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극도로 피곤하였지만 깊은 잠으로 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수년 만에 친정 형제들이 모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마음이 많지만, 선대할 수 있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부정성으로 오염된 마음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본문 주해)
35~37절 :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자기를 치라고 한다. 이것은 그냥 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선지자 친구가 농담으로 여겼는지 친구를 치지 않았다.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 친구에게 ‘네가 사자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한다.그 말대로 사자가 그 친구 선지자를 죽였다.
아합의 시대는 선지자가 귀한 시대인데, 이 정도의 일로 선지자가 죽게 되나 싶지만, 이는 하나님 말씀의 엄중함을 나타낸다.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기를 치라고 할 때, 이 사람은 그 사건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선지자를 상하도록 친다.
38~40절 : 상처 입은 그 선지자는 붕대로 눈을 감아 위장하고 길목으로 나가서 왕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최종적으로 왕에게 하소연하는 풍습이 있었다.
자신이 전쟁의 포로를 대신 맡은 이야기를 한다.
만약 그를 잃어버리면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 하든지 아니면 은 1달란트를 내어야 한다는 약속을 하고 그 포로를 맡았는데 자신이 볼일 보는 동안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왕에게 묻는 것이다.
은 1달란트는 당시 노예 한 사람의 100배 가치라고 한다. 이것은 가난한 병사가 지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이다. 그는 포로를 놓쳤으니 대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합 왕은 ‘네가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한다’고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자(벤하닷)를 너의 이익을 위하여 놓아주었으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을 비유로 전하였지만 아합은 알아듣지를 못한 것이다.
아합은 이 상황이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인 줄 모르고 스스로 술술 잘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41~43절 : 선지자가 수건을 벗으니 아합은 그가 선지자인 줄 알아본다.(당시 선지자들만의 표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지자는 방금 아합이 한 그 판결이 아합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임을 알린다.
아합이 교만과 허영심 때문에 살려준 벤하닷은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한 자인데, 아합이 살려주었기 때문에 아합이 그를 대신하여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람 백성들을 대신하여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선지자로부터 심판의 말씀을 듣고 도리어 마음이 상하여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의 궁으로 돌아갔다.
(나의 묵상)
아합이 벤하닷을 살려준 결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유익한 결과였다.
잃었던 영토를 되찾았으니 국가적으로도 유익이 되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거리를 이방 나라에 만들게 되었으니, 개인적으로도 위상을 떨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는 환영받는 일이었으나, 하나님은 그 일의 결과에 대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아합에게 이것을 깨우치시려고 어이없게 또 한 명의 선지자가 죽으니 참 안타깝다.
그 어이없는 죽음은 하나님 말씀의 엄중함을 나타낸다.)
벤하닷을 살려줌으로 ‘나 좀 봐라’ 하며, 한껏 높아진 아합의 마음이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추락한다.
본문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라고 표현하는데, 새번역에는 ‘마음이 상하여 화를 내면서’ 라고 번역한다. 끝까지 회개할 줄 모르는 아합이다. 과연 아합은 주님의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결과라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 높은 권좌에 오르는 것, 인기를 얻는 것.....등의 자아확장은 누구에게든 언제나 환영받는 일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것들은 영원한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니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허접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 것도 모르고 왜 그것이 나쁘냐고, 좋은 게 좋은 것이지 하고 주님께 투덜거리고 대드는 것이 자기주장의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복음을 알지 못하면, 이 자기주장의지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자기주장의지가 하늘을 찌르는 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주님을 위해서 한 일의 결과가 내 예상대로, 내가 바라던 대로 되면 좋은 것이라 여겼다. 그 과정에서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한 일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런 일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 ‘다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나니,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그 열정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자기주장의지임을 알게 되었다.
복음은 창세전 영생을 주시고자 한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다 이루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온전히 눈앞에 다 드러날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그 약속하신 분이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한 것도, 할 것도 없다.
오로지 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잘 믿을 뿐이다.
만나는 지체들 가운데, 자기의 열심이 나의 열심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어서 주님 앞에 이렇다 할 말이 없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나는 과거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내심 으쓱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 앞에 너무도 떨리는 마음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자기주장의지가 이들 눈에 보였을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그때마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를 입으로 표현하고, 또 마음속으로 외친다.
진심으로!
아합은 아직도 이것을 모른다.
그러니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날 뿐이다.
나는 유경험자로서 아합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도 안다.
이런 내게 성령께서 오셔서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에 순종하게 하시니 전적인 은혜이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알고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자에게 느닷없이 찾아오셔서 복음에 눈을 뜨게 하시고, 생명의 교제를 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억울하지만 참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높일 때 누릴 수 있는 은밀한 기쁨을 맛보는 일이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주의 일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는 자,
여전히 마음 상하고 화를 내며 살아갈 자였습니다.
아합처럼 살다가 지옥에나 갈 인생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순종하는 것은
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버벅거리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령님을 따라갑니다.
주님 주시는 이 은밀한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