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로운 것이 승리함[사불범정(邪不犯正)] 사불범정(邪不犯正)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특한 방법은 결코 올바른 기운을 압도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정의로운 것이 승리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당(唐)나라 때 유속(劉餗)이 지은 《수당가화(隋唐嘉話)》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정관(貞觀)의 치(治)로 잘 알려진 당 태종(唐太宗) 때 서역(西域)에서 호승(胡僧)을 하나 바쳤는데 그가 주술(呪術)을 부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태종이 그런 사실을 태상경(太常卿) 부혁(傅奕)에게 이야기 하자 부혁의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이것은 사특한 기술[法]입니다. 신은 듣건대 사특한 것은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만약 그로 하여금 신에게 주술을 행하게 한다면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고, 그렇게 한 결과 과연 부혁의 말이 맞았다고 한다. 호승이 행한 것은 일종의 마술이었던 모양으로 부혁의 눈까지 속일 수는 없었던가 보다.
우리는 종종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잘 사는 것을 보고 과연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는가 하며 의혹의 눈으로 바라볼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결과적으로 그들이 한때는 잘 나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로 인해 낭패를 겪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세상이 엉성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인심의 향방은 정의의 구심력을 잃지 않으려는 정화기능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번 런던 올림픽을 바라보며 선수들의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도 치고 즐겁게 보냈지만 오심을 비롯한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아무래도 배드민턴 선수들이 고의로 져주기 게임을 하다가 무더기로 실격한 사태일 것이다.
400m 여자 예선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꼴등으로나마 꾸준히 달려준 아랍 선수에 대한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바로 올림픽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자국 선수들끼리 시합에서 만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상대 선수들에게 져주기로 한 배드민턴 선수들의 약은 수작은 세인의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비싼 표를 구입하여 명장면을 구경하고자 한 사람들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을 우롱한 처사였다. 그야말로 올림픽 정신을 정면으로 거부한 몸짓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알량한 계산은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파급효과를 내며 그들을 경기장에서 끌어내렸다. 사불범정의 논리가 적용된 것이다. 그저 뭔가 이익을 꾀하려던 꼼수가 그만 자충수가 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그들의 선전을 바랐던 조국의 얼굴마저 부끄럽게 한 행위로 낙착되었다. 승리를 바라지만 정정당당한 승리여야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승리는 금메달을 다 휩쓸어온다 해도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일들이 어찌 단순히 올림픽에서만 발생하는 단순한 사건에 그치는 것이던가?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이 상당수 발생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예컨대 정가에서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공천 뒤에 이른바 매관매직의 성격을 띤 금전이 오갔다는 문제로 요즈음 한창 시끄러운 중인데 이 또한 그러한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전혀 진보와는 거리가 먼 어떤 이들의 행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일은 유독 정치판에서 뿐 아니라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 종교계 할 것 없이 도처에 발생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소수이기를 바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번드르르하게 말을 잘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을 살펴보면 그와 상충된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성공한 듯 보이지만 가련한 사람들이다. 일정 시기 그들의 잘못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는 그런 대로 명성이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그 가면이 벗겨졌을 때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미아가 되고 만다. 당장 눈앞에 꿀이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 파멸의 늪에 빠져 가슴 아파해야 그 때는 이미 늦는 법이다. 사불범정이 무엇을 뜻하는 지만 조금만 알아도 사무사(思無邪)의 생각을 갖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