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1911년 2월 10일 (울산) ~ 1972년 2월 10일 (향년 61세) - 가족
- 아들 고영준, 아들 고병준
1. ‘짝사랑’의 대상은 잃어버린 조국
1934년 ’타향‘(타향살이)과 ’이원애곡‘이 실린 음반이 나와 크게 히트함으로써, 신인가수 고복수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이어서 나온 ‘휘파람’(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1934), ’사막의 한‘(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1935), 짝사랑(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1936) 등으로 부동의 인기가수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그가 내놓은 대표 곡은 위에서 든 5곡 이외에 '그리운 옛날' '불망곡' '꿈길천리' '고향은 눈물이냐' ’풍년송‘(이은파와 듀엣으로 부른 신민요) 등으로 20여 년이라는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그의 가수생활에 비춰보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고복수 은퇴기념 사진 앞줄 왼쪽부터 남인수, 신카나리아, 황금심, 고복수
고복수는 1958년 은퇴공연을 할 때까지 20여 년간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가수로서의 활동을 이어가지만, 계속하여 신곡을 내놓고 히트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향살이‘와 ’짝사랑’과 같은 기존의 히트 곡을 무대공연 등에서
부름으로써 계속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인기가수로서의 지위를 누린 것이다.
고복수가 무대에서 불러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곡은 ‘타향살이’ ‘사막의 한’
‘짝사랑‘ ’풍년송‘ 정도이었다. 그 중 ’타향살이‘와 ’짝사랑‘은 고복수가
평생을 두고 우려먹은(?) 노래인데도 대중들은 그 노래에 언제나 빠져들었고,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라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그 만큼 ‘타향살이’와 ‘짝사랑’은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민족의 가슴 가슴에 새겨져 왔던 노래였던 것이다.
짝사랑 [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복수 노래, 1936.12., 오케레코드]
1.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 출렁 목이 멥니다
2.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잃어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서있는 임자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 살랑 멤을 돕니다
3. 아~ 단풍이 흩날리니 가을인가요
무너진 젊은 날이 나를 울립니다
궁창을 헤메이오는 서리맞은 짝사랑
안개도 후유 후유 한숨 집니다
박영호가 가사를 짓고, 손목인이 작곡한 ‘짝사랑’은 고복수가 취입한
마지막 인기곡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뒤에 취입한 곡들도 있지만, 다른 곡들은 음반 판매량으로 보아
대중들의 인기를 크게 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30년대 중,
후반에 우리 대중가요계에 등장한 박시춘, 이재호, 김해송과 같은 천재
작곡가들의 곡을 받은 김정구, 남인수, 백년설, 진방남, 고운봉 같은
신진 가수들이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같이 하는 주옥같은 명곡을 내놓음으로써,
고복수가 설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었다.
‘짝사랑’은 당시 꽃피워진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대표할만한 단조 트로트곡이다.
일제 식민시대의 트로트 곡들이 이별의 슬픔과 탄식, 타향살이의 설움과 망향,
희망 없는 인생사 탄식. 방랑과 좌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 등을
말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탄식, 저항의식이
적절하게 억제된 詩語로 깔려 있고, 대중들은 저항할 수 없는 무력한 심정과
그 쓰라린 마음을 노래로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이다.
‘짝사랑’도 그러한 일제시대 트로트의 속성을 그대로 지닌 노래로서,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이치와 임에 대한 그리움과 서글픈 심정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임은 고향을 떠나 떠돌고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나
사랑하는 임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이 통탄해 마지않는 잃어버린 나라였던 것이다. 당시의 2천만 민족 모두가 짝사랑하고 있던 잃어버린 나라를 박영호는 토속성
짙은 시어로 그려 내었고, 손목인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멜로디로
창작해 냈던 것이다.
으악새가 알려주는 이 서글픈 가을의 소식을 접하니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낭만과 꿈의 시간이, 또는 나라를 빼앗기기 이전의 전통과 국권이 튼튼했던 조국의 건강한 모습이 새삼스럽게 가슴 깊이 사무쳐 온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그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 아래 죽어가고 있던 나라의 운명과, 인권과 자유마저 짓밟히고 있던 동포의 처참한 신세를 상징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괴로운 심정을 나타내는 가슴 터질 듯한 심상(心象)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무튼 일제 강점기의 조국의 상실 또는 한 사나이의 절망적인 실연을 상징화시킨 이 ‘짝사랑’은 으악새라는 메타퍼로 은유되는 민초(民草)들의 우수(憂愁)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우수를 고복수는 선천적인 구성진 떨림과 탄식조의 목소리로 흐느껴 우는 듯 바깥으로 고요히 흘려 내리고 있다.
고복수의 ‘짝사랑’은 7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그것이 표현하고자 한 절망과 비련을 가슴 깊숙이 스며오게 한다.
이 ‘짝사랑’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에 나라의 중요한 정치적 문제에 직면해 고독한 결단을 내릴 때마다 참모들과 고뇌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즐겨 불렀던 18번으로 한때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가요이기도 하다.
(정영도, 철학교수와 대중가요와의 만남, 화산문화, 2008, p.52)
2. 으악새는 왜가리의 방언
‘짝사랑’의 노래 말에 나오는 ‘으악새’를 두고 그런 이름은 가진
새가 없고 가을철에 우리나라의 들녘이나 산기슭에 희뿌옇게 활짝 피는
억새풀이라고 하면서, 억새풀이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가 슬피
들린다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 대세였었는데 근래에 와서 그 설이
뒤집혀졌다. 으악새를 줄여보면 악새 또는 왁새가 되는데,
왁새(또는 웍새)는 왜가리의 중부 지방 또는 관서 지방의 방언이라는
것이다. 황새목 백로과의 새인 왜가리는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새끼를
번식시키면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이 되면 남쪽 오스트레일리아 쪽으로
돌아가는 철새로서, 돌아갈 시기인 가을이 되면 ‘와-악 와-악
(또는‘워-억 워-억)하고 구슬피 운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여름새이며 번식이 끝난 일부 무리는 중남부 지방에서
겨울을 나면서 텃새가 되기도 한다. 한국·중국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하며, 호반, 소택지, 논, 간석지 등에서 서식한다. 얕은 물속에서 물고기,
개구리, 가재 등을 잡아 먹으면서 교목의 꼭대기에 집을 만들며,
4∼7월 번식기에 집단으로 번식하는 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