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가을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무더위에 지친 마음이 먼저 달려가 맞는 구월. 거리에 울려 퍼지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주제곡이 계절에 민감한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흔들었다. 아릿한 바이올린 선율이 왠지 모를 좋은 예감을 몰고 왔다.
첫 독서모임이 있던 날 나는 바삐 서둘렀지만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첫날부터 지각한 것이 마음에 걸린 나는 살짝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스물 댓 명의 회원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앞사람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먹한 마음을 목례로 대신한 나는 가만히 뒷자리 의자에 걸터앉았다. 좌장의 말은 앞으로 이 동아리를 어떤 식으로 꾸려나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조금 어순선한 분위기 속에서 좌장인 그가 내 앞으로 와 우뚝 섰다.
“다음 시간에는 늦으면 안 됩니다.”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내려온 그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먼저 내려온 나는 출입문 뒤쪽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얼른 우산 묶음을 들고 뛰어가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비닐우산 두 개를 사서 그중 하나를 내게 건넸다. 대나무살이 박힌 푸르스름한 비닐우산. 걸을 때마다 찰싹거리는 우산을 받쳐 들고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도 통하는 걸음이었다 할까. 이십분 남짓 걷는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을지로 삼가 명보극장 어름에 있는 낡은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 삐걱거리는 나무계단 2층에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여남은 개의 다탁이 놓여있는 아담한 찻집. 여주인이 조심스럽게 탁자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갔다.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비와 커피와 음악.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가 점퍼 안 호주머니에서 작은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이거 네 생각나서 샀어. 집에 가서 들어봐.”
그 말이 왜 ‘나는 너를 좋아해’라는 말로 들렸을까.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그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집에 돌아와 무슨 의식을 치르듯 정결한 마음으로 테이프를 열었다. 묵직하면서도 경쾌하고 장중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리. 인디언 플루트의 섬세한 음색이 어떤 음악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온을 불러왔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자연의 향기였다. 북소리와 플루트만으로 그리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다니. 음률이 안내하는 신비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깃털 달인 모자와 동물의 뼈로 만든 목걸이를 한. 한 부족 청년이 수호신 나무 아래 서 있었다. 바로 그였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잠이 들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눈을 뜬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더냐.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니 내 하잘것없는 일상이 돌연 의미가 있어졌다. 발부리에 채인 돌멩이 하나도 소중이 여겨졌다.
신성한 영혼의 점화였다. 무시로 그가 보고 싶었다. 눈송이처럼 사뿐 날라서 그에게 가 닿고 싶었다. 운명의 만남이란 반드시 거창한 장소나 눈에 번쩍 뜨이는 특별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상에서의 사소하고 우연한 때 느닷없이. 화단에 싹이 돋듯 그렇게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낯선 길이 하나도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본 적 없는 사람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음으로 다가오는 우연 같은 필연.
그는 나 혼자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옥죄고 있는 현실의 벽이 크게 느껴질수록 그리움이 깊어갔다. 지독한 마음쏠림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랑은 도덕이나 관습 이전의 문제라는 것을. 이성의 논리로는 아예 잡혀지지 않는 감정이라는 것을.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를 장식하고 포인세티아 붉은 화분이 세모의 정취를 더해줄 때 예술의 전당 앞 골목을 그의 팔 깍지를 한 채 걸었다. 잠시 기분 좋아 하던 그가 팔에 바짝 힘을 주며 말했다.
“우리 이다음에 죽으면 누구한테서 사리가 더 많이 나올까?”
그것이 작별의 말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고작 헤어져주는 일이라니. 가슴 한 구석에 휘도는 바람소릴 들으며 나는 긴 머리를 잘랐다. 무수한 대중가요와 소설 속 이야기가 바로 내 얘기가 되었다. 침울한 심정을 삭혀야만 하는 시간. 내 안에서는 노상 싸락눈이 내렸다. 강변을 함께 걷거나 손잡고 언덕에 오르는 꿈을 꾸길 여러 번. 어쩌다 전파를 타곤 하던 그의 목소리라도 듣는 날이면 수평선으로 물러가던 파도가 되밀려와 삽시간에 나를 덮어버렸다.
해변의 노래 같은 나의 사랑. 그 애잔한 슬픔의 덩어리. 가까스로 가라앉힌 수면 위로 울컥 그리움이 솟구칠 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솔기를 비집고 나오는 실밥처럼 감추려 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던 마음의 돌기. 그 가슴의 윙윙거림. 격정에 찼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 사랑이란 본디 애달픈 거라고. 다른 이들도 다 그러고 살더라고 애써 위안하며 털외투를 열 해쯤 입고 벗었을 때 그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암이란 괴물과 싸우다 삶의 끈을 허망하게 놓아버렸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영정사진 속 그는 웃고 있었다. 하늘 길 배웅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눈물바람을 일으키진 않았다. 다만 가슴 한 골짜기에 깃들어 살던 새 한 마리를 멀리 창공으로 날려 보냈을 따름이다.
인디언 플롯을 다시 듣는다. 내 생애 영혼의 울림이 가장 컸던 시간을 리셋 한다. 책장에서 그가 마지막 선물로 준 김용익 소설집 <꽃신>을 꺼냈다. 누런 갱지처럼 변해버린 속지. 9포인트나 될까. 작게 박힌 글자들 속에서 손바닥만 한 사진엽서 한 장이 떨어진다. 동백꽃 가지에 동박새가 앉은 그림. ‘My soul-mate’로 시작된 짧은 글 말미 “나 없는 동안에 아프지 마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엽서 속 동백은 지지도 않고 내 마른 가슴을 붉게 물들인다.
흘러서 아름다운 것은 강물만이 아닌 것 같다.
(전 민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