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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빛그림 스크랩 오래된 미래, 혹은 지나간 미래
감나무 추천 0 조회 10 11.06.22 19:22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6월 13일, 월요일 (첫째날) 생명평화마을에 들다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 '생명평화마을'에 들다, '생명평화마을'은 생명과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생태공동체로 2004년 겨울부터 2005년 여름까지 호남정맥 환경탐사를 같이 했던 후배가 살고 있다기에 나도 몇일 '생명과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제를 안고 여기에 짐을 풀었다.

 

아래글은  2004년 늦가을, 해안선조사를 위해 영광과 무안의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적은 단상입니다. 영광이라는 지명이 명시되어 있는 유일한 글이기에 다시 여기에 옮겨 봅니다.

 

   "여기는 무안군 해제면 도리포라는 곳입니다. 맞은편 영광쪽이 손에 잡힐듯 보이는 아담한 포구입니다. 지도를 보면 무안군은 서해를 향해 북서쪽으로 길게 튀어나온 곳인데 여기가 제일 북쪽 지점이지요. 어제 거나한 단합의 휴유증으로 일찍 민박잡아 놓고 재충전중입니다.둘은 낚싯대 들고 바닷가로 가고 저는 몇일전부터 벼르던 메일을 쓰고 있지요. 물론 내 나름의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서지요. 

      

    첫날 줄포에서 부터 내려오는데 서해의 독특함이 느껴집니다. 가도가도 갯벌이 이어지는데 그야 다른 매체를 통해서 많이 듣고 보아온 터라 별다른  느낌을 받진 않았지만 꼬불꼬불 이어지는 해안선을 보니 동해안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지요. 어디가 바다이고 여기가 육지인지 도저히 구별이 안되는 것은 그렇다치고 뒤돌아보면 지나온 변산반도 쪽이 손에 잡힐 듯 계속 이어지는 것이 내 지리관념을 비웃는 듯 합니다. 몇시간을 달렸는데 뒤를 돌아보면 변산반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남으로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한데 어떤 지점에서는 지나온 지점들에서 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듯도 합니다. 동해안은 몇분만 달려도 지나온 곳이 보이지 않지만 여기는 다릅니다. 꼭 우리 인생같다고나 할까요.

    청춘의 젊은날, 우리가 그토록 추앙하던 시간과 속도의 관념이 부질없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인생도 삶도 그런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념도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조급해지지 말자고 다짐을 해 봅니다. 시간이 지나고 달리다 보니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워지고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했었는데 돌아보면 그자리에 있습니다. 어쩌면 더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곰소만을 끼고 고창군 줄포쪽에서 바라본 변산반도처럼 손에 잡힐 듯 그렇게 서서 따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지난 사랑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동지라 불렀던 친구들이 떠오르고 지금은 낡은 듯 들리는 혁명가들의 이름도 떠오릅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봅니다.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고 떠나왔다고 매몰차게 선언하는 이 삼십후반에 말입니다. 모든 것은 소멸이 아닌 그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생성된다는, 말로만 외쳤던 불변의 진리를 이제사 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풍경도 삶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6월 14일, 화요일 - 15일, 수요일 (둘째,셋째날) 생명평화마을에서 놀다

   

이곳의 일과는 하루 6시간의 노동, 그리고 명상과 생명과 평화를 위한 백배올리기, 생명평화사상학습 등으로 진행되는데 저는 짧은 노동 이외에는 하지 않고 그저 밥을 축내고 왔습니다. 고추밭과 감자밭의 풀 좀 매고 양파캔 자리 흙 좀 뒤집고..... 그저 노동흉내만 내고 밥만 축내었습니다. 

 

    "법성포 알지요 영광굴비로 알려진 곳이지요. 앞은 넓은 뻘이고 뒤편으론 조기와 굴비간판으로 최첨단 병풍을 친 듯 합니다. 법성포 북쪽 언덕 위에는 '백제불교최초도래지'라는 주제로 공원이 조성중이었습니다. 문화재라는 표시를 알리는 적갈색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니 언덕을 파고 불교전시관과 간다라 양식의 불상을 벽면에 새긴 부용루라는 건물이 서 있고 그 위로는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파했다는 인도의 마리난타 존자상과 굴안에 불상을 조각한 탑원을 세운다고 합니다. 조감도를 보니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든 동화사의 불상같이 만들 모양인듯 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서둘러 나왔습니다.

    그게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최초라는 단어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과연 최초라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 잡아야 하는 것일까요. 마리난타 존자가 불상과 불교경전을 백제의 한 인물에게 전해준 그 시점일까요. 아니겠지요. 이미 그 이전부터 불교는 다수의 백제 지식인들에게 퍼져 있었을 것이고 또한 그 사상(종교)은 일반 민중들에게도 입소문으로 퍼져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승리자의 역사이듯 최초라는 단어도 어쩌면 승리자의 것이 아닐까요.

    최초라는 단어로 화장한 풍경을 보고 열받다가 현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표면으로 떠오른 어떠한 중심적 이론도, 세력도 없는, 그저 다양성만이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더더욱 불안한 것은 그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이어줄 어떠한 끈도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 이상한 풍경을 보다가 어쩌면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인가는 아무도 단정하지 못한다. 보다 나은 세상이 올 수도 있고 섬뜩할지 몰라도 어쩌면 더 나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 어느 누구의 말처럼 그 움직임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려면 그 세상을 즐겁게 맞이하려면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그 생각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 겠지요. 진실로 그러하다면 내가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더라도 절망하진 않겠지요.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시도가 있을 것이니까요. 말은 쉽지만 나에게 여전히 버거운 일입니다.

생명평화마을의 감자밭

 

    "영광은 온통 염전의 고장입니다. 소금창고 너머, 비가 올 것을 대비해 간이창고로 소금물을 끌어들이는 염부(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보였습니다. 소금이 가득 담긴 소금포대 하나가 오천원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중국산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차갑고 거대한 자본의 손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옛날엔 온통 염전이었는데 지금은 양어장으로 바뀐 곳이 많았습니다. 삼양염전이라는 곳은 골프장을 짓고 있었고요.

 

    염부들은 모두 소작인들처럼 거대 염전의 일부분을 임대내어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천원이라는 말에 고향의 모습이 떠오르고 과연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고단한 노동의 댓가를 오천원에 판매하는 그들의 현실을 보면서 환경이라는 말은 그저 말장난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쉽게 내뱉는 오염이니 파괴니하는 말들도 어쩌면 말장난이겠지요. 해안선 따라가며 내내 폐어구 천지라고 조사장에 기록하다가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생각하니 그마저도 말장난 같아서 한동안 적지 않았습니다."(2004년 11월, 영광에서)

 

마늘뽑기

 

생명평화마을의 생태뒷간

 

여기서 쪼구려 앉아 뒤를 보고 나니 다리가 뻐근했다. 도시생활을 얼마나 했다고 벌써 다리가..... '몸이란 참 무서운 놈이구나' 어쩜 그 무서운 것에 우리의 희망과 절망이 모두 담겨 있으리라.

 

큰일을 본 후 톱밥과 재를 썩은 이것을 꼭 뿌려주어야 합니다. 퇴비로 사용해야 하니까요....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생태뒷간의 전망

 

사시사철 변하는 풍경을 본다면 온갖 근심이 저절로 사라지겠다... ㅋㅋ 그야말로 해우소이렷다.

 

 

6월 16일, 목요일 (넷째날) 생명평화마을에서 광주로 와서 놀다

 

생명평화마을 뒷산인 태청산 자락을 산책하다. 산책길에서 본 야생토끼

 

마을이 있었던 곳에 있는 오래된 팽나무 당산목

 

마을은 사라지고 빈터엔 개망초와 누가 갖다놓은 컨테이너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태청산 오름길에서 본 영광군 대마면일대

 

 

6월 17일, 금요일 (다섯째날) 대구로 와서 오래된 사람들을 만나다. 

 

반야월초등학교 축부부 연습장면, 43번을 달고 3,4학년부에서 열심히 연습중인 저 꼬마가 지인의 금지옥엽 아들이다. 참고로 반야월초등학교는 박주영선수의 모교란다.

 

인권운동을 하는 후배를 만나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이동, 최저생계비인상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멀찍이서 지켜보다.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지하철 동대구역입구

 

 

6월 18일, 토요일 (여섯째날) 대구에서 후배와 점심을 먹고 영양으로 가다

 

 

6월 19일, 일요일 (일곱째날) 영양군 수비면 왕피천 상류로 가다

 

수비면 수하3리 오무마을(혹은 오산마을, '오무'는 다섯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의 '오뫼'에서 변형되었단다)의 왕피천 탐방안내소,  이마을에서 모든 도로가 끊기고 왕피천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까지 오직 물길로만 이어진다.

 

오무마을 가는길의 도룡뇽(?)

 

오무마을에서 본 왕피천(하류쪽)

 

오무마을 전경, 마지막으로 갔었던 2005년까지 도로가 놓이지 않았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개통되었다. 

 

오무에서 송방가는 길에서 본 왕피천, 상중턱에 흙이 드러난 곳이 울진군 근남으로 이어지은 임도인 듯 하다.송방에서 저 임도를 따라 포장도로를 내려던 계획은 왕피천이 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백지화되었다.  

 

반딧불이의 고향, 왕피천

 

생태계의 보고임을 알리는 현수막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다. 왕피천은 영양군 쪽에서 장수포천으로도 불린다

 

송방마을 전경

 

송방마을의 왕피천, 저 산중턱의 임도와 연결하는 짓다만 교각이 2005년경에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하고 없다. 예전에는 이 송방마을까지만 도로가 나 있었고 여기서 울진군 서면 왕피리까지는 물길을 따라 내려갔었다.

 

고추와 어우러진 마을이정표

 

송방마을 앞의 왕피천

 

어느해던가 이곳에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맑고 맑은 왕피천, 다슬기들의 천국이다.

 

길가에서 발견한 오디...입술이 검어지도록 따먹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몇개만 따서 맛을 보았다.

 

수하2리 비지미골에 있는 김대준가옥(투방집), 사람이 살고 있는 제가 본 투방집중, 가장 완벽한 형태인것 같다. 수하2리에서 신암으로가 가는길로 100미터쯤 가서 우회전하여 작은 다리를 건너 다시 400미터를 더가면 나옵니다.

 

이 집이 바로 영양고추를 광고하는 선전벽보에 등장하는 그 집입니다. 사실 이집은 2004년 녹색연합 '왕피천여름생태학교'의 사전답사를 위해 들렀을때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의 기자 최성열군과 이집 뒤의 원두막에 들렀는데 주인어른내외와 따님 한분이 삼겹살을 굽어먹고 있길래 몇점 얻어먹고 본생태학교때 이곳에 들러 산골이야기를 듣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본답사시 노선이 바뀌는 바람에 다시 가보지 못한 곳입니다. 발이 기억을 하고 있는지 어찌 어찌 이곳으로 향하게 되더군요.  

 

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이집의 바깥주인어른은 작년에 돌아가시고....드디어 이집도 사람이 살지 않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집엔 자물쇠가 잠기고 안주인어른은 이 앞에 새로집을 지어 이주했습니다.

 

굳게 잠긴 자물쇠, 왠지 쓸쓸합니다.

 

안주인어른은 그저께가 할아버지 첫번째 기일이라고 하더군요.... 새집을 지어놓고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을 갔다며 서운해 하더군요... 아들딸들이 모아 지어준 이집에서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2004년 이야기를 했더니 기억이 난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초가를 새로 이어야 하는데 군에서는 아무 말도 없어서 그저 답답하다고 합니다. 하기야 초가를 제대로 엮을 분들이 자꾸만 세상을 떠나고 그나마 남아있는 분들도 기력이 부족하니 군도 답답할 것입니다. 보존은 해야 하고 다른 대책이 없으니 군도 주인도 그저 답답할 뿐이겠지요.

 

낡은것과 새것,그것이 나쁜것과 좋은것의 등치가 아님을 이 오래되고 낡은 집과 집주인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비지미골의 소나무 성황목, 저 소나무숲안에 작은 성황당이 있다. 

 

해가 늬엿늬엿한 비지미골, 흐릿한 정중간의 산등성이가 낙동정맥구간이다.

 

 

6월 20일, 월요일 (여덟째날) 안동시 시내를 둘러보다

 

안동시 이천동에 있는 이천동석불상, 일명 제비원석불로도 불린다.

 

이 풍만한 아름다움 속에 민간신앙과 성주의 간절한 애원이 들어있다. 

 

전탑의 고장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의 표지판, 안동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몇개 남아 있지 않은 우리나라 전탑을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전탑 옆의 당간지주, 법림사 당간지주라고 한다.

 

임청각과 멀리 보이는 신세동 7층전탑, 그옆으로 소음방지벽 하나를 두고 안동에서 영주로 가는 중앙선 철로가 이어진다.

 

임청각의 안내판, 어마어마한 규모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임청각과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을 설명하고 있는 또다른 안내판, 이상룡선생이 사망한 곳이 서란현 소과전자촌이라는데 아마 중국 길림성에 있는 지명인듯 하다. 내가 길림에 살면서 그곳 조선족산악회에 있을때 슈란(서란의 중국발음)이름을 많이 들었었다.

 

임청각 군자정

 

임청각 안채, 다시 저 안쪽에 미음자형의 배치가 이루어져 있는 크고 특이한 구조,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하여 여기서 뒤돌아섰다.

 

군자정과 그 뒤의 본채

 

군자정과 연못, 임청각 앞의 중앙선 철로를 건너면 바로 낙동강이다.  

 

군자정의 의엿한 자태

 

신세동 7층전탑과 그 뒤의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종택

 

신세동 7층전탑의 안내판, 국보 16호라는푯말이  이 유물의 중요성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신세동 7층전탑의 위용

 

그 누가 세월을 거스를 것이며 나이를 속일 수 있겠는가?

 

법흥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안내판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 연못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는데 사람이 살고 있어 출입금지.... 그저 상상만 할뿐이다...

여기서 끝, 힘들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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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22 19:56

    첫댓글 오무마을과 송방마을 산나물하러 간다는 핑계로 들러 본 곳이고 투망집에 갔을 때 노인이 투병중이던데 고인이 되셨다니 명복을 빕니다. 좋은 구경 시켜 주셔서 고마워요.

  • 작성자 11.06.22 22:23

    그렇군요.... 전 오무마을과 송방마을을 나름 자주 갔던 사람으로서 길이 새로 놓여서 전혀 새로운 곳 같았어요... 저도 오랜만에 좋은 곳을 다녀왔습니다...

  • 11.06.22 21:35

    변소에서 볼일을 보면 엉덩이가 시원할 것 같네요~완소

  • 작성자 11.06.22 22:24

    그렇더군요... 앞도 밑도 시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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