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서구 발산역 부근에 위치한 홍익소아과.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 이종린〈49·사진〉 원장은 연민 가득한 눈으로 아기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여느 소아과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병원 한켠에 마련된 작은 서재에 들어섰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차 있는 불서들에서 불교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토요일엔 환자가 거의 없는데 오늘은 좀 유별나네요. 허허허.”
이 원장과의 만남은 참 맑고 환한 사람이라는 그의 첫 인상과 함께 시작됐다. 그가 그동안 펴냈던 <<님은 나를 사랑하시어>>(1999) <<실천 보현행원>>(2003) 등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며 가졌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원장은 서울대 의과대에 다니던 1974년 불교에 처음 관심을 가진 이후 운허, 탄허, 월산, 고암, 구산, 청화, 혜암 스님 등 소위 당대의 큰스님들과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던 다분히 구도적인 청년이었다. 80년대 결혼과 의사생활을 하며 한동안 불교를 멀리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난 94년 이후에는 줄곧 보현행원 수행법의 실천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욕심을 서원으로 바꿔야
“한 때 참선수행에 몰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허나 근기가 되지 않았던지 나중에는 멀리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불혹의 나이가 되어 예전에 공부했던 화엄경 보현행원품이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특히 ‘널리 바치고 섬겨라’는 광수공양(廣修供養)에 이르러 엄청난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원장은 보현행원 수행이 대다수 불교수행법과는 달리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며, 나와 남이 동시에 밝아지고 지혜와 자비가 동시에 성숙되는 전통적인 화엄수행법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부처님은 중생을 깨닫게 하려 오신 게 아니라, 일체 중생이 이미 깨달음에 들어 있음을 알리려 오신 것입니다. 한국 불교는 깨달음 병에서 벗어나 이제는 부처님 행을 하고 부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이 원장은 평생 중생을 섬기고 공양하시다가 간 분이 부처님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불교도 이제는 ‘깨달음(見性)의 불교에서 공양(供養)의 불교’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를 부처님으로 대하고 우리 스스로 그 분들에게 부처님이 되어 드릴 때, 갈등과 대립은 없어지고 일체 중생, 일체 만물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 원장은 보현행이란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고 몸은 중생을 향해 일상사를 성실히 살아가는 삶’이라고 정의한다.
얼핏 그의 주장이 어렵고 이론적일 것 같지만 찬찬히 그의 얘기를 듣다보면 결코 어렵지 않으면서도 나와 남의 삶이 바뀔 수 있는 탁월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수행에는 원(願)이 중요합니다. 원이 없으면 어떤 수행도 바르고 원만한 수행이 될 수 없습니다. 욕심과 원의 차이는 욕심은 ‘나’가 있고 원은 ‘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원의 자리에는 부처님만 계시는 것으로, 욕심은 내가 기쁘고 내가 행복한 것이지만 원은 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이 원장은 내가 있던 자리에 부처님을 갖다 놓고 부처님을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맹세를 올리면 욕심이 그 자리에서 일체 중생을 구하는 큰 원력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한다. 또 모든 이들이 부처님이므로 남을 공경하고 칭찬하고 자신의 번뇌와 욕심을 모두 부처님께 공양하다보면 내가 변하고 남이 변한다는 것. 이러한 부처님의 행을 배우며 조금씩 확대해 나가면 자신이 곧 보현보살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번뇌-망상 부처님께 바쳐라
“가령 화두를 들어도, 깨달아 부처 되려고 드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기쁘게 하고 나의 깨달음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들면 화두 드는 것이 그대로 보현행원입니다. 또 우리의 삶 자체도 마찬가지인데, 가령 가정주부가 아침밥을 지을 때 “우리 ‘남편 부처님’ ‘아이 부처님’들이 이 공양을 받고 건강하고 부처님 시봉 공양 잘하기 발원”하면 밥 짓는 것이 그대로 보현행원입니다. 지금까지 무의미하게 살던 일상생활, 삶의 현장 그대로가 생계의 수단이나 욕망의 달성 현장이 아니라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보현행원 수행을 시작하며 온갖 장애가 극복되고 사람들을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됐다는 이 원장. 인터뷰 시간이 4시간을 넘겼지만 그의 열변과 그 속에 비친 행복한 표정은 여전히 그칠 줄 몰랐다. 그는 “내 삶을 충실히 살면 살수록 우리는 수행을 잘하는 것”이라며 “부처님 말씀처럼 쉬지 않으면 마침내 나와 남이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02)2659-1035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2003-09-10/7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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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님은 동안은 아니지만 마치 아이처럼 맑은 인상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쩜 저리도 자상하고 간곡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절함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수행이 주는 감화력은 아마도 '내가 몇 안거를 나고 몇 십년 째 ~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력이 아니라 풍겨져 나오는 기운과 행동일 것입니다. 마치 부처님이 타락했다며 떠나갔던 4비구가 부처님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합장공경 했듯 말입니다.
여몽님처럼 이 원장님은 참으로 편안함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보현행원'이라는 수행이 생소하겠지만 관심을 갖고 실천하다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어렵고 힘들지만 이 자리가 나의 도량이고 불국토라는 사실도 말입이다.
참, 이 원장님의 향기나는 글을 받아보고 싶은 분이 있으시면 앞의 전화번호나 bohhyun@empal.com 이메일로 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