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93]고진감래苦盡甘來, 천왕봉에 올랐어라!
지리산智異山도 백두산白頭山, 한라산漢拏山만큼 민족의 영산靈山, 삼도三道를 틀어쥐고 있는 거창한 산, 그 산 꼭대기 천왕봉天王峯(해발 1915m)을 밟아보는 게 언제까지 ‘로망’일 수는 없는 일. 허나, 이제 ‘7학년’이 다 돼가는 마당에 엄두내기는 쉽지 않다. 어제 고교 친구들과 마침내 그 천왕봉에 올라 인증샷을 찍었다. 최단코스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4.8km, 깎아지른 것까지는 아니지만, 시종일관 오르막길에 고바위, 너덜겅에 몸은 지쳐 힘들대로 힘들었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 정상 표지석을 보듬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안내하는 친구는 4.8km를 왕복 4시간 반만에 끊는다지만, 몇 년만에 산행을 한 나로서는 왕복 7시간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낙오를 하거나 일행과 처져 민폐를 끼칠 수는 없었기에 마음을 다잡은 게 무릇 기하였던가. 소생의 출판기념회에 두 번에 걸쳐 자리를 빛내준 ‘7080 기타리스트’ 친구가 전직장 동료와 함께 내려왔다. 암 투병 중인데도 근력 시험차,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천왕봉 등정을 계획한 것이다. 기특하고 가상한 일이다. 이미 11번이나 오른 이웃마을 친구를 가이드로 지목했다. 이 친구는 만사를 제치고 협조. 전날 장어까지 사먹이는 자리에 나를 끼워줬다. 슬그머니 산행 욕심이 일었다. 얼김에 한번 올라가봐? 새벽 4시반, 친구의 형수가 끓여준 시래기국(다슬기를 갈아넣었다)에 햇반으로 아침을 하고, 일행은 임실 오수에서 산청 중산리까지 1시간 반 벤츠 직행. 평일엔 산자락 초입까지 가는 버스 첫차가 8시임을 착각(주말은 7시),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시가 아깝고 소중한데. 흐흐.
순두류에서 내린 게 7시 50분. 중간지점인 로타리대피소(벽계사)까지 2.8km. 그야말로 고행苦行의 연속이건만, 온통 초록세상에 내 몸을 맡긴다. 딱 지금, 요때, 연초록 잎들이 햇살에 비치어 반짝이는 모습을 보아라. 세상이 이토록 환한 것을. 눈이 이렇게 즐거운 것을. 한없이 초록에 물드는 이 길이 정말 좋았다. 이런 연초록 행진은 맨날 하거나 바라보아도 좋겠다. 아리랑고개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방울토마토로 기운을 냈다. 법계사는 하산길에 들르자며 길을 서둘렀다. 첫 번째 심장안전쉼터에서, 세상에나, 산새가 내 손바닥에 있는 과자(아몬드)를 채가며 몇 번이고 앉았다. 순간 포착. 절묘하다. 다람쥐들도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연신 과자를 물어 나른다. 이렇게 새와 다람쥐가 우리와 친구가 되는 수도 있구나. 재밌어 시간 지체. 마지막 천왕샘쉼터에서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무수한 나무테크와 철제데크를 흐물흐물 걸었다. 산천이, 산하가 아물거린다. 중간쯤 전망대에서 전체 산의 조망도 봤으면 좋았으련만, 정신이 '1도' 없다. 3인의 동행친구는 이미 저만치 가고 있어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걸음을 재촉해 보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휴우-, 씨X, 내가 이 길을 왜 자청하고 왔던가, 후회가 밀려온다.
그런데도 정상 표지석 인증샷은 찍어야 한다는, 찍어서 호주와 바레인에 사는 두 아들에게 보내주며 애비의 건재를 알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나를 누른다. 일행과 20-30분은 처졌으리라.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마침내, 결국, 나는 오늘 해냈다. 이만큼 짜릿한 인증샷이 또 있었던가. 호들갑 떤다고 말하지 마시라. 한번 시도해 보시라. 당뇨로 10kg나 빠진, 허새비(허수아비)같은 몸으로 천왕봉을 오른 '인간 최영록'이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로 내려갈 길이 걱정이다. 길 잃을 염려는 없지만, 도가니(무릎)는 괜찮을까? 혹시 인대가 놀라 늘어나 절뚝절뚝 헬기 신세를 지지 않을까? 나는 왜 이렇게 저질 체력일까? 친구는 왜 저렇게 산을 잘 타는 걸까? 7시간도 부족한 산행을 어떻게 4시간 반만에 주파를 한단말인고? 부럽다.
내려오는 길, 진주 거창 등의 4개교 고등학생 500여명이 <지리산 탐방 극기훈련> 일환으로 천왕봉에 오르는데 보기에는 좋았으나, 안전이 심히 걱정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때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도 신이 나 삼삼오오 떠들며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 올랐을 것이다. 그 장면이 떠오르니 눈시울이 또 뜨거워졌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허약체질인 청소년들에게 반강제적으로라도 이런 극기훈련은 필요할 것이다. 인솔하는 미모의 선생님에게 애쓴다며 덕담을 건넸다. 그래, 애써 잘 올라갔다 오너라. 틀림없이 좋은 추억이 되리니.
그 와중에도 이왕 올랐으니 법계사 적멸보궁에서 3배는 해야겠다. 적멸보공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신 곳이다. 적멸보궁은 설악산 봉정암-오대산 중대-법흥사-태백산 정암사-영월 법흥사 등에 있다(대체 부처님 사리는 얼마나 많이 나온 걸까). 배춧잎 한 장을 보시하면서 아내와 두 아들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다(이제는 이 세 집밖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절 입구에 전시해놓은 일제의 쇠말뚝이 마치 포탄같다<사진>. 일제는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명산 정상에 이런 쇠말뚝을 몇 개나 박았을까? 그리고 그게 정말일까? 하지만, 최근 <파묘> 영화에서 보듯, 간악한 일제는 그러고도 남을, 희한한 민족적 특성이 있는 듯하다. 여전히 자기들 세상인양 날뛰는 이 땅의 ‘토착왜구’들은 이런 쇠말뚝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까?
극적으로 2시50분 하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로지 쉬고 싶은 생각뿐. 인근 8km쯤 떨어진 면 소재지에 좋은 목욕탕(단성목욕탕, 강추!)이 있다한다. 시골 목욕탕치고 시설이 짱, 더구나 1인 5000원. 1시간여 몸을 풀고 시장앞 복집에서 1인세트(복불고기, 복튀김, 복국) 3만원, 훌륭한 만찬이다. 단성은 유래 깊은 고장이다.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퇴계 이황과 조선조 성리학의 쌍벽인 남명 조식 선생이 산천재에서 후학들을 길러낸 곳이다. 남명은 끝까지 재야학자로 일관하며, 곽재우, 김시민 등 훌륭한 제자를 양성했다. 어디 그뿐인가, 인근에는 고려말 문익점 선생이 목화씨를 밀수입해 처음으로 재배한 시배지始培地가 있다. 또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고 한 선지식善知識 성철스님의 고향으로, 성철은 바라지 않았겠지만, 그를 기리는 절도 있다. 단성과 시천은 인상 깊은 고장.
어무튼, 친구 덕분에 강남 간다는 말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산행, 그것도 지리산 천왕봉을 밟을 줄이야. 역시 친구는 잘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인생 2막에 자주 만나고 어울리는 친구가 없다는 것은 불행이고 비극일 터. <아름다운 사람> 시리즈(현재 25회)처럼, 나는 주변에 ‘아름다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진정 복 많은 사람. 언제 다시 천왕봉에 오를 날이 있을까? 그날이 또 올까(하기야, 존경하는 우리 선생님은 75세에도 올랐다한다)? 오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려오는 것도 어쩜 오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잘나갈 때와 못나가고 늙고 가난하는 등 생활의 처신 문제) 하는 생각도 하면서, 초록의 바다에 풍덩 빠진, 초여름날의 행복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