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은 이제 한물 갔다?
작년부터 일본열도를 강타하고 있는 한류열풍도 이젠 어느정도 위력을 감추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또한 일본내에서의 한류의 열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세력이 있어 노골족으로 한류를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부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연일 TV에서는 한국의 드라마가 각 민영방송이 앞을 다투듯이 상영하고 있으며 황금시간대의 명화극장 같은 프로에도 한국영화가 종종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연예인 특히 일본에 잘 알려진 한국 배우(참고로 이곳에서 한류스타 중 4천왕이라 불리는 사람은 용사마의 배용준을 필두로 아시아의 꽃미남이라는 장동건, 그리고 살인미소라 명명지어진 이병헌, 마지막으로 영원한 남동생이라는 원빈)나 연예인에 관한 뉴스는 시시콜콜한 것 까지 이곳 방송파를 타고 있지요.
혹자는 한류열풍이 단발성이느니 마케팅전략이 부재한 한국 프로덕션보다는 탄탄한 유통망과 메니지먼트 노하우를 겸비하고 있는 일본 연예기획사만 돈벌어 주고 있다는 비난도 서슴치 않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일본이 그동안 무시하던 한국의 문화를 이토록 대대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전파하는 것은 일본 극우세력들이 일본이 점점 더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음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한국의 문화가 이토록 일본열도를 뒤흔들어 놓는 것은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인들의 대 한국관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들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용준에게는 국가적 차원에서 훈장을 수여해야 할 만큼 큰일을 해냈다고 봅니다(물론 배용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된일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배우 한사람의 영향력이 이토록 크리라고는 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외교관들이 몇 십년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일을 한꺼번에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뚝딱하고 해치운 듯한 느낌입니다.
오늘의 한류붐이 일본을 강타하기까지
흔히 일본인들은 한국에 관심이 없을뿐 아니라 한국에 관한 지식도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실제로 제가 이곳에서 지금껏 생활하면서 느낀 건 이 사람들이 이웃나라에 대해 화가 날 정도로 무지하거나 아님 무시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한국에도 이런것이 있는가?” 부터 시작하여 “한국 사람들도 쌀을 먹는가?” 라는 식으로 무지가 도가 지나쳐 짜증을 유발하는 질문공세를 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물론 이런 질문 속에는 한국을 전혀 모르거나 무지로 인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그때의 정황으로 판단할 때 은근히 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음이 보여질 때도 있기도 했지요.
하지만 몇년 전부터 인가 이러한 질문에 황당과 곤혼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되고 나서부터 일본 언론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보도가 조금씩 늘어나고 2002년 월드컵에 즈음하여 한국에 관한 선의적인 보도가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선의적(?)인 보도라고는 해도 여전히 한국은 ‘불고기와 김치’ 의 나라라는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었고 그외에는 한일간의 정치적인 현안 보도등이 중심이였던게지요.그러다 2001년 1월이던가요?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실족사고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고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의 행동이 많은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한국 영화 ‘쉬리’를 필두로 하여 ‘JSA’ 등이 일본 열도에 상륙하면서 서서히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결정적으로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한 ‘겨울연가’가 불을 지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본인도 처음에는 한국에 대한 열기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현상이라 생각하고 무심히 흘려버리곤 했습니다만 작년 한해를 온통 한류가 일본의 안방과 일본인들의 화두를 점령해버리고 말게 된 것입니다.
민간 차원에서의 영향은 엄청나다?
일본에서의 한류붐을 경제효과만으로 또는 정치적인 시각으로의 접근으로 분석하려 한다면 지금 일본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한류붐의 파급효과를 제대로 짚어내기 힘듭니다. 한류가 가장 깊숙히 파고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일본인의 일상생활 속이기 때문입니다.자의던 타의던 ‘한류’ ‘한류’ 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이 이전 막연하게 갖고 있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시나브로 바뀌어가고 있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한국하면 북한과 대치하고 있어 불안한 나라, 대형사고가 터지는 부실공사의 천국, 전직 대통령이나 자식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부패의 나라,연일 가도에는 데모대로 흘러넘치고 최류탄 가스가 도심을 뒤엎고 있으며 남북이 긴장속에 대치하고 있는 나라라는 마이너스 이미지에서 이제는 IT선진국,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전자등의 분야에서 일본과 경쟁을 펼치거나 앞지르고 있는 기술강국, 일본이 경험하지 못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낸 민주화된 나라,가족을 중시하고 예의범절을 미덕으로 삼는 나라,음식이 맛있고 인정이 넘치는 나라 등 플러스 이미지로 도치되고 있으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일순위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인 스스로가 한국에 대한 관심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며 실제로 본인의 주변에서도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 아줌마들이 ‘한글 공부 모임’을 만들어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눈에 띕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일본인 특유의 심리현상에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모름니다. 그러나 한번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떤 형태로든 그 관심의 표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에게 이제 한국은 ‘가깝고도 먼나라’ 가 아닌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PS:
새삼스럽게 한류열풍에 대해 쓰려고 했던 이유는 정작 다른 곳에 있습니다. 제 아들이 일본의 초등학교 2학년인데 가장 친하게 지내는 가이 류노스케(貝龍之介) 라는 일본 아이가 있습니다.
그 녀석이 며칠전 우리집에 놀러와서는 제 아내에게 “상헌이 엄마. 나 한국말 배우고 싶으니까 가르켜주세요” 라고 생뚱맞은 소리를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애들이 장난삼아 그러려니 하고 “그래 알았어”하고 흘려버렸는데 다음 날 또 와서는 “일본어는 히라가나/카타가나라는 게 있어 그걸 먼저 외우고 되는데 한국말은 그런거 없냐?” 고 하길레 자음과 모음을 써 주었더니 그걸 아주 기쁜 얼굴을 하며 소중히 소중히 접어 가져 갔답니다.
그러더니 어제도 오늘도 매일같이 방과후에는 우리 집을 찾아와 자신이 쓴 공책을 내보이며 확인을 하고 한마디 한마디 가르켜 달라고 합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 가면서 헤어질 때 인사가 “잘가” 라는 말을 배워 현관을 나서면서 녀석이 자기를 배웅하는 우리를 보고 “잘가”라고 인사를 하며 돌아가더군요.
내일 다시 오면 그럴때는 “잘가”가 아니라 “잘있어”라고 하는거라고 올바르게 가르켜주어야 겠습니다. 이렇게 한류가 끼친 영향이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움직이고 있답니다.아무튼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