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케아의 창업주인
잉바르 캄프라드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습니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1943년 십 대에 잡화상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 매장을 둔 가구 및 생활용품 제조유통사인
오늘의 이케아로 키워낸 사업가입니다.
캄프라드는 93년형 볼보를 폐차 직전까지 몰았고,
레스토랑에 가면 소금과 후추를 집어올 정도의
엄청난 구두쇠로도 유명합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블룸버그와 포브스
부자 순위에서 높게는 세계 4위까지 등극했던
슈퍼리치 중 한 사람입니다.
캄프라드의 재산은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른데
적게는 750억 원부터 58조 원까지 편차가 큽니다.
세금 내는 것까지 아까워했던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몇 개의 재단을 통해 단계적으로 소유했는데,
재단 소유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캄프라드의 자산 규모도 달라집니다.
캄프라드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이카노 그룹의
자산은 10조 원가량(2016년 기준)입니다.
금융·부동산·보험·제조사·유통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의 이케아 지점)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은행과 보험사를 소유하고 있어
내부 자금 관리와 이케아 지점의 운영을 위한 대출,
임대업을 하고 있어요.
관할 국이 세나라 밖에 안되지만
자금 규모가 큰 이유가 있지요.
돈을 관리하는 곳이니까요.
캄프라드의 세 아들 중 첫째이니 페테르 캄프라드가
의장이고, 동생인 요나스와 마티아스가 이사입니다.
2. 스티칭 잉카 재단(Stiching Ingka Foundation)
갑자기 잉카라니, 캄프라드가 평소에
잉카 문명에 관심이 많았나?
하고 생각하면 아니 아니 아니오!
자신의 이름인 잉바르 캄프라드 이름과
성의 앞부분을 따 이름 지은 잉카 재단이
바로 이케아의 노른자위입니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360개 이케아 지점 중
315개 지점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잉카 재단이니까요.
2006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당시 잉카의 자산이 36조 원에 이른다니
규모로만 보자면
세계에서 가장 큰 비영리 재단인 셈입니다.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의 혁신을 지원한다는
재단의 정관에 따라 이케아에서 나오는 수익 대부분을
R&D 즉 혁신과 디자인 연구에 재투자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 최대 규모 구호재단인데
대외 원조는 유명무실하다가 최근 몇 년 들어
아프리카 등 대외 원조를 늘이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레이덴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것도 그렇고,
밖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이케아의 꼼수라고 보는 이가 더 많습니다.
이케아의 핵심인 잉카 재단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겠다는
창업자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잉카, 잉바르 캄프라드여 영원하라!
이케아의 소유 구조. 저 꼭대기
IKEA를 잉바르 캄프라드로 대체해도 무방.
3. 인터로고 재단(Interogo Foundation)
인터로고 재단은 이케아의 트레이드마크,
브랜드, 콘셉트, 디자인을 포괄하는
지적재산권을 관리합니다.
여기는 소유 구조가 좀 복잡한데
아래 순서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 인터 이케아 시스템즈(네덜란드/벨기에)
- 인터 이케아 SA(룩셈부르크)
- 인터로고(리히텐슈타인)
실질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자회사인 인터 이케아(Inter Ikea)입니다.
인터 이케아는 이케아 매장의 매출의 3%를
로열티 명목으로 받아가는데 이케아 그룹 내부의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 이케아?)
여기서 나는 수익은 벨기에에
주소지를 둔 사무실에서 금융투자를 하지요.
2016년 기준 자산 규모가 15조 원가량입니다.
셋째인 마티아스가 2013년부터 잉바르 캄프라드를
이어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각 주소지를 보면
역시나 세금을 아끼기 위해
돌고도는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로고 재단은
7명의 위원으로 꾸려진 위원회가 운영합니다.
캄프라드 가문 인사가 회원으로 참여하지만
반드시 소수여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현재 셋째 아들인 마티아스가 이사로 되어 있습니다.
4. 캄프라드 재단(Kamprad Foundation)
2011년에 만든 캄프라드 재단은
스웨덴의 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의 교육과
연구를 증진 기여하기 위해 만든 재단입니다.
이케아가 운영하는 이케아 재단과
더불어 아마도 캄프라드가 만든 재단 중
유일하게 진짜 돈을 쓰기 위한 재단일 것입니다.
잉바르 캄프라드의 고향인
스웨덴 남쪽 스몰란드의 지역 개발과
역시 그곳에 위치한 신생 명문 리네우스 대학을
운영하는 기금을 댑니다.
정관에 보면 노인 인구의 삶의 질 개선,
지방 균형 발전, 환경, 교육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디자인, 의료/약학)등에
연구 기금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캄프라드의 고향 사랑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IKEA의 IK는 자신의 이름의 앞글자,
뒤의 EA는 자신의 고향인
Elmtarid Agunarid에서 따오기도 했지요.
이케아를 ‘쪼개 놓은’ 이유
오랜 시간 캄프라드 가까이에서 일했던
이케아 재단의 사무총장인 페르 헤게네스
(Per Heggenes)는 2012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캄프라드는 돈 자체보다 이케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일 겁니다. 만약 캄프라드가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상장을 했겠지요.
캄프라드가 네덜란드부터 리히텐슈타인까지
곳곳에 주소지를 둬가며 복잡한 구조로
이케아를 쪼개 놓은 이유는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를 위해서입니다.
복잡한 소유 구조를 만들고 최종적으로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또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특정 개인이나
캄프라드의 후손이 이케아를 단독 소유하거나
좌우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할아버지,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
2018년 1월에 타계했습니다.
“100만 원짜리 좋은 책상은 어떤 디자이너라도
만들 수 있지만, 2만 원짜리 좋은 책상은
뛰어난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논란의 여지없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업가 중 한 사람입니다.
돈이 많지 않아도 양질의 디자인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디자인의 민주화와 혁신 그리고 비용절감을 원칙으로
이케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세계 최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의
거부 명단을 보면 갖고 있던 기업의 주식 가치 덕에
부를 축적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케아는 상장기업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캄프라드는 주식부자가 아닌
진짜 부자, 곳간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채워놓은 부자라고 볼 수 있지요.
젊은 시절 나치 모임에 참가한 전력,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스위스로 이민을 갔던 일 등
발목을 잡는 과거 때문에 캄프라드는 스웨덴
안에서 그다지 존경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스웨덴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이케아의 본사가
네덜란드에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여전히
절세와 탈세의 경계에 서있는 것 같습니다.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나치에 참여한 전력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존경받지 못했죠.
지난 1월 캄프라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캄프라드의 업적으로 특집을 내며 북적대는
외신과는 달리 스웨덴 매체는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이케아 매장에서도 구석에
작은 방명록 정도만 두고 간소하게 지나갔지요.
북유럽에서 가장 큰 괘씸죄에 해당하는 탈세 때문에
인정은 받지만, 존경은 못 받는 기업인이었습니다.
존경받지 못한 이케아 창업자의 유언장
지난 1월 타계한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의
유언장이 최근 공개되었습니다.
2014년 친필로 작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 재산의 절반은 4남매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놀란드 발전 기금으로 사용할 것.
스웨덴을 크게 셋으로 나눈 지도. 북쪽 지역이 놀란드.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이야
예상 가능한 내용입니다만
나머지 절만을 놀란드 발전기금으로 내놓다니!
놀란드는 스웨덴의 북부 지역입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어떤 거부가 전재산의 반을
함경도와 황해도 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보면 됩니다.
심지어 캄프라드는 남쪽 출신으로
놀란드 태생도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짠돌이로 유명한 캄프라드가
과거 이케아 내부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했던 일이 있습니다.
2006년 스웨덴 북부 그러니까 놀란드 하파란다에
이케아 매장을 세운 것입니다. 스웨덴의 북쪽은
주로 탄광촌과 목재산업이 중심이 된 지역입니다.
스웨덴 전체 인구의 10~15%가 거주하는데
젊은 층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령 인구가
대부분인 곳입니다. 스웨덴 정부 주도형
이민자 정착지이기도 합니다.
하파란다(Haparanda)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접경지역으로 정말이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수준의
난데없는(OUT OF NOWHERE) 곳이었습니다.
당시 스웨덴의 환경부 장관이던 스벤 데릭 북트가
이케아에 매장을 내도록 캄프라드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캄프라드 스스로가 시골 출신이어서인지
지역경제와 젊은층의 지역 이탈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지역 내에 사업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하파란다에 문을 연 이케아는
뜻밖에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스웨덴의 최북단, 그것도 핀란드와 국경을 맞댄 곳에
자리를 잡은 하파란다 이케아는 러시아로 향하는
이케아의 전초기지이자 물류창고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스웨덴 내 도시중 무역수지 3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이케아 덕분에
근처에 거주하던 이민자를 비롯해 고용인구가
크게 늘었고 도시가 북적대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뜬금없는 곳인 ‘하파란다’에
이케아를 세운 창업자 캄프라드.
하파란다 이케아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돈은 이렇게 쓰는 거다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요?
탈세와 절세의 경계에 서서
경영했던 데에 대한 약간의 반성일까요?
유산의 절반이라고 해봐야 이미 대부분은
재단에 묶여 있어 수백억 원 수준이겠지만,
구두쇠 영감의 유언 덕에
차디찬 스웨덴 북쪽이 좀 바빠지겠습니다.
추신.
대한민국에 살면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 자주 들었습니다.
근데 이제는 안 믿습니다.
기부한 돈으로 재단 만들고 가족 중 한 사람을
이사장으로 세우는 거잖아요?
오히려 부자들의 절세법이라고 하더군요.
캄프라드도 그런 방식으로 이케아를 소유했으니까요.
하지만 구두쇠 캄프라드 할아버지의
이번 유언장은 기억해주세요.
하나! 사용처는 구체적으로.
둘! 돈은 제삼자에게 넘겨
확실히 다 쓰도록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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