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다른 삶의 모습들이 있다.
선사시대 때는 동굴에서 모여 살면서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엉켜 사는 모계사회였다.
이후 씨족사회가 되었고 농경사회가 되면서
대가족제도로 큰 집에 한 가족의 몇 대가 함께 살았다.
농사를 위한 공동의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에 맞는 시스템이다.
교통이 불편해 평생 동네에서만 지냈고, 족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였다.
근대에 와서는 직업이 다양해지고 옆집 사람과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일할 필요가 없으니 같은 동네에 살아도 공동체 의식은 별로 없다.
대규모 아파트 공급은 핵가족사회를 가능케 했다.
IMF 이전까지는 집값이 비싸지 않았고, 성 무노하도 보수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20대에 결혼을 했따.
당시 27세는 노처녀 소리를 듣는 경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36세 정도로 올라간 듯하다.
결혼이 늦어진 이유는 세 가지로 보인다.
첫째. 집값이 너무 비싸서이다.
둘째, 성적 개방으로 인해 성생활을 위해 결혼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다.
셋째, 교육비가 비싸서 애를 낳을 염두를 못 낸다.
이제 애인은 필요하지만 결혼은 선택이 되었다.
이런 풍토는 '가족'이라는 구속 없이 같이 사는 '느슨한 가족관계'를 만들어냈다.
거실과 부엌을 공동으로 쓰는 셰어링 하우스는 그 결과물이다.
결혼도 아니고 독거도 아닌, 크긴 하지만 내 집도 아니고 남의 집도 아닌 집이다.
모든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대사회의 회색적 특징이 반영된 가족이고 건축이다.
작년 최고의 히트곡은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가사의 "썸"이었다.
셰어링 하우스는 "썸 타는 수준의 가족"을 위한 건축이다.
셰어링 하우스는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높여 주기 때문에 싱글에게는 매력적인 주거 형식이다.
하지만 결혼해서 애를 낳은 후에도 셰어링 하우스에 살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내 집사람이 외간남자와 같은 지붕에서 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하지만 유아를 서로 도와서 하고픈 바쁜 직장여성이나 부모에게는 매력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