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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지난 토요일에 벌써 시어머님의 49제 중 여섯번째를 맞이하여
서울을 다녀 왔다.
금요일에 몸살 기운 속에서도 강행군 했던 문경 방문과
토요일의 행사가 연이어 이어지는 바람에 안그래도 시들한 몸 상태를 안정시키느라
모처럼 일요일의 늦잠을 만끽하려는데 핸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일본 여행 전문가 박인숙씨가 한국을 찾은 일본여행객들을 서울에서 부터 모시고 온다며
자리 비우지 말기를 청하였다.
물론, 나름 인간 외교관을 자처하는지라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들을 반갑게 맞아 서툰 일본어로나마 그들을 환영하는 것은 일상이라 흔쾌히 콜.
와중에 늘 찾아드는 지인과 밀린 일주일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들이 찾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들,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는 무설재 명견들 돌집에 관심을 표하며 멋지다 를 연발하면서
차실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개들과 놀기에 바쁘다.
그 어머니도 예쁜 개를 집 떠난 자식들 대신 애정을 갖고 키우고 있노라며 연신 싱글벙글이고
딸내미는 연신 '와, 와...스고이, 조또마테'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 누르느라 난리굿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동안 뜨락을, 연못을, 텃밭을 구경하며 차실로 들어가서는 '스고이'를 연발한다.
당연히 듣는 쥔장도 기분이 상승지수요 분위기는 시작부터 정감이 넘침은 물론 함께 앉아 다담을 나누자니
불현듯 이층 다락 차실에 오른 딸내미가 이번에는 '스바라시!!!!'라며 환호성이더니만
또 카메라에 정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어쨋거나 다행이다.
워낙 차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인지라 아니라도 좋아할 량이지만
소박한 이층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또 시선을 빼앗기도 할 터
그렇게 조촐한 찻자리가 시작되고 차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열리고 무장해제 당한 모녀들이
그녀들의 집이 있는 일본으로 놀러오라는 청을 하신다.
아무렴 그러고 말구다.
아니어도 일년에 한 번씩은 꼭 가던 길이지만 쓰나미 방사능 사건 이후로 주춤하였던 것도 사실이고 해서
올해는 여정을 서둘러 보려던 참인데 나오시마 섬과 시코쿠 순례의 길에 관심있다는 표명을 하자마자
일본 어머니께서 너무도 놀라워 하며 좋아하시는 게 아닌가.
게다가 관련 책들을 보여주며 밑줄 그어가면서 열심히 들여다 보았던 책자료를 보여주었더니만
더욱 더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기를 청한다.
자신이 바로 오헨로의 66번에 가장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으며 68번 길과도 멀지 않으니
비행기 티켓만 준비하여 찾아오면 나오시마 섬까지 자신의 차로 책임져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하긴 그동안에 숱하게 많은 일본 여행객들이 다녀가셨고 다들 찾아오라며 연락처를 주었지만
굳이 찾아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속내 -혼네-를 정작 알 수 없는지라 인사차 하는 소리려니 싶기도 했고
성격상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일이 싫은지라 지역별로 여행을 가도 연락조차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워낙 나오시마 섬과 시코쿠 순례길에 관심이 많은지라 이번만큼은 그녀의 초대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올해는 그쪽으로 당연하게 여행 계획을 잡아볼까 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더욱 분위기를 타고 절로 흥이 올라 어머니는 시코쿠 순례길을 꼭 찾아오라며 성화요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은 한국으로 힐링차 여행을 온다는 딸내미까지 거들기 시작하더니만
험한류는 일부니 편하게 방문해주길 바라고 나라의 일은 나랏님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며
개인 대 개인의 민간 외교관 역할을 우리끼리라도 잘 해내자면서 수줍게 웃는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자청한 개인 외교간 역할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어
늘 무설재를 찾는 외국 여행객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고
자신들에게 알맞는 선물을 받아드는 여행객들은 항상 환호성을 지르기 마련이니
두 모녀에게도 그녀들에게 딱 어울릴 선물을 주었더니 더더욱 감격을 한다.
그동안 준비하였던 선물들이 다들 제 주인을 찾아기니 부족하다.
이제 다시 슬슬 한국적이면서도 그들이 탐을 낼 만한 것들을 다시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자주 찾는 인사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다녀 온 곳곳을 좔좔 꿰며 이야기를 해주는데
기본은 일본에서 발행한 책자와 그녀의 일본 핸드폰에 저장된 지하철 노선도 이다.
워낙 자주 찾는 한국이어서 관련 자료를 빼곡히 준비하여 다니는 중이지만
무설재는 깊은 산속 무릉계곡 같은 곳이라 비록 그녀가 참고로 하는 안내 책자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머니와 동행하길 잘했다며 부끄러움 많은 딸내미가 활짝 웃기도 한다.
와중에 67세의 어머니와 40세의 딸이 함께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참으로 부럽고 마음 한 켠이 따스해져 왔다.
한때 나 역시 가고시마 아랫녘의 섬 순례는 물론 더러 아이들과 동반 일본 행을 한 기억이 있어
그 모습이 더욱 좋아 보였다는 말이고 친구같은 느낌으로 편편하게 여행중이라는 말에는 더욱 부러웠고
제 엄마를 위해 3박 4일을 온통 할애하는 딸을 보자니 대견하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웬만하면 제 시간을 위해 여행을 하련만 이번 만큼은 엄마를 위해 시간을 배정하였다는 딸내미 배려도 그렇고
그런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전형적인 일본 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음이니 다담 내내 화기애애.
더구나 쥔장의 남편이 불모거사로서 부처님은 물론 절 관련 일을 한다고 하니 더더욱 싱글벙글
그들의 불심이 새삼스럽게 동하는지 자신의 집에 만들어 놓은 불단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자랑하기 까지 하더니만
이야기가 물이 오르고 분위기가 숙성되어가니 불현듯 무장해제 당한 어머니께서 자신의 속내를 터놓기 시작한다.
갑자기 눈물을 보이시며 시집살이 특히 공주과 시어머님의 정신적인 학대에 피폐해진 자신의 며느리살이를
쏟아내기 시작하고 자신의 가정사를 낱낱이 공개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그렇듯이 다담을 나누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마련이지만
일본 여행객이 찾아와서 상담하듯이 자신의 상황을 터놓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의아해도
무설재 쥔장이 또 누구더냐, 이름하여 명상심리지도사가 아니던가 말이다.
하여 차근 차근 조근 조근 짧은 일어와 박인숙님의 일어 통역을 병행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치유의 방법을 찾아가니 결국 한바탕 눈물 젖은 차를 마시며 스트레스를 다 날리게 되었노라는 말을 전하며
감사에 감사 '아리가도 고자이 마스' 를 연발하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든'가마솥 들밥' 집에서는
티비로 보던 한국드라마 속의 비빔밥 먹기 시연을 감행하며 먹방의 지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공중파 방송이 이제는 한류 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를 방송하지 않을 예정이라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다며 그동안 익히 보아온 드라마 이름을 줄줄 꿰느라 난리법석이다.
그 덕분에 한국어를 많이 배웠다면서 틈틈이 우리네 말로 대화를 하며 기꺼이 자랑이다.
한참을 웃었다....그녀 역시 즐겁고 유쾌하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더니 또다시 눈물 세례.
놀라서 쳐다보니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나더라는 것,
시어머니께서도 연로하신 가운데 작년 즈음에 한국을 다녀가시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면서
정말 한국 여행에 행복해 하셨다는 말 끝에 비빔밥을 함께 먹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어
마음이 울컥하다는데 알고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함께 버무려진 애증이다.
시집살이 하는 동안에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켜켜이 쌓인 애증의 관계가
그래도 아무런 여지가 남지 않은 무심의 관계 보다도 그나마 나은 것인지 참,
사람의 정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역시 시집살이가 장난이 아닌 듯.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어쨋거나 그러고도 한참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다가 웃다가 서울로 돌아갈 시간을 늦춰가면서까지
안성의 정情에 취해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그녀들을 보자니 기분이 절로 좋기도 했지만
돌아가야 할 사람은 되돌아서야 하는 법.
그래도 그녀가 마음을 추스릴 때까지 기다려 터미널로 고고고...서울로 떠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이바이.
절로 흐뭇하고 뿌듯했던 일본 여행객들을 마중하고 무설재로 돌아오는 길,
"운전을 잘해야만 무설재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라며 서툰 한국어로 한 마디 툭 던지며
비포장길의 무설재 진입에 흔들려가는 몸을 즐기고 기꺼이 흔쾌해 하던 모습이 화려한 밤 별빛에 어울려 스쳐가고
적막강산 깊은 산 중의 고요가 온 몸으로 휘감겨 온다.
오늘 하루, 일본 여행객들에게 전해 준 한국인의 정 情과 정서가 그녀들에게 충분한 힐링으로 남겨졌기 바라면서
무설재를 찾은 발길 덕분에 시청하지 못한 K 팝스타 3를 다시보기를 하였다.
다들 잘하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버나드 박이 최종 우승하기를 염원한다.
심사위원과 대중의 잣대가 어떠하던지 간에
아름다운 청년 버나드 박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첫댓글 長い文章、すごい。
ㅎㅎㅎㅎ 좀 그렇죠.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韓国人のような日本人. //
一緒に ヒ-リング なりました.
제가 일어가 짧아서 어렵긴 하지만 열심히 일본인들과 교류 중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고맙습니다.
햇살편지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한국어수다방 많이 애용해주셔요~~
넵.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글에 감동받고 갑니다 ㅎ 저도 언젠가는, 한 번쯤은, 마음이 통하는 일본사람을 만나 살가운 교류도 해보았으면 싶네요 ㅎ
ㅎㅎㅎㅎ 그러시길 바랄게요.
일본인들 개인으로 보면 괜찮은 사람들 많아요.
하지만 역시 속내는 우리만큼 솔직하게 드러내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