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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11: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주해
1. 성령이 임함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증거되었고, 성령님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바울을 회심시키시고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 선교의 문을 연다.
1)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고넬료와 그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다.
2) 할례자들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 식탁 교제 한 것을 비난한다.
2. 베드로는 욥바에서 본 환상과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는 성령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1)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성령)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냐”고 한다.
행 11: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3.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박해로 인하여 흩어진 성도들은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19절).
1) 페니키아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 두로와 시돈이 이에 속한다. 키프로스는 소아시아 남쪽에 있는 큰 섬으로 시리아 북쪽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다. 키프로스는 바나바의 고향이기도 하다.
2) 흩어진 제자 중에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다.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헬라(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20절).
3) 안디옥은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 주요 도시로 시리아의 수도였다. 안디옥은 철학과 수사학, 의학의 본고장이었고, 유명한 도서관이 있었다. 이곳 역시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요세푸스).
4. 세계 선교의 교두보가 된 안디옥 교회는 사도들이 아니라 무명의 성도들에 의해 세워진다.
1) 무명의 제자들이 안디옥에 있는 헬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함으로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21절).
2) 안디옥에 신자들의 모임, 곧 교회가 세워졌다. 이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다(22절).
5.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었다.
1) 안디옥에 주를 믿는 공동체가 세워진 것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보낸다.
2) 바나바가 위로의 사람이고(4:36), 서로 화목하게 하는 중재의 사람(9:27)인 것과 함께 바나바가 키프로스 출신이기 때문인 것 같다. 바나바는 이방인 지역이자 헬라문화에 속한 안디옥 교회를 돕기 위한 신앙, 성품, 언어, 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3) 갈릴리 출신인 베드로와 요한은 안디옥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4) 하나님은 몸된 교회의 각 지체를 주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불러 사용하신다.
6.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23절).
1) 예루살렘 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로 이루어졌고, 이로 인한 원망과 갈등도 잠시 있었다.
2) 안디옥 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특별한 교회였다. 복음을 전한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헬라인 중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같이 있었다.
3) 같은 헬라 문화를 공유한다고 하여도 이방인과 유대인이 교회됨을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늘 가족, 형제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7.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24절).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1) 바나바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이루어져서 서로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기에 매우 어려운 안디옥 교회를 섬긴다.
2) 바나바와 같이 착한 사람이요, 화목하게 하는 사람, 수용적이고 포용적인 사람이면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함으로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의 교두보가 되는 교회로 세워진다.
3) 만약 베드로를 비난했던 할례파와 같은 사람이 왔다면 안디옥 교회는 어려웠을 것이다.
8. 바나바는 사울이 회심한 직후 그를 사도들에게 데려갔고(9:27) 사울을 다소로 보낸 형제 중 한 명이기도 하다(9:30).
1) 이후 사울은 다소에 계속 머물렀다. 이 기간은 최소한 10년 정도이다(갈 1:18; 2:1)
2)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와 그와 동역한다(25절).
3) 바나바의 제안으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지고, 바울은 이방인 목회에 이어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져 간다.
4)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은 1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하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26절).
9. 무명의 성도들의 전도로 인하여 탄생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의 사역으로 인하여 개인적 신앙과 함께 교회로 성숙해 갔다.
1) 교회 성도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2) 또한 흉년으로 인하여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자 부조를 보내어 돕는다.
10. 안디옥 교회가 성장하고 있을 때 선지자 몇 명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내려왔다(27절). 그 가운데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온 세계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28절). 바로 그 기근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들었다(28절).
1) 온 세계에 큰 기근이 있었으므로 안디옥 교회도 어려웠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를 당하고 있었다.
2)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은 각각 자기 형편에 따라 몫을 정하여 유대에 사는 성도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결정한다(29절).
3) 그들은 바나바와 사울 편에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낸다(30절).
11.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떨어져 있는 지역교회이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의 모교회와 같으므로 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의 실천이다.
1)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고,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안디옥 교회를 도왔다.
2) 영적으로 도움을 받았던 안디옥 교회는 이제 물질로 예루살렘 교회를 도움으로 이방인 안디옥 교회와 유대인 예루살렘 교회는 더욱 깊이 결속된다.
12. 예루살렘 교회의 도움으로 세워지고 성장한 안디옥 교회는 주 안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넘어서는 교회로 자라간다.
1) 예루살렘 교회도 너무나 귀하고 좋은 교회다. 그들은 말씀 안에서 서로 사랑하였고, 박해를 기뻐하였고,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교회를 세운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서로 사랑의 범위를 예루살렘 교회까지 확장한다.
- 서로 사랑의 본이었던 바나바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음은 당연할 것이다.
3)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함으로(13:1-3) 지상 명령에 순종한다.
1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두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과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는 지상 명령”이다.
1)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 사랑뿐 아니라, 새계명과 지상명령에 온전히 헌신하는 교회다.
2) 이렇게 놀라운 교회인데 하나님은 베드로나 바울이나 사도들이 아니라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익명의 제자들에 의해 처음 세워지게 하셨다.
3) 물론 사도들과 연합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견고하게 세워졌지만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복음을 전한 그 일은 너무 귀하고 아름답다.
14. 사도행전은 크게 베드로의 사역과 바울의 사역으로 나누기도 한다.
1) 바나바는 약방의 감초처럼 중간 중간에 등장하다가 사라진다.
2) 성경은 바나바를 능력 있는 사람, 대단한 사람으로 소개하지 않고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한다.
3)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바울은 어떠했을까?
4)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 알의 밀알로 잠잠히 섬기는 바나바, 너무나 귀한 사역들을 했지만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바나바가 있어서 교회와 성도들은 참 행복했을 것이다.
◈ 나의 묵상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과 바나바가 등장한다.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개척 멤버요, 교회를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온전히 바나바와 바울의 리더쉽에 속한다. 바나바의 일관된 겸손은 너무나 아름답다. 선한 일을 할 때에 항상 죄의 세력은 역사하는데, 자기를 주장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최초의 이방인 교회이자 세계 선교의 교두보가 되는 안디옥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 새롭다. 세상살이나 목회사역을 통해서 보란듯하고 능력 있고 탁월해야 좋은 사역자라는 세상의 가치관이 깊이 뿌리를 내렸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보란듯한 사역자를 찾고 구한다.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안디옥 교회를 세운 익명의 그리스도인들과 바나바와 같은 신앙인을 찾기도 힘들고, 그들을 그리스도인의 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성공관에 찌든 나의 주관일 수도 있다.
믿음은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교회에 모이게 하시면 모이고, 흩어지게 하시면 흩어지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 전하고, 교회를 세우라고 하시면 세우고, 사라지라고 하면 사라지는 것이다. 무엇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함을 따라 자족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이 두신 자리보다 더 무엇을 하려고 하였다. 탐심 때문에, 헌신 때문에, 섬김 때문에.... 모세는 40세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로 하여 헌신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탐심 때문이던, 믿음 때문이던, 주님이 있으라고 한 그 자리를 떠나면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이 두신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였다. 지금도 하나님이 두신 자리에 감사하며 자족하지 못한다.
가장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집에 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떠나서는 안될 자리, 어떤 환경속에서도 머물러야 할 자리는 아들과 아버지 안이다. 하나님이 두신 자리를 떠났던 자, 십자가 보혈, 십자가 사랑, 그 큰 사랑을 의지하여 아들 안에 거한다. 나를 용납하신 그 사랑 안에 거하며, 나를 용납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용납한다. 나는 아버지 집에, 아버지 품에 거할 자격이 없으나 나를 용납하시고 품어주시는 그 사랑을 믿음으로 취한다. 나의 하나님은 모든 이름 위에 계시는 여호와이시다. 나와 다른 하나님의 그 사랑과 긍휼은 영원하다. 그 크신 사랑과 주권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언제나 인자하시고 신실하시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 정녕 나를 따른다.
◈ 묵상 기도
주님, 자의적으로 행한 그 모든 노력과 최선과 성과도 해 아래에서의 수고는 헛되고 헛됩니다. 주님의 때와 방법을 따라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이 두신 자리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40세에 믿음으로 헌신한 모세조차 실패하여 미디안 광야에 거했습니다. 그러나 소명조차 잃어버린 모세를 찾아오신 분은 주님의 사랑과 주권이었습니다. 주님, 내가 거해야 할 그 자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품속에 항상 거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두신 환경의 자리, 사역의 자리, 마음의 자리에 거하며 자족하게 하옵소서. 염려와 두려움을 버리고 주님이 아시고, 함께하는 그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하여 근심과 두려움이 아니라 도리어 복음이 증거되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주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고, 모든 상황속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성경대로 성령에 의하여 복음이 증거되는 교회, 서로사랑과 지상명령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예배와 섬기는 이들, 봄소풍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