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그리워도 다가 갈 수 없었다. 그냥 다가가면 될 일인데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긴 것이다. 보고 싶으면 꽃을 향해 가면 될 일이고 사람이 보고 싶으면 사랑의 감정을 앞 세우면 될 일인데... 그러게 말이다. 봄이 오면 제일 궁금한 것이 버들 강아지가 피었는가? 하는 궁금증이다. 그 마음이 떠나면 다시 찾아오는 것은 수선화 소식이고 이어서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은 튤립이다. 사실 새해 들어 마음에 살며 시 드는 꽃은 영춘화다. 봄을 영접하는 꽃이기에 마음에 담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 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일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도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펼 수 없는 일처럼 슬픈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 중에 가장 슬픈 사랑이 짝사랑인 것처럼 그리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처럼 마음 아픈 일도 없는 것 같다.
미완의 일처럼 애가 타는 심정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한 일이 다시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 꽃을 보러 가지 못하다. 오늘이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사랑이 전제된 보 고픔은 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 같다. 간밤에 평소처럼 잠을 청하지 못하고 자정을 넘어 두 시간이 지난 시간까지 자리에 눕지들 못하였다. 격정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미완의 세월이 십여 년 흘러왔는데 매듭이 보였기 때문이다.
미완의 일은 자신에게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나의 성격상 하고자 하였던 공적인 일이라도 매듭되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성격이라 늘 찜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피곤할 만도 한데 평소보다 한 시간 반정도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자 짐을 챙겼다. 먹을 것 몇가지와 머물며 사용할 용품, 그리고 노트북과 신변잡기 몇 가지를 가방과 백펙에 넣어 지하 3층에 있는 차에 실어 두고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간수해 두어야 할 일도 챙겨 두었다.
화초에 물을 듬뿍 준 후 예비용으로 페트병 일곱개에 물을 담아. 한쪽에 세워 두었다. 부재중 식구가 쉽게 물을 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재활용품과 버려 야할 쓰레기를 전부 내다 정리하고 버렸다. 다시 올라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세탁물을 세탁기를 돌려 건조대에 널어 놓았다. 요즈음 제 노는 허리와 무릎이 무척 안 좋아 이런 일을 할 수 없어 나의 몫이 댄지 오래되었다. 지금은 물리치료로 버티지만 6월에 수술을 할 예정이다. 허리는 신경만 잘 정리해 두면 나처럼 고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수술을 결정한 것이다. 당분간 열흘정도는 손을 보지 안고도 지나칠 수 있도록 모든 가사일을 전부 정리한 후 반려견을 차에 태우고 큰 아스팔트 길로 나섰다.
1월말 즈음 다녀온 후 4개월만에 하향 길이다. 길이 약간 밀린다. 산곡에서 제1터널 사이까지 밀렸다. 호법근처도 안심할 수 없다. 4개월 사이 변모된 고속도로 주변 모습이 다가왔다. 안보이던 집과 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도착한 면소재지 필요한 것이 없을까 하다 그냥 지나쳤다. 산막으로 오르는 길에도 변화가 생겼다. 농막 몇개가 새롭게 들어섰다. 세월은 무엇인가 새롭게 꾸민다. 내가 상상으로 그려 놓은 대로 그렇게 다가온 산막, 1. 우체통에 가득한 우편물, 2. 불쑥 멋대로 자란 잔디에 섞여 있는 잡초, 3. 텃 밭을 차지하고 있는 덤불. 4. 화단에 침범한 알 수 없는 풀. 5. 구별 안되는 무질서. 6. 데크에 놓여 있는 테이블과 의자에 내린 송화가루와 미세먼지. 수북하다. 정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봄이면 늘 겪는 일상들이다.
그래도 기쁜 마음을 몰아주는 것은 하는 일은 봄 꽃이며 들꽃이다. 매 발톱, 딸기 꽃, 붓꽃, 철쭉, 초롱 꽃, 엉겅퀴, 양지 꽃, 등이다.
특히 산막에서 차례대로 볼 수 있는 꽃 순서를 적어보라 하면 다음과 같다. 영춘화를 시작으로, 매화 꽃 산수유 꽃이 터지면서 수선화가, 튤립, 양지 꽃 피고 진달래가 찾아온다. 그 다음부터는 은방울 꽃 향기 풍기고 붓꽃도 보라 빛이 먼저 앞서고 뒤를 이어서 흰, 노란 붓꽃이 뒤를 이어서 핀다. 그리고 살짝 딸기 흰 꽃이 필 무렵 모과나무 꽃이 찾아오면서 덩달아 개살구 꽃과 앵두 꽃이 핀 후 함박꽃이 크게 웃는다. 그러면 봄은 끝물에 들고 여름 꽃으로 범꼬리와 원추리 과 꽃들과 금 꿩 다리가 얼굴을 내민다.
작업복을 성급하게 갈아 입고 잔디 앞에 섰다. 뽑고, 자르고, 깎고 반나절 한 후 텃밭을 갈아 엎었다. 잉여산물들을 전수 한 곳에 모아둔 후 허리를 폈다. 잠시 휴식, 옛적에는 담배를 피었는데 끊은 지 한 35년된 것 같다. 잘한 일이다.
갈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허기도 느껴졌다. 오늘 미완의 일들은 내일 하기로 한 후 우선 씻고 차를 몰고 면내로 나갔다. 갈증과 노동의 독을 씻고 원기를 회복할 목적으로 막걸리와 몇 가지 재료를 사서 다시 올라왔다. 불 판을 꺼내 준비한 후 준비한 식재료를 올려 지글지글 그리고 한 잔~~~ 가슴이 뚫린다. 설거지를 끝내니 어두움이 밀려온다. 오늘따라 밤이 어둡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어둡다 잔뜩 흐린 것이다. 비가 오려는 가보다. 내일 갈아엎어 놓은 밭에 퇴비를 뿌려 놓고 모래 모종을 심을 계획인데 하늘이 돕는 것 같다. 모처럼 고요한 산막에 음악을 펼쳤다. 음악이 흐른다는 표현이 제대로 그려진 것처럼 실내로 가득 찬다. 선율과 음률이 교차하며 모진 마음을 여리게 도와준다. 행복한 순간이다. 슬픔이 몰려올 틈을 안주는 경쾌하고 활기찬 음악의 세계다.
반대로 애상을 끌어당기는 음악의 세계도 분명 존재하지만 요즈음 들어 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허 방진 마음으로 듣는 경우도 생긴다. 또 하루를 살고 내일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내일도 산막을 위하고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내일은 오래되고 버려야 할 책을 책 한 권을 선택하여 압화 갈피를 서너 곳 만들어볼까 한다. 그리고 꽃 모양과 어울리는 액자에 넣어 가까운 이웃에게 선물해볼까? 한다. 산막 주변 산은 점점 나무가지와 잎사귀들의 밀도가 점점 촘촘해진다. 곧 여름이 찾아올 징후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