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페미디아 일부 발췌
http://femidea.com/?p=13650
레베카 트레이스터(Rebecca Traister)는 임신 24주에 접어들며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거주 중인 뉴욕 주에서 24주 이후의 임신중단 수술은 의료적 상황을 제외하면 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임신중단 수술을 해야 한다면 그에게 그것은 이른 제왕절개 수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임신중단 수술은 여성의 재생산권의 초석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임신기간 중에 의학적, 경제적, 혹은 심리적 상황에 의해 나의 운명과 뱃속 아이의 운명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나의 권리, 건강, 의식, 그리고 내 갓난아기인 딸을 포함한 제 3자에 대한 의무가 태어나지 않은 뱃속의 인간의 권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그는 “임신중단에 대한 이런 식의 발언은 여성의 결정권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무정하게 들릴 여지가 있다. 하지만 임신중단은, 임신한 여성이 무정하고 아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 임신중단에 대한 토론은 여성의 생명보다 태아의 생명을 훨씬 존중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담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담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의 임신중단에 대한 경험담은 죄책감과 자책감으로 뒤덮여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싸늘하고 부도덕적인 여성”이 되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하여 “임신중단을 도덕적 선(善)으로 환원하자고 주장하는 작가 카사 폴릿(Katha Pollitt)의 새로운 책 ‘프로(Pro)’에서는, 임신중단의 잔혹화(“awfulization”)라고 이름 붙였다.”고 소개하며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임신중단이 태아나 배아에 관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임신중단은 아기들에 관한 일 역시 아니다. 임신중단은 여성에 관한 일이다: 여성들의 선택, 건강, 그리고 개인적인 도덕적 가치관에 대한 일이다.”
그는 이런 논의의 근거를 역사 속에서 찾는다.
“1914년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는 ‘여성 반역(The Women Rebel)’에서 처음으로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라는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그 당시 아기들은 오늘날에 비해 숭배적 헌신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많았고, 사망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끊임없이 임신하는 어머니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당시 법률은 피임 관련 정보를 퍼뜨리는 것을 불법화했고 여성들은 산아제한의 마지막 수단으로 임신중단을 하곤 했다. 생어 본인은, 임신중단에 반대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 당시에는 임신중절 수술이 굉장히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피임에 대한 논지는 여성의 안전(그리고 성적 자유)에 대한 논지와 통했으며, 여성들의 삶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는 생어의 피임 접근권에 대한 60년에 이르는 투쟁이 성공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신중단은 여전히 불법으로 남았다. 이후 “페미니스트, 교회 지도자,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진보적인 1967년 임신중단법을 서명한 베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와 로날드 레건(Ronald Reagan)을 비롯한 공화당원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는 사실을 조명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러한 노력을 한 이유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아니라, 섬뜩한 수술로 인해 불구가 되고 사망에 이르는 여성들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가족들과 주변 인물들의 임신중단 사실에 대해 “나는 우리 가족 내의 임신중단의 횟수가 흔치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들은 것만 세도 내 40대 친구들의 절반 정도가 임신중단을 했다. 나는 무수한 여성들을 알기 때문에 임신중단을 한 여성들 역시 무수히 안다.” 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그의 할머니와 이모들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절 수술 경험들 속에, 그들이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전한다.
그러나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 1이 결정된 이후, 그는 이런 변화에 대하여 그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인들의 심경을 토로한다. “어머니, 할머니, 이모, 자매, 친구들, 그리고 내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은 갑자기 가치를 상실한 듯 했다. 마치 임신중단과 그 외의 전문적, 경제적, 그리고 성적인 기회를 얻은 대신, 도덕성을 주장할 권리를 잃은 것만 같았다. 상상 속에서 묶인, 이 독점적 재생산 활동에 대한 도덕성 말이다. 부상한 여성을 위협하는 대신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순수, 취약함, 의존성과 같은 가치를 부여 받은, 실존하는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 아기 말이다. 이전에 여성들은 이로부터 자유로웠다.”
임신중단 반대 세력들은, 40년 동안, 가족, 사랑, 그리고 도덕에 대한 언어를 배아와 태아에 적용하며 임신을 하는 주체인 여성을 구석으로 몰아 세웠다고 그는 말한다. 합법적 중절로 끝나는 임신이 유산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79%가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지인이 있다고 하는 반면, 52%만이 임신중절을 한 지인이 있다는 뉴욕대 사회학자 사라 코원(Sarah Cowan)의 새로운 연구를 근거로 든다.
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신중단을 한 지인들이 있을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더 진솔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재생산권을 공식적으로는 지지하지만 부진하고 영혼 없는 표현으로 옹호하는 정치인들에게 해당된다. 힐러리 클린턴이 임신중단을 ‘슬프며 비극적이기도 한 선택’이라고 묘사한 것이나 존 케리가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드물게 일어나는 일’로 만들겠다고 한 선언을 생각하라. 이 조심스러운 발언들은 둘 다 2005년 이뤄진 것인데, 민주당은 그 후 세월 동안 아주 조금 덜 소심해졌을 뿐이다.”
그는 임신중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주지하며, 기존의 인식을 타파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소개한다. 길런 로베스피에르(Gillian Robespierre)의 로맨틱 코미디인 ‘확실한 아이(Obvious Child)’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임신중단을 하려는 젊은 여성의 선택이 합리적이며 비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그려지는 것, 에밀리 렛츠(Emily Letts)라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26세의 여성이 자신의 비디오를 온라인에 올린 것, 앞서 소개한 폴릿의 저작 ‘프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로리아 아브라함(Lauria Abraham)은 엘르(Elle)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인용한다. “나는 내 임신중단 수술 에 대해 죄책감이나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임신중단 수술’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정치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한다.
“정치인들은 임신중단을 근본적이고,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의료적 선택으로 옹호해야 한다. 비도덕성은 임신중단이 아니라, 가난한 여성들에게 합법적 임신중단을 위한 지원금을 지원하지 않는 하이드 헌법 수정 조항(Hyde Amendment) 2으로 인해 불공평을 악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는 또한 더 많은 여성들이 정부 대표자가 되어 임신중단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며, 네바다 주 의회 의원인 루시 플로레스(Lucy Flores)의 경우를 언급한다. 루시는 자신이 일곱 자매들 중 유일하게 10대 때, 아이를 갖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한다.
“제가 열 여섯에 임신중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전 지금 여기서 변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위 홍보포스터도 가져왔어!!💜❤️💜◾️💜❤️◾️😖❤️💜💜❤️
진짜 한시간만참여해도 되니까 같이 참여하자
임신중단은 여성으로 살기위해 가져야할 필수적인 선택권이라고 생각해
검은옷입구 싸매고 잠시참여해도 좋으니 많이들 참여해줘!!!!!!
홍보는 이쁘게 봐조..!
첫댓글 가야겠다..
고마워요 서명도 꼬박꼬박 하고있어
내 몸은 씨봘 내거다
멀리살아서 못가지만 ㅠㅠㅠ 참여하는 분들 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