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6장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지리니, 이는 사람들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이들이 빠지는 것은 유혹과 올무와 해로운 정욕입니다. 이것은 곧 시험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시험에 들지 않을 수는 없지만 시험이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의 욕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시험은 이겨낼 수도 아니면 실족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돈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여러가지 시험들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에게 시험들이 많이 닥친다면 이러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돈은 곧 쾌락을 의미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지만 본질로 보면 돈이란 곧 쾌락을 채워주는 도구이기에
자신의 쾌락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돈을 사랑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쾌락과 하나님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합니다.
O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존중하고 다른 쪽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느니라.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한글 킹제임스 / KJV 마태복음 6장 24절
재물이 곧 맘몬입니다. 돈은 곧 자신의 쾌락을 숭배하는 것이며, 쾌락은 단순히 육체적인 환락만이 아니라 모든 정욕을 말하는 것으로 명예나 자긍심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음등 여러가지의 모든 세상적인 추구를 말합니다.
이것이 곧 돈을 사랑함이며, 이것은 구체적으로 맘몬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맘몬이라고 표현되지만 실상은 맘몬뒤에 숨은 자신을 사랑함입니다. 저도 이런 문제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도 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억울한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함에서 비롯되는 것들입니다. 만약에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완전히 버리기 어려운 것으로 우리의 마음안에 얼룩처럼 계속 남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계속 지워나가는 일이 경건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경건이란 곧 나 자신을 죽이는 일로 매일 매일을 훈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지니고 있는
너희의 자랑으로써 단언하노니 나는 매일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31절
그러나, 오, 하나님의 사람인 너는 이것들을 피하라.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피하라는 이것들은 곧 맘몬이며, 겉으로는 재물과 돈이고 본질로는 자신을 사랑함입니다.
자신을 사랑함은 있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영적인 공격에 있어서 영적인 적으로 부터 지킴은 자신을 사랑함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이 우리 자신이 되는 자신을 사랑함은 곧 하나님앞에서 흠이되고 책망받을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스스로를 사랑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며, 큰 계명이니라.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7절 38절 39절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새로운 계명을 받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함에 네 자신과 같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로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없는 것이며, 그 만큼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확장하여 자신을 숭배함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차이를 몰라서 맘몬을 숭배하는 데에 까지 이끌려 가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을 숭배함으로 사랑함은 곧 타인을 멸시함으로 나타나서 사랑함에 있어서 그 열매로 구별됩니다.
자신을 사랑함이 우리를 지키기 위한 사랑함은 이웃도 사랑할 수 있지만 자신을 숭배함으로 사랑함은 타인은 존중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자신을 경배할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악하게 구는 모습이 이런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원한 생명을 붙잡으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고백하였느니라.
자신을 숭배하는 사랑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싸움이라 표현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만물을 살리시는 하나님 앞에서와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서시니 총독이 주께 물어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라고 하시고,
마태복음 27장 11절
바울이 말하는 폰티오 빌라도 앞에서의 선한 고백은 "그렇도다."입니다. 곧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왕이시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죄 많은 자들을 위한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백이야 말로 선한 고백으로 증거하심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거룩하신 구원자 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장 9절 ~ 14절
1. 위 말씀에 나오는 명령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이 명령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지켜야할 것들로 이뤄진 율법과 달리 본질의 것들이며, 이것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함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인내와 온유의 본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안되는 것은 걸레가 아무리 빨아도 수건처럼 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결하지 못합니다. 얼룩이 남아있지만 계속 빛으로 빛으로 나아가다 보면 거룩하신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수건이 될 것입니다. 슬프지만 저는 지금 걸레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