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 읽기> 거미/이면우
먹고 산다는 것의 엄숙함
언젠가 채널을 돌리다가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표범 비슷하게 생긴 육식동물이 어떤 초식동물을 쫓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엄청나게 빠른 육식동물과 그에 못지 않은 스피드로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초식동물을 보며 나는 본능적으로 그 초식동물이 제발 잡아먹히지 않길 기도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 육식동물은 자신의 먹잇감을 얻기 위해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무려 아홉 시간을 달렸으나 실패했다. 다음 날 그 육식동물이 결국 굶어 죽었다는 해설자의 말을 들으며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난다. 육식 동물이 달려야 했던 이유는 초식동물과 똑같다. 심심해서도 아니고, 이미 배부른데 더 목고 싶어서도 아니고, 식량을 ‘저축’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 동물을 달리게 한 이유는 탐욕이 아닌 오로지 생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시를 쓴 이면우 시인은 당시 연봉 1,380만원을 받는 1년 계약직 보일러공이었다고 하는데, 이 시가 실린 시집이 알려진 배경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지방 도시의 어느 공장에서 홀로 시 쓰기를 즐기는 보일러공이 있었다.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늦게 둔 어린 아들에게 ‘시인’이라는 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시를 쓰라고 그에게 휴가를 선물한다. 휴가 동안 그는 한 권 분량의 시를 쓴다. 사장이 사비 들여 오탈자 많은 붉은 시집을 묶어 준다. 이런 시집의 운명이 어떻겠는가? 창고의 비료포대 자루로 들어간 폐품이 가까스로 눈밝은 이의 눈에 띄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서 종내에는 문단에 알려진다. 이면우 시인과 그의 시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말 그대로 ‘발굴’이었다.
―<한겨레>( 2009년 3월 7일자)
어찌 시인만이겠는가. 처자식의 생계라는 엄중한 책무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했던) 이 땅의 수많은 가장들의 마음이야말로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에 다름 아닌 것을, 생존한다는 것, 먹고 산다는 것은 눈물 나도록 엄숙한 일, 그러기에 거미는 ‘밤을 지새우’고 ‘필사의 그물짜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나의 아버지 또한 수십 년 동안 ‘낯선 거미줄’ 같은 세상에서, ‘해결안 된 사람의 일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거미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었을 것이다. 때때로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고단했을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데 오랜 시간 시렸을, 외로웠을, 고단했을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안아보고 싶었지만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너무 쑥스러웠기에, 열아홉 살과 마흔아홉 살의 중간 즈음에 있는 나, 아직 좀 더 자라야 하나보다.
―김경민, 『시 읽기 좋은 날』, 쌤앤파커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