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루
◈ 페루
★ 리마
▶ 그래서 숙소는 페루 물가에 비해 많이 비싸지만
여행 책자(론리 플래닛)에서 안전한 구역이라고 추천하는 곳에 머무를 예정이다.
(미라플로레스 구역: 유스호스텔 더블룸이 26 달러이다.)
▶ 빛나네-한인민박으로는 이 집에 제일 유명한거 같다. 다른 집은 별로 사이트에 오는 걸 못봤다. 이 집의 특징은 무지 가족적이고 한식솜씨가 빛나엄마나 빛나할머니가 뛰어나시다. 향수병에 걸렸거나 한식에 굶주렸을 때 강추!! 단점이라면 가족적이다보니 저녁에 조용히 쉬거나 하기는 좀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 쥔장 아저씨가 쿠스코에서 아리랑이라는 한식집을 또 하고 있어서 (빛나엄마가 반찬이랑 보냄) 여기서도 한식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다. 또 가이드까지 하고 있어서 여행정보나 페루 돌아가는 얘기, 역사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고.. 택시 잡을 때마다 빛나엄마가 흥정해주니까 내가 하는 거의 반값으로 택시를 타는 것도 좋은 점.
빛나네: 51-1-266-1634, 9895-3766 / calle 21 #737 DPT 202 CORPAC Sa Isidro (ministerior del interlor 즉, 내무부 정문을 바라보고 바로 왼쪽길. 근데 일방통행이라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무부를 끼고 빙 돌아서 가야하는데 기사들이 이 주소를 보면 잘 모르고 헤매는 수가 있으니 무조건 내무부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기다리면 찾아주더라. 나중에는 손으로 이러저리 돌으라고 가르쳐줬지만)
★★
[스크랩] 페루 17일 여행하고 나서 몇 가지
페루에서 17일 정도 여행했습니다.
여행 코스는 론리에 나온 기본 코스로 했습니다.
리마 ->뱅기 -> 쿠스코 -> 푸노 -> 아레키파 -> 이카 -> 리마
게시판에 올라온 페루 정보 글도 참조를 했고요.
쿠스코에서 코리차스카란 호스텔이 꽤 많은 곳에서 추천받았어요.
제 경우는 민박집, 론리, 정보글 모두에서 추천받아서 가봤답니다.
1인당 8불 정도이고, 그 유명한 208호에서 잠들었어요.
따스한 물 잘나오고, 내부 분위기도 제법 아늑하고 4인용이라 넓기도 했고
다락방 느낌의 복층도 좋았어요. 부엌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알바생 아가씨 리즈가 친절해서 좋았고요.
단점으로 본다면 일단 고산증으로 정말 숨차고 힘든데, 중앙 광장에서 꽤 올라간
언덕에 있다는 점, 벌레가 있는지 좀 물렸다는 점, 수건과 화장지는 자기가 알아서
재빨리 챙겨야 한다는 점 정도였네요.
쿠스코 시티 투어 때, 70솔짜리 16개 지역 관광 자유권을 강요(?) 받는데 사지 마세요;
성스러운 계곡 투어까지 합쳐도 가는 곳은 몇 군데 안 되니, 그냥 장소에 직접 가서
사시는 게 나아요. 제 경우는 박물관이고 뭐고 고산증으로 인생 종치던 중이라 거기
나온 곳 중 반도 못 갔어요.
쿠스코는 매연도 너무 심하고 동네가 너무 우울해요. 사실 페루 자체가 역사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우울한 곳이죠. 인디오들에겐 특히.
성스러운 계곡 투어 때, 진짜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가이드하셨는데;; 대단하시더군요
무슨 1940년대 전쟁 다큐에 나올 법한 나레이션을 열심히 하고, 그 힘든 언덕도 힘차게
오르시는 할아버지에 경탄.
마추피추 기차를 타실 거면 가급적이면 성스러운 계곡 투어의 막바지에 들르는 오얀띠땀보에서
내리셔서 거기서 숙소 잡으세요. 쿠스코에서 바로 마추피추 가는 기차는 100불이나 하고,
기차칸도 너무 비좁아서 장시간 정말 힘들거든요. 그리고 오얀띠땀보가 쿠스코보다 훨씬 지대가 낮아서
고산증에도 좋고요. 전 이걸 몰라서 죽어라 쿠스코에만 있다가 피 좀 많이 봤어요.
마추피추는 뭐 사실 굿바이보이 빼곤 그다지 볼만한 게 없고, 그놈의 희뿌연 하늘 때문에
사진도 잘 안 나와요.
전 술 마시지 말라는 얘기만 들었다가, 음식값이 싸서 과식하다가 그만 장에 탈이 났어요.
고산증에는 위와 장도 엉망이라서 과식은 절대 금물이에요.
푸노에서는 날이 춥기 때문에 반드시 따뜻한 물 나오는 숙소로 가시고요. 제 경우는 너무 겁 먹어서
히터 들여주는 호텔에서 숙박했어요. 근처 유적지 투어도 나쁘지 않았고요, 우로스 섬 투어는 뭐...
그런데 타킬레 섬 투어는 솔직히 좀 아니다 싶었어요. 힘들게 언덕 오르고 점심 먹고 내려오는 게
전부더라고요. 고산증 때문에 몸 상태가 나쁘지만 않았으면 현지 숙박을 했을 텐데, 그게 많이
아쉽네요.
푸노에서 아레키파 가는 저녁 버스, 아레키파에서 나즈카 가는 저녁 버스에서 보는 밤하늘은
정말 압권이더라고요. 그 창 가득한 별들 하며. 혹시 좋은 클래스를 타신다면 반드시 뒷자리로
가세요. 앞자리에선 시끄럽게 TV로 영화해 주기도 하고요. Omeno인가 하는 버스 경우는
로얄 클래스가 꽤 비싼데 결코 자리가 값어치를 못하니, 차라리 PeruBus - Soyes를 타세요
자리도 편하고 값도 싸고 훨씬 좋더라고요.
음식을 뭐 먹어야 할지도 모르고, 추워서 따뜻한 국물 생각나면
Caldo가 들어가는 걸 드세요. 이게 스페인어로 일종의 '곰탕'인데
뒤에 들어가는 단어가 De Galina면 닭곰탕 칼국수 뭐 이런식인데 입맛에 정말 잘 맞아요.
값도 보통 역전에서 2-3솔이면 되고요, 시내에서 먹으면 4솔에 카레덮밥까지 나와요.
(1솔이 그냥 300원이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레키파에서는 Mollendo란 곳에 숙박했는데, 계단에 위치한 숙소가 2인 30솔 정도 하는데
아늑하고 무엇보다 따뜻한 물이 확실하게 잘 나와요. 메인광중에서 2블록 떨어져 있고,
케이블 티비도 100개 채널 다 나오고 아리랑 방송도 나오고요.
요즘에 페루에선 가을동화를 해주느라 사람들이 거기에 미쳐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다 그 드라마 얘기만 해요. 이 숙소는 아침 식사는 없고요, 대신 5솔을
주면 계란 후라이까지 해서 아침을 줘요. 주인 아저씨가 꽤 친절하더라고요.
아레키파의 산타카를리나 수녀원은 가볼만 하더라고요.
근데 꼴까 캐년의 치바이 마을 입장료가 35솔로 인상되었더라고요.
치바이 마을이 사실 푸노보다 더 추웠고요, 여기도 따뜻한 물 나오는 호텔에서 묵었는데
저녁에 뜨거운 팩을 줘서 그걸 침대에 넣고 잤는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좋더군요.
저녁에 하는 디너 음악 파티 때는, 음악은 사실 볼 거 없고 춤추는 친구들 보러 가는데
여기서 20솔짜리 저녁 시키라고 유도하는데 정말 그냥 2솔짜리 차만 시키세요.
물론 그 전에 저녁을 다른 곳에서 싸게 드시고요.
꼴까 캐년에서는 콘돌 볼 때 제일 높은 전망대에 가세요. 전 낮은 곳에 있다가 낭패;;
정말 콘돌이 알바생인지 제일 높은 전망대에서 아주 가깝게 계속 날아요.
아레키파에서 유명한 세비체 전문점에서 식사를 했었는데, 세비체는 솔직히 제 취향이
완벽하게 아니더군요. -- 무작정 시키지 마시고 일행 중 1분만 시켜서 먹어도 충분할 듯.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곰탕 시리즈는 그야말로 곰탕 칼국수라 우리 입맛에 딱이라
돈 없고 배고플 때 드세요.
이카 지역도 지진 때문에 많이 무너졌더군요. 덕분에 시내 여행사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이카에서 와카치나까진 6솔이면 택시가 가니까 그냥 택시 잡아타고
와카치나 가세요. 거기에 숙소도 많고 샌드 버기하기도 좋아요. 샌드 버기카는 여행 중
가장 신나고 재미있더군요. 완전 청룡열차 타는 기분.
피스코 쪽은 그야말로 지진으로 전멸인 상태더군요.
제 경우는 이카 쪽 여행사들에 물어봤더니 80~90솔 정도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일찍 7시쯤 버스 터미널에 가서 3.5솔에 피스코 팬 아메리카쪽에 간 후,
피스코 항구가 있는 곳까지 택시 타고 들어갔는데, 택시 값이 2인에 20솔 가까이 해서
비싸요. 섬까지 가는 건 일단 40솔부터 부르던데 협상해서 5솔 정도 더 뺄 수 있더군요.
피스코쪽 자체가 숙소가 엉망이라서 이카쪽 분들에게 물어보니 그냥 이카의 싼
숙소에서 머물다가 아침에 피스코에 가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리마에선 Gaston이라는 유명한 요리사 음식점을 민박집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가봤는데,
우리돈으로 1만 원대로 경양식을 즐길 수 있어요. 여행 막판에 --; 엘레강스한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쿠스코에 있을 땐 푸에르토 말도나도를 가보고 싶었는데, 비행기삯이 상상초월이라
포기했더랬습니다. 기념품은 그때 그때 사는 게 좋겠더라고요.
리마의 기념품 전문 시장들이 즐비한 곳에 가봤는데 값은 싼데 제품 질이 좀 많이 안 좋더라고요.
특히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은 현지 공방에서 바로 사시는 게 좋겠더라고요.
아레키파에서 수녀원 가는 길 가다보면 성당 뒤편을 가로지르는 음식점 골목이 있는데
여기가 약간 비싸구리한 알파카 전문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품질은 좋은데 값은 상대적으로
매우 싼 집이 있어요. 거기서 물건 구매하셔도 좋을 듯.
대충 주저리주저리 해보았습니다.
출처 :ONE WORLD TRAVEL MAKER 5불생활자 원문보기 글쓴이 : 준혁군
★ 남미악기-삼뽀냐
이 악기의 발상지는 띠띠까까호수를 중심으로한 볼리비아와 뻬루의 고산지대로
갈대나 대나무로 만들어 진다. 원래는 시꾸(Siku, 께추아어)라고 불렸으나 스페인어로는
삼뽀냐(zampon~a 또는 sampon~a로도 쓴다)라고 한다.
크기가 제일 작으나 제일 고음을 내는것이 츄리(chuli, 약 5.5인치),
기본이 되는 중치를 말따(malta, 약 11.5인치), 저음을 내는 상까(sanka or zanca, 약 23인치),
이것보다 더 저음을 내는 또요(toyo, 약 46.5인치)가 있는데 말따를 기준으로 한 옥타브가
높거나 낮거나 하다고 한다. 그러니 또요는 말따보다 2 옥타브가 낮다.
사진은 두개를 상하로 연결한 말따. 각 튜브가 반음씩이기때문에 원래는 두사람이 한조가 되어
연주를 했다는데 요사이는 이렇게 연결하여 한사람이 연주를 한다고 한다.
이것들과 유사한 악기로 안따라(antara)와 론다도르(rondador, 에꾸아도르 악기)가 있다.
저문강님이 올려주신 Virgenes del Sol에서 삼뽀냐의 독특한 음을 들으실수가 있다.
★[스크랩] 페루의 비행기 1등석보다 더 우수한 버스시스템
버스라고 다 같은 버스가 아니다.
멕시코에서 화장실있는 버스를 보고 이미 깜짝 놀란 바 있었지만,
어제 리마에서 피우라로 향하는 15시간의 밤버스를 타보고
세상에 정말 이런 럭셔리 버스가 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좌석이 두개 들어갈 자리에 하나씩 놓여있다.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페루의 예쁜 언니가 승무원으로 함께 탑승한다.
제복을 입고 기내식, 아니 차내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녁 및 아침 식사, 음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페루 플로레스 버스의 차내식 사진
남미는 워낙 나라들이 넓어서 이동 시 소요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
15시간이 넘어가는 거리는 보통 밤버스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이때 배낭여행객들이 싼 버스를 찾다가 값비싼 카메라나 지갑 등을 도둑 맞는 등 낭패를 겪는 일이 많다.
보통 버스보다 가격이 2배나 되지만, 긴 거리로 밤 시간 이동할 때는 이런 럭셔리 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비싼 만큼 안전하며, 제공해주는 서비스도 탁월하다.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마치 호텔에서 하룻밤 편하게 묶는 것처럼 숙면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까마버스로도 불리는 이런 럭셔리 버스는 보통 2층버스로 운영되는데,
2층보다 1층이 훨씬 더 좌석이 좋으며, 가격도 비싸다.
하지만 2층 역시 일반 버스와 비교하면 굉장히 좋은 좌석과 서비스가 제공된다.
★[스크랩] 회 닮은 음식 `세비체` 맛 보실래요?
회 닮은 음식 '세비체' 맛 보실래요?
[페루 음식문화기행 ①] '새콤 매콤' 매력에 빠지다
배한수(baehansu) 기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지구 반대편 이국 땅 페루에 와서, 우리나라의 고급요리 회와 비슷한 맛깔 나는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오늘은 페루의 명물, 세비체(Ceviche)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세비체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대중음식이자, "세비체와 잉카콜라를 빼고는 페루의 식도락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페루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음식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 또한 이 특별한 음식을 맛보기 위해 오늘 오전, 쿠스코에서도 꽤 유명하다는 세비체리아(세비체가게)에 갔었습니다.
▲ 쿠스코 근교에 있는 세비체리아의 외부 전경
ⓒ2005 배한수
간판에 "생선과 해물" 이라고 써있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오전 11시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세비체를 즐기려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아침부터는 회 요리를 먹지 않는데, 이른 시각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니 다소 의아하면서도 각 나라마다의 음식문화가 이렇게 틀리구나 하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이른시간에도 불구하고 세비체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2005 배한수
메뉴를 보니 세비체의 종류는 정말 놀랄 만큼 많았습니다. 사용하는 생선의 종류와 들어가는 야채, 소스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생선의 종류는 무엇인지, 어떤 소스를 사용하는지를 꼼꼼히 따져가며 함께한 일행은 잠시 동안 무엇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에 빠져야만 했습니다.
결국 민물회로 만든 세비체, 바다회로 만든 세비체, 여러 가지 해물이 혼합된 세비체, 해물볶음밥 이렇게 네 종류를 시키기로 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세비체는 잉카시대부터 몇 백 년을 전해져 내려온 이곳의 전통음식 입니다. 과거엔 각 지역마다 재배되는 과일과 야채, 향신료로 맛을 냈다고 하는데, 현재는 리몬(Limon, 우리나라의 "라임"이라는 과일입니다)과 고추, 각종 향신료를 섞어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맛을 낸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세비체는 우선 싱싱한 생선을 잘개 썰어 리몬즙에 30분여 숙성시킨 뒤, 약간의 야채즙과 고추, 양파, 꿀란뜨로(우리나라의 "고수"라는 야채입니다), 소금 등을 섞어 내어놓게 되는데, 즙이 풍부한 이곳의 상큼한 리몬과 고추의 매콤함, 담백한 생선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하는군요.
▲ 본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나온 생선 스프
ⓒ2005 배한수
주문한 세비체를 기다리는 동안, 생선으로 만든 스프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본 요리가 나오기에 앞서 항상 스프가 나오는데, 뜨거운 스프는 본 요리를 즐기기 전 미각을 돋우고 찬요리만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페루 사람들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 스프에 곁들여 먹는 리몬, 마이스, 로꼬또 (왼쪽부터)
ⓒ2005 배한수
스프는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매운탕의 맛과 흡사했습니다. 현지인들은 이 스프에 리몬즙과 로꼬또라 불리는 고추, 마이스(옥수수 튀김)을 넣어 먹는다고 해서 저 또한 똑같이 따라해 보았는데, 매콤한 맛과 새콤한 맛이 어우러져 더욱 맛깔 나는 스프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 기다리던 네 종류의 음식이 나왔는데 정말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형형색색의 빛깔과 풍성한 해물로 단장한 세비체는 입안을 군침으로 가득 차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 여러가지 해물의 총 집합, 세비체 믹스또(Ceviche mixto)
ⓒ2005 배한수
보기만 해도 행복한 이 요리는 쎄비체 믹스또(Ceviche mixto)입니다. 커다란 크랩 한 마리와 생선, 소라, 오징어, 조갯살 등이 주재료로 쓰인 보기만 해도 풍성한 해물혼합 세비체지요. 여러 가지 해물이 가진 고유의 맛을 단 한 접시로 모두 느낄 수 있고, 사용된 소스 또한 한국인인 저에게 부담 없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 바다생선 Corvina로 만든 세비체
ⓒ2005 배한수
이것은 꼬르비나(Corvina, 대구류에 속하는 물고기)로 만든 세비체 입니다. 세비체 믹스또에 비하면 볼품없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섞이지 않아 생선 고유의 맛이 느낄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먹는 바다 회 같이 깔끔한 맛이 돋보였습니다.
▲ 빛깔이 아름다운 민물생선 Trucha로 만든 세비체
ⓒ2005 배한수
선홍빛이 아름다운 이 요리는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민물고기 뜨루챠(Trucha, 송어)로 만든 세비체 입니다. 빛깔이 정말 아름답죠?
민물생선이라 비린내가 날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채를 썰어 함께 버무려 놓은 양파가 비린내를 없애주는데다, 리몬의 향이 가미되어 이 역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 해물 볶음밥 아로스꼰 마리스꼬스(Arroz con mariscos)
ⓒ2005 배한수
이 요리는 이날 주문한 음식 중에 유일하게 회 요리가 아닌 외톨이, 아로스꼰 마리스꼬스(Arroz con mariscos)인데요, 회와 해산물로만 배를 채워 뭔가 허전한 일행에게 든든한 마무리를 해준 음식이었습니다. 생김새가 우리나라의 해물볶음밥과 많이 닮았죠? 맛또한 아주 흡사합니다. 회 요리가 부담되시는 분이라면 대신 담백하고 풍성한 이 요리를 권해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이렇게 맛깔나 보이는 해물요리들을 항상 맛볼 수는 없답니다. 페루 사람들은 세비체를 아침 혹은 점심때만 즐기기 때문에 해가지고 나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가는 그냥 돌아오는 비운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회 요리를 이른 시각에 즐겨 먹는 이유는, 매콤새콤한 세비체 요리가 숙취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페루 사람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따라서 페루 남성들은 이 매콤 새콤한 세비체를 우리나라에서 과음한 다음날 콩나물국이나 해장국을 먹는 것과 같이 해장 요리로 즐겨먹는다고 하는군요.
회로 해장을 한다, 조금 이색적이죠? 이 비밀의 열쇠는 바로 리몬에 있습니다.
▲ 숙취의 열쇠, 리몬
ⓒ2005 배한수
리몬은 숙취해소에 효과가 크고, 비타민이 풍부하기 때문에 페루 사람들은 숙취해소에 주로 리몬을 이용합니다. 이 지역에서 사용되는 리몬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노란 리몬과 달리 이 지역의 리몬은 푸른빛을 띠며 크기가 골프공만하고, 즙이 풍부합니다. 아쉽게도 껍질이 얇아 저장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까지 수입을 할 수는 없다고 하네요.
이렇게 오늘은 다양한 세비체를 맛볼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페루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꼭 빠뜨리지 말고 세비체를 맛보고 가시길 권해드립니다. 분명히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아름다운 빛깔로 식욕을 돋구는 페루의 명물 세비체
ⓒ2005 배한수
세비체의 가격은 1솔에서부터 30솔까지 천차만별 입니다(1솔=한화 약320원).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생선만 요리되어 나오는 세비체는 7~15솔, 여러가지 해물과 함께 나오는 Ceviche Mixto는 10~20솔 정도입니다.
조금 더 저렴하게 세비체를 즐기시려면 전통시장을 찾으시면 됩니다.
★[스크랩] [페루 잠깐 정보] 여러 투어 관련하여..
멀리까지 간 이유는... 각종 투어때문이겠죠?
물가가 좀 오른지라.. 제가 했던 투어들로만 해서뤼...
●파라카스 바예스타스 섬 half day 투어 : 30솔부터 35솔까지. 학생가격이랍니다. 배 쾌속정 타세요!
●나즈카라인 경비행기 투어 : "45불 - 공항세 10솔 별도" 모든 여행사 동일. 혹은 공항세 10솔 포함하여 50불. 왠만하면.. 뱅기타기 전에 아무것도 드시지 마세요.
● 나즈카라인 경비행기 투어 이외에 오후 투어 - 묘지, 금 세척, 쎄라믹공장 투어 : 그다지.. 추천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10불. 학생이라고 박박우기면 7불까지 하지만!! 입장료는 별도더군요.
● 마추픽추 기차 : 백패커 - 68불
● 마추픽추 입장료 : 118솔, 59솔 <-- 절때 솔(sol)로만 받는 다는거!!!
● 아구아스에서 마추픽추까지 버스 : 왕복 12불
※참고로... 여행사 통하지 않고 마추픽추 알아서 가려면... 위의 세가지, 기차표, 입장료, 버스티켓을 다 다른곳에서 사야 한다는 사실. 일단은 기차표가 가장 중요하답니다. 저희는 화요일날 오후에 가니.. 금요일날표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9월 19일 화요일 상황-
● Cusco Day tour : 사크사이우만, 푸카푸카라, 켄코, 탐보마차이 : 여행사 뒤지면 4불까지 나온다고 하던데.. 저희는 5불에 했습니다.
● Cusco 근교의 사크사이우만, 푸카푸카라, 켄코 포함한 입장료 티켓 : 70솔, 35솔(학생가)
● Puno 1박 2일 투어 : 40솔 12불에 합의. 나름대로 뒤져서 저렴하게 알아봤다고 좋아하면서 계약하고 나오니 어떤 아저씨가 35솔에 해준다고 하던데..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서뤼.. 저는 다름대로 만족했습니다.
※ 섬투어 하실때 참고하세요.
- 하루 투어(우로스 섬 + 타킬레라) 비추입니다. 하루종일 배만 8시간 이상 타야 한다는.
- 시간 여유가 안되시는 분들은 차라리 3시간까지 우로스 섬만 추천합니다.
- 시간 되시는 분들은 1박 2일 해보세요. 저는 참..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들었던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1박 2일로 가실 분들은.. 최대한 투어비용 깍아서 저렴하게 가시고, 대신에 섬에 가실때 초, 휴지, 과일, 쌀같은거 사가지고 가세요. 지고 올라갈때는 괴롭지만.. 그분들께 드리고 오니.. 마음이 따듯해지더군요. ^^
그럼~ 즐거운 페루여행 하세요. ^^*
★[스크랩] [페루 잠깐 정보] 장거리 버스
이곳에서 도움 많이 받고 나름대로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2006년 9월 13일~27일까지의 페루 이야기 입니다.
페루.... 역시 큰 나라더군요.
버스를 타실 기회가 아마 많으실텐데...
저도 좀 알아서 갔으면... 하는 생각에 이렇게 잠깐정보(?) 그냥 올립니다.
외우시지 못해도 드냥 들어두면 도움은 되실 것 같아서요. ^^
1. 버스회사 선택
- 비싼만큼 비싼 값을 한다 : 싼게 다가 아닙니다. 싼것만 찾다가는.. 고생한답니다.
- 추천회사 : 일반적으로 Cruz del Sur가 참으로 좋지만 참으로 비싸고, 오르마뇨 괜찮습니다.
- 비추천회사 : Flores!!!!! <-- 쌉니다. 하지만... 정말... 힘들더군요.
- 노선별 추천 (?) : 이용해보고 괜찮은것을 올립니다.
●Nazca -> Cusco : Cial 80솔
●Puno -> La Paz : 꼬파카파나 경유 - Colectur - 20솔
- 꼬파카파나 경유해서 라파즈로 가는 것들은 여행사 통하면 다 30솔부름.
- 버스 회사 직접 찾아가면 20솔에 가능 하더군요.
- 버스 잘 고르세요. 특히 이 노선은. 왜냐하면 꼬파카바나에서 새로이
갈아타는 버스는.. 허름해질 수 도 있더군요. 저희것은 괜찮았는데...
다른 버스 보니.. 짐 차 위에 싣더군요.아흑! 전 생각만 해도 싫습니다. --;
- 주의사항 : 제가 말이 안되서 그랬는지.. 좀 순진해 보여서 그랫는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절대로!! A 버스회사로 갔는데, 아저씨손에 이끌려 B 버스회사로 가서 버스티켓 사는거 하지 마세요. 저희가... 그래서..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지라.. --;; 절대로 한번 정한 회사 혹은 다른 회사에서 직접 사세요.
2. 이 자리를 주세요!!!
● Lima -> Pisco 혹은 그 근방 : 진행방향의 오른쪽 창가 자리. 사막과 바다를 동시에
● Pisco -> Nazca : 진행방향의 오른쪽 창가
● Nazca -> Cusco : 밤 버스라 그다지 신경은 안 쓰이지만.. 왼쪽창가에 앉으세요. 쿠스코도착할때즘 전경을 볼 수 있답니다.
● 마추픽추 가는 기차안 : 진행방향의 왼쪽 창가
● Cuzco -> Puno :왼쪽창가에 앉으세요. Puno 도착할때즘 전경을 볼 수 있답니다.
●Puno -> 꼬파카바나: 왼쪽 창가에 앉으세요. 왼쪽의 티티카카호수가 정말 예쁘답니다.
● 꼬파카바나 -> La Paz : 오른쪽 창가에 앉으세요.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물론 반대로 다니시는 분들은 이것 반대로 하시면..
다른 것 보다 긴 여행에서 창밖을 즐길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가신다면 지루할 수 있는 버스 여행도 재미있을거 같네요. 위 대로 하시면 나름 위치에 대해서는 만족하실 거 같은데.. ^^*
출처 :ONE WORLD TRAVEL MAKER 5불생활자 원문보기 글쓴이 : Nalda
★ [스크랩] 이상한 페루의 달러 정책...
글쓴이: 임갑열 조회수 : 206.10.20 07:03 http://cafe.daum.net/beanangmego/EhkF/71 아시는 분은 아시고 모르시는 분은 모르시는 사실 하나는
페루에서의 좀 큰 투어들은 전부 지불을 달러로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근데 더 중요한 사실 하나는
절대 흠집이 조금이라도 있는 달러는 받지 않는다는 건데요.
심지어는 1mm 정도만 찢어진 것이나
닳아서 인쇄 상태가 벗져진 것들 조차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완전한 새돈이 아니면 받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행사 잘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행사도 자신들 경비를 지불해야 할 때
달러로 지불한다고 합니다.
근데 그때 완전한 새돈이 아니면 지불이 안됩니다.
그리고 완전한 새돈이 아닌 달러를
은행이나 환전상을 통해서 바꾸려고 하면
돈을 깎아 버립니다.
근데 더 웃긴 것 한가지는 은행에서 달러를 인출하면
헌돈이 나온다는 거죠..
즉, 다시 말해서 은행은 새돈을 받고
헌돈을 주는 겁니다.
이게 페루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정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이렇게 함으로써 페루는 불로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헌 달러에 대해서 프리미엄을 남겨 먹음으로 해서 돈을 버는 거죠.
여러분들이 페루에 와서 굵직한 투어를 하시려면
반드시 새 달러를 가지고 오셔야 합니다.
피치 못해서 여기 은행에서 돈을 찾으실 경우에는
반드시 새 달러가 나오는지 확인하시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즉기
은행 직원에게 헌돈은 지불이 불가능하다는 걸 상기시키시고
새돈으로 교환을 요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쓰지도 못하는 헌돈을 들고 다녀야 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 페루 여행정보
# 페루 어디가 좋은가?
금나라 : 꾸스꼬
은나라 : 와라즈, 꾸스꼬
# 최고의 숙소?
금나라 : 꾸스꼬 'LA CASA DE LA ABUELA'
은나라 : 나도나도..^^
(방도 크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아침도 주는데... 너무 저렴하기 때문...^^)
- 날씨
우리가 간 8월달이 '건기'라 너무너무 건조해서 입술이 자주 트고, 목이 마름.
밤낮 기온차가 매우 심함.
춥지는 않고, 초봄 날씨 같은데... 저녁에는 무지 쌀쌀함.
- ATM(현금인출기)
보통 최대 인출 금액이 750솔 이라고 되어있는데, 우리의 경우 침보떼 버스 터미널에서 1,900솔 인출함.
US달러도 최대 300달러 인출 가능함.
- 교통
삐우라 - 침보떼(24솔) : 버스 회사 기억 안남. 야간 버스 이용. 좌석 넓고 편함. 약 8시간 소요.
침보떼 - 와라즈(23솔) : '융가이 익스프레스' 이용. 약 8시간.
와라즈 - 리마(25솔) : '모빌 투어' 이용. 버스 좋음. 약 8시간.
리마 - 피스코(15솔) : '오르메뇨' 이용. 버스 상태 너무너무 안 좋음. 약 4시간.
피스코 - 나스카(17솔) : '오르메뇨' 이용. 버스 상태 역시 너무 안 좋음. 약 4시간.
나스카 - 아레키파(40솔) : '크루즈 델 수르' 야간 버스 이용. 그런대로 괜찮음. 약 7시간.
아레키파 - 꾸스꼬(40솔) : '플로레스' 임페리얼 야간 버스 이용. 저녁 나오고, 버스 좋음. 약 10시간.
꾸스꼬 - 푸노(20솔) : '크루즈 델 서' 이용. 약 4시간 소요.
- 음식
세트 메뉴로 싸고(3~ 5솔/ 약 1,000~ 1,700원) 양 많은 '메누'를 사 먹음.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나 보통 스프(소파)+메인 요리+디저트가 나오고...
비싼 음식점(7솔 이상) 에서는 메인 요리 닭고기(뽀요), 송어(뜨루차), 쇠고기(로모) 중 선택할 수 있음.
귤(만다리나)이 가는 곳마다 사는 곳마다 가격, 맛이 다 다름.
우리의 경우 와라즈에서 리마갈때 버스 안에서 할머니한테 5개 1솔 주고 산 귤이 젤 맛있었고, 저렴했음.
귤 뿐만 아니라 빵, 아이스크림, 음료수도 가게마다 가격, 맛이 다 다름.
- 인터넷
인터넷 가게가 많아서인지 우리가 갔던 나라들 중 1솔(350원)로 젤 싸고 속도도 생각보단 빠름.
꾸스꼬에서만 1.5솔 주고 함.
- 숙소 (* 곤 바뇨:개별 욕실/ 신 바뇨:공동 욕실)
'론리에 나와있는 숙소는 비싸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레키파에서 알게 되었고, 아레키파 이후의 숙소는
론리에 나와있지 않은 숙소이며, 론리에 나와있는 숙소보다 깨끗한 시설에 가격도 저렴했음.
리마, 꾸스꼬를 제외한 숙소들 가격은 5~ 10솔 정도 깍은 가격임.
(와라즈/ LA CASA DE ZARELA)
트윈 58솔 (3일)
* 곤 바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깨끗하고, 친절하고, 전망 좋음.
전화 : 043-72-1694
주소 : ARGUEDAS 1263
(리마/ FRIEND'S HOUSE)
4인실 1인 가격 23솔 (2일)
* 신 바뇨. 아침포함(셀프). 수건 줌.
전화 : 01-446-6248
주소 : MANCO CAPAC 368 (미라플로레스에 위치해 있어서 안전하고, 라꼬마르랑 가까움.)
(피스코/ SAN ISIDRO)
트윈 60솔 (2일)
* 곤 바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수영장 있고, 깨끗함. 모닝 커피 무료.
전화 : 056-53-6471
주소 : SAN CLEMENTE
(나스카/ HOTEL ESTRELLA DEL SUR)
트윈 50솔 (2일)
* 곤 바뇨. 아침포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전화 : 056-52-2106
주소 : CALLAO 568A
(아레키파/ HOSTEL POSADA DE BELEN)
더블 35솔 (2일)
* 곤 바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TV있음(아리랑 채널 나옴.)
전화 : 054-807151
주소 : CALLE SANTA MARTA 105-2DO (아르마스 광장에서 가까움.)
(꾸스꼬/ LA CASA DE LA ABUELA) 추천!!!
트윈 20솔 (6일)
* 신 바뇨. 수건 줌. 방이 크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아침도 줌.
주소 : HUAYA CCAPAC NO 177 (아르마스 광장에서 도보 15분 정도에 위치.)
(푸노/ MANGO CAPAC INN)
트윈 30솔 (3일)
* 곤 바뇨. 비누, 수건, 화장지 줌. 깨끗해서 좋은데, 구조상 햇빛이 안 들어와서인지 좀 추움.
전화 : 051-352985
주소 : JR.TACNA NO 277
- 경비 내역
(* 1솔 = 약 350원)
교통 -> 174,300원
숙박(20일/ 야간버스 3일/ 투어 1일) -> 268,450원
식비 -> 133,035원
간식 -> 38,080원
투어 -> 440,650원
기타(볼리비아 비자비 $60 포함) -> 95,340원
- 페루 24일 총결산
총 1,149,855원
* 1인당 1일 평균 체제비 약 23,956원
★ Arequipa
Arequipa, 페루 제2의 도시이며 경제의 도시, 해발 2,325m
드디어 고지대로의 여행이 시작 되었다.
이틀 연속 밤차를 찬 우리는 새벽에 도착 잠을 푹(?) 자고 10시쯤 숙소를 나섰다.
도심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도 왠지 한가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운 광장을 중심으로 여기 저기 보이는 흰색의 colonial building들…..
여기가 바로 하얀 도시 아레끼빠.
밝은 색의 화산암들로 지어져 이 도시의 Nickname은 “The white city”이다.
수도 리마에선 느끼지 못 했던 남미의 활기가 느껴진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남미의 느낌이 참으로 좋다.
광장의 주변 도로에는 중앙선을 볼 수가 없다.
모두 일방 통행,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도로를 가득 메운 택시들의 팔,구십 프로가 우리의 티코 (대우 국민차)이다.
줄줄이 티코 택시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자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선 여행사를 쭉 둘러 보고
내일부터 이들간의 투어 (Colca Canyon Tour)를 예약했다.
- 전화로 문의 한 것보다 직접 찾아 갔을 때가 훨씬 쌌다.
여러 곳을 알아본 결과, 최저 가격은 1 인당 미화 17불.
하지만 우리는 최저 가격을 마다하고 그 다음 싼 가격(미화 18불)으로 결정했다.
상황을 잘 모르는데, 최저 가격은 속을까 두려워서……
참, 사람의 마음이란 역시 재미있다. 제일 싸도 안 되는 걸 보면….
점심 무렵 시장기를 느낀 우리는 리마에 이어 두번째로 페루 음식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리마에서의 완벽한 패배 후 실의에 빠졌던 우리는
스스로의 건망증과 왕성한 식욕을 믿고 무모하게 다시 한번 도전 했다.
상대를 알지도 못한 채………
광장 주변의 그럴듯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종업원과 마주 했다.
스페인어라곤 “그라시아스” 밖에 모른 채로…
손짓과 발짓을 동원한 한참의 대화,
고기를 먹겠다는 반쪽의 강력한 의견에 종업원은 한가지 음식을 추천하고…
혹시나 해서 재차 확인 하는 우리에게 종업원은 짧은 영어로 “카우.. 미트..”
이 두 단어만 이야기하고 웃으며 사라졌다.
한편, 나는 지난 번 것만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아 대충대충 주문을 끝냈다.
잠시 후, 메인 요리 전에 기대하던 나의 이름 모를 야채 스프와
반쪽의 고기 스프..(종업원은 끝까지 “카우”라고 했다.)
첫 대면에 우리는 완전히 기가 꺾여 버렸다.
내 앞에 나온 시뻘건 야채 수프 한사발. 이걸 어떻게 먹지?
반쪽은 앞에 있는 고기 스프를 보고 황당해 입을 쫙 벌리고 있다.
내 주먹 만한 “카우 미트”가 들어 있는 고기 스프
- 분명 그것은 카우가 틀림없는 듯 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비프가 아니었다.-
맛을 보니 페루 특유의 향료의 냄새 그리고 “카우”의 냄새…..
우리의 실수다. 우리의 상대를 너무도 몰랐다.
또 다시 우리의 완벽한 패배였다.
스프에 이어 나온 우리의 메인 요리는 페루 향료로 뒤범벅 되어
수 차례에 걸친 시도로도 우리의 의지를 되 살리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의 두번째 도전도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운 김치여……. 된장국이여…….
오후, 여러 성당과 교회 건물들을 뒤로 하고
페루의 가장 매혹적인 식민지 시대 건물들 중 하나라는
산타 카탈리나 (Monasterio de Santa Catalia)로 향했다.
-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동안 성당이나 교회등은 가능한 가지 않기로 했다.
박물관도 최소한도로…… 단기 여행처럼 도시내의 성당, 교회, 박물관들을
두루두루 보다가는 우리의 여행대부분을 실내에서만 보내게 될 것이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대표 주자만 상대하기로 했다.
스페인의 성녀 “카탈리나”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다.
1579년에 지어졌으며, 17세기에 다시 증축된 400년이 넘은 건축물이다.
그 동안 계속된 지진으로 원래의 모습이 많이 파괴되었지만,
동시에 450명의 수녀가 하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큰 규모이다.
물론 지금 수녀들이 지내는 곳은 개방되지 않고 있다.
입장료는 무척 비쌌지만 붉은 빛과 짙은 푸른색의 건물들은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수도원 내부의 각기 다른 세개의 작은 수도원은 푸른색 혹은 붉은빛으로 채색되어 있고
수도원 곳곳을 연결하는 일곱개의 거리들 (각각 스페인 대도시의 이름을 따서,
톨레도, 세빌리아, 말라가 등으로 불림.)도 곱게 채색되어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수많은 수녀들의 방과 수도원 내부를 돌아 보았다.
설명 중 이곳 수도원의 이름인 스페인의 성녀 “카탈리나”,
그녀는 이 곳 페루, 혹은 남미 어느 곳도 와 본적이 없다는 안내원의 설명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남미의 원주민들에게는 침략자였음이 분명한 스페인,
그런 스페인의 성녀 이름을 딴 수많은 교회와 수녀원들, 역사란 참…….
여러 곳에 그 곳을 거쳐간 수많은 훌륭한 수녀들의 이름을 딴 방들이 있었다.
그 방의 규모나 구성 또한 참으로 흥미로웠다.
각각의 방들은 규모가 서로 다 틀렸다.
상당수의 방들이 부엌까지 갖춘, 혼자 힘으로는 관리하기 힘든 큰 규모의 방들이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수녀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면
그들의 집안에서 수도원에 거액의 돈을 내어 방을 마련하고 의복, 생활비로 사용되고
딸려 보내준 하인들이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카톨릭이 번성 하였던 그 시절, 이 곳은 단순한 기도나 수도의 장소는 아니었던 듯 하다.
독실한 카톨릭 가문의 딸들을 위한 교육의 장소였던 듯 하다.
나이가 들면 딸들을 수도원으로 보내 카톨릭 안에서 교육 받도록 하고
나이가 차면, 수녀가 되던가 아니면 수도원을 나와 결혼을 하였다 하니
수도원을 기대하고 갔던 우리로서는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수녀가 되더라도 그 집안의 재력에 따라 수도원의 생활이 달랐을 것을 생각하니
하나님의 품안에서 조차 평등하지 않은 인간 생활이 참으로 우습게 느껴진다.
(많은 경우는 2,3명의 시종 까지 거느렸다고 함)
참으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40분 가량의 설명을 마치고 나오자, 가이드는 우리에게 팁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입장료도 비쌌고, 처음 얘기로 가이드 요금이 아니고 순수한 팁이라고 해서,
그리고 다른 일행도 있고 해서 미화 2불(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작은 돈은 아님)을 주자
정색을 하며 더 달라 한다. 팁이 아니고 자신의 페이라고……
할 수 없이 요구대로 주고 그 곳을 나왔다.
다음날의 투어를 위해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했다.
▶ 꼴까 캐년을 향해… (아레키빠), 5월 3일
맑음
1박2일 꼴까 캐년 투어를 위해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옆의 아메바는 밤새 거의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고산 지대를 여행해야 하는 이틀 동안의 투어가 슬슬 걱정이 된다.
아침 일찍 호텔로 미니 버스가 픽업하러 왔다.
이틀 동안 함께 할 우리 일행은 기사와 가이드를 포함해 모두 13명.
영국 여자 2, 독일 여자 1, 캐나다 여자 1, 또 다른 캐나다 부부 2,
덴마크 모자 2 (아들이 대학생인 것 같다.), 리마에서 온 페루 여자 1명이다.
가이드의 이름은 캐런 (여), 영어는 아주 잘 하는데 스페인 억양이 너무 강해 알아 듣기가 힘들다.
호주에 이어서 여기서도 둘이 맞춰보기 바쁘다.
일행이 대부분 외국인인 관계로 여행 중 설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영어가 익숙치 않은 페루 여인을 위해서는 영어 설명이 끝난 후 스페인어로 다시 한번 더……
어찌 보면 좀 황당한 경우이다.
페루를 여행 하는데, 여행객 중 페루인은 단 1명 뿐이고,
그 여인이 마치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그 여인을 제외하곤 서로 영어로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가이드도 영어로 이야기하며 웃고 떠든다.
페루 여인은 시종 말이 없이 있다가 간간히 가이드와만 잠깐씩 이야기를 한다. 참……
첫날 일정은 꼴까 캐년 근처의 “Chivay” 라는 마을까지.
출발지인 아레끼빠는 고도가 2,325m,
가는 도중 고도가 점점 높아져 최고 4,200m 까지 높아지고
투어 기간의 대부분을 해발 3,600m에서 4,000m 사이를 여행하게 된다.
도시를 벗어나자 길은 계속해서 위로만 올라간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도 골이 지끈지끈해진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처럼 기압이 변해감을 가끔씩 느끼게 된다.
해발 4,200m 정상이 가까워 오자 가이드가 코카잎을 권하지만
코카인의 원료라서 그런지 대부분 마다한다.
나와 덴마크의 대학생만 선뜻 받아 들고,
옆에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아메바도 곧 한 뭉치 받아 문다.
코카잎 1톤을 정제하면 코카인 1킬로를 만들 수 있다 하니,
양은 적지만 나는 지금 마약 성분을 복용 하고 있는 중….
페루 지방의 나무를 태우고 난 재의 조각 (흰색 숯 비슷함.)을 코카잎 한 뭉치로 싸서 씹는다.
한참을 씹고 나서 한쪽 볼 안에 머금고 있어야 한다.
선뜻 쫓아 했던 아메바는 5분도 안되어 뱉어버렸다.
너무 얼얼하고 화끈거려 도저히 씹고 있을 수가 없단다.
과연 효과가 있다. 지끈거리던 머리는 훨씬 나아지고 입안은 얼얼하다.
마치 치과에 가서 입안을 마취한 느낌이다.
이곳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코카잎을 즐겨 씹는다고 한다.
조금 뒤, 드디어 해발 4,200 m의 정상에 도착하고,
아메바는 코카잎 대신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차를 한잔 한다.
난생 처음 해발 4,000m 위로 올라와 본 것이다.
고도가 높아지니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들다.
날도 꽤 춥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터운 스웨터를 껴입는데, 우린 두꺼운 옷이 없다.
짐이 된다는 이유로 두꺼운 옷은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반팔 티 위에 얇은 긴팔 티를 껴입고 등산용 윈드쟈켓을 입었을 뿐…
그래도 윈드쟈켓이 얇지만 보온성이 좋아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정상을 지나 다시 차는 출발하고, 창 밖으로 라마(낙타류의 가축)들이 떼지어 보인다.
고산 지대답게 산 언저리를 따라 테라스(계단식 밭)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험한 골짜기에서도 테라스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참 용하다.
옆의 아메바는 피곤에 지쳐 잠에 빠지고
차창 밖의 좋은 경치와는 무관하게 머리는 점점 지끈 지끈 아프다.
주변의 사람들도 대부분 두통을 호소한다.
오후 두,세시 무렵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Chivay에 도착.
그 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각자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가 묵는 곳은 주변에서 가장 싼 호스텔, 그래도 그런대로 깨끗하고 괜찮아 보인다.
고도는 해발 4,200m를 정점으로 다시 낮아져 삼천을 약간 넘는 정도라 한다.
오후 무렵 차에서 내린 뒤에는 고산병 증세가 많이 나아져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저녁 무렵 근처의 온천으로 가서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다.
야외 풀과 실내 풀, 두개의 풀을 가진 조그만 온천이다.
시설은 다소 열악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온천에서 돌아온 후, 가이드가 권하는 디너쇼를 마다하고
동네의 조그마한 식당을 찾았다.
아직 페루 음식에 적응을 못해 피자 간판이 달린 깔끔해 보이는 한 식당을 찾았다.
오믈렛과 피자 한판 (30cm)을 시켰다.
메뉴판을 보니 피자 크기는 15, 20, 30, 50cm 까지 있다.
그런데, 잠시 후 나온 피자를 보고 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직경 30cm 의 피자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온 것은 길이 30cm의 직사각형 피자.
30cm 란 한 변의 길이를 말하는 거였다.
옆 테이블에선 50cm 피자를 시켜놓고는 재미있다고 난리다.
길이 50 cm의 길다란 직사각형 피자, 황당하지만 재미있다.
음식 맛은 절반의 성공… 맛은 별도로 음식들이 상당히 짜다.
피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믈렛은 생선 구운 팬을 사용했는지 비린내가 난다.
이래저래 페루에선 밥 먹는 일이 너무 힘들다.
페루 음식들의 공통적인 사항은 정말 짜다는 것이다.
더운 기후를 반영 한 것인지……
내일은 5시 반에 아침 식사 그리고 6시에 출발이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던 아메바는 초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방이 춥다고 투덜거리며……
▶ 고산병에 걸린 아메바… (꼴까 캐년-Chivay), 5월 4일
맑음
새벽부터 아메바가 아파서 잠이 안 온다고 한다.
가슴이 너무 아프고 숨 쉬기도 힘들다고 한다. 방도 춥다 하고……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가슴이 아프다.
머리 아픈 증상도 어제부터 계속되고 있다. 아메바가 걱정이다.
어제도 아프다고 하루 종일 축 쳐져 있었는데
오늘 다시 고지대로 올라가면 증상이 더해질 텐데……
새벽 2시 경 눈을 떠서 5시까지 한숨도 못 잔 모양이다.
밥맛이 없어 아침도 빵 한 조각 못 먹고 고산병에 좋다는 코카차만 2잔 마셨다.
이 상태로 오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물론 나는 아픈 머리를 붙잡고 아메바의 빵까지 더 먹었다.
나라도 멀쩡해야지….
6시 출발한 차는 계속 비탈길을 따라 올라간다.
안 그래도 아팠던 머리는 올라가는 동안 점점 증세가 심해진다.
옆의 아메바는 힘들어서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계속 잠만 자려 한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둘 다 예상보다도 고산병에 훨씬 약한 모습이다.
중간에 정차한 유적지에서도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숨이 차다.
옆에서 아메바는 잠을 자고 있고 나는 창 밖을 보고 있다.
머리는 아프지만 하늘이 참으로 맑다.
짙은 푸른색의 하늘은 감탄을 절로 나오게 한다.
아름다운 경치도 두통으로 인해 점점 귀찮아지고…
그나 저나 머리는 되게 아프다.
순간…. 지나가던 마을에 황당한 광경이……
마을 한쪽으로 커다란 축구장이……
머리 속에 해발 3,800m 고지에서 축구공을 차고 달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와 우, 숨이 더 차다.
9시경, 드디어 꼴까 캐년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해발 3,800m 의 고지이다.
저 아래 보이는 계곡의 바닥은 보고만 있어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정상에서부터 계곡까지의 깊이는 1,200m.
검증된 사실은 아니지만 일설에 의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계곡일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깊은 계곡의 사이를 정상 부근에 서식하는 콘도르들이 계속해서 날아 다닌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마냥 신기하다.
커다란 콘도르가 옆을 스쳐 날아갈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 몰려 있던 관광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콘도르들이 주로 오전에 많이 활동한다고
이것을 보기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던 것이다.
아파서 힘들어 하던 아메바도 시원한 경치에 넋을 잃고 쳐다본다.
신기한 콘도르의 모습과 깎아지른 계곡의 모습에
정신을 차린 아메바와 주변을 산책했다.
역시..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
아직 고산 지대에 적응 하려면 멀은 듯 하다.
돌아오는 길, 군데 군데 멈추어서 고산 지대 마을의 전경들을 감상하였다.
산비탈의 테라스들과 마을의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오전 내내 힘들어 하던 아메바는 점심 식사 후에야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증세가 고산병이라고 주장하는 아메바의 증세가 좀 이상하다.
주요 증세는 가슴이 많이 아프고, 기운이 없고 근육이 결린다고 한다.
처음 들어 보는 고산병의 증세다.
나의 진단은 다르다.
가슴이 아픈 이유는 밤새 춥다고 몸을 너무 웅크리고 자서 그런 것이다.
근육이 결린다고? 당연하지 웅크리고 잤으니.
그 외의 증상들은 춥다고 투덜거리다
잠을 하루에 두어 시간 밖에 못 자서 피로한 것이다.
가벼운 두통 증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상이고…….
하지만 아메바는 자신의 증상이 고산병이라고 끝까지 주장한다.
나의 반박이 자신의 증세를 더욱 악화시킨다고 협박을 하면서……
돌아 오는 길에도 아메바는 고산병(?)을 내세우며 계속 잠만 잤다.
새로운 발견, 고산병의 특효약은 잠이다.
저녁 무렵 아메바의 고산병 증세의 호전으로 무사히 아레끼빠로 돌아 왔다.
★ 쿠스코
*시티 투어;대성당,태양신전,삭사이와만,
*성스러운 계곡 투어;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이 걸린다고 한다. 점심부페까지 포함
▶ 아리랑 식당: 쿠스코에서 한식을 먹을 줄이야.. 맛 좋다. 운좋은 날은 할머니가 막 쪄서 보낸 수제 만두국까지 맛본다. 약간 비싸다. 현지식에 비하면. 메뉴 하나에 20~ 25솔. 그래도 한식이니까. 게다가 푸실푸실한 쌀밥이 아니라 꼭꼭 씹히는 찰진 밥이다. 사장님 안계셔도 주방아줌마가 메뉴는 다 알아 듣는다. 반찬 더 줘요 하는 말까지.. 참, 단체 예약이 아니면 저녁에만 문을 연다. 084-43-8247, 01-9849-1203 / San Augustin 249 (대성당 오른쪽 편을 가서 두어번 꼬부라져야하는데, 무지 비싼 호텔 노보텔 바로 근처니까 노보텔만 물어서 가면 태극기가 입구에 펄럭인다)
잭스카페:외국인들이 매우매우 선호하는 카페인데 아침식사부터 저녁 술까지 판다. 쥔 아줌마가 서양아줌마다.맨날 똑같은 호텔 아침(가격에 포함됐으니까 일단 죽기살기로 먹는다만)에 정말 더이상 못참겠다 싶을 때 찾아가서 맛보시길. 프렌치 토스트는 프랑스보다 낫고, 햄과 치즈 듬뿍 얹어 구운 샌드위치, 카페라떼 등 다 죽음이다. 주소 몰라도 찾기 쉽다. 12각 돌 있는 골목으로(그건 바로 성당 오른쪽으로 쭈욱 올라가면 된다) 가면 거긴 차량통행이 금지되어있는데, 그 골목이 끝나는 네거리 대각선 방향으로 달랑 하나 있으니 놓칠 수가 없다.
일식당 긴따로: 한식을 대체하는 걸로는 일식이나 중식이 최고. 이 집은 쿠스코에서 유일한 일식집이 아닌가 싶다. 우동은 면발이 약간 푸실하고 초밥에 와사비가 안 든 것, 그리고 다꾸앙을 안 주는 게 흠이긴 하지만 현지식만 먹다 우동에 초밥에 따끈한 정종 한잔 마시니까.. 크. 오랜만에 호강하는 기분. 084-22-6181 / Heladeros 149 (대성당을 바라보고 광장 왼쪽으로 빠져나가면 또 작은 광장(레고시호 광장)이 나오는데 거기서 길 이름을 찾은 그 길 따라 왼쪽으로 조금 가면 된다. 중국집도 가또즈 마켓 바로 이층에 하나 보이던데 가보진 않았고..
가또즈 마켓:제법 큰 수퍼마켓. 대성당 바로 오른쪽, 12각 골목 가기 직전 대로변에 있다. 케익, 샌드위치, 햄과 치즈 미제까지 온갖 식품이 다 갖춰져 있어서 현지식 사먹기 지겨우면 이용하기 좋다. 우리는 햄과 치즈, 마요네즈, 땅콩뻐터, 식빵 사서 여러끼를 이걸로 때웠다.
▶ 옛 잉카 제국의 수도 그리고 산토 도밍고… (꾸스꼬 1), 5월 5-6일
5월 5일
맑음
밤차로 꾸스꼬에 도착 짐을 풀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잉카 트레일을 예약 했다.
여행 책자에는 안 나온 사항이지만 잉카 트레일을 하기 위해서는
꾸스꼬시의 허가를 미리 받아야 하고 소요 시간은 3일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나마 우리는 오전 11시 이전에 신청을 했기에 2일만에 허가를 받고 수요일에는 잉카 트레일이 가능하게 됐다.
허가가 까다로운 것도 아니데 이삼일씩 소요되는 것은
아마도 관광객들을 며칠씩 더 머물도록 하려는 꾸스꼬시의 방침인 듯 하다.
물론 내 추측이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참고로 “잉카 트레일”이란 옛 잉카 제국의 산악 도로망 (잉카 로드)을 따라
트래킹을 하는 것을 말하며 3박4일 코스와 1박2일 코스가 있다.
해발 2천 미터 이상, 최고 해발 4천 미터의 산악 지대를 트래킹하는 것이어서
고산 지대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는 꽤 힘들게 느껴진다.
마지막 날에 잉카 제국의 옛 도시 마추피추에 도착하게 된다.
하늘 아래 공중 도시 마추피추, 남미 여행의 꽃이라 할 만하다.
우리는 일정상의 문제와 고산병에 대한 우려로 1박 2일 코스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잉카 트레일 예약을 끝내고 꾸스꼬 시내를 돌아 보았다.
도시 전체가 아주 아름답다. 거리를 마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내 한 복판의 광장 그리고 대성당, 도시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잉카 시대의 석벽들,
지금도 수많은 건물의 기초로 또는 일부분으로 사용 되고 있다.
마치 유럽의 로마인들처럼 이곳 남미에서도 잉카인들이 석재로 된 건물들을 짓고
돌로 도로를 포장하고 수로를 갖추고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저녁 무렵 가로등들이 켜지자 도시 곳곳이 한 장의 엽서가 된다.
꾸스꼬, 옛 잉카 제국의 수도, 이곳의 토착어인 케추아어로 “배꼽” 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세계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의미이다.
도시 전체의 형상은 잉카인들이 힘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성시 하던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한다.
공중 도시 마추피추를 보기위해 이곳에 왔지만
꾸스꼬 도시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며칠을 머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3,326m.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다.
잉카 트레일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고지대에 적응해야 하는데…………
오늘 한 일이라곤 잉카 트레일을 예약한 것 뿐.
하지만 아름다운 꾸스꼬 시내를 산책하고 저녁 무렵의 정취를 느끼고 나니 마음이 흐믓하다.
흐믓한 밤이다.
▶ 5월 6일
맑았다 비 옴.
어제 하루를 푹 쉬어서인지 몸이 가뿐하다.
아침 일찍 숙소를 한국 식당 겸 호스텔인 “비바 라틴”으로 옮겼다.
이유는 순전히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함이다.
짐을 풀자마자 꽤 이른 점심 식사를 주문하였다. 메뉴는 라면 정식….
약간 비싼 듯 하지만 한국에서의 맛과 꽤 유사한 김치, 라면 한 사발, 공기밥 그리고 보리차 한 주전자,
그 동안 페루 음식에 지친 우리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식욕이 되 살아나자 우리의 아메바는 굉장히 씩씩해졌다.
저녁 무렵에는 페루의 음식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고 한다.
그 동안 우리는 페루 음식에 주눅이 들어 주로 오믈렛이나 햄버거류만 먹었었다.
이곳 “비바 라틴”은 중남미 여행 관련, 한국에서 잘 알려진
“비바 라틴”이라는 인터넷 싸이트에서 보고 찾아온 곳이다.
강운석 사장님은 조용한 성격인 듯, 말 수는 적지만 참 친절하게 잘 대해 주신다.
화려하진 않지만 깔끔한 숙소에 아메바는 흐믓한 모양이다.
라면 정식으로 기운을 차린 우리는 빨래를 해서 잔뜩 널어 놓고 시내 구경에 나섰다.
도시가 정말 아름답다.
곳곳에 아름다운 모습의 성당과 교회들,
잉카 월(잉카 시대의 석벽들을 이렇게 부른다.)들과 잘 어우러지는 거리들, 아주 이쁜 도시다.
한편, 잉카 석벽 위에 세워진 식민 시대의 스페인풍 건물들, 왠지 모를 부조화가 느껴진다.
성당과 교회들 그리고 박물관들이 너무 많아 어디를 가야 할 지를 모르겠다.
우연히 발길 닿는 데로 가다 이른 곳은 산토 도밍고 교회 (The church of Santo Domingo).
오늘 우리가 볼 곳이다.
여행을 해보니 여유롭게 돌아 다니며 볼 수 있는 우리의 한계는 하루에 두,세 군데가 최대인 것 같다.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너무 바쁘고 천천히 돌아보기도 힘들고…….
아무튼 우리는 이번 여행 동안 욕심 안내고 하루에 두,세 곳만 보기로 했다.
대신 어딜 갈 것인지를 결정 할 때는 되도록 신중하게 하기로 했다.
산토 도밍고 교회, 1650년의 지진과 1950년의 지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 한 것이다.
건물 내부에는 지진 당시의 무너진 건물의 사진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커다란 코리칸차 (Coricancha- 가운데 안 뜰을 두고
사방을 벽으로 둘러 쌓은 형태의 건축물: 식민지 시대의 건물 상당 수가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음)가 보인다.
사방을 둘러 싼 벽들은 잉카 시대의 벽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와 잉카의 건물 위에 그들의 교회를 세운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무너진 것은 대부분 나중에 지어진 교회의 건물들이었고
잉카 시대의 석벽들은 무사했었다는 사실이다.
잉카인들이 이곳 꾸스꼬에 들어 오기 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러 문명들이 존재했었다.
12 세기경 잉카인들이 들어오고 1438년경 9대 잉카인 파차쿠텍 (Pachacutec)이
꾸스꼬를 침략하려던 세력을 물리치고 꾸스꼬를 제국의 수도에 걸맞게 개발하였다.
퓨마 형상의 도시를 건설하고 주변의 수많은 테라스(계단식 농경지)들과 코리칸차 사원을 건설하였다.
산토 도밍고 교회가 있던 자리는 원래 잉카의 “태양의 신전”이 있던 자리이다.
침략자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와 태양의 신전위에 그들의 교회를 세우고
잉카의 사제인 태양의 처녀들의 거주 구역에는 수녀원을 세웠다.
카톨릭의 이름으로 저지른 일들이다.
“태양의 신전” 위에 교회가, 태양의 처녀들 거처가 수녀원이 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지금은 옛 잉카의 유적을 복구하기 위해 시에서는 교회의 이전을 요구하고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것을 반대하고 있어 서로 마찰을 빚고 있다고 한다.
여러 방 중 한곳에는 스페인의 성 처녀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또 다른 한방에는 사제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좀 전에 보았던 잉카의 “태양의 신전”의 흔적을 본 후라서인지
종교적인 감상 보다는 침략의 흔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방의 한 그림 앞, 그림 속에는 스페인 군대와 사제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림 앞의 설명에는 스페인의 잉카 침입 당시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스페인 일행은 세 부류의 집단으로 형성이 되 있었다 한다.
첫번째, 스페인 국왕이 보낸 왕의 군대. 두 번째, 교황이 직접 파견한 사제들의 집단.
세 번째 스페인에 협조한 남미의 원주민 부족들.
그 당시의 교회와 사제들이 침략자들 중 한 무리였다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모르는 원주민들, 그들의 신을 모욕하는 원주민들은 침략해도 무방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종교는 그들의 침략에 면죄부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
교회를 돌아 나와서 보는 산토 도밍고의 모습은 단순히 아름다운 식민지 시대의 건물이 아니었다.
저녁 무렵, 잉카 월 (석벽)을 따라 숙소로 돌아와 다시 라면 정식을 먹는다.
역시 김치의 맛은…….
한참 뒤,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왔었다는 사실과 우리가 빨래를 널어 놓고 나갔었다는 사실이 떠 올랐다.
비에 푹 젖은 우리의 빨래들이여…….
▶ 잉카인들의 길을 따라서.. 잉카 로드 그리고 마추피추, 5월 7일
맑음
아침 6시10분, 여행사에서 숙소에서 우리를 픽업, 6시 20분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전날 김치와 라면을 충분히 섭취하여서인지 아메바는 기운이 펄펄 넘친다.
역시 먹을 것만 잘 주면 아메바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틀짜리 트래킹을 앞 두고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7시 15분 경, 기차가 드디어 출발했다.
기차의 시설은 열악하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탓에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지난 며칠간의 충분한 음식 섭취로 아메바는 사기 충천,
그리고 몸 상태가 정상이라는 증거로 다시 “눈배” 증상을 보인다.
눈배 : 식욕이 왕성한 아메바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아침에 눈만 뜨면 배고픔을 느끼는 증상”
시배 : 최상의 컨디션인 아메바에게 나타나는 증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픔을 느끼는 증상”.
잘 먹는 우리의 아메바가 정말 자랑스럽다.
한국에 있을 때나 여행 중이나 우리의 가장 큰 지출은 식비다.
10시를 약간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꾸스꼬 역으로부터 104 km 지점, 1박2일 트래킹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3박4일 트래킹은 88 km 지점에서 출발하여 3박 4일간 진행 되고, 우리의 경우는 처음 이틀을 생략하는 셈이다.
역에 도착하니 함께 트래킹을 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델리아, 사십대 초반의 여성으로 완벽한 스페인식 영어를 구사하여
우리 같은 한국인은 알아 듣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의 일행은 우리 둘, 독일 여성 둘(독일에서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적십자 소속으로 페루에서 6개월간 자원 봉사를 하고 있음.-파올라, 베티)
그리고 콜롬비아 청년 하나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 미국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음.-아비)까지
가이드 포함 모두 여섯이다. 그리고 이런 팀들 여럿이 시차를 두고 출발하였다.
잉카 로드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 (여행객을 고려해서 그런지 페루 음식치곤 입맛에 잘 맞는다.)를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날은 화창하고, 맑은 공기가 더없이 시원하다.
걱정했던 아메바는 의외로 강한 모습을 보인다.
산기슭을 타고 가는 길을 지치는 기색도 없이 잘도 간다.
나보다도 더 잘 가는 것 같아 정말 대견스럽다.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을 “잉카 로드”라 한다.
유럽에 로마 제국의 로마 가도가 있었듯, 잉카 제국에는 잉카 로드가 있었다.
스페인 침략의 시기이자 전성기였던 16세기,
잉카 제국은 북으로는 지금의 에콰도르에서 페루,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의 중부 지역에까지 이르는 해안과 고지대를 지배했었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8,000 km 이상의 잉카 로드를 구축 하였으며
도시간을 연결하는 잉카 로드까지 합하면
수만 km에 이르는 잉카 로드로 제국의 곳곳을 연결하였다 한다.
그러한 거대 제국 잉카가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 의해 무너진 슬픈 역사는 허망하기까지 하다.
산 허리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잉카 로드,
그 길을 따라 그 옛날의 챠스키 (잉카 시대의 파발꾼)들을 상상하며 걷는 길은 마냥 즐겁고,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일행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일행 중 독일 아가씨들이 힘에 부친 듯 자꾸 쳐지지만
중간, 중간 쉬어가는 곳에서는 모두들 웃는 얼굴들이다.
두 시간을 넘게 산행을 계속 하자 저 멀리 테라스 (계단식 농경지)가 보인다.
뒤를 돌아 보니 우리가 걸어 왔던 길이 산허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 모습이 과연 잉카 로드라 할 만한 하다.
삼십 여분을 더 걸어 테라스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잉카 로드에 관한 설명과
테라스의 구조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산비탈에 만들어진 테라스의 구조는 일단 외부를 돌을 이용하여 석벽을 쌓고
석벽의 내부에는 밑에는 굵은 돌을, 그 위에는 좀더 작은 자갈을
그리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고 맨 위에는 흙을 쌓아 테라스를 만들었다.
그러한 테라스는 경사지에서 맨 위의 토층이 아래로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흙을 보관하는 역할과 수로를 이용해 공급된 물을
토양이 머금고 있을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과연 테라스의 옆에는 수로가 형성되어 테라스에 물을 공급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어느덧 일행은 서로 친해져
같이 사진을 찍고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 한다.
테라스를 지나 조금 더 가자, 드디어 첫날의 목적지인 산장에 도착했다.
처음 출발 할 때 4시간 가량 걸린 다던 거리를 설명을 들으며 4시간 반을 걸려 도착하였다.
산장은 벌써 만원이다.
우리와 같이 출발한 여러 팀들로 산장의 허름한 숙소는 거의 다 차버렸고
산장 아래와 주변에는 3박4일 트레킹 팀들의 텐트로 빈 자리가 없다.
1박2일 팀과 3박4일 팀 모두 이곳이 마지막 밤을 보내는 곳이다.
내일 새벽 한시간 가량만 산행을 더하면 잉카의 고도, 마추피추에 도착하는 것이다.
저녁 무렵, 산장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저녁 식사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식사 후, 밖에 나와 주변을 보다 수돗가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현지인 짐꾼들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한쪽에서는 서양인들이 주류인 여행객들이 그날의 힘든 일정을 끝내고
저마다 맥주나 음료수를 들고 휴식을 취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현지인들로 이루어진 짐꾼들이 분주히 짐을 나르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인종에 따라 할 일이 나뉘어져 있는 듯 보인다.
양쪽의 차림도 다르다.
한쪽은 건장한 체구의 서양인에 전문 등산복, 등산화 그리고 배낭을,
다른 한쪽은 햇빛에 검게 그을린 작은 체구의 원주민들로
일상복인 티셔츠와 운동화(상당수는 그저 샌들임.)
그리고 배낭 대신 커다란 보자기로 짐들을 몸에 동여 매고 다닌다.
짧은 일정의 우리와는 달리 3박4일 일정의 팀들은 야외에서 숙식을 한다.
여행객들도 자신의 짐은 직접 지고 나른다.
하지만 그 외의 장비들, 식사 준비를 위한 장비들과
부식, 테이블, 의자, 텐트 등은 짐꾼들이 운반을 한다
(여행객들을 위한 식사용 테이블과 의자까지 제공 된다.).
아침이 되어 식사가 끝나면 일행은 출발을 하고
짐꾼들은 남아서 짐을 꾸리고 설거지를 끝낸 후,
그 짐들을 들고 다시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을 한다.
부지런히 이동을 하여 일행을 추월하여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 음식을 만들고 식사 장소를 준비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라 한다.
그리고 일행 중 짐을 감당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
돈을 지불하면 그 짐도 짐꾼들이 운반하여 준다고 한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양쪽이 마치 피부색을 기준으로 나눈 것처럼
서양인과 현지인들이 나뉘어 있으니, 보기에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먼 옛날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왔을 그들의 조상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들이었을 것이다.
여행객 중 간간이 섞여 있는 일본인과 한국인……
여행객쪽에 섞여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하는지………
마음이 영 편치를 않다.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현지 짐꾼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가이드에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삼, 사년전 이곳 잉카 트레일 코스에서 경기 대회가 열렸었다고 한다.
경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주로 전문 포터(짐꾼)들, 가이드들,
현지 주민들이었는데 그날의 우승자는 한 포터였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날의 기록, 보통 3박4일 코스로 진행되는 구간을
단 3시간 반만에 주파하였다고 한다.
짐이 없는 맨몸이라고는 하지만
해발 3,4천 미터의 고지대에서 나온 기록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기록이었다.
그 옛날, 잉카의 챠스키(파발꾼)들이 산길 수백킬로를
단 이,삼일 만에 도달 하였다는 이야기가 실감나는 일화였다.
▶잉카인들의 길을 따라서.. 잉카 로드 그리고 마추피추 2, 5월 8일
흐린 후 맑음
새벽 5시 기상, 식사 후 6시부터 일출을 보기 위한 새벽 산행을 시작하였다.
간밤 산장과 근처의 텐트에서 묵었던 인원이 비슷한 시간에
마추피추로 향하다 보니 어두컴컴한 산길이 북적거린다.
삼십 여분 만에 도착한 고지에서는 바랐던 일출을 볼 수가 없다.
날이 흐려 해는 커녕 건너편 봉우리도 잘 보이질 않는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일년에 수십 차례 오는 자신도
단 3번만 일출을 보았다고 하니 애초부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산속의 새벽 공기는 상쾌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나자 날이 완전히 밝아지고
저 멀리 마추피추가 보이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잉카 제국의 고도 마추피추,
남미 여행의 꽃이라 불리는 마추피추를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보는 것이다.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회색의 돌들로 쌓여진 마추피추의 건물들은
정상에서부터 계단식으로 계속해서 이어져 있고
그 사이를 상하 좌우로 계단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건물 자체는 구획을 단순히 돌로 쌓아 놓고
군데군데 창문이 나있을 뿐이므로 단순해 보이지만
시원한 아침 공기에 푸른 잔디와 어우러진 잉카의 회색 석조 건물들은 참으로 잘 어울린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진보다 실제의 모습이 못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이곳 마추피추는 사진으로 보아오던 모습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중앙에 서서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모두다 사진에 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 옛날, 잉카의 챠스키(파발꾼)들이 길고 긴 잉카 로드를 달려와
드디어 마추피추의 언저리에 도착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름다운 마추피추를 그들은 어떤 느낌으로 바라보았을까.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멀리 보이는 마추피추, 정상부터 중앙으로 길게 이어진 계단을 경계로
왼편으로는 농경지인 테라스들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여러 가지 건물군이 형성되어 있다.
마추피추의 뒤로는 높이 치솟은 해발 2,720m의 와이나피추가 보인다.
고도 마추피추에는 잉카인들의 태양의 신전이 있었고
맞은편의 산인 와이나피추의 정상에는 달의 신전이 있다 한다.
즉, 잉카인들에게 마추피추는 태양의 도시 그리고 와이나피추는 달의 도시였다.
마추피추, 케추아어로 “마추”는 old, “와이나”는 young을
그리고 “피추”는 mountain을 의미한다.
마추피추는 늙은 산 그리고 와이나피추는 젊은 산이라는 뜻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마추피추를 구역별로 순회를 하였다.
왕족들의 거주지와 왕녀의 방, 마추피추의 모든 건물들이 모두 직각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곳만은 원형의 탑처럼 생긴 것이 왕녀의 거처라는 추측과 잘 어울린다.
그 옆의 커다란 샘, 마추피추 전체를 따라 건설되어 있는 수로가 시작되는 곳이다.
규모는 작은 수로이지만 왕족의 거주지와 신전을 시작으로
외곽의 건물들과 그 밖의 테라스까지 수로가 건설되어 있다.
이런 수로를 갖춘 도시에 살았던 잉카인들,
수로를 통해 항상 신선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었던 그들은
상당히 쾌적하고 위생적인 생활을 영위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왕녀의 방 위를 돌아 언덕을 오르니 신전의 구역이 나타난다.
신전임을 나타내듯 다른 구역에 비해 건물들을 공들여 지은 흔적이 역력하다.
신전 구역의 맨 윗부분에는 태양의 신전이 있고
그 가운데는 태양을 묶는 기둥 “인티와타나”가 있다.
책상 크기의 사각 석판의 한가운데 뾰족한 기둥이 서 있어서
동지와 하지 등, 그 절기에는 기둥의 그림자가 정확히 석판의 모서리와 일치하였다고 한다.
인티와타나, 케추아어로 태양을 묶는다는 뜻이다.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들은 태양이 짧아지기 시작하는 하지에
짧아지는 태양을 아쉬워하며 태양의 기운을 묶어두기를 원하여
자신들의 태양의 신전에 인티와타나를 설치하였다.
스페인 군대의 무자비한 파괴에도 유일하게 파손되지 않았던 것이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본 인티와타나는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작년 페루의 한 방송사에서 마추피추를 촬영하다
촬영 도구가 인티와타나 위로 떨어져 끝 부분이 일부 파손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원래의 모양대로 다시 복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라 한다.
하지 때의 그림자로 측정하면 될 듯 하지만,
잉카 시대와 현재의 태양의 위치가 달라서 불가하다 한다.
주변을 둘러 보면서 멀리서 찾아온 우리 자신도
마추피추에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이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인티와타나를 거쳐 와이나피추로 가는 입구에 이르자 신성한 돌 (커다란 바위)이 보인다.
이곳 꾸스꼬 지역의 토끼 비슷한 동물의 형상을 한 커다란 돌이었다.
그곳에 손을 대고 기원을 하면 땅의 여신으로부터 기운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손을 그 바위에 대고 기원을 한다.
아메바와 나도 그곳에 손을 대고 가족들의 건강과
주변의 모든 소중한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 본다.
마추피추를 모두 돌아본 뒤, 일행과 헤어져 와이나피추로 향했다.
왕복 2시간 정도의 산행길이지만 워낙 깍아지른 길이라 꽤 힘들어 보인다.
전날의 산행에서 자신을 얻어 선뜻 가자고 나섰던 아메바는
계속되는 비탈길과 계단에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한시간 여 만에 오른 정상에는 약간의 테라스와 달의 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달의 신전이라는 이름에 비해 훨씬 초라하지만
건너편의 마추피추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
멀리서 다시 보는 마추피추의 모습은 그저 감탄의 한숨만 나오게 한다.
멀리 보이는 마추피추를 보며 그 옛날의 잉카 제국과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 허망하게 무너진 거대한 제국,
그리고 잉카인들을 떠올린다.
지금 그들의 후손은 그 후 수 백년을 식민치하에서 보내고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아직은 빈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의 잉카 멸망에 관한 이야기는 숙소 비바 라틴에서 본
잉카 유적에 관한 한국책자와 론리 플래닛에서 발췌한 일부이다.
1525년경 잉카의 통치자 였던 후아이나 카팍 (Huaynac Capac)이 사망했다.
죽기 전, 후아이나 카팍은 잉카 제국을 북쪽은 서자 였던 아타왈파 (Atahualpa)에게,
남쪽의 꾸스꼬 지역은 그의 적자이던 후아스카르 (Huascar)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제국은 아타왈파를 지지하는 쪽과
후아스카르를 지지하는 세력들로 양분되어 도시간의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 전쟁은 후아스카르가 꾸스꼬 외곽에서 생포됨으로써 막을 내리지만
제국의 힘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결국 잉카 제국 멸망을 더욱 쉽게 만들어 버렸다.
한편, 스페인 원정대의 우두머리였던 프란시스코 피사로 (Francisco Pizarro)는
1524년과1526년에 걸친 원정으로 잉카 제국에 수많은 금과 보화들이 있다는 것을 스페인에 알리고
국왕으로부터 잉카 제국 관할에 대한 허가를 받아내는 한편,
원정 자금을 마련하여 1530년 3차 원정을 감행하여
지금의 에콰도르 북부에 상륙하여 페루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잉카의 아타왈파가 내전을 마감한 1532년 11월,
내전의 틈을 이용해 스페인의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심장부인 꾸스꼬까지 진격하고
아타왈파와 만날 것을 제안한다.
아타왈파는 자신의 병사들을 동행한 채 피사로를 만나고,
그 곳에서 카톨릭의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타왈파는 그들이 건네준 성경책을 내동댕이친다.
그러자 피사로는 자신들의 신과 성경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병사들을 동원하여 아타왈파를 사로잡아 버린다.
아타왈파를 수행하였던 병사들은 스페인 군대의 강력한 화기와 처음 보는 기병들의 말에 놀라
혼비백산 달아나다 저항도 제대로 못해보고 수없이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타왈파를 수행했던 이들은 잉카의 유력 부족장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다.
이 때의 스페인 병사의 수는 보병 180, 기병 38명.
뛰어난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과 잉카인들이 처음 보는 말을 탄 기병들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쉽게 잉카의 왕을 사로잡아 버렸다.
너무나도 어이없게 잉카 제국은 멸망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 뒤 피사로가 지명한 망코 잉카가 왕위를 이어받지만
잉카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에 망코 잉카는 스페인에 끝까지 저항하다
1544년 죽임을 당하고 그 뒤에도 저항은 계속되다
1572년을 끝으로 잉카의 저항은 막을 내리게 된다.
잉카의 고도 마추피추는 잉카 이전의 문명에 의해 건설되었다가 1300년경 버려진 것을
스페인 침략을 계기로 망코 잉카가 재 점유하여 1543년경 다시 건설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후 스페인에 저항했던 망코 잉카와 함께 마추피추는 스페인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그래서 이곳 마추피추를 잉카 최후의 요새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리에게 마추피추를 설명해준 가이드는 그 가설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스페인 군대에 파괴되었던 잉카의 도시 마추피추,
1909년 미구인 학자 하이럼 빙검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잊혀진 도시가 되어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1909년 현지의 원주민과 마추피추 앞을 흐르던 우루밤바 강을 건너 마추피추를 확인한 하이럼 빙검은
1911년 원정대를 구성하여 마추피추를 발굴해 내었다.
미국인 하이럼 빙검에 의해 마추피추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잉카의 고도 마추피추의 오리지널 유물의 대부분은
페루가 아닌 미국의 한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고 한다.
현재, 리마와 꾸스꼬의 박물관에 소장된 오리지널 유물은
극히 일부분이고 상당 부분이 모조품이라고 하니 다시 한번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와이나피추를 내려와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버스를 타고 산 아래의 마을로 향했다.
저녁 5시경 꾸스꼬행 기차가 도착 하였다.
기차를 타기 전 작별을 아쉬워하며 현지인 가이드는 우리에게 꾸스꼬에 가거든,
오리지널 유물들의 숫자는 적지만 잉카의 모습을 좀 더 볼 수 있을 거라며
잉카 박물관에 꼭 가볼 것을 당부하였다.
이틀 동안 우리와 동행하며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던 델리아,
그녀는 자신들의 유산과 잉카의 후예라는 것에 나름의 자부심을 가진 듯 보였다.
잉카의 도시, 마추피추를 뒤로 한 채,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기차에 올랐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마추피추에 가기 전에 본 몇몇 여행 책자에서 마추피추 현지의 “굿 바이 보이”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이틀 혹은 사일 동안의 산행과 마추피추 방문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버스를 타게 되면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내려오게 된다.
처음 출발 무렵, 차창 밖에서 한 소년이 “굿 바이” 하고 외치며 관광객들을 배웅한다.
관광객들도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고 버스는 산길을 돌아 내려가게 된다.
산길을 돌아 한 모퉁이를 돌면 어느새 아까의 그 소년이 저 앞에 나타나
또 다시 “굿 바이”를 외치고 관광객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손을 다시 흔든다.
버스가 한 모퉁이를 다시 돌면 아까의 그 소년이 다시 나타나 다시 한번 “굿 바이”를 외친다.
이런 광경은 버스가 마을의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되고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 마을 입구의 다리에 차가 다다르면
“굿 바이” 소년이 버스에 올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즐거움을 선사받은 관광객들은 소년에게 팁을 준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마추피추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얘기로,
실제로 이 소년은 버스가 모퉁이를 도는 동안
산비탈의 지름길을 이용해 앞질러 가서 인사를 한다고 하였다.
여행 전부터 이 소년을 보고싶어 하던 아메바는
둘째날 가이드에게 그 소년의 안부를 물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 소년이 공부를 하러 외지로 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달 전부터 그 소년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오랫동안 기대하였던 일이라 아메바의 실망은 생각 보다 더 컸다.
옆에서 보기 안스러워, 내가 직접 뛰어내려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틀 동안의 산행 뒤라 체력이 걱정되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동양의 늙은 “굿 바이 소년”에 놀라 당황할 다른 관광객들,
마추피추의 감동이 한 순간에 날아갈지도 모른다 싶어 그 생각을 접었다.
떠나간 “굿 바이” 소년을 생각하며 아메바는 창 밖만 본다.
▶ 코카잎을 씹는 잉카의 조각상, 잉카 박물관 (꾸스꼬 2), 5월 9일
맑음
몇 년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무대포 (유오성)의 명대사가 하나 있었다.
“난 한 놈만 팬다.”
우리의 여행도 그렇다.
어차피 한 도시에서 모든 유적을 제대로 못 볼 바에는 한두 곳만 골라 중점적으로 본다.
우리의 느긋한 여행 속도나 만만찮은 입장료들을 고려할 때,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에 볼 수 있는 최대 숫자는 둘 정도인 것 같다.
비슷비슷한 교회나 성당, 박물관들을 모두 돌아보기에는 입장료의 부담도 너무 크고 시간도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지나보면 꼭 보았으면 좋았을 곳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야만 우리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적은 곳을 방문하려 한다.
도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꾸스꼬,
그 아름다운 거리들 때문에 우리는 주저 없이 하루의 일정을 추가하였다.
마추피추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허겁지겁 밤차를 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가된 하루, 아침부터 어디를 가 볼지를 놓고 고민을 하였다.
아름다운 곳이라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았다.
잉카 왕궁의 자리에 세워졌다는 대성당,
원래 성당과 교회는 일요일에만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되도록 방문을 피했던 우리지만
잉카의 왕궁이었다는 사실이 자꾸 우리를 유혹했다.
그리고 꾸스꼬 근교의 유적들과 어제 델리아 (잉카 트레일 가이드)가 꼭 가보라던 잉카 박물관,
하루에 소화하기에는 일정이 빠듯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다시 한번 무대포 (유오성)의 대사를 떠 올렸다.
“우린 한 놈만 팬다.”
성당은 일요일에만 가야 한다는 구실로 대성당의 방문을 접고,
오전은 근교의 유적들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잉카 박물관만 가보기로 하였다.
택시를 타고 근교의 첫번째 유적지로 향하였다.
(항상 둘인 우리는 버스 타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택시를 탔다.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추가 비용으로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었다.)
삭사이와망, 퓨마 형상의 도시 꾸스꼬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커다란 돌들로 이루어진 유적으로 아래서부터 커다란 돌들로 삼단으로 되어 있었다.
아래서부터 지그재그로 계속 이어진 커다란 돌들은 퓨마의 이빨에 해당된다고 한다.
유적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돌들은 대부분 높이가 3, 4 m를 넘고
그 중 큰 것은 8.5 m의 높이에 무게가 3백6십여 톤이나 된다고 한다.
그 건너편에는 또 다른 석벽들이 보인다.
삭사이와망은 주로 잉카의 종교적 행사 시에 사용되었다 한다.
그리고 망코 잉카와 스페인 군대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돌들을 보며, 그래도 스페인 식민 기간 중 이 커다란 돌들을 가져다 건물 짓는데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남겨두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메바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 아메바는 나에게 여행 책자를 보여 주었다.
그 책에 의하면 지금 남아 있는 유적은 원래의 20 퍼센트 정도이고
나머지는 스페인 사람들이 건물 짓는데 가져다 썼다 한다.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삭사이와망을 지나, 나머지 다른 유적들을 마저 돌아보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다 마침 꾸스꼬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를 만나
흥정 끝에 둘의 버스비로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여행 중 하도 많은 유적을 돌아보다 보니 무덤덤해지는 경우가 많고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꽤 피곤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은 오가는 길을 택시로 수월하게 다녀 가벼운 소풍을 다녀오는 기분이다.
택시 덕분에 숙소로 일찍 돌아온 우리는 점심을 마치고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이곳의 계절로는 건기로 접어들어 추워지는 시기이지만 한낮의 해는 뜨겁기만 하다.
그런 기후를 감안, “씨에스타”라 하여 오전 11시 반경부터 오후 두 세시까지
이곳 관공서나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의 단잠은 너무나도 달콤했고 예정했던 2시 반을 훨씬 넘겨 4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큰일이다.
보통 박물관의 경우 5시경 문을 닫는 곳도 많은데 잘못하면 잉카 박물관을 못 보게 생겼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박물관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이 4시 반,
다행히 박물관 개장 시간은 오후 여섯시 까지로 둘러볼 시간은 충분해 보인다.
첫 전시실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중년의 현지인 여성 가이드가 영어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한다.
요금은 10 soles (한화 3500원 상당),
현지 물가에 비교하면 한시간 가량의 설명에 비해 싼 가격이 아니다.
우리는 가이드 대신 전시물에 부착된 영어 설명을 천천히 읽어 보기로 하고 사양을 하였다.
잠시 후, 우리의 예상과 달리 설명들이 대부분 스페인어로 되어 있고
영어로 된 설명은 너무 부실하였다.
어제 마추피추에서 델리아의 꼭 가보라는 권유가 생각나
대충 보기가 아쉬워서 아까의 가이드에게 다시 요청하였다.
막상 설명을 들어 보니,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을 천천히 진행하고
전시물 뿐 아니라 그 배경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가이드의 안내가 너무 즐겁다.
말의 속도도 편하고, 가이드의 발음도 우리가 듣기에는 아주 편안하였다.
이곳, 잉카 박물관은 잉카 문명 뿐만 아니라
잉카 이전에 꾸스꼬 지역에서 번성했던 여러 문명들의 유물들을 각 시대별로 전시해 놓고 있었다.
첫번 전시실에는 기원전과 기원후의 잉카 이전에
꾸스꼬에 존재했던 문명들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잉카 문명과 마찬가지로 퓨마를 힘의 상징으로 여겨
많은 조각상들은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지혜의 상징 이었던 뱀을 감고 있는 퓨마 머리를 한 조각상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대와 번성했던 지역별로 서로 다른 도자기들이
나름대로의 특색과 색깔들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 재미있었다.
두번째, 세번째 전시실을 따라 가니 고산 지대인 이 지역을 반영하듯
지역별로 고도에 따라 서로 다른 농작물들을 재배한 사실을 보여주는 모습과 농기구들의 유물이 나왔다.
비교적 저지대(?)인 해발 2천 여 미터의 지대에서는 주로 감자류의 곡물을,
그위의 3천 여 미터의 지대에서는 작은 시리얼류의 작물을
그리고 그 이상에서는 주로 코카잎을 재배하였다 한다.
이곳 현지인들은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코카잎차를 즐겨 마시고
늘 코카잎을 씹어 볼의 한쪽 편에 담고 있는다.
그런 코카잎 재배의 역사는 무려 사천년을 넘는다고 하였다.
코카인의 원료를 재배한다 하여 한때 주변 국가와의 마찰의 소지가 되기도 했던 코카잎은
그들에겐 마약이 아닌 소중한 약초인 것이다.
그런 코카잎을 정제하여 순도 높은 마약을 만들어 남용하는 외부인들이야말로 문제가 아닐까.
이런 이들의 역사를 반영하듯 이곳 유물 중 상당수 조각상의 한쪽 볼이
불룩 튀어 나온 모습으로 제작되어 있다.
바로 코카잎을 씹어 한쪽 볼에 한웅큼 머금고 있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그런 설명을 듣는 순간 우리는 탄성을 내지르며 다시 한번 조각상을 내려다 보았다.
지난 며칠간 여러 곳에서 본 조각상에서
그리고 길거리의 엽서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그 조각상,
유독 한쪽 볼만 불룩해 보이던 그 안에는 코카잎이 한웅큼 들어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잉카의 유물들은 이어지고, 코카잎을 한웅큼 볼에 머금고
우리를 쳐다보며 웃음 짓는 잉카의 조각상들이 너무나도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우리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가이드도 흥이 나는 듯 더욱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어느덧 전시실은 스페인 침략의 시기로 접어들고,
한쪽 벽면에 상징적으로 잉카 제국의 지도를 유럽 지도의 스페인 위에 겹쳐 놓았다.
중부와 남부 유럽의 대부분을 덮어 버리는 모습이 가이드의 씁쓸한 웃음과 함께 묘한 여운을 남긴다.
다음 방을 들어서자 천정이 스페인 풍의 무늬로 채색되어 있는데,
식민지 시대의 원형 그대로라 한다.
이곳도 대성당과 함께 한때 잉카의 왕궁이었는데
스페인 점령 후 스페인식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벽면을 따라 스페인 점령기의 잉카 제국의 왕, “잉카”의 모습이 여러 장의 초상화로 묘사되어 있다.
맨 처음 모습은 원래의 복장 위에 스페인 겉옷만 살짝 걸친 모습으로 시작 되지만
다음은 잉카 고유 문양으로 장식된 스페인 복장을,
다음은 스페인 문양의 스페인 겉옷을,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잉카의 상징인 고유의 왕관을 제외한 모든 복장을
스페인 것으로 장식한 잉카의 모습이 보인다.
차례대로 변화되는 부분들을 설명하던 가이드는
마지막 초상화 옆에 전시되어 있는 식민지 시대 초기의 사진 속 잉카인들을 가리키며
그 때 이미 잉카인들의 외모에 스페인 인종의 특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사진 속 인물들 중 잉카 순수 혈통과 혼혈의 모습을 구분하여 준다.
사진 이외에도 벽에 걸려 있던 초상화의 모습에서도
시대가 지나갈수록 스페인 인종의 특징이 더욱 강해진다며 그 차이를 설명해 준다.
설명을 들은 후의 느낌일까?
과연 초상화의 인물들의 모습이 점점 스페인 사람들로 변해 가는 듯 하다.
식민 시대를 지나 페루 독립의 시기로 들어서자
1800년대 일어났던 독립 전쟁의 유물들이 몇 점 보이고
다음은 잉카 지역의 섬유류를 전시 해놓은 곳.
꾸스꼬 지역은 고산 지대의 라마 (낙타류) 털로 만든 울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페루의 고산 지역 어디를 가든 원색의 울로 된 커다란 천을 두른 인디오 여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보니 그저 원색의 천으로만 보이던 그 천들이 지역별로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빨강과 파랑을 주로 하여 서로 얽힌 천,
검정을 주로하고 끝단만 빨강색을 사용 하는 천, 진한 밤색의 천 등,
모두 같아만 보이던 인디오 여인들의 천들이 이곳에서는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시간 여에 걸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
그저 지나칠 뻔하던 잉카의 유물들이 더욱 다정한 느낌으로 다가 오는 듯하다.
이제서야 델리아가 꼭 가보라고 한 이유를 알 듯하다.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준 가이드가 감사하게 느껴지고
10 soles의 돈의 가치만 생각했던 우리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작은 돈이지만 우리가 소지한 현금을 다(?) 털어서 가이드에게 주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물론 3 soles를 더 보탠 것에 불과하지만………..
잉카 박물관을 뒤로 하고 어두워진 꾸스꼬의 밤거리를 걸었다.
점점 변해가던 “잉카”의 모습…,
볼에 코카잎을 한웅큼 담고있던 잉카의 조각상…,
잉카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간 듯한 느낌이다.
한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으로 우리의 하루가 아주 행복해져 버렸다.
여행의 기쁨이 가득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나가는 길, 환하게 불 켜진 엽서 가게의 엽서 속 조각상이
한쪽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우리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뿌노
▶ 해발 3,820m의 호수 띠띠까까 그리고 갈대의 섬 우로스 (뿌노), 5월 11일
아주 맑음
몇 차례의 밤차에 질린 우리는 일정의 손해를 감수하며
오전에 꾸스꼬를 출발하여 어젯밤 이곳 뿌노에 도착했다.
페루의 음식에 질려 있던 아메바는 꾸스꼬를 지나며 완전히 식욕을 회복하고
이제 “시배”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픔을 느끼는 증상)의 경지에 도달했다.
어제 저녁, 허름한 이곳의 식당에서 가능한 가장 맛있는 것을 골라내려고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하여 주문을 하여 저녁을 먹으며
드디어 식사의 양이 적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아메바의 컨디션은 이제 완벽해졌다.
아침 일찍, 어제 호텔을 (호텔이라곤 하지만 대부분 유스호스텔 수준의 숙소로 더블 기준,
미화 10달러에서 12불 수준의 숙소들이다.) 통해 예약한 하루짜리 투어를 시작하였다.
오전에 갈대로 이루어진 섬 “우로스”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띠띠까까 호수 안의 섬, “따낄레”를 갔다 오는 일정이다.
미니버스를 타고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곧 바로 호수 안의 갈대 섬 우로스로 가는 작은 유람선에 올랐다.
가는 도중 배에 동승한 가이드가 호수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이곳 뿌노의 고도는 해발 3,820m 이다.
따라서 지금 배를 타고 있는 호수의 수면은 해발 3,820m 인 셈이다.
호수의 길이가 170km 라 하니 실제의 모습이 마치 바다처럼 보이고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그리고 이 호수는 염분을 함유하고 있다 하니 먼 옛날 바다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가이드의 설명이, 케추아어로 “띠띠”란 퓨마를, 까까”란 호수를 의미한다며
지도를 펴놓고 호수의 형상이 퓨마의 형상을 닮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하여도 퓨마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겨우 몸뚱이와 다리 정도만 보일까 말까 한다.
배로 삼십 여분을 달리자 갈대로 이루어진, 떠있는 섬 우로스에 도착한다.
이곳 사람들은 띠띠까까 호수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만든다.
섬을 이루고 있는 것도 갈대이고
그 위의 집 그리고 그들이 타고 있는 배도 갈대로 만든 것이다.
섬 위에서 발을 굴러보니 바닥이 푹신푹신하다.
먼 옛날 작은 부족이던 우로스 사람들이 잉카 제국의 통치를 피해 외부와의 차단을 위해
호수 한가운데 갈대로 섬을 만들어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이곳의 기원이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의 인디언들과 섞여, 순수 혈통의 우로스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족을 이끌고 생활의 터전인 땅도 없이 호수 한가운데 들어와야만 했던 그들의 처지가
가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덕에 잉카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도
그리고 스페인의 식민 통치 아래서도 지배자의 영향권 밖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영위하였다는 사실에 묘한 통쾌감을 느끼게 된다.
처음 보는 갈대 섬의 신기함에 주변을 둘러 보지만
신기함 이외에는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섬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을 팔기 위해 애쓸 뿐,
우리가 방문한 곳에는 그들의 생활의 흔적조차 느끼기 힘들다.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한 결과인지 인디오들의 순박함도 느낄 수 없고
섬 자체도 생활의 터전이 아닌 관광객들을 위한 장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저 멀리 보이는 더 큰 섬에는 생활의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마치 그들의 일터(관광지)에 불과해 보인다.
약간의 추가 요금으로 갈대로 만든 배에 타보라는 권유를 마다하고 유람선에 다시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호수 안의 섬인 따낄레,
호수 안이라 해서 금방 도착할 줄 알았더니 3시간 넘게 배를 달려서야 도착한다.
서너 시간의 이동과 섬에 도착해 둘러본 경치는 우리를 어이없게 만든다.
호수 안의 섬에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두 수평선이 이어지니
이곳을 과연 호수라 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수면이 해발 3,820m 라니 어이가 없다.
섬에 내려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거의 4천m에 달하는 고지의 공기가 무척 상쾌하게 느껴진다.
섬의 포구에 도착해서 섬의 정상까지 걸어 올라야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둘러 보아도 관광의 대상이 될만한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단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띠띠까까 호수의 크기를 실감한 것이 전부인 듯하다.
우리는 일정상의 이유로 하루코스의 여행이지만,
1박2일 코스의 경우는 이곳 섬에서 하루 민박을 하며 섬사람들과 생활한다고 한다.
고유의 전통 춤으로 유명한 이곳, 사람들과 전통 복장을 입고 저녁 무렵 함께 춤을 춘다고 한다.
경험한 사람들의 말로는 그 하룻밤이 나름대로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억지로 만들어 놓은 관광 상품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것은 우리만의 느낌이다.
볼리비아로 가는 중간 경유지인 이곳,
경유지가 아니라면 굳이 하루의 시간을 내어 오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물론 지구상에서 유일하다는 갈대 섬과 바다와 같은 호수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신기함 이외의 다른 감정은 느끼기 힘들다.
덤덤한 저녁이다.
아메바는 돌아가는 배 안에서부터 무얼 먹을까 고민 중이다.
훌륭한 우리의 아메바……..
★ 푸노- 라파스
푸노에서 1인당 30솔(약 8달러)에 코파카바나를 거쳐 라파스까지 가는 버스표를 샀다. 푸노의 킹덤 여행사 직원은 말한다. 미니버스로 코파카바나에 가면 그곳에서 다시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단다.
아침 8시. 미니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를 향해 푸노를 출발한다.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줄리Juli, 포마타Pomata를 거쳐 2시간 정도를 달려가니 코파카바나 근처의 볼리비아 국경도시 융구요yonguyo에 도착한다. 볼리비아 비자는 리마에서 미리 받아 놓았기 때문에 비자를 받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볼리비아는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으므로 리마에서 미리 받아 놓은 것이 값도 싸고 시간도 절약된다.
운전수는 버스에서 모두 내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그래이션 건물이 꼭 창고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는다. 우리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미니 여권 카피 대금을 10솔을 내라고 한다. 이거야 정말! 비자를 받은 멀쩡한 여권이 있는데도 카피를 하라니. 큰 배낭에 카피가 있기는 한데 꺼내기가 귀찮아 울며 겨자 먹기로 10솔을 지불한다.
국경초소 앞에 있는 세 그루의 파인 트리가 퍽 인상적이다. 그 앞에는 이상하게 생긴 돌장승은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다. 어쩐지 친근하다. 우리나라 장승같가도 한데... 로키마운틴을 여행 할 때 본 토템풀 같기도 하고. 잉카의 창조주인 비라코차 모형인가? 하여간 뭔가 심지가 깊은, 행운을 주는 그런 모습이야. 그옆에 있는 간판에는 알아먹지도 못한 글씨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다. 여러 가지 꽃을 단 빨간색 자동차도 국경을 통과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아마 결혼식을 올리고 허니문 여행을 떠나는 모양이다.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20여분 정도를 가니 티티카카 호수 변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도착한다.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였다
미니버스를 타고 코파카바나까지 오는 동안 내내 국경초소 앞에 있는 돌장승의 잔영이 지워지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점심을 먹기 위해 호수 변으로 걸어 나갔다. 우와! 이거 완전한 바다야! 쪽빛으로 물든 바다, 그리고 해변!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스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를 바라보며 우리는 해변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미 페루 쪽의 티티카카를 돌아보았지만 볼리비아 쪽에서 바라보는 파란 호수는 정말로 환상적이다.
어떤 형용할 수없는 ‘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다시 예의 국경초소에 세워진 돌장승의 잔영이 떠 오른다. 파란 호수에 나타난 돌장승. 비라코차를 닮은 듯한 모습. 과연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는 존재했던 신일까?
고대전설에 의하면 먼 과거시절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였고, 인근에 있는 티아우아나코는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였다는 것. 일설에 의하면 티아우아나코는 기원전 1만 5000년 전에 세워졌다는데, 티티카카 호수에 대홍수가 나서 티아우아나코를 삼켜버린 후 세월이 지나면서 수위가 30m나 낮아져 지금은 호수와 분리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마라 전설에 의하면 잉카의 창조신인 비라코차Viracocha는 먼 ‘바다의 거품’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잉카 족의 태양신인 ‘인티Inti’가 바로 ‘비라코차’라는 것. 비라코차는 ‘바다의 거품’이라는 뜻이며, 나스카에 있는 지상그림도 비라코차가 그렸다는 것이다.
비라코차는 키가 크고, 턱수염을 길렀으며, 피부색이 하얗고, 샌들을 신고, 길고 헐렁한 옷을 입은 백인이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그는 지구가 홍수로 물에 잠기고 태양이 사라져서 암흑으로 변하여 사람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는 무서운 시대에 티티카카 호수에 나타났다고 한다.
▲먼 과거에 티티카카 호수는 바다였는데, 주변의 해변이 융기되어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티티카카 호수에 나타난 비라코차는 과학과 마술에 능통한 자였으며, 무서운 병기를 다루고, 병자를 치료하는 신통력을 가진자로서 혼란한 세계질서를 바로잡았다.
그는 티티카카 호수 인근에 있는 티아우아나코에 신전을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한 후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예언을 남기고는 바다 위를 걸으며 서쪽으로 기적처럼 사라져버렸다고 전한다. 잉카인들은 “비라코차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약속했다”는 것을 지금까지 굳게 믿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비라코차가 피부색이 하얀 백인이었다는 전설 때문에 스페인의 피사로가 잉카제국에 침입을 하였을 때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을 비라코차로 받아들여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푸노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여 여행자들이 티티카카 호반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머무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잉카 탄생의 전설이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태양의 섬 Isla Del Sol’과 ‘달의 섬 Isla Del Luna'을 방문하기 위한 것이고, 그 둘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순례지의 하나로 꼽히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검은 마돈나'를 모신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태양신 인티가 망코 카팍과 오크요를 내려 보냈다는 ‘태양의 섬’으로 가려면 다시 배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넘게 가야한다. 그곳에는 ‘태양신전’과 마시면 젊어진다는 ‘잉카의 샘’이 있다고 하는데, 이미 티티카카의 섬을 세 곳이나 돌아온 우리는 ‘태양의 섬’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곳을 다녀오려면 하루를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검은 마돈나'로 유명한 대성당
그래서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난 후 시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대성당으로 갔다. 백색의 성당건물이 마치 그림처럼 나타난다. ‘검은 마돈나’라고 불리는 성모를 모시고 있는 대성당은 볼리비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검은 마돈나는 이 지역 원주민 예술가였던 윤판기 Fransisco Tito Yunpanqui가 1592년 검은 나무에 마리아 상을 조각한 이후, 수많은 기적을 불러일으키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성당 안에는 금으로 장식된 웅장한 제단과 보석으로 덮인 망토를 입고 금관을 쓴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우리는 원주민화 된 성모 마리아님께 애정을 느끼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묵시적인 기도를 올렸다. 이 기적의 성모 마리아를 찾아서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볼리비아는 물론 세계각지에서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멀리 보이는 엘 셀로 칼바리오 El Cerro Calvario 언덕에 오르면 아름다운 호수와 항구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칼바리오 언덕에서 바라보는 황혼은 둘이 보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아름답다고 하는데 다음에나 기약을 해보자. 매년 2월 1일과 2일에는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가톨릭 신자들은 그 때쯤 때를 맞추어 오면 금상첨화의 여행이 될 것이다.
오후 2시. 드디어 버스가 라파스를 향해 코파카바나 터미널을 출발한다. 운전수의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이 돋보인다. 다분히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매혹적인 안데스 음악을 틀어준다. 버스의 부자 소리를 울리는 것도 특이하다. 운전석 앞 백미러 밑에 줄을 달아 심심하면 리드미컬하게 줄을 당기며 부자를 울린다. 정말로 못 말리는 운전수군. 그는 정말로 마치 먼 과거 프레 잉카시대에서 온 비라코차의 후손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