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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여행 단상
성병조
(책이 해결사)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자투리 시간이 아까울 때가 있다. 대구 사람의 경우엔 유독 심하다. 인천공항까지 버스로 4시간, 공항서 2시간 이상 기다린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미국 LA까지 11시간, 뉴욕까지는 무려 14시간 비행한다. 이 시간을 왕복해 보면 실로 엄청나다. 그래서 나는 짐이 될지라도 읽을거리를 꼭 준비한다. 작년 뉴욕 여행 때는 시간이 무료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책을 일찍 읽은 때문이다. 매일 새벽 조깅을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새벽바람 가르기도 힘이 든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항상 맘이 쓰였다. 다행히 이번 미국 서부 여행에는 책을 충분히 가져간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스튜어디스 흉내) 인천공항서 LA까지는 무려 11시간이 걸린다. 좁은 좌석에서 몸부림치지 않는 사람 드물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나 책을 펼친다. 기내에서 두 끼 식사와 음료수가 제공된다. 그럴 때마다 승무원을 유심히 바라본다. 항상 미소 띤 얼굴에 재바른 행동을 하는 스튜어디스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영어, 일어, 중국어도 마음대로 구사한다. 더운 커피나 음료수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꼭 이 말을 한다. 'Be careful, hot water' 한두 번 듣는 게 아니다. 마시고 남은 물을 승무원에게 돌려주면서 나도 흉내를 내었다. 'Be careful, hot water' 이 말을 들은 승무원은 "유심히 들으셨네요" 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고쳐야 하나?) 미국 여행을 하는 동안 시간이 문제일 때가 많다. 동서로 4시간 차이나고, 인근 주와 1시간 차이나는 곳도 있다. 관광 후 버스에 탑승하는 경우 꼭 시간이 등장한다. 가는 곳마다 시간에 신경 쓰느라 꽤 성가시기도 하다. 외국어처럼 바로 통역되는 것도 아니어서 꼭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우린 나름대로 선택을 하였다. 나는 한국 시간을 고수하고, 아내는 시차 때마다 시계를 고쳤다. 먼 타국에서 시간이 헷갈려 약속 어기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현지 TV에서도 주요 주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 주고 있다. 태어나 계속 경험하는 그들이야 별문제 없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무척 불편한 일이다.
(가이드의 역할) 여행 땐 3대 요소를 중히 여긴다. 장소, 동행인, 내용물? 여행지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저마다 관점과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사람들과 맘이 맞지 않으면 실패로 돌아간다. 기분이 조금 나쁘더라도 서로 참아야 한다. 특히 부부가 함께 갈 때는 더욱 그렇다. 끝으로, 담아 오는 그릇이 알차야 한다. 아무리 Fun 하고 Joyful 하더라도 Useful이 없으면 성공적이라 하기 힘이 든다. 내용물은 본인이 애써 채울 수 있어도 가이드의 역량도 만만찮다. 외국 여행일수록 영향력은 지대하다. 이번에 만난 가이드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해박한 지식과 열정,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이 가히 금매달 감이었다.
(미국 서부의 특성) 여행 중에는 가이드 옆에 바짝 다가가는 게 유익하다. 특히 인원이 많을수록, 마이크가 없을 때 더욱 그렇다. 유능한 가이드를 대동하면 시종 흥미도 있다. 이번 미 서부 여행 때 동행한 가이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정신 자세가 바르고, 해박함이 눈부시다. 그렇다고 자신을 내세우거나 건방진 구석도 보이지 않는 대단한 애국자에 속한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그는 미 서부 여행의 특성으로 세 가지를 든다. Blue sky, White cloud, Open country.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비록 사막이긴 해도 광활한 대지, 푸른 하늘에 뜬 하얀 구름이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무어라 부르리까?) 호칭 문제로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 드물 것이다. 오래전 금강산 관광 때의 일이다. 현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게 꽤 신경 쓰인다. 잘못하면 화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 어느 식당에서 여종업원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아가씨, 동무, 종업원, 어떤 게 좋아요?" 그녀는 웃으며 대답한다. "다 괜찮아요. 좋을 대로 하시라우?" 이번 미국 여행길에 기내 스튜어디스에게도 물어보았다. 부를 일이 많지 않지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해서다. "승무원님이 좋겠지요." 하긴 이런 호칭보다는 벨을 누르거나 손을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칭, 잘못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에 조심할 일이다.
(사막에 일군 도시) 이번 여행으로 LA에는 두 차례 방문하였다. 별 준비하지 않고 다니다 보면 귀중한 사실을 놓치는 때도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사막 위에 건설된 도시임을 진작 알았어도 미국의 제2 도시인 LA가 사막 위에 건설된 건 이번에 알았다. 들렀던 미국의 서부 4개 주, 즉 네바다, 유타, 아리조나, 캘리포니아주에서 샌프란시스코만 빼면 대부분이 모하비 사막에 속한다. 시외로 나가 광활한 대지를 달리다 보면 사막임을 실감한다. 나무가 거의 없는 산과 들판의 모래사장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산불이라도 나서 벌거벗은 줄 알았다. 쓸모없는 황무지에다 물을 끌어와 건설한 도시임을 알고 놀라지 않을 사람 드물 것이다.
(카지노 실습) 미국 여행 중에 라스베이거스서 일박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곳이 모하비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도시의 휘황찬란함에 도취 되어, 또 카지노라는 선입견이 먼저 작용하기 때문일 터. 전에 들렀을 때 비해 도시가 많이 변하고 있었다. 돈에 눈이 먼 도박의 도시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종합 휴양 도시로 변모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들린 김에 카지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실습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의 금액으로 예정된 시간에 마치면 뒤탈은 없다. 노인들의 천국 같다. 강원랜드와 달리 실내 흡연이 허용되는 바람에 호흡하기조차 어렵다. 두어 시간 탐구학습 마치고 미련 없이 돌아섰다.
(라스베이거스의 미녀들)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브라질 무희들처럼 찬란한 의상을 갖춘 늘씬한 미녀들이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궁금하여 뭘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함께 사진 찍고 팁을 받는 여성들이다. 자칫 사연을 몰라 그들 옆에서 사진 찍다가는 팁 주지 않고 배기기는 어렵다. 라스베이거스의 밤에는 짝지어 다니는 공작 미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다들 목 좋은 곳에 진 치고 관광객들에게 함께 사진 찍기를 권유한다. 이 외에도 라스베이거스에는 자가용 비행기가 즐비하다. 시내와 인접해 있어 머무르거나 뜨고 내리는 모습을 쉽게 본다. 미녀 도우미와 자가용 비행기, 이곳 명물이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미 서부지역에는 선택 관광이 많다. 관광 상품 속에 선택 상품을 모두 포함시키면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LA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마찬가지다. 여행한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들릴 필요가 없다는 게 주류였다. 아마도 그들은 구경하지 않았을 수 있다.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잠시 후였다. 영화 장면보다도 더 실감 나는 서부활극 장면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건물이 불타고, 고공에서 총 맞아 떨어지고, 각종 선박들이 총출동하는 전투 장면. 맨 나중에는 비행기까지 호수 위에 날아든다. 최고의 장치, 최고의 기술, 최고의 연기가 보여준 종합예술 세트다. 가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LA 할리우드 내에 있는 명예의 거리에는 유명 영화인들의 손바닥과 발자국이 찍힌 동판이 모자이크처럼 바닥에 깔려 있다.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연예인들의 사인이 함께 있어 관광객들은 손과 발을 대조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한국의 유명 배우 안성기, 이병헌의 것도 있다. 바로 옆에는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할리우드의 명물 돌비극장이 있다. 입구서부터 마지막 시상 장소까지는 긴 회랑으로 되어 있으며, 각 기둥에는 연도별 수상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국의 국내 영화제지만 인기 유명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자리여서 주목을 끈다. 이곳은 전 세계 영화 펜들로 항상 붐빈다.
(요세미티 공원의 도토리) 가이드에 의하면 세계에서 제일 큰 바위는 호주에 있고, 둘째로 큰 바위가 바로 요세미티 공원의 것이란다. 켈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미국 최고의 국립공원이다. 총면적이 3,081 평방킬로미터, 표고는 해발 609미터에서 3,962 미터에 이른다. 우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큰 나무들이 즐비하다. 공원에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면서 관광객들의 이동을 돕는다. 나이든 사람에겐 승차 계단을 내려서 탑승시킨다. 거대한 바위 위에 내린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계곡물을 넘치게도 한다. 물이 흐르면 폭포 높이가 700미터에 이른다. 도로는 물론 온데 도토리들이 널려있어도 줍는 사람은 없다. 우리보다 씨알이 훨씬 굵어 탐이 난다.
(인사 못하는 사연) 해외여행 때면 종종 느끼는 일이다. 인원이 적을 때는 서로 인사도 하고 싶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또 어떤 일을 하는지 알면 분위기가 보다 부드러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인사엔 결코 장점만 있지 않다는 것을. 한국서 함께 가는 관광객이 있는가 하면 현지에서 합류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날 관광객 한 사람이 모두에게 인사하기를 제안하였단다. 그런데 현지에서 동참한 여성이 이름을 대는데 다른 여성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고 동창인 그녀는 막대한 부채를 안고 도피성 이민을 한 사람이었다나. 그 후 가이드는 상호 인사를 절대 시키지 않는다고 하였다.
(금문교의 비극)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샌프란시스코를 내세운다. LA와 더불어 미 서부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표할 만한 명물로 금문교를 꼽는다. 1937년 완공, 총 길이 2,737미터, 수면으로부터 67미터 높이, 사람은 무료이지만 차는 통행료 3달러를 지불한다.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어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옥에도 티가 있는 법인가. 빼어난 미의 뒤에는 슬픔이 담겨 있다. 완공 후 지금까지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1,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자살을 부추길까 봐 요즘은 언론 보도도 자제한다. 금문교가 없었더라면 이런 비극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화장실 줄서기) 미국 여행 중 가장 성가신 일이 화장실 줄서기이다. 우리나라에선 여성 화장실에서만 보아 왔는데 이곳에는 남자도 예외 아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모처럼 만나는 화장실은 우리처럼 그리 넓지가 않다. 화장실도 반드시 슈퍼마켓을 통과해야 다다를 수 있다. 화장실을 내놓는 대신 물건을 사라는 은근한 압력이다. 여성은 물론이지만 남성이 줄서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대 소변 구가 각각 두세 개에 불과하다. 50명 대가족인 우리는 이 상황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화장실 방문은 현재의 문제 해결도 되지만 미래에 대한 예비이기에 더욱 치열하다. 화장실은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가 최고임을 실감하였다.
(야생동물 먹이) 요즘 명소 어디를 가나 물고기 천지이다. 연못마다 잉어들이 우글거린다. 기억에 남는 곳이 양양 낙산사, 정동진 선박호텔, 남원 광한루, 그리고 가까운 구미 금오산 호수 정도이다. 정동진에서는 물에 뛰어들어도 고기 등에 얹혀 가라않지(?) 않을 정도로 대형 물고기가 우글거렸다. 관광객들이 먹이를 많이 준데 기인하는 바 크다. 다행히 금오산에는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미국 여행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이런 팻말들이다. 그랜드캐년 주위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산다. 차를 타고 가면서 가끔 보기도 하였다. 이들에게 먹이를 주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야생은 야생대로 두는 게 좋다.
(우리 것도 사랑해야지) 미국을 여행하면서 줄곧 가진 생각이다. 동부가 사람 사는 동네처럼 여겨졌다면 서부는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혹자는 짧은 며칠 동안 본 것 가지고 속단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서부는 사막이 많다. 광활한 대지 위를 아무리 달려도 사막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사막 위에 건설한 도시가 놀랍고, 더 놀라운 것은 자연의 웅장함이다. 우리가 만난 3대 캐년,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곳은 그랜드 캐년이다. 일찍 사진을 통해 본 곳이지만 입을 다물 수 없다. 자연의 조화가 이토록 웅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규모가 엄청나다. 깊이가 무려 1.6Km에 달한다. 귀국 후 우리 것을 덜 사랑할까 염려되었다.
(대한항공 급식소?) 미 서부 여행 마치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한항공이 입 출국하는 신청사이다. 여행도 재미있지만 유능한 조종사와 스튜어디스의 모습만 봐도 즐겁다. 몇 개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또 예쁘고 바지런한 몸놀림에도 반한다. 대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승무원들이 모두 한곳으로 우르르 몰려 줄을 선다. 이 착륙하는 조종사와 여승무원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대한항공의 무슨 집회 장소 같다. 궁금한 나머지 길게 늘어선 곳으로 다가갔다. 나는 웃으며 "여기가 대한항공 급식소입니까?" 물으니 "대한항공과 계약하여 커피를 무료 제공하는 곳입니다."라는 스튜어디스와 함께 크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