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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세계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와 깊은 울림의 역사
우리는 왜 수천 년 전에 쓰인 문학을 여전히 읽고 즐길 수 있을까?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 속에는 문학을 둘러싼 수많은 궁금증과 논쟁이 내포되어 있다. 문학의 기원부터 변화 과정, 역할, 가치 또는 효용성, 형태, 방식, 미래 등. 이들 중 한 가지만 선택해 서술하더라도 엄청난 분량의 글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문학의 세계는 드넓고,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때문에 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흥미를 돋우는 유효적절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써내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언어로 쓰인 서사시부터 최신 베스트셀러까지, 그리고 시대별 문학에 영향을 준 여러 분야의 사상적 흐름과 사건들, 작가의 성장 배경과 사적인 이야기,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등등을 꿰뚫어봐야 할 뿐만 아니라 주요 문학 작품을 직접 읽어 자신만의 관점을 명확히 정립해야만 문학의 역사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문학 관련 책을 스무 권 이상 저술하고 부커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 존 서덜랜드는 이 책에서 당대 문학의 전개 양상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한편 일반론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문학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결 통로가 되어준다. 최고의 문학은 세상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과 감수성을 확장시켜 복잡성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한다. 문학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는 문학의 역사를 개괄할 필요가 있다.
4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체적인 문학의 흐름을 따르면서 주요 작품과 작가들의 활동상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환경도 함께 언급한다. 고대 신화와 서사시, 그리스 비극, 중세의 신비극 등 구술 문학에서 인쇄 혁명이 일어나고 현대적 형태의 극장이 등장하면서 문학의 세계는 급변했다. 대중 시장을 위한 책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상업적인 출판업이 시작되고 저작권 문제가 불거졌다. 소설 또한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과 같은 시대, 장소에서 등장했다. 그 출발점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로, 본격 서사 전통을 대면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혁신적으로 뒤섞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이후 몇 세기 동안 등장할 수많은 소설을 위한 길을 열었다.
전쟁과 혁명 같은 세계사적 사건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8세기경의 작가 호메로스는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다룬다.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실제로 벌어진 전쟁으로 알려졌지만, 이 두 시는 ‘신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 서사시에 드러난 신화적 사고는 오랫동안 살아남아 여러 작품에까지 촘촘히 엮여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제프리 초서의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로, 「일리아스」를 가져다가 사랑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D. H. 로렌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등 영국과 미국의 많은 작가는 본국에서 결코 출판할 수 없는 작품을 파리에서 출판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1922년 파리에서 책 형태로 처음 출판되었고, 미국에서는 11년 뒤인 1933년에 재판을 거치고 나서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며, 영국에서는 1936년에야 『율리시스』에 대한 출판 금지가 해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
뮈, 시몬 드 보부아르, 장 주네 같은 위대한 프랑스 작가들이 모국을 점령한 독일을 알레고리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을 시도했다. 그 예로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닫힌 방」을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많은 영시가 쓰였는데, 재능 있는 시인들이 참전해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현재와 과거의 가장 창조적인 지성과 대화하는 즐거움
작가의 탄생과 사상의 흐름, 그리고 문학의 미래
문학의 역사는 곧 작가들의 계보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문학이 작가를 갖게 된 시작점이 14세기 말, 즉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제프리 초서라고 말한다. 영문학 최초의 영웅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베오울프」를 비롯해 그 이전의 작품들은 누가 지었는지, 창작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한 사람이 지었는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등이 불명확해서 추측에 근거할 따름이었다. 이후 중세의 신비극과 셰익스피어 시대를 거쳐 18세기에 디포를 비롯해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조너선 스위프트, 로렌스 스턴의 작품에서 다양한 서사가 구현되었다. 또한 문학 생산 장치가 진보하고 여러 작품이 활발하게 발표되는 시기에 등장한 새뮤얼 존슨은 문학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요소를 소개하는 한편, 단어의 의미 변화와 모호성을 추적함으로써 문학비평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문학의 역사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 지점은 1789~1832년에 쓰인 문학을 일컫는 ‘낭만주의’다. 키츠, 워즈워스, 바이런, 콜리지, 셸리 등이 주도한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과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데올로기’를 중심에 둔 최초의 문학 운동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재정의하려 했다. 따라서 낭만주의는 문학을 쓰고 읽는 방법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일대 혁명과도 같은 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변화’는 이 책의 기저에 놓인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다. 20세기 이후의 문학은 장르의 세분화와 매체의 다양화, 국경 없는 세계문학, 독서 대중의 영향력 확대와 적극적인 참여 등으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학 작품의 각색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더 가속화하고 있는데, 새롭게 해석되고 구성되는 영화나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가 원작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몇백 년에 걸친 통신의 성장과 국제 무역, 특정 ‘세계어들’의 지배는 작가와 독자가 문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작가는 전 세계의 독자를 위해 글을 쓰고 독자는 작가와의 대화, 독서 모임 등 새로운 소통의 길을 갈망하게 되었다. 한편 출판 산업은 문학 소비자인 독자의 취향을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정밀한 시장조사에 많은 비용을 들인다. 세계적인 주요 문학상이 문학의 발전과 독자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상업화를 지향하는 대중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번역본이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까지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지 등도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문학의 미래는 세 가지의 기본 조건에서 가늠하게 될 것이다. 문학의 범람이라는 환경적 변화, 다감각으로 즐기는 문학의 향유 방식, 저자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인터넷 ‘팬픽’의 폭발적 성장과 같은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포장이다. 물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택지가 많아졌고, 원하는 문학을 무한정 얻을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문학에, 또는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이 책의 저자는 푸딩이 클수록 자두가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처럼, 문학의 지평이 확장되고 독서 대중이 더 많아질수록 문학은 더 건강해진다고 말한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문학과,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문학 참여자들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문학이 지닌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문학이 공동의 것인지를 탐색한다. 또한 문학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위대한 문학 작품은 왜 몇 번을 읽어도 새로운 무언가가 샘솟는지, 무엇이 우리를 문학의 세계로 잡아끄는지 등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이다. 문학은 언제나 새롭고, 흥미진진하며, 좋든 나쁘든 멈출 수 없다. 세계의 문학을 폭넓게 살펴보는 이 책이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안내자가 되길 바란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읽은 『나니아 연대기 :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옷장(그리고 책장) 너머의 더 큰 깨달음으로 우리를 실어 나른다.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간으로서 우리가 부딪히는 끝없는 혼란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더 읽고 싶은 소망도 우리에게 덤으로 준다. 나니아 이야기가 어린 우리를 세상과 연결해주었듯이, 어른으로서 우리의 독서는 우리를 다른 어른들의 삶과 연결해준다. 제인 오스틴의 『에마(Emma)』나 디킨스의 소설을 중년에 다시 읽을 때 우리는 학창 시절에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하며 놀라고 기뻐한다. 좋은 문학 작품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읽든, 어떤 형태로 접하든 끊임없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 이어지는 여러 장에서 우리는 현대의 번역 덕택에 그냥 ‘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을 읽을 수 있는 황금기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거듭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위대한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풍요와 기회를 몹시 부러워할 것이다. 이 책은 세계의 문학을 폭넓게 살펴보려 하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만화경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언젠가 당신이 꼭 읽기를 바란다).
---「1 문학이란 무엇인가」중에서
룩셈부르크나 모나코공국 같은 작은 나라에 아무리 재능 있는 작가가 있더라도 서사시를 가질 수 있을까? 다국적인 유럽연합은 어떠할까? 이런 국가도 문학, 그것도 위대한 문학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서사시 문학은 창조할 수 없다.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솔 벨로가 ‘줄루족의 톨스토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파푸아 섬의 프루스트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모욕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사실 그는 위대한 문명이 위대한 문학을 낳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나라만 서사시를 갖는다. 서사시의 중심에는 강대국이 있다.
---「4 국가를 위한 문학」중에서
종이책은 500년 넘게 살아남았다. 캑스턴이 요즘 번화가의 서점을 방문한다면 자신이 인쇄한 책의 현대판인 초서의 책을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종이책은 생명을 다해가고 있을까? 코덱스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대체했듯,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까?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공존은 가능해 보인다. 이 오래된 매체에는 물리적인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다리를 움직여 책장까지 걸어가고, 팔을 뻗어 책을 뽑고, 엄지와 검지로 책장을 넘긴다. 킨들이나 아이패드로는 느낄 수 없는 몸의 감각이다. 나는 종이책의 ‘느낌’(촉감과, 심지어 냄새까지) 덕택에 앞으로 한동안 종이책이 문학의 세계에서 자리를 지키리라 추측한다. 꼭 1등의 자리는 아니더라도.
---「11 문학은 누구의 ‘소유’인가」중에서
개인적 차이와 경쟁, 무관심이 있긴 했지만 낭만주의자들은 문학이란 무엇이고, 문학이 문학적 환경을 넘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광범위하게 재정의하는 일에 그들의 창조력을 모았다. 즉 어떻게 문학이 사회를, 또는 낭만주의자들 중에서도 더 낙관적인 부류가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재정의하려 했다. ‘혁명’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낭만주의 운동은 오래 지속되기엔 너무 뜨겁게 타올랐다. 1832년에 스콧이 죽고 영국의 ‘조용한’ 정치 혁명인 제1차 개혁법이 통과될 무렵 낭만주의는 영국에서 사실상 소진되고 말았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문학을 쓰고 읽는 방법을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후세의 작가들이 기꺼이 쓰고자 한다면 쓸 수 있는 새로운 힘을 물려주었다. 낭만주의는 빛나는 별이 아니라 타오르는 별이었다.
---「15 낭만주의 혁명가들」중에서
각색은 20세기로 들어서는 무렵에 대규모의 사업이 되기 시작했다. 가장 효율적인 각색 기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활동사진, 영화였다. 이른바 딜런 토머스의 표현대로 ‘걷어차는 꿈(dream that kicks)’이다. 처음부터 영화는 어마어마한 양의 문학을 집어삼킨 뒤 수백만의 영화 팬을 위해 뱉어냈다. 많은 사례 중 하나를 꼽자면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Dracula)』다. 1897년 위대한 배우 헨리 어빙의 무대감독이었던 스토커는 피를 빨아 먹는 뱀파이어와 트란실바니아에 대한 고딕 로맨스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트란실바니아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대한 흥미로운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는 민담에서 꽤 흔했고, 저렴한 고딕 로맨스들이 이미 나와 있었다.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1930년에 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로 각색되기 전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그 뒤 100편이 넘는 드라큘라 영화가 만들어졌다(벨라 루고시와 크리스토퍼 리가 피를 빨아 먹는 뱀파이어 백작을 연기한 배우 중 가장 유명하다). 드라큘라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뱀파이어 로맨스는 장르가 되었다. 스토커의 소설이 없었다면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Twilight)』 시리즈도,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얻은 텔레비전 시리즈 「뱀파이어 다이어리(The Vampire Diaries)」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각색 버전은 그것을 탄생시킨 문학 텍스트를 작아 보이게도 한다(그렇다고 요즘 스토커의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드라큘라』 같은 한 편의 소설이 다국적 산업이 될 수도 있다.
---「32 페이지 밖으로」중에서
조지 오웰이 언급했듯, 어떤 문학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는 진정한 심판관은 시간이다. 문학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그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 잘 판단하지 못한다. 서평가도 마찬가지다. 서평가는 며칠 만에 ‘권위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조준할 새도 없이 총을 쏘아야 한다. 이런 사격은 가끔 과녁을 심하게 빗나간다. 어느 서평가는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e Willows)』이 출간된 초기에 두더지의 동면 습관을 동물학적으로 부정확하게 그렸다고 투덜거렸다. 사실 부정확한 편이긴 하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많은 사람은 셰익스피어를 비판하는 벤 존슨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안목 있는 독자는 디킨스가 ‘저급’하다고 믿었다. 디킨스 대신 새커리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그게 훨씬 더 나은 문학이라고 말이다. ‘『폭풍의 언덕』은 어때?’라고 묻는다면, 신경도 쓰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이런 예는 끝도 없이 들 수 있다. 몇십 년이 흐르자 안개 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드러났다. 이 책들은 우리의 ‘정전’이 되었고, 수업 시간에도 다루어진다. 시간은 제 할 일을 했다. 그러나 독자는 위대한 동시대 작가가 누구인지 ‘지금’ 알고 싶어 한다. 역사의 심판을 듣기 위해 100년 뒤까지 살아 있지 않을 테니. 문학상은 그런 욕구를 채워준다.
---「39 누가 최고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