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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신앙 생활의 10가지 명령 4부
- 네 번째 명령 “항상 기뻐하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신앙 생활의 10가지 명령 4부
- 네 번째 명령 “항상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전서5:12~24
부 르 심: 시편150:1~6
찬 송: 144(144),250(182), 303(403),438(495)
기 도:
1) 항상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예배를 드리는 감격이 되게 하소서
3) 항상 찬양하고 기뻐 춤추는 자가 되게 하소서
4)자유통일, 자유대한민국, 성령충만, 주사파척결 전도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울의 종말론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올바른 신앙 생활의 10가지 명령 중
네 번째 명령 “항상 기뻐하라”라는 제목으로 이 시간에 은혜의 말씀을 나눔으로
항상 기쁨의 은사가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낯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1:3~5)”
하나님의 창조 첫날에 있었던 것은 빛입니다.
빛이 있어야 창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빛이 있다는 것은 창조자가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자를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첫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빛이 있었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어나니(요한복음1:9)”
참빛은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동방박사들이 별빛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태복음2:2)”
예수님의 탄생은 이 세상에 빛을 비추시는 생명이셨습니다.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1:5)”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 거듭나는 가장 큰 기쁨의 전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혼의 거듭남이 되는 기쁨의 복음이 되어야 할줄을 믿습니다.
태양빛보다 밝은 빛이 내 속에 비취는 것은 내 속에 예수님이 계셔 영접함의 거듭남으로
기뻐 춤추는 찬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속에 빛으로 계신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셔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는 기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5)”
2.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뻐하라(사도행전3:1~10)“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인 된 자가 날마다
성전 미문이라는 곳에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였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우리를 보라”고 하니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보라보았습니다.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사도행전3:6~9)”
나면서 앉은뱅인 된 자가 날마다 구걸하여도 성전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걷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오르손으로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일어나 걸어갈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여 기뻐 춤추는 찬양을 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경배하는 찬양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3:17)”
3.삭개오가 기뻐하여 영접하는 나눔(누가복음19:1~10)
여리고에 세무서장 삭개오가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습니다. 삭개오는 세부서장이자 부자였으나
그 마음은 항상 어둡고 기뻐할 일이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삭개오의 이름은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름의 뜻과 달리 그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세무서장으로 로마의 공권력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세금을 징수하는 자였습니다.
삭개오는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부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삭개오를 나라와 민족의 반역자로 생각하여 삭개오를 매우 경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항상 사람들을 경계하며 겉으로는 센척하였지만 외롭고 고독하여
웃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삭개오는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궁금하여 보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끼어 들어가 볼 틈이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볼 수 있을까 하여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마침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뽕나무를 향하여 위로 쳐다 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뽕나무를 바라보니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누가복음19:5~6)”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하니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엿보는 삭개오는 자기를 바라보며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삭개오는 한번도 예수님과 대화한적도 없고
자기 이름을 예수님에게 갈켜 준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이름을 아시고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예수께서 자기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목소리에
지금까지 없었던 큰 기쁨이 그 속에서 넘쳐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기쁨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에게 놀라운 고백을 들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19:8~9)”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쁨의 변화 중에 하나는
삭개오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구제할 수 있다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인색하기로 유명하고 나라와 민족의 반역자로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왕소금 삭개오가 예수께서 자기를 이름을 불러 자기 집에 유하여야겠다는
목소리에 감동하여 빼앗는 자가 아닌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자 삭개오가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토색한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 하였으니 계산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은 삭개오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토색한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토색한 일이 있어 네 배나 갚아버리면 실상 삭개오는 다 털어내어 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삭개오의 변화된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19:9~10)”
예수께서 오심에 예수님을 만날려고 힘쓰는 자에게 예수님의 말씀에 영접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주는 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이름 없는 큰 부자 청년의 심한 근심(누가복음18:18~30)
성경 누가복음에 두 부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 삭개오입니다.
또 다른 부자는 큰 부자 청년입니다.
부자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쁨으로 즐거워하여
자기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또 토색한 일이 있거든 네 배나 갚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구원을 보시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큰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1>이름이 없는 큰 부자 청년
예수님은 부자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고 삭개오의 이름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큰 부자 청년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부자 청년이 아니고 큰 부자 청년입니다.
큰 부자 청년 정도이면 재벌 2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자 청년의 이름은 없습니다.
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도 거지 나사로의 이름은 있지만 부자의 이름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감동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기록된 책으로 이름 있는 부자 삭개오의 이름을 기록한 것과
큰 부자 청년의 이름이 없는 차이가 무엇일까요?
부자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는 이름으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부자 청년 기업가는 세상에서 유명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저 천국의 생명책에는 이름이 없으므로 복음서에서는 큰 부자 청년이라만 부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으로 예수께서 나를 아시는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생명을 얻어 항상 기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심히 근심하는 큰 부자 청년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눅18:23)”
큰 부자 청년이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달려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10:17)”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막10:19)”
예수님의 말씀에 큰 부자 청년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부자 청년의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부자 청년은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큰 부자 청년은 도덕적으로도 완벽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채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가복음10:21)”
사랑하는 여러분,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의 것만 채울려고 하고
저 세상의 창고를 채울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 세상의 것을 채울려는 욕심은 가득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저 세상의 하나님 나라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내세신앙이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저 세상의
하나님 나라인 천국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만의 것을 가지는 큰 부자가 되어도 저 세상의 하나님 나라를 채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는 반드시 심히 근심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마가복음10:22)”
부자라고 무조건 지옥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 삭개오처럼 예수께서 부르시는 생명책에 이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큰 부자 청년처럼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이 심히 근심하여
예수님을 떠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재물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감동하는 마음에 나누어주는 기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루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5.여호와 앞에서 뛰노는 찬양의 기쁨이 되자(삼하6:12~23)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중심의 섬김에 자신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다윗이 가서 하나님이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 로 올라갔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기쁨으로 찬양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영적으로 기뻐해야 할 일을 오히려 업신여기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갈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춤추고 찬양하여 기뻐하는 것을 업신여기는 여자였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왔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에게 나와서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삼하6:20)”
사울의 딸 미갈의 말은 욥기서에 욥의 아내처럼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미갈의 말에 동감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6:21)”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앞에서 찬양하여 항상 기뻐 춤추어 뛰노는 것이 되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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