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슬프게 하는 병, 전립선암 명의 천준 교수와 완치환자 탤런트
박규채 씨
암은 여전히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6만 5천여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남성 3명 중 1명, 여성 5명 중 1명꼴로 암에 걸리고, 남녀 모두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그렇다면 암은 어떻게 예방해야 하고, 예방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 현장에서 치열하게 암과 싸우는 의사와 암을 극복한 환자들을 만나본다.
자각 증상은 없지만 조기 발견은 가능하다
전립선은 20g에 지나지 않는 작은 기관이다. 그러나 이 작은 덩어리가 남성에게 주는 고통은 크다. 심리적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전립선암은 전형적인 서구 암으로 미국에서는 남성 암 발병률 1위다. 사망률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처음으로 전립선암이 여성 암인 자궁암 발병률을 넘어섰다. 전이가 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조기에 발견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전립선암 완치 후 전립선암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탤런트 박규채 씨와 그를 치료해 완치의 기쁨을 맛보게 해준 전립선암의 국내 최고 권위자 고려대부속 안암병원 천준 교수를 만나 전립선암 극복기를 들어보았다.
탤런트 박규채 씨(73)는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하며 살아왔다. 불규칙하기 짝이 없는 방송활동과 무리한 스케줄을 너끈하게 소화해왔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난 후 있는 뒤풀이 술자리도 빠진 적이 없었다.
내로라하는 주당과 대적해도 밀리지 않았으며, 아침 일찍 촬영이 있는 날도 제일 먼저 촬영장에 도착했다. 혹여 자신이 병에 걸린다면 과한 스케줄과 허구한 날 마시는 술 때문에 간이 고장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했었다고.
“내가 하룻밤 술자리에서 조그마한 유리 소주잔으로 265잔을 마신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물론 비공식이긴 하지만….(웃음) 더구나 우리 나이 때 사람들에겐 건강이니 운동이니 웰빙이니
하는 것들은 영 낯설기만 하거든. 담배도 하루 두 갑씩 피워댔지. 그러면서도 뭐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못 했어. 나만 그런 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어디고 탈이 나긴 나더군.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내심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어.”
병원장인 친구의 권유로 검사를 받고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전립선암의 전조 증상 중 소변에 혈흔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지만 박규채 씨는 그런 증상도 없었다. 하지만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이 감지되었다.
“복부가 아픈 건 아닌데 자꾸 불편하다는 느낌을 들어. 살짝 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화장실을 참 자주 갔어. 귀찮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자주 가는데도 시원한 맛이 없어.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지. 하지만 별거 아닐 줄 알았지.
비뇨기과 전문의로 고대 안산병원 병원장을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났는데 지나가는 소리로 증상을 얘기했더니 대뜸 조직검사를 하자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 염증 같은데 웬 조직검사인가 싶었지. 그저 ‘친구 잘 둔 덕에 호강하는구나.’ 했어.”
고려대부속 안산병원의 병원장은 박규채 씨와 고려대학교 동문이자 죽마고우다. 병원을 찾은 박규채 씨는 피검사와 직장 수지검사, 전립선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의심 소견으로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전립선 조직검사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규채 씨는 전립선암 판정을 받았다.
“아차 싶더라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위암이니 폐암 같은 건 알아도 전립선암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도 사실이야. 잘 모르니까 겁은 좀 덜 나더군.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최고 잘하는 후배 의사가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더군. 친구만 믿었지. 그래서 고대 안암병원으로 간 거야. 수술 잘한다는 그 교수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슬픈 암? 자비로운 암? 별명 많은 암!
‘수술 잘한다’는 의사는 바로 고려대부속 안암병원 비뇨기과 천준 교수다. 우리나라 전립선암의 최고 권위자다. 박규채 씨의 친구인 병원장은 천준 교수를 적극 추천했다.
“제가 박규채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약 2기에 해당하는 병기였습니다. 같은 병기라도 종양의 위치에 따라 위험도가 다른데 박규채 선생님의 경우 비교적 희망적이었어요. 하지만 수술이 시급했죠. 전립선암 적출술을 시행했습니다. 일종의 레이저 수술법이었다고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전립선암은 별명이 많다. 중장년층 이상 노령의 남성들에게 잘 걸린다고 해서 ‘아버지 암’이라고도 불리고, 남성의 상징인 성기와 관련된 부위다 보니 그에 관한 심리적인 후폭풍이 심해 ‘슬픈 암’이라고도 불린다. 그런가 하면 ‘자비로운 암’이란 별칭도 있다.
진단과 전이, 사망까지의 기간이 길며 다른 암에 비해 치료법이 비교적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준 교수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암은 암이기에 아무 치료 없이 내버려두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식생활이 빠르게 서구화되고 있고, 생활습관도 예전과 다르게 변화해 남성에게 발생하는 모든 암 중에서 전립선암만이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요. 전립선암은 동물성 지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서구화된 식습관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통 암은 발병 원인이 불명확한 데 비해 전립선암의 경우 정확하게 밝혀진 발병 원인이 두 가지 있습니다.
동물성 지방 섭취와 가족력이죠. 그러니까 평소 식생활을 점검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전립선암 병력이 있다면 정기 검진을 통해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겠죠.”
가족력에 의한 발병은 약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나 형제들 중 전립선암을 확진받은 사람이 있다면, 늦어도 40대 초반부터는 1년에 한 번씩 비뇨기과 전문의를 찾아가 직장 수지검사, 혈액검사, 초음파검사 등을 꼭 받아볼 것을 권한다. 동물성 지방 섭취도 삼가야 한다. 그것이 전립선암 발병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20g이 주는 무거운 고통
전립선은 방광의 경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요도가 그 안을 통해 위치한다. 무게는 20g에 불과하며 보통 밤알만 하다. 고환에서 만들어진 정액은 정관을 통해 정낭으로 보내진다.
그중 일부가 전립선에 나뉘어 보관되다가 전립선을 관통하는 사정관과 요도를 통해 체외로 분출된다. 정액 속에 포함된 전립선 액은 알칼리성으로 정자에 영양을 공급하고 정자의 운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 산성인 여성의 질 속에서 정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며 임신에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전립선은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렇다 보니 전립선암에 대한 오해나 편견도 많은 편이다. 물론 대부분이 불임이나 성기능 장애 혹은 불능에 관한 것이다. 동물성 지방 섭취와 가족력이라는 두 가지 발병 원인에 해당되지 않고도 발병하는 사례가 훨씬 많으니 조기 검진이 특히 더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국소암은 무증상이 대부분입니다. 모르고 병을 키우는 거죠. 또 병을 키우게 되는 이유는 중장년층 남성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전립선 비대증과 전조 증상이 많은 부분 겹치기 때문입니다.
비대증을 의심하고 내원했다가 전립선암을 발견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병입니다. 전립선 비대증은 말 그대로 전립선이 비대해지는 것이고, 전립선암은 전립선 바깥에 종양이 생기는 겁니다. 발병 위치 자체가 다르죠.”
전립선암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다. 허리나 골반 뼈에 통증을 느끼기도 하고, 몸무게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말 그대로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전립선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비교적 쉽게 완치할 수 있지만, 악화된 다음에는 장담하기 힘든 결과를 초래한다. 척추 뼈나 림프절, 간 등으로 잘 전이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술 후 경과 관찰도 여타 암처럼 5년이 아닌 10년까지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뿐 아니라 어떤 시기에 발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전립선암 2기에 발병 사실을 알게 된 탤런트 박규채 씨는 비교적 조기에 발견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고 너무 암담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한 피검사를 통해 전립선암의 의심 여부를 꽤 높은 정확도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PSA검사라는 것인데요. 전립선 특이항원검사라고도 합니다.
전립선의 특징 중 하나는 전립선 특이항원, 즉 PSA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혈액 속 PSA 수치가 높으면 암을 의심해봐야 하는 거죠. 이런 방법으로 발병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전립선암이 유일합니다.
비용도 저렴하고 검사법도 매우 간편합니다. 이 검사법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기만 한다면 전립선암을 부르는 많은 별칭 중에 ‘자비로운 암’이란 말만 남게 될 겁니다.(웃음)”
전립선암의 최고 권위자
전립선암의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수술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배를 열고 의사가 손으로 암을 제거하는 개복 수술과 복강경 수술. 그리고 최신 수술법인 로봇 복강경 수술이 있다.
회복기간이나 흉터, 출혈 등을 고려했을 때 로봇 수술이 다른 수술보다 우월하다. 로봇을 이용해 수술하는 것으로는 전립선암이 가장 많다. 전립선은 크기가 매우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로봇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어서다.
일반적인 표준 수술뿐 아니라 이 로봇 수술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의사가 바로 천준 교수다. 그는 로봇 수술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기도 하다.
박규채 씨도 ‘수술 잘하는 의사’라고만 소개받았을 뿐 이름은 나중에 만나서야 알았을 정도로 수술과 관련해서는 정평이 나 있다. 천준 교수는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립선암의 예방을 위해 항암음식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특히 마늘이 전립선암에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 미국에서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지난 1997년에는 세계 최초로 유전자 촉진제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해 미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저희 아버님도 전립선암이셨어요. 몇 번 제게 불편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바쁘기도 하고 가족이다 보니 별일 있을까 싶은 마음에 그저 비대증일 거라고 안심만 시켜드리고 넘어갔던 거예요.
환자들에게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제 아버지의 병을 악화시킨 것이 저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시달렸죠. 아버지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갚아보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밤톨만 한 크기에 무게도 20g밖에 나가지 않는 전립선 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 숙련도를 요한다. 이를 위해 천 교수는 꾸준히 수영을 해오고 있다고. 로봇 수술 중에는 어깨, 목, 허리, 팔, 손가락까지 근육이 장시간 긴장하기 때문에 평소에 근육을 이완시키고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또 바쁜 스케줄에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지만 가급적이면 과일, 과일 중에서도 바나나와 사과를 자주, 많이 섭취하려고 노력한단다. 양배추, 오이 등도 생식으로 즐겨 먹는다. 동물성 지방을 삼가고 채식 위주로 음식을 섭취한다. 전립선암 치료 권위자의 식습관인 만큼 기억해둘 만하다.
전립선암이라는 남성 암의 최전방에서 ‘완치’라는 완전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천 교수에게 암이란 무엇일까. 일반인의 생각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우리나라 의료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매우 수준 높은 치료 기술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암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충분히 고칠 수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조기 발견이 중요한 만큼 평소 자신의 건강상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완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전립선암은 완치할 수 있는 병이 될 것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저뿐 아니라 모든 의료진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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