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산(修德山, 794.2m)
산행일 : ‘19. 3. 9(토)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산행코스 : 내가둘기 버스정류장→’‘숲속나들이 펜션’ 입구→남쪽 능선→수덕산 정상→북쪽 능선→애기고개→임도→도솔천사 앞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4시간5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경기 최고봉인 화악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마지막에 우뚝 솟은 막내둥이 봉우리로, 명지산과 화악산 등 인근의 유명산들에 가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산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그리운 산‘이라 하겠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사방에 널려있는 기암괴석들을 눈에 담으며 걷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반면에 단점도 있다. 등산로가 잘 트여져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애를 먹기도 한다. 거기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 능선에는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미끄럽기까지 하다. 위험하다는 얘기이다. 초심자들이 단독으로 오르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 산행들머리는 ’상가둘기‘ 버스정류장(가평군 북면 제령리 619-5)
모처럼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한 산을 찾았다. 경춘선 전철 가평역에서 내려 군내버스(33-4번)를 갈아타고 용수동(종점)으로 들어가다 ’상가둘기‘ 마을에서 내리면 된다. 길 건너에 있는 예쁘장한 외모의 ’하모니펜션‘을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버스의 배차 간격이 뜸(약 90분)하니 출발 전에 미리 시간표를 체크해봐야 한다.
▼ 버스에서 내린 다음 버스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100m 남짓 걷자 왼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들머리에 ’숲속나들이‘와 ’꼬리별‘, ’롯데‘, ’나들이‘ 등 펜션의 간판들이 너절하게 걸려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펜션지구를 통과하면 탐방로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길은 가평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잣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이어진다. 코끝을 스쳐가는 진한 내음이 상큼하기 짝이 없다. 그 향기 속에는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듬뿍 묻어 있을 것이다. 소나무가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걸음은 더디게 그리고 호흡은 크게 하면서 느긋하게 걸어본다. 코끝을 맴돌던 솔향이 온몸으로 펴져나간다. 그리고 심신(心身)은 한없이 맑아진다. 피톤치드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피톤치드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한다.
▼ 산행을 시작한지 20분쯤 지나자 능선에 올라선다. 희미하게나마 왼편으로도 길이 나있다. ’한울림펜션‘ 입구에서 올라오는 길일 것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정상까지 2㎞가 남았단다. 그리고 출발지점에서 이곳까지는 800m란다. 하지만 그 출발지점이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정표가 낡았다는 얘기이다.
▼ 능선은 좌우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편은 밋밋한데 반해 왼편은 수직에 가까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 왼편에 ’아일랜드코쿤 펜션‘이 내려다보인다. 클럽형의 펜션이라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비큐(barbecue)는 물론이고 수영장과 카페에다 음악까지 갖추었으니 젊은이들이 좋아할만 하겠다.
▼ 능선에 올라선지 15분쯤 지나자 산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아니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고도(高度)를 높일 수 있으니 엄청나게 가파르다는 표현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기괴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얼핏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은 것도 같은데 지도에는 ’헬기바위‘라고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헬기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마침 바위가 향하고 있는 서쪽 사면(斜面)이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날아가기 직전의 헬기라 해도 되겠다.
▼ 이후부터는 기암괴석의 연속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공원‘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멋진 바위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앞서가던 최군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올라선 바위의 이름을 물어온다. 엉겁결에 튀어나온 이름은 ’너럭바위‘. 열두어 명은 너끈히 올라앉을 정도로 널찍하니 내가 생각해도 잘 지은 이름이다.
▼ 다음은 ’고인돌 바위‘다. 지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이름은 지어내며 작은 굄돌 위에 두꺼운 덮개돌을 올려놓는 ’남방식 고인돌‘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주니 아이들이 여간 좋아하지 않는다. 지도에도 ’고인돌 바위‘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 참나무 일색이던 숲이 언제부턴가 낙엽송(일본 이깔나무)로 뒤바뀌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른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비견되는 명언들을 떠올려본다.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William Smith Clark)‘가 남긴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리차드 버크‘의 주장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겠다.
▼ 바위의 빈도가 점점 짙어간다. 바위를 넘어갈 수 없는 곳에서는 우회를 해가며 진행한다. 자칫 방심하다간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구간도 나온다.
▼ 그러다 마주치는 바위가 ’구멍바위‘다. 바위의 하단에 구멍이 뻥 뚫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에서는 ’통천문(通天門)‘이란 단어가 스스럼없이 튀어나온다. 작년엔가 지리산 종주를 마쳤다고 하더니 통천문에 대한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 바윗길은 꽤 오래 계속된다. 중간 중간에 흙길이 끼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1시간쯤 진행하자 이정표(애기봉↖ 5.40㎞/ 제령리→ 2.90㎞/ 가둘기↓ 2.25㎞) 하나가 나타난다. 오른편은 제령리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등산로, 정상은 물론 왼편이나 이정표에는 코앞에 위치한 ’수덕산‘을 놓아두고 한참을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애기봉‘을 표기해 놓았다.
▼ 잠시 후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만이다. 2.3㎞를 오르는데 2시간이 걸렸으니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웠던 것은 결코 아니다. 초등학생, 그중에서도 저학년인 최군의 두 아이들과 함께 올라왔음을 감안해야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삼각점(춘천 315, 2005재설)과 이정표(애기봉 5.27㎞/ 해독 불가)가 설치되어 있다.
▼ 정상표지석은 허리가 부러진 것으로도 모자라 상반신은 아예 눈에 띄지도 않는다. 수덕산(修德山)은 ’덕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후덕한 몸매를 지닌 흙산으로 연상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른 수덕산은 경사가 가파른 바윗길이 대부분이었다. 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추론(推論)’ 하나. ’덕(德)‘으로 여기고 산행을 시작한 어느 산꾼이 이름과는 너무나 다른 산의 생김새에 분통을 터뜨리며 정상석을 파괴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덕(德)‘ 대신에 ’독(毒)‘이나 ’악(岳)‘ 자를 써야 한다면서 말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이다. 북으로는 명지산과 화악산, 서쪽으로는 구나무산 운악산 등이 연봉으로 이어지지만 그저 나뭇가지 사이로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여름철에는 그마저도 눈에 담을 수 없을 게 분명하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애기봉 방향의 능선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를 낮추어간다. 하지만 개중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 가끔은 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낭떠러지에 가까운 벼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때는 당황하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보는 게 옳다. 잠시 후 오른편, 또는 왼편으로 나있는 우회로(迂廻路)가 눈에 띌 것이다.
▼ 수덕산 능선의 매력은 참나무 숲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나무가 떨어뜨린 낙엽은 장애가 되기도 한다. 가뜩이나 비탈진데다 낙엽까지 수북이 쌓여 미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내지르는 낙엽의 비명소리는 등산객들에게는 기분 좋은 흥취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 그렇게 1시간쯤 진행했을까 첫 번째 삼거리(이정표 : 애기봉↑ 3.92㎞/ 도대리← 1.96㎞/ 수덕산↓ 1.48㎞)가 나타난다. 왼편은 산행을 시작했던 가둘기마을과 하산 예정 지점인 도솔천사와의 중간쯤에 위치한 도대리로 연결된다. 가평으로 나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계속되는 산행이 버거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다만 내려가는 길이 경사가 심해서 만만치는 않아 보인다. 또한 길이 또렷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 능선은 참나무 일색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오래 묵었다. 그만큼 인적이 뜸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6분 후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애기봉↑ 3.62㎞/ 신촌→ 3.00㎞/ 수덕산↓ 1.78㎞)가 나온다. 신촌방향의 길은 아까 도대리로 내려가는 길보다 더 희미하다. 거리도 3㎞나 되므로 하산지점으로 권장할 일은 아닐 것 같다.
▼ 그 귀하다는 ’연리목(連理木)‘을 만났다. 비록 아랫동이지만 두 나무가 하나로 붙어있는 형상인 것이다. 문득 연리지에 ‘끝없는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던 ‘장한가(長恨歌)’가 떠오른다. 백낙천이 쓴 장대한 서사시(敍事詩)로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나눴던 사랑이야기이다. 그리고 집사람에게 그 구구절절(句句節節) 사랑표현을 립 서비스(lip-service)라도 해주고 싶은데 집사람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 멀리 달아나 있다.
▼ 능선을 차지한 암석들로 인해 애초부터 길을 우회시키는 구간도 간혹 나타난다. 이런 우회구간은 하나 같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내려서는 게 만만치 않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뭔가를 가리킨다. 카메라에 담을 만한 뭔가가 있다는 표시이다.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뭇결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 어떤 곳에서는 엉덩이를 아예 땅바닥에 대고 미끄러져 내려가야만 하는 곳도 나온다. 이곳에서 난 최군의 특이한 교육방식을 발견했다. 상당히 위험한 구간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다. 아래쪽에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요즘의 젊은 부모들에게서는 좀체로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 애기고개에 가까워지면서 벙커 등 군의 시설이 자주 눈에 띈다.
▼ 하산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애기고개에 도착했다. 화악리와 익근리를 잇는 고갯마루인데 정상에서 3.7㎞ 밖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나게 오래 걸은 셈이다. 그만큼 내려오는 길이 험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고개에는 좌우로 길이 나뉨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너무 낡은 탓에 거리는 물론이고 지명까지도 해득(解得)이 불가능하다.
▼ 애기고개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조금 전에 올랐던 수덕산은 안 보이지만 화악산과 명지산 줄기가 제법 또렷하게 나타난다. 남쪽의 구나무산과 동쪽의 가덕·북배산 줄기도 또렷하다.
▼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3.4㎞ 길이의 임도는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그리며 고도를 낮추어 간다. 거기다 포장까지 되어 있어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에 딱 좋은 코스라 하겠다. 그게 싫어선지 딱 한곳이지만 지름길은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단축되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샛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내려오는 길에 만난 끈질긴 생명력, 거름기 하나 없는 바위틈새에서도 개의치 않고 꿋꿋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삶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왕성하게 가지를 뻗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그렇게 50분쯤 내려서자 오른편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도솔천사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도솔천사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지만 올라가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했다. 미리 주문해놓은 ‘토종닭 백숙’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식당이 물론 도솔천사 앞의 도로가에 위치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 날머리 근처에서 만나게 되는 사방댐은 아직도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튀어나온다는 경칩(驚蟄)이 벌써 지났건만 산골에서는 아직도 동장군이 물러가기를 거부하고 있는 모양이다.
▼ 산행날머리는 도솔천사 앞 버스정류장
임도로 들어선지 50분쯤 되자 75번 국도로 연결되는 날머리에 이른다. 도솔천사의 진입로를 겸하고 있는지 절의 표지석 말고도 사천왕상으로 보이는 석상이 입구의 양 옆을 지키고 서있다. 그나저나 오늘 산행은 6시간 정도가 걸렸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