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한 후 길을 나서면서,
만약 성공하고 돌아온다면 금빛 배에 하얀 기가 걸리겠지만 싸우다가 죽으면
빨간 기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왕자가 탄 배를 기다리던 처녀는 그만 지쳐서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백일 째 되던 날 금빛 배가 다시 나타났다.
돌아오던 도중에 왕자는 다시 해룡을 만나 싸워야 했고, 배의 하얀 깃발은 용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곧 처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나머지
왕자는 그만 그 더럽혀진 기를 하얀 기로 바꾸어 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네 사람들은 피에 젖은 깃발을 보고 왕자가 죽은
줄 알았고, 가엾은 처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 왕자는 불운하게도 처녀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훗날 그녀의 무덤에서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서 해마다 여름이면 백일 동안
꽃을 피웠는데 그게 바로 배롱나무 혹은 "백일홍"이다.
* * *
크레인 여사는 이런 전설을 채집해서 수록해두었지만, 글세요, 제가 보기에는
어쩐지 이 전설이 우리나라 것이라기보다도 서양 전설 같네요.
서양 특히 북유럽의 신화나 영웅서사시에는 주인공이 용이라는 괴물과 싸웠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거든요. 우리나라에도 해룡 혹은 해신(海神)을 달래기 위해
처녀를 바쳤다는 이야기야 있지만, 해신을 퇴치하기 위해 영웅이 나섰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 1940년대에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배롱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질나무"라고 불렀답니다. 간질임을 타는 나무라는 뜻이었지요.
우리가 "간질 간질"하고 외면서 나무의 굵은 밑둥치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는 시늉을 하면
위쪽 잔가지들이 간질임을 이기지 못하고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어른들은 배롱나무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고 오직 백일홍(百日紅)이라고만 불렀고요.
그래서 우리는 화단에 심는 초본 백일홍과 이름이 같은 것을 두고 늘 의아해했답니다.
그 당시에 일본 사람들은 배롱나무를 "사루수베리"라고 불렀는데 "猿滑"을 훈독(訓讀)한
것이지요. "사루수베리"는 문자 그대로 "원숭이가 미끄러진다"는 뜻인데
그 미끈한 둥치에서는 원숭이 마저 실족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처럼 백일홍이라는 별명을 쓰고 있지만,
이영노 교수의 도감에 의하면 백일홍은 원래 중국 이름인 듯합니다.
"배롱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치가 않네요. 사전에는 배롱(焙籠)이라는
낱말이 나오지만 이 나무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우철 교수의 책을 보니 자미화(刺微花)라는 이름도 있다고 합니다.
미(微)는 미(薇)의 오식이 아닌가 싶지만, 가시가 없는 이 나무에 "찌를 자(刺) 자"가
왜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미화(紫薇花)라고 표기된 이름을 몇 군데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 껍질이 불그레한 둥치와 홍자색 꽃을 염두에 두건대, 이 이름이
더 설득력을 띠네요. 게다가 국어사전에도 자미(紫薇)는 배롱나무와 같다는 설명이 나오거든요.
이렇게 배롱나무라는 이름의 주변을 더듬어보아도 "배롱"의 정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꽃 이름 중에서 이렇게 유래가 분명치 않은
것이 어디 배롱나무 뿐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