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빵을 굽는 사내
당신은 눈물을 구을 줄
아는 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오늘도 한강에서는
사람들이 그물로
물을 길어 올리는데
그 물을 먹어도 내 병은
영영 낫지 않는데
당신은 눈물에 설탕도
조금은 넣을 줄 아는군
눈물의 깊이도 잴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국화빵을 사 먹는 이유
강추위가 몰아친 어느 저녁, 퇴근길에 국화빵을 사 들고 집으로 들어가 식구들과 나누워 먹었다. 늦가을 무렵에 국화빵을 굽는 초라한 노점 하나가 집 앞 횡단보도 부근에 들어선 걸 보고도 늘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그날은 비닐포장 사이로 국화빵을 먹고 있는 초라한 주인 사내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아, 저녁 대신 자기가 구운 국화빵을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찬바람이 몰아 치는 비닐포장을 밀치고 들어서자 먹고 있던 국화빵을 얼른 입속으로 넣어버리고 겸연쩍은 웃음을 슬쩍 띠었다.
나는 국화빵 2천 원어치를 달라고 하고는 안경 낀 사내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허름한 점퍼 차림의 사내는 머리가 희끗한 게 나이가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였으며 얼핏 지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거리에 리어카를 끌고 나와 노점상 할 사내 같지는 않아보였다. 양복에 넥타이만 매고 있다면 어느 회사 간부로 보일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사내는 추위에 손이 곱았는지 더듬거리는 손으로 빵틀에서 국화빵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종이봉지에 담다가 국화빵 하나를 그만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국화빵은 빵틀의 바깥쪽,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쪽으로 툭 떨어졌다.나는 얼른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국화빵을 주워 빵틀 곁에 올려놓았다. 그 때 바닥에 떨어진 국화빵이 꼭 사내의 눈물처럼 보였다 사내가 빵틀을 뒤집을 때는 자기의 눈물을 뒤집는 듯했다.
사내는 왜 머리가 허옇게 된 나이에 서툰 솜씨로 국화빵 장사를 시작한 것일까.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하루에 국화빵 백여 개를 팔아야 고작 1만 원짜리 지폐 서너장을 쥘 텐데, 도대체 하루에 국화빵을 몇 개나 팔아야 이익이 남는 것일까.
나는 집으로 돌아와 사내가 구운 국화빵을 먹으며 새삼 삶의 엄숙성을 생각했다. 팔기 위해 구운 국화빵이 팔리지 않아 빵을 구운 사내가 그 빵으로 저녁을 때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오늘 우리 삶의 냉엄한 현실이다.
국화빵을 굽는 사내 뿐만이 아니다.아침 출근 시간의 지하철 출구 계단에는 나들이용 조그만 플라스틱 박스에다 '집에서 만든 김밥 천 원입니다' 라고 쓴 종잇장을 붙이고 김밥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런데 조금만 눈여겨봐도 김밥을 사가는 사람이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 아주머니가 오전 중에 김밥 열 줄을 판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가 남는 것일까,아마 그 아주머니도 매일같이 팔다 남은 김밥으로 식구들의 점심이나 저녁을 때울 것이리라.
우리는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대국임을 내세워 마치 모든 사람들이 풍요한 삶을 살게 된 것 처럼 여긴다. 그러나 거리의 노점은 늘어만 간다. 어떤 노점은 지하철 입구를 거의 3분의 1이나 가로막고 있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이제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이나 먹거리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나는 이제 거리에서 파는 음식들을 사 먹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다 고맙게 여겨진다. 나도 가끔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강원도 감자떡이며 중국식 호떡, 붕어빵, 잉어빵, 오뎅, 만두, 호두과자 등을 사 먹는다. 어떤 때는 지하철 출입구 앞에 앉아 할머니가 파는 애호박, 호랑이콩, 상추, 깻잎, 아욱, 고구마, 감자 등도 사 들고 집으로 간다. 그것이 그나마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삼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