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차피 돈싸움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전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국력이 결국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이유다. 미국 등 서방이 가혹한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돈줄'을 죄어가는 것도,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에 목을 매는 것도, 궁극적으로 돈 싸움에서 상대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전쟁을 치르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사람과 무기(군사 장비)다. 모두 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요소다. 평시에 국가 안보를 위해 일정한 규모의 병력과 무기및 장비를 구비하고 있다지만, 전쟁이 발발하면 그걸로는 턱도 없다. 러시아가 20만명이 채 안되는 군 병력과 그들이 운용하는 무기및 장비로 2년 전에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했지만, 불과 7개월만에 청장년 예비군들의 '엑소더스'(대탈출)를 초래한 '부분 동원령'을 내려야 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계엄령과 총동원령을 내리고 전쟁을 치를 인력을 징집했다. 대신 무기와 군사장비는 서방측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탱크/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자금(전비)를 끌어모으고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국방예산을 크게 늘려 군수산업을 일으키고, 돈으로 계약병 모집에 나섰다. 그렇게 손실된 병력과 무기를 보충하니 상식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말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러시아의 2024년 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년 대비 10%P가 늘어난 29.5%로, 10조 7,750억 루블(약 1,200억 달러)이다. 러시아 GDP의 6%. 소련이후 국방비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 가까이 점하는 것은 처음이다. 전쟁에 돈을 쏟아붓는다고 할 만하다.
경제 펀더멘탈(기반)이 약한 우크라이나는 전체 예산의 절반인 1조 6,900억 흐리브냐(약 470억 달러)를 국방비로 편성했지만, 러시아 전비의 3분의 1 정도에 그친다. 그럼에도 GDP의 약 22%에 해당한다니, 단순 계산으로도 게임이 안된다. 서방이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수백억 달러 어치의 군수 물자를 지원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서방 측이 개전 후 1년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1,508억 달러에 이른다. 이중 직접적인 군수물자 지원만도 수백억 달러다. 우크라이나가 최근 최전선에서 병력과 포탄 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개전 초반에 비해 크게 줄어든 서방측의 지원 탓이다.
특히 최전선에서 적의 총구 앞에 서 있는 군인들에게 돈은 사기 진작의 원천이다.
우크라이나전에서 전사한 러시아 군인들의 장례식 모습/캡처
러시아 일간 러시스카야 가제타(RGRU)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1일 특수 군사 작전 지역에서 사망한 군무원과 경찰 등 법 집행기관 요원들에게도 500만 루블(약 7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부상시에는 300만 루블을 위로금으로 제공된다. 이 지시가 주목을 받는 것은, 최전선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보상 체계를 군무원 등 지원 인력에게도 확대 적용함으로써 노리는 사기 진작 효과다. 목숨을 걸고 특수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국가가 '목숨 값'을 확실히 보상하겠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을 발령한 뒤, 추가적인 병력 보충은 계약병으로 충당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겸 국민과의 대화에서 "현재 61만7천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2천㎞가 넘는 전선에 배치돼 있다"며 “자원 입대 캠페인을 시작한 결과, 어제(12월 13일) 기준으로 48만6천 명이 응했다"고 말했다. "캠페인과는 별도로 온 자원 입대자까지 합치면 약 50만 명"이라고도 했다. 말이 계약병이고, 자원입대자이지, 결국은 돈을 주고 사는 '용병'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그만큼 후한 처우을 약속한다.
러시아의 입영 계약 조건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특수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병사는 최소 월 20만 루블(소총수)에서 24만 루블(분대장급)을 받는다. 2022년 9월에 이미 동원된 예비군들은 3,500 루블의 장기근무 수당이 추가되고, 새로 입대하는 계약병(최소 1년)에게는 계약과 동시에 20만 루블 정도가 예금 통장에 꼽힌다.
또 공격작전에 투입될 경우, 별도 수당과 다양한 보상금이 기다린다. 예컨대 미국산 다연장로켓발사대(하이마스·Himars)를 파괴할 경우, 100만 루블을 성과금으로 받을 수 있다. 우승에 목마른 프로 스포츠 구단이 막판에 승리를 추가할 때마다 얼마씩 주는 보상금 체계와 얼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작전에서 전사할 경우에는 500만 루블이, 부상시에는 300만 루블이 유족에게 전달된다. 유족은 또 민간 보험사로부터 사망시 보험금으로 300만 루블 가까이를, 부상병은 부상 정도에 따라 7만4천 루블~30만 루블 받을 수 있다. 더욱이 가장이 전쟁터로 나가고 남은 가족들에게는 공공 주택및 주택 모기지 우선 배정이나 임대료 보상 등 주거 부담을 없애주는 등 각종 지원 조치가 취해진다.
러시아는 이같이 돈을 쏟아붓는 바람에 50만명을 전선으로 동원할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
우크라이나군의 오데사 시민 강제 동원 장면/영상 캡처
하지만, 서방 측에 손을 벌려야 하는 우크라이나는 그만한 돈을 군에게 줄 여력이 없다. 개전 초기에는 계엄령과 총동원령으로 병력을 손쉽게 동원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공격에 분노한 국민들이 입대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하짐만, 이제는 다 옛날 이야기다. 동원 대상자들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해 폭력도 불사한다. 강제 동원을 폭로하는 영상들이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보다 못한 우크라이나 정부가 강제 동원을 보다 손쉽고 간단하게 처리하기 위해 '동원에 관한 법률'(이하 동원법)을 개정 중인데, 최고라다(의회)에서 몇달째 진통을 겪고 있다. 당근은 없고, 채찍용 처벌 조항만 많이 넣다 보니, 언론은 물론, 의회로부터 반발이 거센 탓이다. 예컨데 동원 기피자는 본인 명의의 은행 거래도, 주택 임대및 자동차 구입도 못하도록 막아버린 법 조항들이 대표적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로 최근 경질된 발레리 잘루즈니 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시르스키 신임 총참모장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돈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시르스키 총참모장은 지난 10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투 비용(월급과 보너스 등 병사들을 위해 쓰는 돈/편집자)을 10만 흐리브냐(약 340만원)에서 20만 흐리브냐로 늘려줄 것으로 제안했다. 수도 키예프(키이우) 시민이 동원령에 따라 입영할 경우, 3만 흐리브냐(약 100만원)를, 남부 오데사 시민은 2만 흐리브냐(약 68만원)를 받는데, 러시아 계약병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또 최전선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전투 수당'이 적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시르스키 총참모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작전을 협의하는 시르스키 우크라군 총참모장/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해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소위 '자원 입대자'(통칭, 우크라이나 국제여단)도 일정한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인도나 네팔 등 소위 후진국에서는 러시아군 입대 희망자들이 더 많은 걸 보면, 러시아군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우크라이나측의 물질적 보상이 더 적은 게 분명하다.물론, 그 과정에는 사기와 다를 바 없는 불법 알선 등이 끼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자진 입대자도 적지 않다.
인도 사법당국은 지난 8일 유학이나 취업, 무료 비자 연장 등을 약속한 뒤 우크라이나 분쟁지역으로 보낸 불법 알선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인도인 35명을 러시아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유학이나 취업 등이 알선 미끼가 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돈벌이'다.
네팔 구르카족 용병들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소식을 전한 디플로마트지/웹페이지 캡처
용맹한 네팔 '구르카족' 용병들의 참전 소식은 이미 지난해 6월부터 나왔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군 소속으로 인도의 독립운동 진압에 나선 '구르카족'은 1, 2차 세계대전에도 영국군으로 참전했다. 네팔 현지에서는 “외국 군대에서 복무한 오랜 전통과 일자리 부족 등으로 젊은 네팔인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네팔에서는 매년 40만 명이 새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만, 15~29세 청년 실업률은 19.2%에 달한다고 하니, 돈을 벌기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선택한 곳은 대부분 러시아군이다. 월 19만 루블(약 270만원)의 돈을 받고 1년을 버티면 러시아 시민권도 손쉽게 손에 쥘 수 있다. 복무 기간이 긴 어떤 이들은 한 달에 30만~40만 루블을 번다는 소문도 있다.
이같은 소식을 들은 네팔 젊은이들은 관광비자로 아랍에미리트(UAE)나 인도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 계약병 모집소로 향한다. 한 전직 용병은 외신에 “모스크바의 모집 담당자들은 네팔인들이 나타나면 매우 기뻐한다”고 말했다.
용병이야 돈으로 몸을 사는 것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국민들을 전선으로 데려가는 동원에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연말 기자회견에서 "군부가 최대 50만 명의 추가 징집을 제안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돈이다. 50만명 동원에 소요되는 5,000억 흐리브냐(약 17조원)의 추가 예산을 확보할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군인 1명을 유지하는데, 국민 6명의 세금이 든다"며 "50만 명을 동원하려면 50만x6, 즉 300만 명의 납세자를 더 찾아내야 한다"고 토로했다.
재원 확보에 관한 한, 우크라이나는 현재 답이 없는 상태다. 미국의 지원은 지난 연말로 사실상 끊긴 상태이고, EU와 캐나다, 일본, 호주 등에서 자금이 들어오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이 언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해줄 지 여전히 미지수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에게 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판이다.
미국 방문 중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만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 10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에 돈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이 필요한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전쟁이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독자 전쟁 혹은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 손을 들 수 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의회를 향해 우크라이나 지원안 승인을 촉구하면서 내지르는 단골 멘트다. 반대로 트럼프 전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