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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의 제멋대로 인터뷰 5탄]
서글서글함 뒤에 새침한 구석이 있는 ‘총각’, 이주현(강동을)
이주현 후보를 만난 건 강동정모에서였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지만, 일단 민주당 경선에 관심이 가있던 터라 인사만 나누었다. 그러다 이번에 야권연대협상에서 강동 갑을 모두 경선지역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이주현후보 사무실을 찾아갔다.
캠프의 이름은 ‘허브 캠프’, 황희석후보 캠프처럼 카페처럼 꾸며놓아 일단 편했고, 선거가 끝난 후에 강동지역의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사랑방으로 꾸밀 생각이라는 말을 들으니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보는 다음 일정 때문에 십여분 간의 프리인터뷰를 끝내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갔고, 나는 강동모임 때 명함을 돌렸던 스텝을 꼬여내 천호동에 있는 ‘뽕신’으로 데려갔다.
스텝을 구슬리고 어르며 이주현후보의 사생활을 캐내던 중 예상치도 못한 ‘대박’을 건져냈다. 이주현 후보가 돌싱도 아니고, 이혼 한번 안 한 ‘총각’이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인터뷰에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던 나는, 이 사실을 알아낸 후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인터뷰가 기대되었다.
강동의 비혼 여성 유권자들이여, 이주현 후보를 주목하라.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는 게 흠이지만, 곤혹스러운 질문 앞에선 새침한 표정을 짓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득표율이 15%에 가까웠다니, 이번 민주당 후보 심재권과의 여론조사 경선을 통과해내고, 국회의원까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2012년 3월 13일.
(다른 후보자들은 모두 선거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주현후보는 총각이라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했다.)
주현 : (앉을 곳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분들도 카페에서 했어요?
녹두 : 아뇨. 사무실에서 했죠.
주현 : 그럼 왜 저만….
녹두 : 총각이니까요.(웃음)
주현 : (한숨)후우….
녹두 : 연상단어 30개만 대보세요.
주현 : 솔직히, 여론조사, 경선, 조직, (카페 밖에 보이는)간판, 허브캠프, 친구, 가족, 스마트폰, 트위터, 페이스북, 강정, 카톡, 세액공제.
녹두 : 이번에 받으셔야 되나보네요.
주현 : 무지하게 받아야 해요.(웃음) 청년 동문회, 희망나눔센터, 시민연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녹두 : (심드렁)……으.
주현 : 아…온통 정치 생각뿐이구나. 한강, 올림픽공원, 성내천, 자전거, 영화, 만화, 등산, 체육대회, 소풍, 찜질방, 뒤쪽은 하고 싶은 것들만 나오네요.
녹두 : 원래 그래요.
주현 : 소주, MT
녹두 : 연애가 안 나와.(웃음)
주현 : 제주도, 대학로. 아직도 안 나왔나요?
녹두 : (숫자 세어본 후) 32개네요.
주현 : 심리테스트 받는 것 같아.
녹두 : 그건 아니고요. 평소 마음에 품고 있거나 신경쓰는 게 튀어나오거든요. 100개까지 하면 더 깊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심리를 파고드는 거라. (연상단어 32개를 들여다보며) 근데 특이한 게 없네요.
(이주현 후보의 책을 읽어서 단어들이 낯익었다.)
주현 : 첫사랑 이런 거 말할까요?
녹두 : 관심 없어요. 마지막 사랑에 관심 있죠.
주현 : 아…. 마지막 사랑. 그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녹두 : (웃음)그걸 이야기해봐야겠군요.
녹두 : 희망나눔센터는 뭐예요? 언제 만든 거예요?
주현 : 길게 보면 2006년. 짧게 보면 2010년. 두 번 다 제가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해죠. 2006년 처음 구의원에 출마했는데, 내가 공직에 출마한다거나 정치인이 되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안 하고 출마한 거예요.
녹두 : 그럼 왜 출마했어요? 당(당시 민주노동당)에서 명령했어요?
주현 : 명령은 아니고, 내가 당에 복무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당을 알리는 게 중요한 때였고, 한편으로는 당 내부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제가 열심히 하고 싶어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고요. 출마라기 보단 운동에 가까웠죠. 근데 막상 지역정치에 출마하니까 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의 문제를 알게 되니까, 주민들과 부대끼면서 같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희망나눔센터를 만든 거죠. 구의원 떨어지고 나서요.
녹두 : 그럼 희망나눔센터는 무슨 일을 하는 거예요?
주현 : 주요하게 하는 일은 홀몸노인분들, 독거노인분들한테 일주일에 한번씩 반찬이랑 국 만들어서 일주일동안 드실 수 있게 배달해드리고, 의료봉사도 좀 하고요.
녹두 : 그럼 후원을 받는 거예요?
주현 : 후원도 받고, 함께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얼마씩 내서 장보고 반찬 만들고 하죠. 의료봉사는 당원이건 시민단체회원이건 의사, 한의사, 간호사 이런 친구들이 많아서 정기방문하고, 병원에 가야 할 때에는 싼 가격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연계를 해주고요.
녹두 : 2006년이면 참여정부 시절인데, 그때에는 독거노인분들에게 도시락이 지원되지 않았나요?
주현 : 지금도 돼긴 돼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걸 피부로 느낀 건, 이런 거예요. 우리가 돕는 분들은 생활보호자로 지정되지 않은 차상위계층, 틈새계층인데요. 그분들은 자식이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거나, 아니면 장애인이에요. 그래서 공식적으로 돈을 못 받아요. 이분들이 뭘 해서 먹고 사냐면 공공근로해서 월 50만원 정도 받는데, 그걸로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나머지로 밥 겨우 먹는 거예요. 근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이 공공근로가 없어지는 거예요. 이게 딱 2010년 지방선거 이후에 우수수 없어졌어요.
녹두 : 2010년에요?
주현 : 지방선거 때는 잘 보여야 하니까 못 없애다가, 선거 끝나니까 없애버린 거죠. 그래서 이분들이 파지를 주우러 나가는데, 이런 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서로 파지 때문에 싸워요. 아침에 명함 드릴 때 보면, 무가지 나눠주는 아주머니와 파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싸워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녹두 : (끄덕)후보님 책에서 본 것 같아요.
주현 : 네, 책에서 쓰긴 썼는데요. 2006년 때에는 정부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는 그런 사각지대가 많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그걸 지역 사회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분들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돕는 사람들을 묶어내는 것도 의미가 있고. 근데 그런 영역을 한나라당 지지자분들이 더 많이 하는 거 알아요?
녹두 : 그래요?
주현 : 나이 드신 분들, 그러니까 자유총연맹이니 새마을회니 이런 곳에 있는 분들 보면, 사실 개개인으로 보면 자원봉사하고 싶고, 같이 놀고 싶고 해서 모이는 거거든요. 그런 분들을 다른 방향으로 정치적으로 써먹는 거지. 우리는 못하는 거고요. 젊은 사람도 그런 마음이 있는데, 마땅한 데가 없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그런 걸 묶어보자 그랬던 거예요.
녹두 : (끄덕)좋은 거 같아요.
주현 : 이 지역에 같이 활동하는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을 특히 공부방에 파견 보내요. 이야기도 나누고 꾸준히요. 원래는 자원봉사자센터같은 걸 해보려고 시작한 건데, 제가 다른 일을 하느라 집중하질 못해서 풍성하게 하지는 못했어요. 지금은 노인분들께 도시락 보내주는 거 하나만 계속 하고 있어요.
녹두 : 그거 하나만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크다고 봐요. 프로그램 여러 개를 대충 돌리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하는 게 더 낫다고 보거든요.
주현 : (끄덕)
녹두 : 근데 이야기가 참 재미없네요.
주현 : (-_-)
녹두 : 청년동문회는 뭐예요?
주현 : 한때 운동이란 걸 좀 했던 학교 선후배 모임이에요. 다른 곳에 비유하면 민주동문회같은 거죠. 그냥 동문 모임인데, 굉장히 끈끈하고 활동력도 강한 편이에요. 오랫동안 선후배 고리가 끊겨서 서로 소원했다가 작년부터 좀 활발해졌죠.
녹두 : 왜 작년부터예요?
주현 : 이거 재미없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녹두 : 뭘 두려워해요?(웃음) 재미없으면 없는 거지. 안 읽겠죠, 뭐.
주현 : 제 위의 학번은 다 민주당으로 갔어요. 대표적인 선배가 우리 종석이 형. 그 위의 선배들 중엔 1, 2학년 마치고 노동현장으로 가신 분들도 있지만, 총학생회에서 난다 긴다하는 선배들은 민주당으로 가거나 양심적인 사회인으로 살거나 그러고 있죠. 평생 진보 운동을 하겠다고 남은 사람은 제가 처음인거예요. 저를 분화점으로 해서 제 후배들은 대부분은 민주노동당이고요. 들어보니까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가 많이 안 좋았다 하더라고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아직도 그렇게 운동해야 하냐 그러고, 후배들은 선배가 변절했다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후배들이 임종석 의원 사무실에 계란이랑 페인트를 던진 게 결정적이었죠. 선배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분개했고요.
녹두 : 왜 던진 거예요?
주현 : 그 당시 이라크파병이랑 국가보안법 폐지문제, FTA 추진 때였을 거예요. 그 이후로 특별히 계기가 있는 게 아니니까 친한 학번끼리만 모이고 교류가 없었죠. 그러다 작년에 한두가지 사건으로 확 모이게 됐고, 즐거웠죠. 일단 배경은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녹두 : 아, 다 연결이 되니까.
주현 : 네, 페이스북 때문에 서로 찾게 된 거죠. 그런 와중에 김조광수감독 알아요?
녹두 : 알 것 같은데.
주현 : 소위 동성애자 감독으로 유명한데.
녹두 : 아! 알아요.
주현 : 그분이 우리 학교 선배예요. 저예산 동성애 영화만 줄창 만들다가, 나도 한번 흥행 영화 만들겠다 하면서 만든 게 ‘조선명탐정 각시투구’였는데, 대박이 난 거야. 그때 확 모인 거야. 100명이 모여서 술을 먹었죠.
녹두 : (웃음) 성공의 맛을 함께 누렸군요.
주현 : 그러다 반값등록금 집회가 불 붙었을 때였어요. 전 당 차원에서 늘 가니까, 지금 후배들하고 교류를 하고 지내는데, 어느 날 사회자가 그러는 거예요. 방금 중앙대 동문 선배들이 피자 몇 판을 쏘았다라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집회에 있던 우리 후배들이 나를 쫙 뒤돌아보면서 쏘아보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페이스북에 올렸죠.
녹두 : 암, 중앙대에 질 수는 없지.(웃음)
주현 : 하룻밤에 70만원이 모였어요. 선배들도 이게 재밌었나봐. 80년대 학번이 하나둘 집회에 나타나고, 그러다가 지금 학교 다니는 후배들과 만나게 된 거죠. 광화문에서 70~80명이 모여 술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강정에 가 있었고.(웃음) 그 선배들이 나중에는 한진중공업까지 왔어요. 처음엔 한 선배가 근처 일 때문에 들렀다갔는데, 나중엔 청년동문회 차원에서 희망버스를 조직해서 갔죠. 지금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된 거죠.
녹두 : 동문에서 이번 선거 많이 도와줘요?
주현 : 출판기념회 때 청년동문회에서만 60~70명이 왔어요. 원래 보통 다른 정치인 출판기념회에서는 얼굴 비추고, 돈 좀 내고 가는데, 그날 새벽 네 시까지 60명이 먹고 갔어요.
녹두 : (웃음)놀러 온 거죠. 기회다 하고.
주현 : 도와주러 온 거죠.(웃음)
녹두 : 적자 났겠네요.
주현 : 선배들이 낸 거죠. 난 한 푼도 한 내지.
녹두 : 박치웅 후보는 출판기념회를 안 했던데, 이주현후보는 하셨네요?
주현 : 출판기념회를 한 건, 옛날처럼 당을 알리려고 출마한 게 아니라, 정말 될 생각으로 다이다이로 붙을 거다라는 의미로 한 거예요. 급하게 3주 전에 결정을 해서, 보름동안 폭풍집필을 했어요. 처음엔 (시간이 촉박해서) 화보집을 낼까 하다가.
녹두 : 누드화보집! 인기 폭발일 것 같은데.
주현 : (웃음) 왜 이러시나.
녹두 : 책을 보니까, 소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길을 가는 계기가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이주현 후보의 아버지가 궁금하신 분은 책 ‘사람을 향해 걷는 이유’를 읽어보시길. 천호역에 있는 캠프에 가면 읽어볼 수 있다.)
주현 : 제 어떤 정서죠. 정서적 측면에서 크죠. 아버지가 제일 크고 상징이기도 하고. 근데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작은 아버지도 그랬어요.
녹두 : 작은 아버지 이야기는 책에서 못 봤던 것 같은데요.
주현 : 예, 책에는 안 썼어요. 단순하게 이야길 하면, 작은 아버지는 땅에 흙 파먹고 살고 싶어 하신 분이에요. 근데 가난한 농부니까 자기 땅을 사기 위해 월남을 갔고, 그 목숨 값으로 땅을 샀고, 농사를 짓다가 작은어머니가 신장병에 걸려 투석을 해야 해서, 농사를 더 이상 못 지은 거죠.
녹두 : 병수발 들어야 해서요?
주현 : 그건 아니고요. 한달에 한번씩 투석을 받아야 하니까 당시 50만원이상 현금이 계속 나가는 거죠. 농사를 지으면 그렇게 맞출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그 땅을 두고 도시빈민으로 나온 거죠. 노가다도 하고, 노점도 하고. 그래도 언젠가는 농사짓겠다는 꿈 때문에 값싼 가격으로라도 땅을 팔려고 했지만 아무도 안 샀죠.
녹두 : 왜요?
주현 :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하니까. 하지만 땅을 그대로 두면, 나중엔 아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람한테 그냥 무상으로 농사만 지어달라고 했죠. 흙이라도 살려두고 싶어서. 결국 작은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작은아버지는 지금도 대전에서 경비 일을 하시고요. 지금도 농사짓고 싶은 꿈에 작은 텃밭에서 밭일을 하세요. 진짜 소박한 꿈인데, 그런 게 안돼요. 우리 사회가.
녹두 : 가족 중 한 사람이 병들면 힘든 사회죠. 우리 언니도 그랬어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악착같이 일을 했죠. 공장도 다니고, 집에서 부업도 하고, 파출부도 다니고, 형부는 택시기사해서 20년 만에 집을 샀죠. 근데 언니가 딱 그때 암에 걸린 거예요. 4년 투병하면서 그 집 다 날려먹고 결국 2천만 원짜리 전세 하나 남기고 죽었죠. 그걸 보면서 깨달았죠. 열심히 일하면 암에 걸리는구나. 암에 안 걸리려고 일을 적당히 하면, 집이 없고요. 결국 결말은 같구나. 없는 사람은요.
주현 : 어릴 때는 단순한 마음에, 우리 아버지가 가난한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우리 아버지는 술도 안 드시고, 샌님 같고 군자 같은 분인데, 회사랑 집 밖에 모르는 분이거든요. 친구분들하고 고스톱치는 법도 없어. 만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집은 못 사는 거야. 그게 의문이었죠. 그게 저항감이나 반항감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다 구체적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어요. 어머니가 중1때 돌아가셨거든요.
녹두 : (끄덕)
주현 : 우리 엄마가 참 대단한 사람이었어. 지금도 우리 엄마 생각하면 무서워.
녹두 : (웃음) 원래 그래요. 아버지가 순하면, 어머니가 독하죠.
주현 :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농사를 접고 전주로 나왔는데, 9년만에 전셋집을 얻었어요. 방이 7개에 가건물로 방 2개를 얹은 집.
녹두 : 우와!
주현 : 옛날 시골 기와집이에요. 그 중 방 6개에 하숙을 쳤는데, 방 하나에 두 명씩이니까 하숙생 12명에 우리 형누나들까지 열다섯 명 밥을 해먹인 거야. 거기에 도시락 2개씩을 싸줘. 아침에 20명분의 밥을 하고, 30개의 도시락을 싸는 거지.
녹두 : 세상에. 새벽 네 시에 일어나셨겠네요.
주현 : 점심 때는 우리 집 뒤에 있는 영생대 씨름부랑 싸이클부 밥을 해줘.
녹두 : 왜요?
주현 : 함바집 비슷하게요. 우리 엄마 음식솜씨가 좋았거든요. 소풍 가면 선생님들이 제가 싸간 것만 찾을 정도로.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가 중 1때 엄마가 쓰러져서 보름만에 돌아가셨지. 암 말기였던 거예요.
녹두 : 그걸 모르셨던 거 예요?
주현 : 그땐 나도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그날 하혈을 하셨던 거야. 완전 말기에 발견한 거지.
녹두 : 그 전에 통증이 있었을텐데.
주현 : 나는 어리다치고 우리 아버지랑 형 누나들은 뭐했나 싶고. 우리 엄마가 가끔 각혈을 했는데, 그냥 약국 가서 약 먹고 자기 몸을 팽개치고 살았던 거죠.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를 배후조종하는 사람이 없어진 거죠. 그 전까진 엄마가 만든 아들이었거든요. 공부 잘하는 모범생. 여하튼 중 3때 문제가 시작되었죠. 그때가 87년이었어요.
녹두 : 87항쟁? 하지만 거긴 시골이잖아요.
주현 : 전주예요. 거기도 장난 아니었어.
녹두 : 아, 전주!(웃음)
주현 : 한달 내내 데모해서 버스도 못타고, 한시간씩 학교까지 걸어다녔어요.
녹두 : 전 87항쟁이라고 하면 항상 시청광장 군중 사진만 봤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만 일어난 줄 알았어요.
주현 : 그때 데모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었고, 뒤따라가면 좋고, 대학생들이 울면 같이 울고 그랬죠.
녹두 : 맞아요. 신나.(웃음)
주현 : 우리 형은 그때 21살이었는데, 밤이면 최루탄 냄새 팍팍 풍기면서 들어와서는 소주 병 까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녹두 : 책에서 그 내용 봤는데, 정말 유치했어요. 손발이 오그라지던데요.
주현 : 얼마나 멋있었는데.
녹두 : 하필 왜 마루에서 소주를 까고, 기타를 쳐. 설정이 너무 심해.
주현 : 난 중학교 때니까 우리 형은 우상이었지. 1년 만에 아버지가 재혼을 했는데, 새어머니와 형 누나들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때부터 전 술담배했죠. 아버지 어머닌 서울로 가셨지, 난 거의 혼자였으니까.
녹두 : 책을 보니까 버림받은 것 같았다고.
주현 : 뭐, 만날 친구들과 노는 게 좋으니까. 그러다 연합고사 보고 난 후에 할일이 없잖아요. 학교에서 견학하거나 영화 틀어주거나 하는데, 전주에는 공장이 없어요. 두 개 있는데 전주제지와 전매청. 근데 견학을 전매청으로 갔네. 갔더니 담배가 쏟아져 내려와. 어떤 기계에서.
녹두 : (웃음) 아름다워!
주현 : 처음엔 호기심에 한주먹 스리슬쩍 해가지고, 한번씩 펴보자 하다가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게 됐어요. 왜 그 놈의 전매청 견학을 가가지고.
녹두 : 재미없네요.
주현 : 재밌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게 인터뷰어의 능력이에요.
녹두 : 전 일개 회원이에요. 인터뷰는 처음이라고요.(웃음) 총각이면 더 재밌어야 해. 좀 더 재밌고 매력 있어야 해. 이건 부족해.
주현 : (-_-)
녹두 : 자, 이제 본격적으로 하죠. 연애 이야기.
주현 : 이 시점에 왜 그게 궁금해요?
녹두 : 난 연애만 궁금해요. 총각이잖아요.
주현 : 비례대표에 청년후보들도 있는데요.
녹두 : 지역구 후보자 중에선 총각인 사람 처음 봐요.
주현 : 그 자식(짬뽕 먹은 스텝)은 왜 그 이야기를 해가지고.
녹두 : 왜 그 나이(41살)까지 결혼을 못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주현 : 뭐, 주변머리가 없다보니까.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해줘요.
녹두 : 첩보에 의하면 이후보님이 찼다고 하던데요.
주현 : 제가 먼저 사람을 차거나 하지 않아요.
녹두 : 그럼 먼저 등 돌리게 만드나요?
주현 : 그럼 나쁜 남자라고 하던데, 전 나쁜 남자인가 봐요. 항상 내가 먼저 힘들게 만든 것 같아.
녹두 : 재미없어. (실실 웃으며) 뭘 물어봐야 재미있으려나. 그럼 마지막 사랑은 언제예요? 왜 헤어졌어요?
주현 : 아이, 뭐 진짜 이런 걸 물어보시나.
녹두 : 그분이 읽을 수도 있나, 좀 그런 가요?
주현 : 나중에라도 볼 수 있죠. 그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좀, 수위조절이 필요해요.
(이후보 담배를 꺼내듬. 난 실실 웃으며 밖에서 이후보와 담배를 피우고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앉자마자)
녹두 : 왜 결혼 안 한 거예요? 마지막 연애를 묻지 않는 대신, 이 질문으로 타협하겠어요.
주현 :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활동에 빠져 살다보니.
녹두 : 정치와 결혼했나요?
주현 : 아뇨!(단호한 어조)
이번 주 주말인 17일 18일, 민주당 심재권후보와 진보통합당 이주현 후보의 경선이 여론조사로 치러진다. KT에 등재된 강동지역 번호로 전화가 가는 방식이다. 집전화, 사무실 전화 모두 포함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그날 꼭 전화를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