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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7년. Royaume de Coree. D'Anville. 51.8 x 35.3cm
청의 강희제가 프랑스인 선교사 레지(Regis), 부베(Bouvet), 짜르뚜(Jartoux)에게 명하여 제작된 지도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한중 경계를 압록, 두만강으로 알고 있지만, 이 지도에는 한중 경계선이 이보다 북쪽으로 올라가 있다.
레지의 실측도에는 조선의 북서쪽 국경선인 이른바 ‘레지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 그려져 있다. 봉성 부근을 지나는 레지선과 압록강 사이엔 평안(平安)도의 중국어 표기인 ‘PING NGAN’이라는 문자가 적혀 있다.
봉황성(봉성)은 청에서 주장한 조선과 청의 국경선이었던 것 같다.
조선말기에 조선유민이 북간도로 이주하여 영토분쟁이 일어 난것으로 알고 있지만, 북간도 뿐만아니라 서간도 또한 애초부터 조선의 영토였던 것이다.

1718년 중국 청나라에서 제작된 황여 전람도(皇與全覽圖)의 유럽판 지도원본인 보곤디(R.de Va ugondy.1750년).
청대 사서인 길림통지(吉林通志)는 “조선의 변경이 선양(沈陽)∼지린(吉林)에 접하였다”고 적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는 펑황청(鳳凰城·지금의 펑청) 부근을 조선과의 경계로 기록했다.
청의 사서나 지도등에 봉성을 국경선으로 묘사하고 잇는데
조선중기에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 봉황성(봉성)이었다면, 언제부터 봉성은 조선의 국경선 이었을까?
조선 초기의 사정은 어떠하였을까?
조선초기, 동국지도와 팔도지리지를 제작하였던 양성지의 글(눌재집)을 인용하면
“(우리나라 강역은) 요하를 경계로 하여 요동과 장백 이남을 포함하는
만리의 강토를 우리의 영토로 해야 할 것이나, 우선은 적어도 명황제가 스스로 약속한 것처럼 요동의 180리에 위치한 연산(連山 :만주 本溪縣)으로 경계를 확정지어야 한다.” “따라서 明이 요동지방의 동팔참로(東八站路)에 장장(長墻)을 설치하고 개주(開州:지금의 만주 鳳城지방)에 진(鎭)을 설치하려는 중국의 계획을 중국에 요청하여 폐기하도록 하는 한편, 북방의 경비를 철저히 강화해야 한다”
조선초기 명과 조선의 국경선은
봉성 보다 더 북쪽으로 멀리 있는 본계현 이었으나, 힘의 논리에 밀려서 봉성이 국경선이 굳혀져 가는 과정을 임을 알 수 가 있다.
조선초기 봉성은 확장된 조선의 영토 국경선이 아니라 축소된 영토 국경선이었음을 알 수 가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에는 간도의 주인이 누구였을까?
고려말 이성계의 요동수복으로 잠시나마 요동을 점령한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점령이었고 그 이전 상황은 어떠했을까?
몽고 원나라의 세력권이었다. 그렇지만 원나라는 중국이 아니다.
비록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지만, 고려는 존재 했으나 중국의 왕조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또한 원나라는 고려왕실에게 심양왕 자리를 만들어서 요동일대를 통솔하게 한다.
그 때까지도 고려유민이 요동일대에서 영유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요동 전체 인구의 3/10이 고려인이었다고 한다.
뭐 어짜피 3/10을 제외한 다른 인종들 또한 당연히 고구려나 발해의 후예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까지..
꺼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사를 뒤집어 보았지만, 중국인이 간도일대에 역사의 주인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려초중기에도 요(거란), 금(여진)이 세력권을 형성하기는 하였지만 이들 또한 중국의 왕조는 아니다.
그리고 고려 초기 고려가 북벌하여
점령한 영토를 알려주는 선춘령비는 두만강 칠백리 밖에 있다고 하니 간도일원은 역사이래 꾸준히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다.
간도일원의 상실은 고구려와 발해의 멸망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이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상실하였던것이다.
간도 일원은 조선말기 조선유민의 이주에 의해 우리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영토가 아니라
역사이래 우리가 계속적으로 영유해온 곳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시대 일부기간 동안 지배권을 상실한 적도 있지만 영유권이나 통치권을 완전히 상실한 적은 없었다.
간도일원은
부여의 동북쪽 이천여리 밖의 읍루민이 남하하여 민족의 교체가 이루어진 땅이 아니라
역사이래 지금까지 한민족과 함께한 한민족의 터전이었다.
이 터전에서 발원한 금나라와 청나라 또한 읍루민의 후인들이 아니라 한민족의 일원이었다.
간도일원의 주민은
고구려와 발해의 백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백성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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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료 감사드립니다.
양성지의 저 글을 처음 보는군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사를 보면 고려의 영토는 의심되는 부분이 많더던데, 특히나 윤관의 9성은 한반도 내로 보기는 이상한 부분이 많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