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하여
신채린
세상에서 제일 큰 집을 갖고 싶은 꼬마달팽이가 있었습니다. 아빠달팽이는 “세상에는 작으면 좋고 크면 나쁜 것이 있는 법”이라고 하면서 아들이 큰 집을 짓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꼬마달팽이는 양배추 잎 뒤에 숨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큰 집을 짓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또 꼬리를 왼쪽 오른쪽으로 재빨리 움직여 탑처럼 뾰족한 이층, 삼층 방들도 여러 개 만들었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멋진 무늬와 빛나는 색깔을 칠하는 방법도 알아냈습니다. 꼬마달팽이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비는 꼬마달팽이의 집을 성당에 비유하였고 개구리는 참외 같다고 하였으니 꼬마달팽이의 집이 얼마나 아름답고 컸을지 짐작이 됩니다. 꼬마달팽이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크고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된 꼬마달팽이는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꼬마달팽이가 살던 양배추는 뻣뻣한 줄기만 남게 되었고 달팽이 가족은 먹을 것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꼬마달팽이는 큰 집 때문에 이사를 못 가고 결국 굶어죽고 맙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집』이라는 동화입니다. 이 동화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읽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큰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큰 집은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지향점이라고 봐야 옳겠습니다. 인류가 큰 집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신분 상승욕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 큰 집은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이나 궁궐 못지않은 크고 넓은 집에 살면서 고귀한 혈통의 축복을 맘껏 누렸습니다. 일반 백성들에게 비친 그들은 같은 인간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귀하고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등식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고귀한 사람들, 높은 사람들은 큰 집에 산다.’는 등식 말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부와 권력,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큰 집’은 일반 백성들은 감히 꿈도 꾸어볼 수 없었습니다.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은 매우 컸을 것 같습니다. 그 갈망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지지도 않으니 환상으로 대치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환상은 대대로 유전되어 오다가 신분제 사회가 와해되자 드디어 실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왕과 귀족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고 큰 집을 갖게 된 것입니다. 환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이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 누구나 할 수 있는 마법을 이용해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 늘리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20평대에서 30평대로, 30평대에서 중대형으로……. 평수를 넓히기 위해 사람들은 온 젊음을 바쳐 일합니다. 야근도 하고 알바도 합니다. 큰 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일해도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육신이야 고달프든 말든, 친구관계야 서먹해지든 말든, 아이들이야 외롭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큰 집을 향해 달려갑니다. 큰 집이야말로 행복의 요람이고, 지상의 낙원이며, 우월감을 갖게 할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습니다. 꼬마달팽이가 큰 집을 갖고 싶은 것도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생각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큰 집 때문에 도리어 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이웃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은행대출을 받고 친척에게 돈을 꾸고 하여 큰 집을 샀습니다. 고급 가재도구들로 장식한 집은 지상의 낙원 같았습니다. 그들은 큰돈을 들여 집들이도 대단하게 했습니다. 부자 되세요! 늘 행복하세요! 축하인사를 받는 그들 부부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불행이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들은 큰 집을 산 기쁨으로 들떠있었고, 부채는 맞벌이를 해서 갚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부인은 집안 정리가 대충 끝나자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놓고 밤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남편도 자진해서 야근을 했습니다. 몇 달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행복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복병처럼 일시에 그들을 덮쳤습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두 아이는 불에 타 숨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죽자 부부는 서로 당신 탓이라고 우기며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지요. ‘큰 집’ 때문에 일어난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큰 집을 향한 걸음을 잠시만 멈추고 생각해 봅시다. 요즘은 식구 수도 얼마 되지 않는데 대부분 넓은 아파트에 살려고 합니다. 넓은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것을 능력이 없는 걸로 여기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빚을 얻어서라도 큰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아파트 분양을 하면 중대형 아파트가 제일 먼저 분양되는 현상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넓은 집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아파트를 채우는 건 사랑과 행복이 아니라 고급의 가재도구들과 고독입니다. 가족 간의 대화는 끊어지고 서로 제 세계 속에 침잠하여 마주할 시간도 없게 됩니다. 작은 아파트에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시절은 먼 옛날 일이 되고 맙니다.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은 편리한 면도 있는 반면 가족 간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크면 나쁘고 작으면 좋은 것들이 있는 법입니다. 집도 크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무엇이든 분수에 맞지 않는다면 화를 불러옵니다. 제 아무리 크고 좋은 것이라 하여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크면 나쁘고 작으면 좋은 것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신채린 / 1959년 경기 가평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슬픔의 껍질을 만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