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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 시대에 한 편의 초콜릿 광고(사진)가 비움(공·空)에 대한 의미까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오른쪽 아래 구석에 조그맣게 쓰인 ‘쉬세요(Have a break)’라는 카피와 빨간색 킷캣(kitkat) 로고가 어렵사리 눈에 들어옵니다. 잡지 양면에 걸쳐 비주얼이라고는 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 인쇄상의 사고 내지는 제본작업의 불량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초콜릿이라는 제품이 원래 달콤한 휴식을 위한 필수품인 만큼 광고 역시 비주얼과 카피를 완벽하게 절제해 수없이 많은 활자로 채워진 잡지의 기사와 기사 사이에서 독자들이 한 호흡 쉬어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제품의 본질과 광고의 컨셉트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혹자는 “그 광고 아주 쉽게 만들었겠군”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광고밥’을 10년 이상 먹은 제 눈에는 처음부터 비워진 게 아니라 꽉 채워서 비운 듯한 느낌이 들어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이 광고가 광고 매체로 정보 중심의 시사 전문지를 선택한 점도 제작사인 네슬레가 지난 몇 년간 이끌어온 ‘쉬고 싶을 땐, 킷캣’이라는 광고캠페인의 정수를 맛보게 해줍니다. 이 광고는 얼마 전 태국 파타야에서 개최된 2002년 아시아퍼시픽 광고페스티벌(AP-Adfest)에서 인쇄광고부문 금상을 수상하여 다시 한 번 세계인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킷캣의 또 다른 시리즈 광고들도 캠페인부문 은상을 받아 주목을 끌었지요. 휴지통에 쌓인 서류뭉치 위에, ‘30일 만에 20파운드 빼기’라는 제목의 다이어트책 책갈피로, 파이팅 피시(Fighting Fish) 두 마리 사이에서 휴전선 역할로 먹고 버린 킷캣 포장지가 등장합니다. 일하다가도, 싸우다가도, 심지어 다이어트 중에도 잠시 쉬고 싶을 때 킷캣을 먹으라는 위트 넘치는 메시지 덕분에 입가엔 절로 미소가 번지네요.
어떠세요? 이 글을 읽고 난 뒤 잠시 쉬었다가 신문을 마저 읽으시는 것은…. 휴식 같은 초콜릿, 킷캣을 드시면서 말이죠.
예희강 제일기획 시니어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