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 외연확대의 실험=스탠스를 잃은 이회창
‘개혁보수=2당중 좌파당 1+우파당 내 좌파 그럴듯 편 0.5’
1. 2007년 10월에, 한나라당 후보가 ‘외연확대’란 이유로 ‘열린당’보다 ‘열린당’이념을 지지하면?
극단적 비유를 했다. 그러나, 결코 부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김대중 정권 이후에 ‘민족해방계열’은 삶의 영역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칭되었다. 한나라당 자료가 있다면, ‘여중생 사망 정국’을 대처하는 한나라당 선거위원회의 전략적 사고가 담긴 동영상을 보여야 한다.
이회창이 텔레비전 연설 무렵에 지지율 속락한 것이 아니다. 이회창은 법관 출신 답게 역대 어느 정치인보다도, 텔레비전에 강했다. 특히, 노령에도 불구하고 방송용 분장이 기가 막히게 잘 받아서, 50대 중반처럼 보이는 일까지 가능했다. 또, 전임 대통령이 70대 대통령 2명이라서 부담감도 적었다. 이회창이 텔레비전 연설 무렵에 지지율 속락한 것은,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으로 정리되는 일 때문이었다.
한나라당 선거전략위는 ‘민주당’과 정확하게 모든 바가 똑같이 하면,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으로 믿었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미치광이’의 판단은 멈추지 않고 있다. ‘보수주의’+‘민족해방이념’이니 외연이 넓은 한나라당을 찍고, 민족해방이념 주축의 민주당을 외면할 것은 쉬울 일 아닌가? 그러나, 한나라당 선거전략위는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사건으로 해고된다.
좌파의 지지는 오지 않았고, 우파의 지지는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 때 받은 상처는, 2007년 대선 정국의 ‘한나라당 주류’행보를 결정하고 있다. 이때 잘못만 없었다면 김대업 정국을 극복하고 남았을 것이란 것이, 한나라당 주류의 생각이다. ‘정치평론가’라 자처하는 ‘박사모’에 올린 모씨의 글을 보면서, 어쩌자고 정작 중요한 것은 못 보나 싶어서 서둘러 반론을 적어 본다.
2. ‘외연 확대’→ 우파정당의 좌향좌’!! ‘우파 정당’집권의 열망암시의 반복이 되었어야 할 순간에.
한나라당의 ‘얼치기 조언자’일 수록, 좌익 정당을 전혀 모른다. 좌익 철학 10권을 읽었을 가능성 전무하고, 좌익들과 얼굴 마주하면서 희노애락 한번 없었던 이들이다. 권신일씨의 <승자만을 위한 전쟁>, 좋은 책 만들기, 2006.에서 ‘국민경선제’등의 민중주의를 아쉬워 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얼치기 조언자이다.
한나라당 이념을 생각할 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프레임은, ‘대한민국’이란 국호에서 떠올려지는 ‘입헌군주제’와 ‘공화제’이다. 왕을 그리는 민중의 마음이다. 반면에, 민주당 지지자들에겐 이 프레임이 악마적인 것으로 떠올려지고 있다. 국민 경선제로서 어떠한 화끈한 프로젝트를 예상해도, 일반 군중의 참여는 저조할 수 밖에 없다.
김영삼 집권 이후에 ‘미개 한국’이 일본에 따라 배우듯 ‘좌익’의 방식을 따라 배우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권력은 ‘비변사기구’로서의 권력의 첨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군중’에서 나온다. 한나라당은 김영삼 집권 이후에 가능한 권력배분을 그리워 했다.
정통 보수 35%+개혁보수25% /// 좌파 25%+무관심 5%
그러나,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은 이러한 비율로 끝났다.
정통보수 35%+개혁보수 5~7%/// 좌파 25%+개혁보수 17~18% ///무관심 5%
그러면, 이러한 결론이 가능하다. 한나라당은 ‘개혁보수’가 ‘외연확대’란 차원의 군불 때기로, 1990년대 이후 한번도 ‘정통 보수’집권의 집권 전략을 집중적으로 암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는 즉시, ‘개혁보수’가 달아나겠다는 협박이 가능한 상황임을 똑똑히 목도하기도 했다. 또, 2002년 이회창의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부분을 애써 지우는 것을 보면, 모 정치평론가와 권신일씨가 그 부분에서 직접적 개입자인듯 하다.
두 번 대선은 실컷 한나라당의 정통 보수 층을 실망시키게 하고서는, 김영삼 계 지지표는 작은 선거 때에 한나라당을 찍다가, 대선 때는 대거 김대중 이념을 찍었다. 1960년대부터 줄곧 온건 좌익에 1989년에 ‘극렬좌익’이었다가, 1994년에 온건 보수가 된 김영삼의 변신을 바라보는 ‘김영삼 지지표’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다.
김영삼계를 붙잡고자 ‘왼편’으로 틀면, 고정표가 무너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김영삼계는 제한적 인원만이 대선 때까지 높은 충성도를 보여줬다. 외연확대를 부르짖는 이들일 수록, ‘당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정표’에 둔감하며 ‘남’처럼 말한다.
3. 전직 야당지였던 보수미디어 ‘조선’‘동아’에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친 거물좌익 지식인의 논리 비판이 실린적 없고, <월간조선>엔 거물좌익 지식인에 얼치기 대학생들의 동정심을 일으키는 표적 공격만 있었다.
한나라당에 조언을 하는 얼치기 전문가일 수록, 하나의 젊은 좌익 주체가 교육되고 형성되는 과정에 ‘거의 밥통’ 수준의 무식을 드러내고 있다. 88년 수준의 반공서적에 기초된 피상적 좌익 인식이 거의 전부이다.
정통 보수 이념도 주기적으로 환기해줘야만 정상적 작동이 된다. 김영삼 집권 이후 정통 보수 이념이 너무 강하다는 차원으로, 좌파 이론도 필요하다는 가닥을 많이 내세웠다. 실제로, 본인도 그렇게 장기간 속았다.
자칭 정치평론가란 분이 이회창이 왜 시대정신을 받지 못했는가를 안타까워 했는데,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을 공격하는 조갑제기자 조차도, 북한인권운동을 친북좌경 거물인 백낙청교수식의 분단체제론을 사용하는 경우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것인가? 조갑제기자조차도 색깔론으로 몬다는 한나라당의 개혁 보수 세력의 비판은 별개로, 분단체제론의 이념적 특성인 반역자들에겐 시스템의 탓으로 몰고 우익에만 죄를 몰아넣는 논리에 대하여, 제도권 미디어에서 단 한면의 지면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한나라당의 지지자를 꼽으려면 35%를 대변하는 인물을 꼽아야 하고, 한나라당 지지미디어는 그러한 자들을 이용하여 ‘전직 야당지’인사간의 혈연 의리를 갖추려고 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미디어의 ‘의리’문제는, ‘동아일보’의 노무현에 대한 경칭 문제로 틀어지는 바에서 여과없이 드러났다.
‘개혁 보수’한다면서 정통보수에 걸맞은 사람 세워 놓고, 좌파 컨텐츠만을 폭포수처럼 내세웠다. 국가안보 분야에 대한 지극정성도 오직 제 정신 차린 이후에서의 좌파 컨텐츠 퍼뜨림이 가능한 사회 만들기 수준이다. 외연확대를 부르짖는 이들은, 어김없이 이 스타일을 유지했다. 따라서, 군중심리학 속에서 ‘보수당’후보가 그럴듯 해보이는 일은 없다. 늘, 2 중에서의 1.5로 좌파 후보가 좋아보일 수 밖에 없다. 강한 정통 보수가 양보하란 주장을 하면서, 좌파와 단절했다는 이미지를 내보이나, 실제로는 늘 좌파와 연결되었다는 의혹은 떨어지지 않는다.
*. 김처사라고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자의 글을 읽고 쓴 반론이다. 검색엔진에서 보아하니, 뉴라이트이다. 외연 확대란 말은 뉴라이트가 ‘웩 더 독’(꼬랑지가 머리 흔들기) 할 수 있는 바탕이다.
한나라당 지지자가 하나를 양보하면 ‘외연확대’주장자가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젠, ‘외연확대’주장자들의 ‘무보수 양보’를 기대해보자는 것이 10여년 참은 보수의 울부짖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