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하느님을 위력 있는 왕 같은 존재로 묘사하며 감정이입을 하여 우리를 돕는다는 주관적 표현을 사용한다. 하느님은 사실상 누구의 편도 아니며 공정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의 질서대로 살아간다면, 자연은 그에 적합하게 사는 한 우리를 선택할 것이다. 이것을 '자연 선택'이라 한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편이 무조건적으로 되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뜻과 목적'에 살아갈 때, 우리는 그분의 호의와 은총을 입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앞 내용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에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상 하느님 곧 자연은 목적이나 계획이나 예정을 갖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목적, 뜻, 예정, 계획이라는 용어들은 사실상 하느님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감정이입하여 욕망을 가진 분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퇴근 길 식당 옆을 지날 때, 생선 굽는 냄새가 코와 배를 자극한다면, 얼른 집에 가서 생선을 구워 먹어야 겠다는 목적을 가지는 것은 사실상 신체가 수동적으로 느끼는 감각에 따라 발생하는 욕망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외부 작용에 영향을 받아 활동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그 지식에 따라 작용하는 능동적 활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욕망이 아니며, 또한 욕망이 없으므로 미래를 계획하지 않으신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지적 작용인 것이다. 즉 사물이 서로 결합되거나 분리되고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거나 파괴되는 것은 물질 자체의 성질로 인한 작용인 것이다. 본문으로 돌아가, 우리가 자연의 질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이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성의 작용에는 자연의 원리를 익히는 것도 포함되며, 여러 경전을 통하여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배우는 것은 자연의 질서대로 살아가는 매우 훌륭한 방법일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해석자들의 여러가지 해석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의 이성이 지시하는 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면, 그는 반드시 보편적 도덕성의 지점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특정 종파의 특수한 교리에 목을 매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이성으로 사고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편적 도덕에 이를 것이며, 그러한 도덕성에 따라 살 때,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느님은 우리의 편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어떤 것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ㅡ롬 8:35-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