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수은주는 올랐는데 해님이 마실을 나오지 않아 스산한 11월입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서 information을 바꿨어요. 액자를 떼고 스포츠 콘셉트를 연출했는데 어때요? 나는 종종 브랜드 로고를 커스텀 하는 일을 즐깁니다. 여름에 민소매를 10장 정도 커스텀 작업을 해서 입었는데, 이번에 나이키 블랙 패딩을(2XL)을 득템 한 후 빅 로고 패치를 후면에 붙이는 데 1간 이상 걸렸어요. 컴퓨터 자수 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창조 작업은 그만큼 기쁨도 주는 것 같습니다.
-
아직도 킴스 패밀리가 예술인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있나요? <미학>편에서 예술을 다루긴 했지만 "예술은 관조, 진리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40년이 꼬박 걸렸습니다. 미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사건, 즉 진리의 포이에시스( poiesis/진리를 만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에게 예술은 모방이었어요. 그는 예술이 ‘진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여겼거든요. 하지만 하이데거는 "예술은 진리가 스스로를 세우는 방식이다.”고 말합니다.
-
이 말은 예술이 단순히 진리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관조(theoria) 합니다. 그리고 그 관조는 수동적 감상이 아닙니다. 그 순간, 우리는 작품이 열어젖히는 세계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진리가 새롭게 ‘태어나는’ 현장을 목도하기 때문에 관조는 곧 창조의 다른 이름입니다. ‘포이에시스( poiesis)’는 그리스어로 ‘만들다, 생성하다’를 뜻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예술(테크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
<무>로부터 <있음>을 불러내는 합리적 창조 행위였으니 예술은 존재를 드러내는 인간의 능력인 겁니다. 시인은 단어로 세계를 다시 만들고, 화가는 색으로 존재를 다시 세웁니다. 그들의 행위는 세계 속에 숨겨진 진리를 감각적 형태로 ‘불러내는 일’입니다. 이때 예술가는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존재론적 중개자가 된다는 것 아닙니까? 하이데거는 ‘진리(Aletheia)’를 ‘드러남'으로 해석했습니다. 진리는 이미 완성된 명제가 아니라, 가려진 것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예술은 바로 이 드러남의 현장입니다.
-
캔버스 위의 붓질, 음계 사이의 침묵, 시의 리듬 속에서 존재는 자신을 비춥니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말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포이에시스가 ‘생성의 원리’라면, 테크네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지성적 능력입니다. 테크네는 기술(技)과 사유(思)의 결합, 손과 정신이 함께 진리를 형상화하는 방식입니다. 예술가는 진리를 ‘표현’하지 않아요. 그는 진리가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형태를 마련하는 자입니다.
-
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것은 단지 물질이 아니라, 진리의 공간, 존재의 울림입니다. 결국 예술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場)"입니다. 우리는 작품을 보며 세계를 다시 보지요. 그 순간 예술은 더 이상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그것은 존재가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진리의 포이에시스입니다. 예술은 세계를 복제하지 않습니다. 예술은 세계를 다시 탄생시킵니다. 그리하여 예술은,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술은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창조적 사건이며, 그 본질은 관조를 통한 진리의 생성 (포이에시스)에 있다"
-
<토지> 51회입니다. "제 어머니가 여러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사람(영광)도 가버렸어요(양현)" "버림을 받았다는 것과 가버렸다는 것은 다르다(서희)" "혼인을 시켜서라도 징집을 피해보려 하셨는데(환국)" "그 문제는 제가 지원을 하면 자연히 해결되겠지요. 형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진주로 가주십시오(윤국이 환국에게)" "왜 보자고 한 거야 우린 변절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정이 있어 자원한 것이지만 반드시 탈출할 것입니다(윤국이 의열단 연락책에게)"
-
"정신이 나니?" "양현아! 영광이 형을 만날 수 있다면 만나러 가겠니! 위험하고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갈래!(윤국)" "가겠어요(양현)" "양현아! 오빠가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니! 어서 가!"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던 윤국은 하얼빈으로 양현을 보냅니다. 윤국이 이놈 멋집니다. 서희는 윤국이 가족들을 위해 자원입대 결정을 했다는 말에 놀랍니다. 모르긴 해도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윤국은 어머니를 안심시킵니다.
-
"인정사정 다 봐주면 누가 전쟁에 나갈꼬(두만)" 입영 전야 풍경이 통곡소리뿐입니다. "하늘하고 땅하고 딱 붙었으면 좋겠네(장연학)"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이놈들아 나를!(강봉기)" "조선 사람은 씨가 다 마르겠습니다. 씨가" 40년(1984.4.25) 전 군 입대를 했을 때 그 황망함과 당황, 분노, 허탈, 좌절 같은 감정이 고스란히 타임 슬립 되더라고요. 친가와 외가를 통 털어서 처음 군대를 갔기 때문에 어머니는 영장 받고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입영 전야까지 하루도 눈물이 마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1937년 생인 어머니는 천금같은 아들이 군대 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기억이 강렬했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어머니! 나를 위해 울어줘서 고맙습니다. 논산에서 주특기 050을 받고 위병 열차에 올라탔을 때 갑자기 6.25 사변이 떠올랐고, 일제 징용에 끌려가던 조상들이 캡쳐링 되었다면 못 믿겠지만 그때의 비장함이란 그 이상이었습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옆에 두고 엄마가 그리울 때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어머니 보고 싶은 어머니 울고만 싶어요. 울고만 싶어요. 그리운 어머니"
-
최 참판 댁 정원이 을씨년스럽습니다. 서희가 대사 없이 1분가량 슬픈 어미의 모습을 표정연기합니다. "어떻게 된 거냐... 사상범 예비 구속령이라는 건... 내가 나올 수가 없어. 네 어미가 손을 쓴 거냐?(길상)" "윤국이입니다(환국)" "죄송합니다.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가슴이 가슴이 조여 들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여보! 우리 윤국이 양현이 어쩌면 좋습니까?(서희)" "양현이는 총명한 아이고, 윤국이는 강한 아이입니다(길상)" "나리 곤도 서장이 찾아왔습니다(장연학)"
-
"만약 지난번처럼 무모한 탈출을 시도한다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네 아들이 위험해져!(곤도)" 출소하자마자 아들이 자기 대신 징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길상도 가슴이 찢어 내렸을 것입니다. 해관을 찾은 길상, 해관은 마음의 붓으로 다시 시작하라고 이릅니다. "이미 붓을 놓은지 오래입니다" "하얼빈 시내입니다. "찾아온 건 좋은데 발소리가 너무 컸어. 바람구멍 나지 않으려면 가만있는 게 좋을 거야... 성미가 급하구먼 40이 넘도록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으면서 몇 달을 못 참아.
-
네 마음에 원한이 없는데 지금은 알려줄 수 없어. 그때 보자고(두수)" "일본인 보급부대가 지나간답니다" "차단한다" 두 돈 반 별 트럭에 황 군이 20명쯤 타고 산길을 통과합니다. "반 강제로 끓여 왔다" "난 탈출하려고 지원했다" 하얼빈 교외로 차출을 당한 윤국은 두메의 구역에서 기습 총격을 당합니다. 윤국과 영호(한수의 아들)가 탈영을 했고 두메가 이끄는 의열단의 포로가 됩니다. "쏘지 마시오!" "자원병들이면 일본에 충성한 개들이요!"
-
"여기는 어떻게 온 거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영광이가 공연하는 극장에 데려다줄게" 하얼빈 술집 흑룡입니다. 영광을 만난 양현, 하지만 영광은 매몰찹니다. "그 아이 못 알아보겠어요? 그 아이 양현이에요(인실이 상현에게)" "그냥 갈 거였으면 목숨 걸고 오지 않았어요(양현)" "목숨이라고 했니? 나 같은 놈을 위해 목숨 걸지 마!(영광)" "최 윤국, 당신의 아들이 실종됐어(곤도)" 곤도가 서희에게 윤국이 실종되었다고 알리자 서희는 절대 우리 아들은 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
도솔암에 가있는 길상을 서희가 찾아왔습니다. "윤국이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처음부터 탈출하려고 간 거요. 아무 일 없습니다(길상이 아내에게)" "한복이도 넋이 나가 있습니다. "아이고 영호야!" "우리를 죽이려는 걸까(영호)" "시험하는 걸 거야. 자기 조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윤국)" 윤국은 두메에게 붙잡혀 영호와 함께 나무 기둥에 묶여있지만 생의 의지가 활활 불타오르는 것이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진 것 같아 가지고 왔다(두메의 장모)"
-
"저도 아버지처럼 남아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윤국)" "나는 민족주의자의 자식은 필요 없다(두메)" 김길상을 민족주의자로 말한 걸 보니 두메는 사회주의 혁명가로 보입니다. "자꾸 밀쳐내려 가라고 그러지 마요(양현)" "내가 왜 말없이 떠난 지 아니! 니가 떠난 후 윤국이는 학도병으로 지원했을 거야. 목숨을 내놓은 건 윤국이야. 내가 아니라. 지금은 너를 잡을 수가 없어. 돌아가라 양현아!(영광)" 양현은 윤국이 양현을 대신해 학도병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듣고도 영광에 대한 사랑이 흔들리지 않아요.
-
"난 인생을 허비했어... 곧 전쟁이 끝날 거야. 곧 일본은 망할 거야(상현)" "기생 아이 하나 만든 일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요(정석)" "선생님!" "양현아!" 책갈피에 꽂혀진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양현의 네 살 때 장례식장을 타이머시 시킵니다. "그 사람 맞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 사람 맞죠!" 아버지가 상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한꺼번에 두 가지 큰일을 양현이 어찌 받아들일지 아비 된 입장으로 짠하고 안타깝네요. "양현아!" "선생님!"
-
"여기가 아버지의 나라 조선이에요. 조선 사람들은 왜 저렇게 불쌍하게 사는 건가요?(쇼지)"찬하와 오가다는 인실에게 아들을 데려다주려고 조선을 거쳐 만주로 향합니다. "쇼지가 왔소!(찬하)" "잘했다 쇼지야" "누구란 말 하지 말고 가서 만나면 되지 않소(찬하)" "저 아이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을 자신 없어요(인실)" 독립군 강두메가 헌병 초소를 습격하고 방화를 합니다. 쾅! 두수가 두수 진영을 염탐하다가 두메가 두수를 붙잡았습니다.
-
"이름은 귀녀, 성을 가진 자식을 갖겠다고 결심을 했어... 버림받고 처형 당했어. 내 아버지도 함께... 김길상이 가 왜 말하지 않았을까?... 네 아버지 강포수.. 이래도 거짓말이야(두수)" "물어볼 게 있다. 악질 반동분자의 자식. 인민을 선택하고 조직원으로 남겠냐, 니 부모를 선택하겠냐! 어서 선택해! 부모냐 이념이냐!" 두메는 윤국을 가리키며 원수의 자식을 왜 살려주냐고 두메의 복수혈전을 자극합니다. 꼼짝 마라 상황인데 윤국이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공부했며 위기를 넘깁니다.
-
"그러지 마오! 김길상 그분 강 서방과 우리 옥이 중매를 서주신 분이야. 이러면 아니 되오!(장모)" "내는 청년 어머니 아버지한테 빚이 있어. 이렇게라도 빚을 갚을 수 있어 다행이야. 날래 도망치라!" 인실이 아들 생각에 가운을 벗어재치고 밖으로 나갑니다. 남자 세명이 마차를 타고 떠나가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양현아! "양현아! 아픈 건 버림을 받은 사람 만이 아니다... 네 나버지도 오랫동안 아파하셨어(인실)" '여기 앉거라. 내 너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게냐! 난 대답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어서 여기를 떠나거라. 널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라 어서!(상현)"
2.
11월의 스산한 공기 속, 액자를 떼고 스포츠 콘셉트를 연출한 당신의 공간 변화는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창조적 행위’의 선언처럼 보입니다. 나이키 패딩에 로고를 직접 커스텀 하는 시간, 그것은 ‘테크네(techné)’의 실천이자 예술의 본질 — 진리를 드러내는 ‘포이에시스(poiesis)’의 경험입니다. 하이데거는 예술을 “진리가 스스로를 세우는 방식”이라 말했습니다. 당신이 표현한 “관조는 곧 창조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은, 그 사유를 감각적으로 되살려냅니다.
-
우리는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열어젖히는 세계 속에서 드러남의 순간을 목격합니다. 즉, 예술은 진리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게’ 하는 장인 셈이죠. 이 철학적 통찰은 <토지> 51회에 대한 감상에서도 이어집니다. 작품 속 윤국과 양현, 서희, 길상 등의 비극적 서사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의 진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한 편의 예술입니다. 윤국의 자원입대 장면, 그리고 어머니의 통곡은 개인의 서사 너머로 민족의 고통을 드러내는 집단적 포이에시스로 읽힙니다.
-
“조선은 망했지만 조선의 땅은 남아있소.”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녀는 현실의 잔해 속에서 존재의 빛을 본다. ‘땅’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진리를 품는 존재의 근원이다. 서희의 관조는 냉정한 관찰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것’을 발견하려는 시선이다. 그 관조의 순간, 서희는 이미 예술가다. 그녀는 고통 속에서 존재를 ‘응시’함으로써 진리의 문을 연다.
-
‘포이에시스(poiesis)’는 무에서 있음으로, 혼돈에서 형상으로 나아가는 생성의 힘이다. 서희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포이에시스다. 조국이 무너지고, 가족이 흩어지고, 도덕과 질서가 혼돈에 빠진 시대 그녀는 눈물로 세상을 다시 ‘만들어낸다’. 그녀의 손은 사대부 집 아녀자의 손이지만, 그 행위는 화가의 붓질이나 시인의 운율만큼이나 정교하다. 그녀는 황폐한 땅을 일구며 ‘삶이라는 예술’을 통해 진리를 형상화한다.
-
그녀가 지키는 ‘땅’은 단순한 생존의 터전이 아니라, 진리가 자신을 드러내는 장소(장)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진리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존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돌발적 계기, 그것이 ‘사건(Event)’이다. 서희에게 ‘사건’은 조국의 몰락이었다. 이 사건은 그녀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로 만든다.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 주저앉을 때, 서희는 사건의 부름에 응답한 주체가 된다. 그녀는 “진리에 충성(fidelity)”한다.
-
망국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조선의 가능성’을 다시 세운다. 그 충성의 과정이 바로 포이에시스,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는 창조의 행위다. 예술의 본질은 ‘말’이 ‘삶’이 되는 것이다. 서희의 언어는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진리의 목소리로 울린다. “당신들을 위한 침략 전쟁에 왜 내 자식을 내놓아야 하나. 내 아이는 절대로 안돼오. 절대로 아니돼.” 이 한마디는 문학을 넘어선 ‘사건’이다. 그녀의 말 속에는 인간의 존엄, 모성, 조국, 존재의 의미가 압축되어 있다.
-
그 언어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진리의 출현 예술적 형상화이다. 그녀의 언어는 관조에서 시작해 창조로 이어지며, 진리의 포이에시스로 완성된다. 예술은 복제나 모방이 아닙니다. 당신이 말했듯, 그것은 “진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붓, 자수, 패딩, 혹은 한 장면의 연기조차도 진리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예술은 존재의 은폐를 걷어내는 사건이며, 우리는 그 순간에 참여하는 증인이 됩니다. 결국, 예술과 삶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창조는 일상 속에서, 진리는 손끝에서 드러납니다. 패딩 위의 로고도, 드라마 속 눈물도, 당신의 글 속 사유도 모두 진리의 한 형상입니다. 예술은 정말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창조의 사건일까?
2025.11.7.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