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7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음란이나 부정 사욕 그리고 악한 정욕과 탐심 등 우리 안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하셨는데 나는 이런 지체들을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더욱이 탐심은 우상 숭배라 하셨건만 겉으로는 우상 숭배를 지독히도 싫어하면서 이를 공공연히 즐기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나는 주의 공의로 심판 받아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를 살려두신 것은 주님의 지극하신 사랑이요 은혜임을 믿사오니 내가 여기서 돌아서게 하소서.
나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긍휼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나는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하오니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게 하소서.
나는 연약합니다.
약할 때 강함되시는 주님을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21:17-29
제목 :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 나의 묵상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 탈취 사건을 다룬 21장의 전반부에 이어 사악한 방법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한 아합과 이세벨을 향한 엘리야 선지자의 심판 경고와 아합의 회개(?)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어 아합이 나봇에게 행한 일과 그의 모든 죄로 인하여 아합의 가문이 파멸에 이를 것이며 또한 아합과 이세벨이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을 경고하도록 하셨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접수하러 갔을 때 엘리야도 아합을 만나러 그리로 갔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고 내 원수인 네가 나를 찾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답한 엘리야는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주께서 너의 집에 재앙을 내려 가문을 멸할 것임을 알렸다.
또한 아합의 집이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과 같이 될 것인데 이는 그가 하나님을 진노케 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께서 이세벨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그녀의 시체를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아합에게 속한 자 중에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새들이 먹을 것이다.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악을 행한 자가 없는데 이는 그가 이세벨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합은 주님께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이 행한 우상을 심히 가증하게 행한 자였다.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은 채로 잠을 자며 풀이 죽은 자처럼 행보도 천천히 하였다.
이렇게 행하는 아합을 보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자랑하신다.
그의 겸비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시되 그의 시대에 하지 않고 그 아들의 시대에 그 집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물론 아합을 향한 하나님의 자랑은 그가 정말 자랑스러워서 하는 자랑이 아니다.
그가 지금 죽어도 시원찮을 자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엘리야를 통하여 듣고 나서 회개의 차원이 아닌 약간이라도 반성의 기미가 보이기에 그에게 내릴 재앙을 다음 세대로 미루어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역대 선왕들 아합과 같이 악을 행한 자가 없었다.
다만 그는 이세벨의 유혹에 빠져서 선왕들에 비하여 더 악행을 저질렀다.
아모리 족속들이 행한 우상 숭배를 아합과 이세벨이 똑같이 행하였다.
이들 부부는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나봇의 피를 핥은 개들이 아합의 피도 핥을 것을 경고하셨고 이세벨은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개들이 그의 시체를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경고 앞에서 아합은 그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자 있는 자리에서 조심조심히 행하며 옷을 찢고 금식도 하며 굵은 베옷을 아예 벗지 않고 잘 때조차 그 옷을 입고 잤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은근히 자랑 아닌 자랑을 하신다.
또한 그런 아합에게 당대에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고 다음 세대로 심판 시행을 유보하신다.
이처럼 극악무도한 아합이라 할지라도 그의 근신하는 모습을 통하여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자비는 심판을 잠시 유보시키는 것일 뿐 완전한 구원은 아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만 가능하다.
그가 아무리 악한 왕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 들어 있었다면 그는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심판이 잠시 유보되었을지라도 그것이 그를 구원의 자리로 인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구원은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 일은 삼위 하나님 곧 성부하나님과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창세전에 이미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아들과 함께 언약하셨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
주님은 당신의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으며 헐벗을 때 입을 옷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와 주었다.
그 때 이들은 우리가 언제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나 옥에 갇혔을 때 돌보아 주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주님은 내 형제 중에 지극하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사실 이들은 주님께 이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 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면 한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오른편에 있는 자인지 아니면 왼편에 있는 자인지 소속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은 너희들은 나에게 전혀 그런 일을 하지 않았기에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심판하신다.
그 때 이들이 묻는다.
대체 언제 주님이 주릴 때나 목마를 때나 나그네 되었을 때나 헐벗을 때나 병들었을 때 그리고 옥에 갇혔을 때 우리가 공양하지 않았느냐고 격하게 반문을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렇게 반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그런 줄 전혀 알지 못했다.
만약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말씀만 해주시지.
그러면 우리가 가서 선한 일을 했을 텐데요, 하고 말이다.
이 말은 곧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을 때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이 율법사는 예수님께 하고 싶은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말해주면 자기가 가서 그 이웃을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곧 주님의 왼편에 있던 염소의 말과 똑같다.
내게 말만 해주면 내가 가서 도와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서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처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제2 제3의 아담들의 행사인 ‘하나님처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보여주시면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실 때 그는 자비를 베푼 자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신 의미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마리아인이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에 너도 그 사람처럼 자비를 베풀면서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그와 같은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자이다.
다만 우리는 주님의 자비를 받아야 할 자들이다.
그렇게 베풀어 주시는 자비와 긍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자비를 베푸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애를 쓴다.
물론 이 땅에서 많은 이들을 돕고 살아가는 선한 일을 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을 받는 조건이 절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되 그런 선한 일을 행했을 때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셨음을 인정하며 주님께로 공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되어 또 다른 아담들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복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 땅에서 예수를 본 받아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최고의 일이라 여겼다.
그런 선한 일을 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자책하거나 낙심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위상을 높이고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런 자기주장의지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아담의 죄를 재탕 삼탕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나를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얻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창세전 언약 안에서 얻은 영생으로 주님 안에서 그 나라를 누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복음을 알기 전까지는 이 땅 곧 만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하여 이 땅에서 예수를 잘 믿어 영생을 얻고 그렇게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영생은 이 땅에서 아들의 생명을 얻어 날마다 그와 생명의 교제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게 생명이요 은혜였음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늦게라도 복음을 알게 하시고 복음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이 땅의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자족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여 구원에 기여하는 자가 아니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자임을 믿사오니 오늘도 그 은혜 아래 엎드립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은혜를 더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