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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7월 1일 수요일 맑음
해동사 법회날 대밭골 숙모한태 전화했다.
지난 밤 꿈이 이상하여 적어본다.
꿈에 부처님을 보았으며 내 몸에 병을 어서 났게 해달라고 애원해다. 그리고 외종조부님 댁을 찾아가서 큰절로 인사 드리고 불편한 몸이여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하다 하고 저를 위하여 도움 말씀 들려 달라니까 부처님을 믿으면서 다른 잡신은 믿지 안는 것이 좋다고 하시며 그림으로 그린 불상 사진을 보여 주셔다.
꿈이 너무 선명하여 그대로 기록해 보았다.
종형수 미제엄마 11시대서 전화 왔다. 작은엄마 해동사 공양주로 오면 어떠냐고 알아 보셔는지 묻는 전화여다.
오후에는 장영희양 놀러갔다 안동 도착하여 대구가도 대는지 묻는 전화여다.
된다하고 친구 윤주 만나고 즉시 간다는 전화가 7시반경 와다.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기분 좋게 보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2일 목요일 대밭골 숙모 내려 와다.
오늘 집 안 밖을 쓸고 세수하고 방안에 킬라 치고 있다니 숙모가 내려 와다.
어제 간다 해놓고 안가서 예기 하로 와다 해다.
점심은 라면을 삶아서 함게먹고 문옥화네 집에 전화 해다. 금화 4시 반 차로 갔다고 해다.
정산 와서 승민네 집에 기순이 한태 들려다 간다고 해다.
숙모 밥 안쳐놓고 예기하고 있다니 해동사에서 형수와 황기환 숙모를 좀 만나자고 전화가 와다.
숙모 벌써부터 갈수 업다는 입장을 표현하여 상의해 보았지만 안된다고 믿지 말라했다.
길수 어머니 예기하니 오셔도 된다고 환영이란다. 그러나 오지는 안았다.
밤에는 승민이 포도주와 술을 사가지고 기순이 해산달이 이달인대 친구들과 함께 왔다.
가엽슨 종질여 벌써 이렇게 된 것은 너무 일찍 사랑에 눈이 멀어 고등학교 일학년 다니다가 연애하여 임신이 대어서 아주 승민네 집에 가서 살고 있다. 오늘은 승민하고 여러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순산하여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너의 들이 서로 좋아 그렇게 살게 된 이상 인연이라 생각하고 부처님에 뜻이리라.
큰집 형수 나오시라고 해떠니 안 계셔서 못 왔다.
숙모도 함께 놀다 애들 모두와 한시 반경에 모두 갔다.
낮에는 뒤집 할매도 함께 점심 드시고 쉬다 가시고 어제는 이렇게 하루를 보내다.
3일금요일 맑음
영희씨와 광배 전화가 왔다.
오늘은 대구 총무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장영희 양을 오맹탁이 한태 소개하도록 예기 해 달라한다.
영희씨는 광배를 죽어도 좋아하게다 가서 살게다며 내가 중간에서 끝까지 연결을 잘 해 달라고 졸라 된다.
나도 재희씨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어 보개 해달라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달라고 해지만 광배씨 대도록 해조야 재희 대도록 한다고 한다.
전화 한통하고 오늘은 끝내다. 영희씨를 내가 좋아한다면 내 한태 시집온다고 농담반 진담반이여다. 처들어 온다고 해다.
누가 받아 준다고 허락 해서요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다.
오늘은 그런 대로 지내고 정산 동생이 와서 전법 논에 약을 쳐다.
부처님 진정한 인연을 만나서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도록 건강을 회복 대게 하소서 이렇게 염원하고 기도 좀하고 잤다.
4일 맑음 토요일
참깨 심은대 물을 주고 재희양을 찾아보려고 한다.
나를 좋아한다는 전재희 아가씨를 찾아보려고 영희씨 한태 들은 이야기로 시도해 봤다.
안동 삼오약국 주변에 살고 있다는 정보와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을 가지고 나의 지혜를 짜내어서 삼오약국 약사님께 전화를 넣어 알아봤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약간 절고 잇는 아가씨가 20대 정도 대는데 요즘 신경안정제 약을 사로간 일이 업느냐니까 있다고 했다.
처음이라고 했다. 바로 어제 4알 사가지고 갔다하고 낮에 약방 앞을 왔다갔다 하드라면서 말씀 하신다.
전후사연을 대강 말하고 아가씨께 요령 있게 말씀 좀 잘하여 아빠성함과 전화번호를 좀 알려 달라고 하여다.
뒤우로 다시 약을 사로 가는지 모르고 이상하다 짐작대로 딱 들어 맞아다.
어떤 방법으로 영희씨 가르쳐 주지 안는 것을 알 수가 있을지 나도 참 한심하다.
이렇게 신경써서 어쩌자는 것인지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가다.·
7월 5일 일요일
참깨 심은데 재차 물을 주어다.
오전에 나는 집 안 밖을 쓸고 닦아다. 부친과 금화는 땅콩 밭에 풀을 뽑아내고 오후에는 깨 심은 대 물을 주었다.
오늘은 아무 한태서 전화가 없어다.
나는 재희씨 찾아보려고 전화 며군대 해보고 삼오약국 여성 약사 어뒤 나가시고 안 계셔서 아저씨는 잘 모르고 계셔다.
곳 찾을 것 같은대 못 찾아다. 보고 싶은 재희씨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서 대화해 볼 수 잇는 그날이 오기를 염원합니다.
자기를 누구나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싫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업스리라 재희양을 만나볼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사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무언에 전화만 하여 내 목소리만 확인하고 끈어 버리니까 알 수가 있나 나의 마음만 애태우지 오늘은 이렇게 또 하루해를 보내고 말았다.
6일 월요일 새벽부터 비가 내려다.
내가 오늘도 금화한태 잔소리 너무 지나치게 했다. 그래서 언제 함깨 안 살고 여기를 잔소리 안 듯는 곳으로 갈까 한다.
오전 8시반경 영희씨 한태서 대구 총무 어떻게 대도록 해 달라고 전화가 와다.
오늘 안동 가서 재희와 함께 윤주 결혼식을 강릉에서 하는대 간다며 준비 한다고 해다.
아래 4일날 삼오약국 여성 약사와 통화하여 알아내다니까 거짓말이 라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인 것을 안동 가서 삼오약국 여성분께 여쭈어 보라고해다.
윤주 결혼식 축하한다고 행복하게 살라고 기원한다고 전해 달라하고 나를 알고 윤주씨를 알고 잇스니까 꼭 전해 달라 하고 재희씨 중간에서 잘 말하여 만날 수 있도록 해보라 하고 그렇게 하면 총무를 80%로 책임지고 예기 할태니 이렇게 말하고 차조심하고 잘 다녀오라 하고 끈어다.
오후 금화는 빨래하고 부친은 부역을 가시고 나는 오전 청소하고 해숙을 울렸다. 황도 때문에 내가 울렸다.
이렇게 오늘이 지나갔다.
7월 7일 수요일 맑음
북후면 총무계 서기 신영애양 한태서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오늘은 용맹정진 오전에 3시간 오후 3시간을 기도했다.
오늘 낮에는 북후면에 근무하는 신영애 아가씨가 전화를 해왔다.
성경을 읽어보시는지 물엇다. 조금 읽어 봤다하고 그분들에 성의를 봐서 거절은 할 수 업다.
나는 불교 신자로서 광대 무변한 불법 대해로 포용하는 마음으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자비와 사랑 함께하기를 기원 한다.
87년7월8일 목요일 맑음
오늘도 6시간 기도 했다.
염불 정진을 하고나면 온몸에 혈액이 순환대면서 모든 병이 다 날라 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기도하면서 여러 번 늦기고 체험했다.
그러나 요즘 몇년 기도를 게을리 하여 사소한 잡념이 많이 생긴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투병하여 바라는 소망을 성취하리라 믿으면서 참회염불 기도를 한다.
올해 처음으로 햇보리쌀로 밥을 지어먹었다. 밥맛이 새로 왔다.
건강식이다 방아찧어오다 상명이내 거름 태미 앞에 와서 리어까 타이아 빠져서 짊어저다 들랐다.
거기까지 와서 그렇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오후 7시반경 영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희망 전재희 양은 다른 남자와 선을 봤다고 한다.
이제 단념하고 정진하여 건강에나 신경 써야지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이뤄지는 것이니 내 운명 어찌하리 여러 번 기회가 잡힐번 했는데 모두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영희씨 한태 전화로 한 말이지만 치소해야 한다.
재희 결혼 얼마안가 후회하고 오윤씨와 결혼 해쓰면 이런 일은 업서슬 것을 하고 후회 할 것이라고 해더니 불행을 바라는 모양이라고 했다.
내 가슴 내 마음에 왔던 그 사람 만날 수는 없어쓰나 부디 행복하시라 재희에 행복을 내가 영원히 빌어 줄게요.
영원히 잊을 수 업는 전재희라는 이름 허윤주 장영희 삼인 숙녀들이여 앞날에 행복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 합니다.
마음으로 눈물 삼키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7월9일 금요일 맑음 장날
금화는 장에 가고 나는 집을 쓸고 기도하고 있다니 대밭골 숙모 전등을 가지고 내려왔다.
대구 갔다 온 예기 동생 만난 예기 등을 하다가 점심 설거지하여 차려 와서 함께 먹었다.
낮 두시반경 영희씨 강릉에서 윤주 결혼식 하는 대 갔다 온 예기 등 자세히 들어다.
재희씨가 영희씨 집에 와다 가다 한다.
밤에 오윤씨 만나보로 가자고하여 오윤씨 집이 앞마당에 잇는 줄 아나하니 어뒤쯤에 이느냐 하는 것을 저 앞산 너머 한참가야 한다니까 아쉬워 해다면서 마당까지 대려다주면 혼자 방에 들어갈 용기 있으면 대려다 준다니까 영희가 함께 있어야지 영희 없으면 혼자는 만날 용기가 업다고 해다며 예기 한다.
참말인지는 몰라도 오늘은 그런대로 기분이 좋하다.
숙모 보리쌀 오승과 정부미3승을 넣어 저녁 때 가지고 올라갔다.
7월10일 금요일
영희씨가 재희씨를 소개시켜 주는 것을 왜 그렇게 까다롭게 그러는지 알 수가 업다.
아이구 속상해라 나는 왜 대는 일이 하나도 업쓸까 죽어 버리고만 싶다. 아니야 함부로 죽을 수도 업다.
죽는 것은 사는 것 보다 더 어렵다. 죽으면 안 되고 죽기 전에 먼가 한 가지 해보고 말게다.
어떻게 재희씨를 만나 봐야 하는대 헌 짚신도 짝이 있다는 대 나는 왜 이때까지 34년을 살아도 짝을 만나지 못할까?
요즘 외로와서 못 살겠다.
부처님 저에게도 어서 빨리 인연이 나타나게 도와주세요. 저를 위해 희생해 줄 사람은 업쓸까요?
나무관세음보살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87년7월11일 토요일
하양 김정희 한태 엽서 한장쓰고 오늘은 기분이 울적 하며 공허한 마음 어떻게 할까?
기도도 하지 않고 쓸쓸히 하루해를 보내 버려다.
나에 인생이 왜 이렇게 허무할까?
편지 엽서 한 장을 쓰고 나는 평소에 생각 하던 견해를 오늘 낙서해 본다.
우리 대한민국 국호를 이렇게 봤꾼다면 어떨까? 북한 김일성 주석께서 호시탐탐 전쟁을 하려고 온갖 무기를 만들 고 있다니 첫째 전쟁을 억재 하는 방법이 될수 있으며 둘째 88년 올림픽을 무사히 치루고 멀지안아 조국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안을까? 여야총재님께 편지를 써볼까?
우리나라 대한민국 대자와 끝에 자 국자 가운데 조선을 넣어 통일이 대면 국호를 대조선국이라 한다고 헌법에 명시하여 내외국에 선포한다면 북한 김일성 주석께서 이 무슨 일인가 하고 속으로 조하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올림픽 종목 북한에서 8개 종목을 요구하는대 6개 종목 정도 북에서 치르도록 하여주는 배려도 있다면 먼 미래에 통일 조국에 균형을 가출수 있으며 국토개발의 조화를 이루게 하면 6천만 민족이 염원하는 조국 통일을 앞당기리라 생각하고 감히 이렇게 펜을 굴러봤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낙서를 해보았다.
오늘 저녁에 전기가 오지 안아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3시간 정도 하고 취침 했다.
7월12일 일요일 비가 약간내림 장영희씨 전화가 왔다.
아침 먹으려 하다니 장영희씨 전화가 와다. 재희가 무슨 말 전해준다고 해다.
체념 해쓰니 그리 알라 하고 9시반경 전화해 달라하여 알겠다하고 40분에 전화 해떠니 내가 한 줄 알면서 시침 떼고 야 재희니 하면서 전화 봐는다. 말하지 안고 끈어 버려다. 그레 떠니 5분후쯤 전화가 다시 와다.
내가 해는데 말하지 안아지 하고 나는 한일 업다고 시침 때고 동생 금화 보기 부끄럽다.
나이 값을 하란다 전화 끈는다 하고 끈어 버려다.
왜 이럴까? 내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자꾸만 그리움과 외로움 허전함이 생기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방안에서 티브이나 보고 있으니 나 자신을 비관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 이대로 죽어버리면 너무 많은 한을 가지고 죽을 것 갔다.
몸속에는 나쁜 병으로 인함인지 건강해 지려는 증상인지 몸속은 이상한 증상이 생기고 얼굴에는 무엇이 나다가 업서지고 눈은 침침 하면서 개게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오늘 하루를 보내다.
7월 13일 월요일 흐림 비 약간
오늘도 장영희 전화가 와다.
오늘 낮 12시경 영희씨 전화가 또 와다. 20여분 통화를 하여다. 엄마 와다면서 끈었다.
오후 금화와 해숙이 장난 전화한다기에 하라고 해다. 들통 다 나버려다.
창피하게시리 해숙이 금화가 재희가 누군데 핑개하여 마음잡고 기도하는 오빠 괴롭히느냐고 따지니까 나 봐꾸라하여 할일이 그렇게 업서 장난 전화하느냐고 도리혀 따져다.
나는 그렇게라도 복수하게다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복수 꼭 하겠다.
하고 재희 소개 하려이까 무엇 감동 적인 것이 있어야 소개해 준다나 그러면 처음부터 소개를 누가 해 달라 해나 본인이 소개 한다고 해쓰니 말이지 더럽고 아니꼬와라 내가언제 그런데 신경 써나 잊어버리자 깨끗이 잊어버리고 내가 가는 길을 바로 가야한다. 광배하고 어떻게 잘되도록 해야 한다.
언잰가 웅 동생과 펜팔하고 있는데 지금 제수씨가 새농민 책에 수기 보낸 것 실린 것을 읽고 찾아와서 그만 따에 버려다며 그래서 방황하고 헤메여다고 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인연에 보답하는 뜻에 대구 광배 총무를 소개 헤떠니 번개 가치 전화하여 찾아가다 오고 총무는 애인 있다고 하나 확실히 업다는 것을 알고 백푸로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숨겨 논 애인이 없다면 70%로 책임 져준다고 약속은 해다.
본인은 왜 재희씨를 보답하는 뜻에 소개 해준다 하고 전화 한통도 한일 업다.
아무것도 알려준 사실 업스며 혼자서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잘될 것 같은데 오늘 광배한태 최현숙씨께 편지를 써다. 그리고 취침 하여다.
7월 14일 화요일 흐림 비 내림
리어까 앞 집 친구가 싣고 갔다.
부친은 장날이라 이발 하로 가시고 금화는 들에 갔다 와서 빨래를 했다.
나는 어제 쓴 편지3통을 부치라고 주고 집안을 쓸고 고란 밭에 돌아보고 와다.
큰집 종형수께서 쌀로 보리쌀 봐 꿔 달라고 오셔다.
예기하고 놀다 4시경에 가시고 부친은 장을 봐가지고 이발하시고 오셔서 소꼴 베고 소먹이고 오셔다.
7시경에 무언에 전화가 또 와다. 영희 아니면 누굴까 할일 업는 아가씨라 예감이 든다 어제 한말이 후회스럽다.
내 진심은 그런 나쁜 뜻이 아니고 좋은 방법으로 복수 한다는 뜻이다.
나는 어떻게 하던지 총무와 결혼하게 하려고 한다. 하다 정안되면 오상원 한태라도 소개할 예정이다.
부처님은 내 마음 다 알고 계시니까
영희씨와 광배 어떻게 생각 하던지 나에 마음 다해 .중간에서 역할 잘하여 이뤄지게 해보리라 도와 주세요.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이중생의 염원을 하나 하나 소원 성취 이뤄지게 하소서.
저는 부처님 가피력을 믿고 잇습니다.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옴 자레주레준제 사바하 부림
7월 15일 수요일 비 태풍 셀마가 왔다.
오늘 계속 비가 내려다. 오전에는 개는 듯 하더니 오후부터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밤새도록 비가 왔다.
과수원에 약칠 수 있어 좋기는 한대 농작물 피해가 많이 났다.
근육병 발병을 기록해 보려고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서 기록해 봤다. 그러니까 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병을 이어받은 샘이다.
국민 학교를 입학해서 학교를 다니는데 호루라기와 풍선을 불수가 없어다.
일학년 운동회 때 다른 친구들이 사가지고 잘도 불고 다니는 호루라기를 불어 보니 안 되고 고무 풍선이 입김이 약해서 불어도 바람이 들어가지 안앗다.
그 때 벌써 발병 되어다는 증거여다 2학년을 다니고 3학년을 다니는데 달리기를 하는데 팔이 정상으로 움직여주지 안았다.
가슴에 근육이 빠지고 어깨와 팔에 알통이 왼쪽부터 빠지며 가늘어지더니 오른쪽 팔이 또 왼 팔과 같은 증세로 진행 된다.
병원에 가 봐도 치료 할수 업는 불치병이라고 포기하고 그냥 학교에 다녀다.
저녁 11시 넘어 기도하고 있다니 뒤집 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고 와서 금화도 함께 기도 좀 하고 잤다.
7월 16일 목요일 맑음 화창한 하루
오늘 대구 총무한태서 전화가 왔다. 영희씨 전화오거든 딱 짤라서 총무를 잊도록 해 달라한다.
내가 보낸 편지 받아보고 신경질이 난 모양이다.
감춰 둔 애인이 따로 있으니 잊어 달라 하란다. 나한테도 애인 소개 한다는 것 모두 잊어버리도록 하라고 했다.
총무는 현명하다. 영희씨 쇼 하는 것을 판단하고 있다.
잔디회 야유회갈 때 차를 우리 집까지 보낼 테니 어떻게 해서라도 오도록 하라고 했다.
집에까지 대릴로 오면 간다고 했다.
정산 동생이 오후에 와다가스며 부친과 금화는 고추 넘어진 것 일으켜 세우고 과원 잡초 베고 하여스며 저녁 먹고 티브이 보다 기도하고 취침 하여다.
7월 17일 금요일 맑음
오늘은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 글을 써봐다
나의 인생 어찌 이리도 초라할까?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펜을 잡고 글은 쓸수 있는데 배움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과 지혜와 모든 것이 부족하여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한편 써보고 싶으나 뜻대로 안된다.
그러나 오늘은 한번 시도해 보았다.
예상 외로 펜을 들고 쓰기시작 이것저것 생각이 잘 떠 오른다.
그래서 나의 왜로움을 달래는 낙서를 맴미 앞으로 막 써봐다.
나름대로 생각이 나는 데로 기초 안을 잡아놓고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 잤다.
18일 토요일 맑음
못시 무더운 하루 여다
정산 동생이 오후 약을 치려고 왔다가 너무 늦어서 안치고 그냥 갔다.
나는 어제 써둔 낙서를 더 재미있게 곤쳐 써봐다.
19일 일요일 맑음
오늘도 어제 쓰던 낙서 글을 다듬으면서 집안을 쓸고 청소하고 닦고 해다.
사촌 오병이가 와서 내가 쓴 글을 나는 읽어주고 편지지에 옴겨 써다.
점심을 먹고 올라가고 금화 장에 갔다 와서 감자케다 놓은 것을 골라 넣고 집안을 다시 치워다.
영희씨 한태서 전화가 낮에 완는 것을 끈어더니 오후 7시경 또 와서 30여분은 해다.
20일 월요일 맑음 초복
과원에 약을 쳐다.
나도 약치는대 함께 갔다. 부친과 금화 약대를 둘이서 들고 치니까 쉬워서 오전에 다 칠 수 있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다니까 집배원이 편지 4통을 배달하고 간다. 최현숙씨와 김정희 한태서 왔다.
현숙씨 다녀간 기념사진 넉 장을 보내와다. 기뻐다.
저녁때 내일 대구 간다고 목욕을 해다.
저녁을 먹고는 티브이 보고 놀다 기도 좀하고 잤다.
21일 화요일 비가 약간 내림
금화 안동 소 피부약 사로 갔다.
오늘은 보리타작한 세 두말과 빌려던 보리 두말을 뒤집과 길수네 갔다드리고 집 청소 모두하고 일기정리 장부정리 등을 해다.
오후 대구 전화국에서 신태식 자원봉사께서 내일 누가 찾아 갈 것이라 해다.
23일 날 비가와도 참석하게다고 하여다.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 좀하고 잠자리 든다.
87년7월22일 수요일
아침부터 비가 오는대 대구로 출발.
오늘 대구에서 나를 대릴로 온다더니 비가 계속 오는데 올수 있을까 하며 아침을 먹고 있다니 대구에서 이길자양 전화가 왔다.
신정희가 나한테 온다고 했다.
이길자하고 성오용은 봉화 나운영을 대릴로 간다며 11시40분경 안동 도착 공중전화로 비가내리는 가운데 차 시간을 물었다.
12시 50분이라고 잘못 가르쳐서 다음 차는 1시 50분이라고 차 시간을 잘 못 알고 가르쳐 두 번 이나 노치고 2시 40분 차로 들왔다. 성오용 친구와 오용이를 대신하여 함께 왔다고 한다.
수박을 잘라서 먹고 4시반경 업혀서 나가다 정홍 택시로 정산와서 이발하고 동생이 주는 돈 만원 받았다. 잘 놀다 오란다.
제수씨도 잘 다녀 오시란다. KBS 내일은 푸른 하늘 오후 7시25분 방송국에 사연 써둔 것을 부쳤다.
재목은 시원하게 노래하는 맴이 앞으로 였다.
대구까지 25000원에 계약하여 서구 내당6동까지 산장여관에 도착 여장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서울 부회장님 정철영씨 내러오고 지경원 감사님 신태식 봉사회장 이길자 최경희 서승현 최경현 모두만나 보았다.
방가 웠다. 봉화 나운영과 부친께서 함께 오셨다.
운영이와 선산 김선옥씨 36세 씨도 만나고 이런 저런 예기도 하고 각자 잠자리로 간후 신정희는 내일 다시 만나보자 해도 못 들어는지 대답이 없다. 표정이 밝지 못 했다. 12시가 넘어가서 잠자리 들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87년7월23일 목요일 비가 간간이 내림 팔공산 케이불을 타본 날
오늘 아침 산장 여관에서 자고 일어나니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지 않고 억수로 내린다.
우리 환우들이 함께 야유회를 가려 했는데 마음 들뜬 기분으로 한곳에 모여는데 우리들에 마음을 하늘이 알고 응어리진 마음을 씻어 주려는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아침을 시켜먹고 준비하고 있다니 차가 도착하여 시내 계시는 분들이 모두모여 승차하고 있다.
나는 부회장 정철영씨와 함께 나란히 타고 기다려서 모두 대리고와서 타고 10시가 대어서 수성구에 있는 파동 장애인 복지관으로 가서 오후 두시까지 노래 부르며 게임도 하며 즐겁게 놀면서 과일도 먹고 점심도 먹었다.
오후 두시45분 출발.
팔공산으로 가는 도중에 파계사도 나오고 동화사도 보고 송광사도 오는 길에 보았다.
팔공산 스카라인을 타는데 성오용 최재근 군이 나를 업고 올라같다.
팔공산 꼭대기에서 두루 구경하고 업혀서 내려오는데 간에 좋다면서 약수마시고 가자며 오총무가 불러서 성오용 군이 약수 우물가로 가서 내려주며 약수 떠 주는 것 받아들고 마음으로 기도 했다.
부처님이시여 이렇게 높은 산 정상에서 이 약수를 먹게 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이 약수를 먹거던 몸 안에 있는 모든 병이 났게 하여 주세요 하고 축원하고 마시고 또 내가 조금 떠서 더 마셨다.
그리고 비는 부슬 부슬 내리는데 약수터 옆 5미터 거리에 6층 석탑이 있으므로 합장 예배하고 가까운 곳에서 탑신을 보게 됨을 감사드리며 나에 소망인 건강이 하루 빨리 회복 데어 모든 분들에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부처님 가피력을 기원 했다.
곳 돌아서 스카라인을 타고 내려오는데 물안개가 끼여서 경치는 한층 더 아름다웠다.
성오용 서승현 권인주 앞에 타고 뒤에는 전재민 전민철 형제와 엄마와 최현숙씨가 타고 내러왔다.
올라 갈 때는 앞에는 나와 오용 승현양 뒤에는 이락원과 엄마 전락현 이렇게 동승하고 올라갔다.
지사장님 46000원을 내시고 어머니들이 14000원 이렇게 즉석에서 모은 돈으로 표를 끊었다고 하였다.
모두 다 내려와서 관광차에 몸을 싣고 오전에 복지관에서 놀아던 상품을 나눠주었다.
나는 A조 1등 상품 앨범이였다. 그리고 노래 배틀가를 불러더니 양초 강아지 상품을 준다.
기념 타올 한장씩 하고 이렇게 나눠주는 것을 모두 받아 챙기고 차는 우리를 태우고 칠곡 쪽으로 해서 시내 들어가는데 비는 많이도 오지 않고 오다마다하면서 우리들에 마음을 달래 주었다.
저녁 겸 도시락을 주는 것 먹지 않고 가저 와서 여관에서 먹었다.
어제는 서구 내당 6동 산장 여관에서 자고 오늘은 바로 옆에 동명장 여관에서 합숙을 하였다.
곳 바로 오건이 한태 전화 했다. 찾아오라고 주소와 전화 번호 가르쳐주고 끊었다.
총무와 예기하면서 나한테 적당한 약을 말해보라고 했다.
팔미지황탕에 오미자 한 돈씩 합해서 두 세첩 정도 써보고 부작용 업쓰면 한제 정도 쓰라고 한다.
귀비탕에 온담탕 합방을 해서 쓰면 아주 좋은 약이니 잘 지어서 한두 제 복용하도록 권했다.
사무실로 최경희와 모두 간 후 며치 남아서 시켜던 식사를 먹었다.
부회장님은 노화자 양과 김선옥양을 물리치료와 운동요법을 가르치로 길자 한태 업혀서 갔다.
나는 12시 넘어 오건이 간후 나운영이와 예기 하다가 잠을 청했다. 오늘은 무척 피곤한 하루 였다.
난생처음 팔공산 정상까지 올라 가쓰며 내 살아생전에 다시 한번 올라 올수 있을까 와볼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지나간 어그제 오늘 내일을 생각 하면서 아쉬워하는 마음과 고뇌하며 슬픔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굳은 의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이 언제나 충만하여 현생에서 극락 국토를 체험하고 이세상이 지상락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며 항상 뛰놀던 그 마음으로 평화로운 마음이 데어 이고득락을 기원 하면서 오늘에 즐거워던 점을 남기고 잠자리에 들면서 부처님께 감사함을 다시 한번 암축 하며 잠이든다.
87년7월24일금요일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개였다.
나는 먼저 화장실을 같다 세수를 하고 나와서 잠시 후 아침을 시켜온 것을 먹었다.
조금 있다니까 최경희 서승현 성오용군 모두 왔다.
선산 김선옥 부회장님 모두 떠나고 나는 오건이 한태 전화 너어 집으로 간다하고 총무한테도 전화해주고 모두 잘 가시라한다.
시간이 대면 총무한테 가서 하루 놀다 오려 해는데 성소병원에 들려 내과 진료를 받아보려고 바로 올라 왔다.
택시로 혼자 나라시를 타고 오려 했는데 나운영이와 어른과 서승현양 성오용 군이 따라간다 하여 함께 무정차를 타고 오기 로하고 자봉 학생들이 차표를 끊어 주는 것으로 안동까지 왔다.
차가 정착 하는 동안 오용군이 업고 나와 택시를 잡아 태워주고 서승현양 성오용 군은 다시 차를 타고 봉화 나운영 군을 집까지 무사히 도착 시키려고 봉화로 갔다.
나는 성소병원에 내려서 어떤 아줌마한테 동전 20원을 얻어서 전화를 권정홍 기사한테 하여 시계가 있는지 물으니까 이발소에 있는 것을 찾았다 한다.
다시 전화하니까 나가고 받지 안아서 베지밀 두병과 빵 한봉 사서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오려고 개인택시를 잡아타더니 족친이며 또한 서부교회 아동부 전도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으로 하루빨리 입교 하라고 유창하게 힘주어 설교 하신다.
그러나 나에 마음은 요지부동 움직이지 안는다. 나에 신심이 얼마나 돈독 한지 알 수가 있다.
서당골 앞까지 도착 길에 돌이 내러와 더는 들어 갈수가 업다.
어찌하나 걱정 하는데 산소 앞에 차를 세우고 기사께서 업고 집까지 오셨다.
그냥 봉사 해쓰면 좋게지만 열료 비가 들어서 만원은 받아야 된다며 받아 가셨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다.
들오면서 들려준 예기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객지생활 하면서 자립하여 개인택시 면허 받은지 얼마 안 된다며 불상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고 싶은데 아직 실천하지 못한다며 나에게 선심을 베풀었다.
저녁에는 피로해서 일찍 자고 도착 하여 정산 제수씨 한태 왔다고 전화 해쓰며 대구 동생한테도 무사히 도착 했다고 전화했다.
박광배 총무한테도 전화를 했다. 항상 나를 염려해주고 기도하는 총무가 고마웠다.
등을 따뜻하게 하면 감기 안 걸리니까 항상 등을 따뜻하게 하라면서 다녀가느라 고생만 실컨 하고 아무것도 못해주어 그저 미안 하단다.
앞에서 일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아 쓸까? 불편한 몸으로 자봉 이길자와 함께 수고하는 그 모든 분들께 편지 한 장이라도 정성드려 써 보내야 할텐데 어떻게 써야 그분들에 수고에 고마움을 표현 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오늘은 이만 줄이고 취침 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25일 토요일 흐림
성오용 친구한테 편지 하려고 초안을 잡아다.
기도 하며 티브이 보고 부친께서 들에 다녀와서 참깨가 병이 나고 물가 논이 침수가 데어다하신다.
금년 농사는 또 재미 업게 되어다.
그러하 어쩌랴 하늘이 하는일을 인간이 어떻게 막을 수 있나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다.
26일 일요일 흐림 비가 와다.
상철모 오셔다. 대구 사촌 동생한테 전화 해다.
금화는 빨래하고 나는 성오용 군에게 편지를 써다.
오후 장영희양 전화가 와다. 금화가 받아다 말하지 않고 끈어다 한다.
오늘은 음 윤유월 초하루다.
상철 어머니 와다. 제수시도 저녁때 과일과 반찬을 사들고 기성이을 대리고 오셔다.
기도와 축원을 하고 저녁 논아 먹어다.
길수 어머니도 오셔서 기도하시고 새벽 한시 경에 가다 한다. 나도 기도하고 자다.
27일 월요일 맑음
편지을 서너 통 써다.
오늘은 아침 먹고 오전 10시부터 두시까지 기도를 하고 성오용 군께 쓴 편지를 앞집 상명이가 우체통에 갔다 너어다.
그리고 이길자와 최경희 한테도 편지를 써다.
오후6시부터 8시까지 기도를 하고 저녁 먹고는 티브이시청 하다가 기도하고 잤다.
28일 화요일 맑음
참깨 밭 과수원에 제초제 약을 쳐다.
정산 동생이 약치로 왔다. 부친께서 약을 안친다하니까 그냥 넘어가다 오후 다시 와서 치고 가다.
나는 집안을 쓸고 기도하여다.
오후에 숙모가 내려 와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있어다.
숙모께서 부친 일하시는데 힘든다고 막걸리 해드리라고 누룩을 한말 이고 내려 와다.
예기하고 놀다 올라가시고 저녁 먹고 티브이 시청하다 기도하고 오늘은 그런대로 또 하루해를 잘 보내고 일찍 자다.
29일 수요일 맑음
부친께서 리어까 댐 해둔 것 찾아 오셔다. 반찬도 사가지고 선예 태워서 오후에 오셔다.
나는 골안 밭에 돌아보고 깨를 덜 뽑아서 다시 와서 금화를 시켜 뽑아 내개 하고 나는 기도를 두 시간 해다.
금화는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하여다.
숙모 영구내 집에 놀다 다시 놀러 와서 함께 대화 하다. 저녁 대구 오건이 휴가 와서 놀다. 새벽2시반 넘어 올라가다.
금화 하의 양장 한 벌 해가지고 부친 여름 웃옷 한가지와 선예 옷을 사가지고 와다.
여러 아이들과 뒤집 할매 길수모도 놀러 와서 11시가 넘어가시고 나서 기도하고 잤다.
30일 목요일 맑음
리어까 왁구 짜 넣어다.
골안에 고추 참깨 집터 고추 모두 약을 치고 나는 기도하고 부친은 밭둑을 베고 오후 과수원에 오건이와 금화 모두 가고 나는 기도하며 기성이 보았다.
저녁 때 오택으네 집에서 오택이 던진 낫에 맞을번 하여쓰나 다행히 맞지는 안았다.
제수씨 돼지고기와 수박을 사가지고 넘어와서 잘 먹었다. 어제 밤에 늦게 자서 오늘은 11시 데서 일찍 잤다.
31일 금요일 맑음
오전 과원 밭에 부친과 금화 유태 갈아 무드로 가고 제수씨 아이들 대리고 넘어 간 후 오건이 나 웅 집에 있다니 큰집 형수 엿기름 갈로 와서 갈아드리고 예기하다 간 후 셋이서 예기하다 오건이와 웅 넘어가고 저녁때 미나무 할매 한태 가보고 골안에 갔다가 와서 티브이 보다 기도하고 일기 쓰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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