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평생 지니셨던 못배운 한을 아들에게만큼은 남기지 않겠다며 박사 마치도록 군소리없이 등록금에 생활비를 줘오셨던 부모님. 당신들의 소원은 다른 게 없다. 그저 자식 잘되라는 마음뿐이시다. 지금까지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 한다며 새벽출근 마다 않지만 네살박이 아들 소풍도 못 따라가 속상해 눈물짓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소원 역시 다른 게 없다. 그저 적어도 좋으니 고정적인 수입 생기는 거다.
PD수첩을 보았다. 무엇보다 가슴을 후벼파는 말은 다름아닌 우리는 약자라는 것이었다. 교수되는 게 로또 맞는 것으로 까지 조소적으로 비유되는 세상이다. 친구들은 나보다 못한 대학 나오고서 또 나보다도 못 배웠으면서도 다들 집장만 했다고 애들 사교육비 100만원 우습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날 부러워한다. 넌 훌륭한 일 하잖냐고...명예가 있지않냐고... 그들이 PD수첩 보고 그런 말 계속 할 수 있을지 궁금도 해진다.
매번 강의 부탁할 때 마다 교수가 우리에게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 역시 굴욕감을 준다. 그는 우리가 약자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강의 부탁에 "맨 입으로 되나"하며, 또 번역원고 뭉치를 내민다. 기말 교양시험 답안지 뭉치더미를 내밀며 월말까지 성적입력 다 시켜놓으랜다. 상대평가 신경쓰라면서. 방학 동안 학생들 어학강의 해주랜다. 20만원 주고서. 그러면서도 정말 생각해주는 것처럼 말한다. 고맙습니다란 말까지 기대하는 눈치다. 생색내잖은가.
루쉰이란 중국의 문호가 한 말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독재자의 반면은 노예이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는 만능이지만, 그것을 잃으면 노예근성 100퍼센트가 된다......노예가 주인이 됐을 때 그는 결코 주인이란 호칭을 폐지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십년 전엔가 교수 부임했을 때 얼마주고 들어왔는지 알고 있다. 또 때가 되면 내게도 요구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 건 굴욕감이다. 내가 전공하는 루쉰이란 작가가 필생토록 민중에게 당부한 것이 바로 노예근성을 없애라는 것 아니었는가. 난 내가 십년 가까이 수양한 것까지 포기 하면서 그 자리에 앉고 싶지도 않다. 배울만큼 배우고 또 누구보다도 처지를 잘 아는 분이 왜 그러십니까 하고 따지고 싶지만, 목에까지 올라 올 뿐 끝내 뱉아 내지 못한다.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바라는 거 대단치 않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 "생계"만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하지만 난 궁극적으로 아주 "대단"한 걸 원한다.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유롭게 사색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의 십년공부를 존중해주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 지금처럼 가식적인 인정이 아닌...
한 시간강사의 자살과 PD수첩 보도로 일정 정도나마 사회 이목을 끌은 만큼 다음 학기...내년...후년...십년 뒤에는 분명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시간강사 여러분 모두 내외적으로 더 좋은 내일이 오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저는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하고 돌아온 지 아직 얼마 안되는 초년병으로, 이제 쓴 맛을 보았기에 주제 넘게시리 비애라는 말까지 써가며 글을 올렸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인용한 글은 루쉰 잡문 <속담>에서였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독재자의 반면은 노예이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는 만능이지만, 그것을 잃으면 노예근성 100퍼센트가 된다. 손호는 폭군이었지만, 진나라에 항복하고 나서는 어릿광대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송나라 휘종은 제위에 있을 때 거만 그 자체였
첫댓글 안녕하세요, 선생님, 인용하신 루쉰(노신?)의 글이 실린 책을 읽어보고 싶군요. 어떤 책인지 좀 알려주세요.
제가 인용한 글은 루쉰 잡문 <속담>에서였습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독재자의 반면은 노예이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는 만능이지만, 그것을 잃으면 노예근성 100퍼센트가 된다. 손호는 폭군이었지만, 진나라에 항복하고 나서는 어릿광대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송나라 휘종은 제위에 있을 때 거만 그 자체였
그 자체였지만, 포로가 되고 나서는 어떠한 굴욕도 감내했다. 자신이 주인일 때 모든 타인을 노예 취급하는 자는, 주인을 갖게 되면 스스로 노예임을 감수한다. 이것은 세상의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다"
이같은 말은 실로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비열성 중 하나인 보상심리를 질타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비단 중국인 뿐 아니라 인간이 지니는 노예성, 비겁함을 한치 유보 없이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려 한 것은 그가 필생토록 추구하였고 끊임없이 제기한 주제의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