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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쉬반의 의미
헤쉬반월의 의미: 헤쉬반월은 유대력의 여덟 번째 달로, 가을에 해당하며 이스라엘에서 ‘첫 장맛비(예로쉬/Yoreh)’가 오기 시작하는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부드럽게 하고 씨앗을 준비시키는 적절한 시기의 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달입니다.
때로는 '마르헤쉬반(Marcheshvan)'이라고 불리는데, '마르(Mar)'는 히브리어로 '쓰라린/쓴(bitter)' 또는 '물방울(drop)'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달에는 명절이 없어 다른 달에 비해 '씁쓸하다'는 해석도 있고, 비를 기다리는 간절함과 노아 홍수의 기억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2 절기가 끝난 후의 고요
티쉬리월에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라는 큰 절기들이 연달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을 듣고, 속죄의 눈물로 정결케 되고, 초막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절기가 끝나면, 갑자기 찾아오는 고요한 시간, 헤쉬반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이 달에는 절기도 없고, 축제도 없고, 명령된 기쁨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달을 ‘쓴 달’이라 부르지만, 실상은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는 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잠잠히 자신을 재건하는 달, 그것이 바로 헤쉬반월입니다.
3 헤쉬반월에 관한 비유: “말 없이 자라는 나무”
한 마을에 작은 정원이 있었고, 그 안에 두 나무가 심겨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름드리 열매가 가득한 나무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잎도 적고 가지도 가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첫 나무 앞에서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와, 또 열매가 익었네! 얼마나 더 풍성해질까!”
그러나 두 번째 나무 앞에서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잎도 적고 열매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해 요란했던 축제들과 소란스러운 계절이 지나고,헤쉬반이라는 한 달이 찾아왔습니다.
이 달은 마을에 별다른 축제도 없고,
아무도 “여기서 큰 일이 일어났다!” 고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나무 옆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조용히 그 나무에게 물을 주고 땅을 가꿨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지나쳤습니다.
몇 해 뒤, 첫 나무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익숙함에 눌려 사람들의 관심이 식었습니다.
반면, 두 번째 나무는 햇빛도 바람도, 물도 적었지만
그 가느다란 가지 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렸고
조용히 성장하여 어느새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헤쉬반처럼, 말 없는 시간 속에 뿌리 내리는 것이 진짜 성장입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시간.
그럼에도 우리가 보이지 않게 자랄 때,
그 나무는 바람을 맞으며 더욱 단단히 서는 법이지요.”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축제 달만큼 시끄럽지 않아도,
말 없는 달이 주는 깊이 있는 성장이
더 큰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외적인 축제에서 내적인 헌신으로
솔로몬은 성전을 완성한 뒤, 티쉬리 월에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왕상 8:2).
백성들은 기쁨으로 절기를 지냈고, 다음 달인 헤쉬반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성전이 완성된 후의 첫 달, 헤쉬반은 이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우리의 마음 안에 세워지는 시기”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조용히 말씀에 순종하는 상한 심령을 더 기뻐하십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이 달은 화려한 찬양 대신, 내면의 묵상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큰 절기 대신, 일상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달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복음 16장 10절)
Whoever can be trusted with very little can also be trusted with much, and whoever is dishonest with very little will also be dishonest with much. (Luke 16:10, NIV)
매우 작은 일에 신뢰(충성)를 받는(믿어지는) 사람은, 큰 일(것)에 대해서도 신뢰를 받을 수 있다(충성될 수 있다).
매우 작은 일에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큰 일(것)에도 정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 속에서의 태도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준비되었는지를 보십니다. 눈에 띄지 않는 일상과 같은 작은 일, 헤쉬반처럼 조용한 시기에도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될 수 있습니다. (큰 믿음이 요구될 때도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작은 율법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더러운 음식을 먹는 것이 가증한 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작든 크든 법을 어기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법은 똑같이 경멸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우리 철학(토라)을 비이성적인 것처럼 비웃지만, 오직 절제를 가르치며 모든 쾌락과 욕심을 다스리고 또 우리를 훈련하고 모든 고난을 기꺼이 견딜 수 있게 합니다. (마카비4서 5:19-23)
5 상한 심령, 회복 그리고 의로운 예배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시51:16)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번제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상한 심령이 제사이고 번제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흩으시고 예루살렘 성을 파하실 때는 우리의 범죄 때문이므로 진실로 통회하고 상한 심령으로 죄에서 돌이켜 주께 돌아갈 때, 마침내 시온과 예루살렘 성에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죄에서 돌이킨 우리는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진정한 회복은 헤시반월처럼 가장 작은 일상의 삶에서, 마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6 조용한 순종의 제사하나님은 큰 소리보다 작은 순종, 보이지 않는 섬김을 귀히 여기십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들었던 것도, 바람이나 지진, 불이 아닌 “세미한 소리”였습니다(열왕기상 19:12).
헤쉬반의 신앙은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신앙입니다. 예배당에서의 화려한 찬양보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조용한 예배,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신앙, 가정에서 사랑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내는 마음, 이 모든 것이 헤쉬반의 제사입니다.
7 세미한 음성에 조용한 순종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19:10-12)
엘리야의 열심: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유별하오니..."
하나님의 나타나심: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불 후에 '세미한 소리(a gentle whisper / a still small voice)'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께서 갈멜산의 불, 심판의 바람과 지진과 같은 크고 극적인 능력을 보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셨습니다. 그가 기대했던 극적인 현상보다, 오히려 세미하고 고요한 소리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8 큰 기적도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엘리야가 갈멜산의 대승 이후 오히려 절망하여 죽기를 구한 것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영적인 낙심과 좌절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19:4)라는 고백을 통해, 백성을 죄에서 돌이킬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특심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적 기적의 한계: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왕이 돌이킨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악한 왕후(이세벨)의 위협이 지속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가장 큰 기적조차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배신감: 엘리야는 자신의 열심과 정통성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돌아서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선지자들이 모두 죽고 자신만 남았다"는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셔서
"백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의 엄청난 열심이 아니라, 나의 변함없는 임재와 고요한 주권"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보여준 기적으로 사람들을 경건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의 남은 자가 있음을 알려주셨는데, 이 칠천 명은 외적인 표적을 좇지 않고 고요함 속에 진정한 신앙을 지켜온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백성"입니다.
신앙의 본질:
진정한 신앙은 외적인 큰 기적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세미한 진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참된 능력: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은 요란한 표적과 기적, 강요가 아니라, 세미한 소리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겸손한 힘에 있습니다.
9 내면의 성전 세우기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행7:48). 그분은 우리 안에 성전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성소가 되고, 우리의 생각이 등잔대의 빛이 되고, 우리의 삶이 향기로운 제단이 될 때, 하나님은 그 가운데 거하십니다.
헤쉬반은 ‘내면의 건축 기간’입니다. 외적인 축제는 멈추었지만,
보이지 않는 신앙의 기초공사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7:48-50)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전의 본질입니다. 본질은 마음이고 상한 심령이며 정직한 영혼입니다. 주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건물 성전이 필요할까요? 성전은 예배하는 성회의 장소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며 여호와의 영원한 거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배를 위해 필수적인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필요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인 마음 성전이 옳지 않으면 건물 성전이 헛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모임을 위해 필수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 헤쉬반월은 성전의 본질인 마음 성전을 세우는 달입니다.
10 이른 비를 기다리는 자
이스라엘은 이 달부터 “비의 계절”을 맞습니다. 티쉬리의 절기들이 씨앗이었다면, 헤쉬반은 그 씨앗을 젖게 할 “이른 비(요레, יוֹרֶה)”를 기다리는 달입니다. 비는 언제 내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땅이 준비되면 반드시 내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면, 하나님은 반드시 임재로 채워주십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조용한 헌신 속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성전을 세우면,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11 적절히 공급하시는 하나님창7:11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창7:11)
이스라엘의 '기대하는 비(은혜, 축복)'가 시작되어야 할 시기에,
정반대로 심판의 홍수가 시작된 것은 역설적입니다. 즉, 비 자체보다 "적절한 비가 때를 따라 내리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적절한 비는 생명을 살리는 축복이지만, 과도한 비는 세상을 멸하는 심판이 됩니다. 따라서 헤쉬반월은 "주님께서 때를 따라 적절하게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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