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 아래로 보이는 허연 허벅지
노병철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을 가야지 다리가 떨리면 아무 데도 못 간다는 말을 한다. 다리가 건강해야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옛말에 ‘수노근선고 인노퇴선쇠(树老根先枯 人老腿先衰)’란 말이 있다. ‘나무는 뿌리가 먼저 늙고 사람은 다리가 먼저 늙는다’ 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다리가 튼튼해야 장수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나이 먹으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가 늘어져서 쭈글쭈글해지는 것도 아닌 다리가 불편하여 거동이 어려워지는 것을 제일 걱정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래 사는 사람들의 특징이 다리 근육에 힘이 있다. 정력이 강한 남자들의 특징이 허벅지가 단단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라 하겠다. 역으로 말하면 허벅지가 허벅허벅한 남자는 사윗감으로 배제된다. 젊었을 때 나의 단단한 허벅지에 마누라가 반해서 시집왔다는 이야기는 굳이 길게 하지 않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허벅지가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양갱처럼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하루에 오천 보는 꼭 걷겠노라고 다짐한다. 연구 논문에 의하면 사망률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일일 걸음 수는 하루 팔천팔백 보라고 하지만, 내겐 무릎관절 또한 소중하기에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천 보만 걸어도 혀가 댓 발은 더 나온다. 남들 따라 일만 보 걷다가는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의한 스트레스로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싶어 우선 그 절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인근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얼마간은 운동한다는 사명감으로 별 지겹지가 않았는데, 늘 보는 할매 할배들이랑 걷고 있는 내가 조금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걷는 것도 좀 재미있도록 여행을 통한 걸음걸이를 시도했다. 젊을 땐 한가하게 걷는 여행은 호사였다. 지금은 별 할 일도 없는데 여행가는 게 누구 눈치 볼일은 아니었다. 싱글라이더(single rider)라는 말이 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혼자 여행을 해보니 정말 편하다. 동행자와 얽매이지 않는 혼자 여행의 편안함을 맛본 사람은 단체 여행은 여행도 아니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본인 위주로 할 수 있기에 그런 것 같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쉬고 싶을 때 쉬어 갈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산악회를 비롯해 묻지마 관광 같은 버스 여행같이 무더기로 같이 움직이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이다. 싼값에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돈을 적게 내고 가려면 자신의 자유는 접어야 한다. 구경을 덜 했어도 시간 내에 버스를 허겁지겁 타야 하고 뭘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게 된다. 일행 중 ‘또라이’가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여행은 잡친다. 자기만 좋으면 만사가 오케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이상한 부류의 사람은 남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골라서 사람을 태우지 않았기에 그런 사람은 꼭 있게 마련이다. 마음 맞는 사람과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니 저렴하게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넣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참고 견딘다.
하지만 곧 싫증이 난다. 억지로 뭔가를 하려고 하면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요즘은 또다시 혼자 여행을 가든지 아니면 마음 맞는 몇 사람이랑 가볍게 움직인다. 많이 효율적인 방법이다. 장만천이란 이름을 아는지 모르겠다. 중국 여배우 장만옥과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대의 사기꾼인 삼천갑자동방삭(三千甲子東房朔)의 본명이다. 옥황상제의 천도복숭아를 훔쳐먹고 갖가지 변신술로 이승에서 십팔만 년을 산 인물이다. 도망 다니면서 그렇게 오래 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억지로 오래 살 마음은 일도 없다.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고 싶고 운동을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싶다.
“파크골프 같이하자.”
“차라리 게이트볼을 하지 그래.”
“짧은 치마 입은 이쁜 아줌마들이 많이 오는데.”
“....................”
짧은 치마 아래로 보이는 허연 허벅지와 마누라의 허연 눈자위가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