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는 거칠다. 해변에서 조금만 나가도 높은 파도, 거센 바람이 뱃전을 때린다. 그런 바다와 매일 사투를 벌이는 바다 사나이들에게 한잔 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갓 잡은 생선 막회에 막소주 한 사발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 문제는 숙취다. 빈속에 급하게 들이켠 독주는 다음날 아침이면 머리와 뱃속에 화끈화끈 불을 지핀다. 그럴 때면 바닷가 술꾼들이 찾는 해장국 3총사가 있다. "부산에 복국이 있고 전주에 콩나물해장국이 있다면 강원도엔 우럭미역국과 섭국, 곰칫국이 있다"는 게 그들의 얘기. 피서 떠난 들뜬 기분에 과음을 했다면 다음날 아침 바다 사나이들이 추천하는 '숙취 해결사'를 찾아가 보자.
미역국은 볶은 쇠고기로 국물 맛을 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육고기보다 생선이 흔한 강원도 해안지방에선 예부터 쇠고기 대신 우럭을 써왔다.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국물 맛이 고기 육수보다 윗길. 미역이 팍 풀어질 무렵 솔솔 뿌려 넣은 들깨가루가 고소함을 더한다. 강릉 초당 순두부촌 건너편 강문 회타운에서 회를 주문하면 어느 집이든 국물안주로 이 우럭미역국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른 아침 해장국으로 먹고 싶다면 태광회식당으로 가야 한다. 아침 일찍(오전 6시30분) 식사로 우럭미역국을 파는 이곳이 유일하다. 경포대해수욕장에서 현대호텔을 지나 차로 3분 거리. 강문교를 건너자마자 회센터 초입 강문어촌회관 건너편에 있다. 1인분 5000원. 033-653-9612.
(2)곰칫국 - 삼척 바다횟집
삼척항에서 "곰칫국 맛있는 줄 모르겠다"고 하면 "아직 술을 덜 마셨다"고 타박을 받는다. 곰치는 원래 '미운 오리 새끼'였다. 못생긴 데다 덩치만 컸지 살이 물러?생선 축에도 못 끼는 생선? 취급을 받았다. 그런 곰치를 '금치'로 만들어 준 건 바로 김치. 푹 끓인 곰치에 묵은 김치를 넣고 칼칼하게 끓여 해장국으로 내놓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묵처럼 흐물흐물한 살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 술 마신 다음날 입맛 깔깔한 술꾼들에게 사랑받게 된 것. 항구 초입에 늘어선 많은 곰칫국집 중에서 바다횟집이 원조다. 1인분 6000원. 강릉에서 삼척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삼척해수욕장 쪽으로 빠져 해안도로(새천년로)를 타고 항구 끝까지 가야 한다.033-574-3543.
(3) 섭국 - 양양 오산횟집
섭은 섭일 뿐이다. 타지 사람들은 홍합과 매한가지인 줄 알지만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홍합이 보통 크기에 껍데기가 매끈매끈한 반면 섭은 더 크고 표면이 까칠까칠하다. 맛도 다르다. 삶으면 훨씬 더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쪽이 섭이다. 코앞 바다에서 건져낸 싱싱한섭에 계란을 풀고 부추와 미나리, 대파를 넣고 죽처럼 진하게 끓여 내는 해장국이 동호해수욕장 오산횟집의 명물 섭국이다. 전날 술을 마신 사람이라면 한술만 떠도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1인분 7000원.술안주로 좋은 무침과 찜은 각각 3만원이다. 강릉에서 양양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양양공항 휴게소에서 우측 지방도로를 타면 동호해수욕장에 닿는다. 033-672-4168.
(4) 양양 메밀국수의 자존심-동치미 막국수 vs 육수 막국수
양양 막국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십수년 전부터다.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국도변, 지금은 군사공항으로 바뀐 옛 속초공항 앞 장산리 막국수촌이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양양 토박이들이 최고로 꼽는 막국수집은 따로 있다. 장산리에서 2㎞쯤 더 들어가 있는 석교리 영광정메밀국수(上)는 3대를 이어오는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막국수집. 함흥이 고향인 윤함흥(89) 할머니가 1974년부터 고향식 메밀국수를 팔기 시작해 지금은 며느리 임정자(65)씨와 손자 이제덕(45)씨가 대를 잇고 있다. 이 집 막국수 맛의 비결은 3가지. 한 달 이상 숙성시킨 차가운 동치미 국물과 제분한 지 1주일을 안 넘긴 봉평 메밀로 직접 뽑는 구수한 국수 면발, 그리고 양파를 갈아넣어 만든 매콤시원한 양념장이다. 1인분 5000원. 033-673-5254. 영광정 메밀국수가 양양군 북부 막국수의 대표라면 양양읍 사람들은 송월메밀국수(下)를 첫손에 꼽는다. 소의 목뼈와 가슴뼈로 우려낸 육수에 김가루를 잔뜩뿌려 고소한 맛을 더한 국물은 '은은한 감칠맛'을 자랑한다. 동치미 막국수와 비교하자면 단맛이 덜한 대신 담백하고 맛이 깊은 편. 1인분 5000원. 비 빔국수는 6000원이다. 강릉에서 양양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양양대교 직전 송현사거리에서 내수면연구소 방향으로 우회전, 차로 3분가량달리면 나온다. 033-672-3696.
(5) 입보다 코가 먼저 놀라는 송이전골 - 양양 송이버섯마을
'버섯의 왕' 송이의 제철은 추석 전후다. 하지만 그때를 맞춰 송이 맛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경매로 1kg 단위로 거래되는데 비쌀 때는 ㎏당 60만원씩 갈 때도 있다. 아무리 별미라도 한끼 가족 식사로 맛보기엔 부담스러운 가격. 그래서 송이 요릿집에선 낙찰받은 송이를 급속 냉동시켜 뒀다 1년 내내 조금씩 나눠 내놓는다. 양양 송이버섯마을에서 파는 송이 전골은 '귀하신 몸' 송이를 비교적 값싸게 맛볼 수 있는 메뉴. 새송이.표고.느타리.팽이 등 갖은 버섯에 송이 약 1.5개(100g)를 얇게 저며 올리는데, 그 맛과 향은 다른 버섯들을 단연 압도한다. 쌉쌀한 향과 쫄깃한 육질을 감상하며 한점 한점 씹다보면 '이래서 송이 송이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표고 탕수육에 느타리 샐러드, 목이 고추장무침 등 함께 나오는 반찬도 버섯 일색이다. 칼국수 사리를 포함해 2만원. 2~3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2000원을 더 내면 남은 국물에 밥과 야채를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양양에서 강릉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양양군청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양양구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있다. 033-672-3145.
(6) 삼숙이탕, 술국이야 해장국이야 - 강릉 해성횟집
삼숙이는 아귀를 닮은 생선이다. 아귀가 검고 껍질이 맨질맨질한 반면 삼숙이는 색이 엷고 껍질이 까칠까칠한 것 정도가 다르다. 삼숙이란 이름은 못생겼다고 붙인 별명. 원래 강릉 사람들은 망챙이라고 부른다. 강릉 해성횟집에서 끓여내는 삼숙이탕은 삼척항에서 들여온 생물 삼숙이에다 명태 곤이.미나리.대파를 넣고 직접 담근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내는 매운탕이다. 칼칼한 국물로 속을 풀고, 쫄깃한 삼숙이살과 명태 곤이는 건져내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원래 해장국으로 소문이 났지만 워낙 얼큰하고 내용이 실하다 보니 먹다 보면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해장하러 왔다가 술국 삼아 해장술을 먹고 가는 술꾼들이 수두룩하다는 게 주인 할머니의 귀띔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오징어식해도 맛깔나다. 1인분 6000원. 강릉 남대천변 중앙시장 빌딩 2층에 있다. 033-648-4313.
(7) 짬뽕이라고 다 같은 짬뽕이 아니다 - 속초 왕부
피서 왔다고 입에 선 토속음식만 먹다 보면 어느새 속이 거북해지게 마련이다. 짬뽕.자장면처럼 늘 먹던 익숙한 음식 한 그릇 먹으면 싹 풀릴 것 같은데, 피서지에 있는 중국집들은 뜨내기만 상대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그럴 때면 속초 왕부(王富)에 가보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중국음식점을 크게 하다 친정 동네 풍광 좋은 자리에 가게를 낸 우명숙(53) 사장이 내놓는 짬뽕은 '동네 짱깨집' 짬뽕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징어.문어.조개.해삼.새우.소라.복어살 등 인근 동명.대포항에서 경매로 사오는 싱싱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 있다. 면발도 다르다. 겨울엔 일반적인 하얀색 국수를 쓰지만 여름엔 케일과 신선초를 갈아넣고 반죽한 녹색 국수를 쓴다. 케일의 단맛과 신선초의 쌉싸래한 맛이 조화를 이뤄 자아내는 향미가 독특하다. 1인분 7000원.
하지만 사실 왕부의 '전공'은 정통 중국요리 쪽이다. 서울 특급호텔 출신의 화교 주방장이 만드는 깐풍게살(3인분/3만5000원)과 크림새우(4~5인분/4만5000원)가 우 사장이 자랑하는 대표 선수.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속초 청초호 사거리에서 좌회전, 56번 지방도로를 타고 미시령 방향으로 진행하다 학사평 순두부촌 김정욱할머니순두부집 앞에서 다시 좌회전해 3분쯤 들어가면 나온다. 설악산 울산바위가 보이는 한적한 민박.펜션단지 내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정표를 잘 보며 찾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