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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38 - 환절기 1
S#1. 캠퍼스 / 밤
가로등이 주욱 켜져있고, 인적이 드문 밤의 캠퍼스 풍경.
사람이 없는 대로를 마이클이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 손에는 피자 판 하나를 들고 있다.
달려오던 마이클, 하늘을 우러른다.
S#2. 노천극장 / 밤
자료화면 정도로 하늘의 별이 보인다. 그 별이 보이는 중간쯤에..
경진 : (E) 카시오페이아는 알지? 더블유자로 보이는 거 말야. 저기 안보여?
지민 : (E) 알어. 그 정도는. 가만있자....
경진, 지민, 민재 등이 각자 편한 자세로 앉거나 뒤로 기대어 하늘을 보고 있다.
지민 : 저기있다. 저거다. 저거.
경진 : 그렇지. 그 카시오페이아의 중간 두 개의 별을 동쪽으로 여섯배쯤 연장해봐.
지민 : 동쪽이 워디여.
경진 : 아이구. 저쪽이 동쪽이잖여.
지민 : 연장해서 가면..
경진 : 거기 커다란 별 네 개가 보이니? 사각형 모양이잖아.
지민 : 어디이...
민재 : (역시 옆에서 경진의 손을 따라 하늘을 보고 있다)
지민 : 있다. 저건가부다.
경진 : 그 네 개의 별과 옆에 세 개의 꼬랑지가 보일거야. 연꼬리처럼 말야. 그게 페가수스 자리야.
잘 봐. 날개달린 말처럼 보이지 않니?
민재 : 뭐가 날개달린 말이란 거야? 어디 사각형이 있어?
경진 : 아이구 2, 3등급의 밝은 별들인데 왜 안보여? 거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잖아.
지민 : 그니까 저게 말모양이라 이거지.
경진 : 저게 그냥 말이 아니에요. 저게 원래는 메두사였다는 거 알어?
지민 : 메두사? 머리칼이 다 뱀으로 되있는 괴물 말야?
경진 : 그렇지 그 메두사가 페르세우스 손에 죽었잖아. 목이 댕겅 잘려 갖고. 그때 흘린 피에서 생겨난 게 바로 페가수스라는
아름다운 말인거야.
민재 : 나도 들은 거 같은데. 그게 혹시 포세이돈이 그렇게 만들어줬다고 그러지 않나?
지민 : 포세이돈. 바다의 신 말이지. 와우. (하늘을 보며) 어쩐지 밤하늘이 호러 영화같아졌어.
마이클 : (거의 뛰어오며) 사왔어. 밤하늘 밑에서 피자 파티. 아이 러브 핏자.
경진 : 야야. 달랑 피자만 사오면 어떻게 해. 맥주는 없어?
지민 : 콜라도 없잖아.
마이클 : 왓? 그럼 나보고 또 갔다오란 말이야?
지민 : 그러니까 미리 잘 생각하고 사와야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잖아.
지민 마이클 옥신각신하는데..
민재 : 민경진.
경진 : 와이.
민재 : 근데 이 밤중에 우릴 다 불러낸 게 단지 피자를 밤하늘 밑에서 먹기 위해서냐?
경진 : 별자리 얘기도 해주잖아. 공짜로.
민재 : 정태는 부르지 말라는 건 무슨 이윤데.
경진 : 정태는 바쁘잖아. (말짱한 얼굴로 웃어보이고 있다) 그리고 정태는 피자 안 좋아할걸. 아닌가?
S#3. 동아리방 / 밤
정태,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며 하품을 하고 있다.
정태 : 아이구 배고파. 이것들은 다 어디 간거야?
하는데 디스켓을 들고 들어서는 지원. 정태를 보고는 멈칫했다가.
지원 : 안녕.
정태 : 어.. 웬일이야. 밤 늦게.
지원 : 프린터 쓰러 왔는데. 경진이 못 봤어?
정태 : 아니. 내가 오니까 아무도 없든데.
지원 : 그래? 이쪽 컴퓨터 써도 되지?
정태 : 그럼.
지원 작업을 시작하고 정태 멀뚱히 자기 작업을 하다가..
정태 : 느네 랩 작업은 잘 되가냐?
지원 : ..날 보면 물어볼 게 그거 밖에 없니?
정태 : ..내가 언제 또 물어봤었나?
지원 : (미소..디스켓 넣고 파일을 불러내고 인쇄 지정하고 등등..)
정태 : (다시 말없이 자기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테이블 쪽으로 가서 거기 놓인 책을 괜히 들어서 들춰본다)
지원 : (마우스 작업을 하다가 일어선다) 종이가 없나본데.
정태, 서랍쪽으로 가서 인쇄 종이를 꺼낸다.
지원이 종이를 받으려는데 정태, 모른척하고 자기가 종이를 넣는다. 그러다가..
정태 : (지원 쪽은 보지 않고)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지원 : 뭐가?
정태 : 너하고 나. 언제부턴지 아주 이상해졌어.
지원 : ...
정태 : 같이 있으면 아주 불편해.
지원 : ...넌 그러니?
정태 : ...난 그래. 넌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태 인쇄기의 뚜껑을 탁 닫더니 그냥 나가며..
정태 : 좀 있다 올거니까 나갈 때 문 잠글 필요없어.
정태 끝까지 지원은 보지 않고 나가고 문이 닫기고.. 지원 말없이 모니터를 보며 서있다.
S#4. 노천극장 / 밤
거의 비워진 피자판을 지민이 정리하면서..
지민 : 좀 춥다. 안 들어갈거야?
마이클 : 나도 들어갈거야. 나 목 말라. 지민이 핫커피? 오케이?
지민 : 조오치. 언니오빤 안 들어가?
경진은 아예 드러누워있는 상태고 민재는 혼자 하늘의 별을 보고 있다가..
민재 : 아무래도 난 안 보이는데? 어느 게 안드로메다란 말야?
경진 : 페가수스하고 붙어있대니까.
민재 : 글세. 어느 게 페가수스냐고.
지민 마이클, 바이바이하며 가버리고.
경진 답답해서 일어나 앉더니 민재의 바로 뒤에서 민재의 손을 잡아 민재와 시선 높이를 맞춰서 가르켜보이며.
경진 : 자 니 손끝을 잘 봐봐..
민재 : (그런 자세가 아무래도 어색하다. 슬그머니 빼며) 됐어. 나중에 책에서 보지 뭐.
경진 : 책에 나온 별자리 그림하고 이게 어떻게 같냐.
민재 : (일어서며) 안 들어갈거야? 느네 랩에 갈거래매.
경진 : 지금 몇신데.
민재 : (시계 보며) 열시 다되가는데.
경진 : 아이구 아이구. 오늘 밤안으로 다 해놓으랬는데. (벌떡 일어나더니 진지하게) 민재야.
민재 : (의심스럽게 보며) 왜.
경진 : 우리별 4호에 들어갈 탑재체중에 원자외선분광기라구 있거든. 그게 뭐냐면 에.... 뭐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하여간 별과 별 사이에 존재하는 원소의 종류나 양을 측정하는 거야.
민재 : 설명하기 복잡한게 아니라 잘 모르는 거 아냐?
경진 : 맘대로 생각해. 어쨌든, 그런데, 이게 궁극적으로는 우리은하계의 구조와 모습을 설명하는 이론의 타당성을 제시함으로서
우주의 진화에 대한 실 마리를 얻고자 함이지. 대단하지 않니? 멋있지?
민재 : 용건만 간단히 말해봐.
경진 : 내가 그 역사적인 임무의 한 부분을 맡았거든.
민재 :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얘기야?
경진 : 내가 가장 자신없는 부분. 니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부분.
민재 : (벌써 가며) 가자. 넌 니 랩으로. 난 내 랩으로.
경진 : (슬프다는 듯) 너 나를 메두사처럼 생각하지?
민재 : (할수없어 멈추고 보는) 메두사보단 니가 쪼끔 더 시끄럽지.
경진 : 메두사가 원래는 아주 이쁜 여자였다는 거 알어? 사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메두사를 사랑했었거든.
괴물이 되기 전에 말야. 그래서 메두사가 죽었을 때 그 피로 페가수스를 만들어 준거야. 아름다운 날개가 달린 백마.
민재 : (한심해서 보며) 넌 언제쯤 페가수스가 될 예정인데?
경진 : 일단 포세이돈을 만나야지. 그런데 그러고보니까 너 수염만 기르면 포세이돈하고 좀 닮았다야.
민재 : (정말 도망가고 싶다)
S#5. 인공위성 센터 전경 / 밤
안테나가 돌아가고..
S#6. 인공위성 센터 실험실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납땜 중의 한 부분. 그 옆에 납땜 인두를 들고 서있는 경진.
민재 : 이게 니가 맡았다는 역사적인 임무의 한 부분이야?
경진 : 엉.
민재 : (들어서 본다) 니가 남땜해놓은거야?
경진 : 어. 우리 선배가 이걸 보더니 이러더라. 민경진. 왜 니가 해놓으면 꼭 이렇게 새똥 싸놓은거 같이 되냐?
민재 : 어떤 새가 이런 식으로 함부로 싸놓겠니.
경진 : (웃지도 않고) 왼갖 잡새.
민재, 보다가 할수 없이 웃는다. 손을 내민다.
경진 얼씨구나해서 인두를 건네준다. 민재, 자리를 잡고 앉으며.
민재 : 이런 거 남자친구한테 부탁하면 자존심 상하지 않냐?
경진 : 아니. 그 대신 넌 별자리를 잘 모르잖아. 나만큼 인생과 우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사랑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그러니 이 쯤은 니가 나보다 잘해도 괜찮아.
민재, 이걸 해줘야하나..해서 경진을 본다.
// 인공위성 센터 내의 여러 사진이나 기기들 스케치..특히 우리별에서 찍은 한반도 사진이라든가..
주욱 돌아보면 멀리 잡은 샷으로 민재가 납땜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 옆에서 경진이 부속을 들어서 건네주고 있고.
S#7. 캠퍼스 / 밤
전자과 건물 앞.. 그 중의 불켜진 창문 하나.
S#8. 이교수 랩 / 밤
비어있는 랩 안에 정태 혼자 앉아있다. 작업을 하지는 않고 머리 뒤로 깍지를 끼어 길게 뒤로 기대 앉은 자세.
그렇게 천장을 보고 있다가 의자를 주욱 밀어서 한쪽 끝으로 간다.
잠시 후 다시 이쪽으로 주욱 밀어온다. 무료하게 혼자의 생각에 잠겨 있다.
S#9. 캠퍼스 건물 앞 / 낮
지원이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S#10. 박교수 랩 앞 복도
지원이 문으로 다가서는데 마주오던 진수가 지원을 보더니 걸음을 빨리해서 먼저 도착해 문을 열어준다.
지원 : 고마워. (멈칫) 아. 고맙다는 말 싫다고 했지?
들어서고. 진수, 혼자 웃더니 설레설레해서 따라 들어가고.
S#11. 박교수 랩 내부
남희가 작업을 하다가 들어서는 아이들을 보며.
남희 : 어서 와. 그런데 아직 박교수님이 안오셨네. (시계를 들여다보며) 우리 두시에 모이기로 한 거 아니었니?
지원 : 두시 맞아요.
남희 : 그렇지. 나도 요즘 우리 교수님 닮아가나봐. 나까지 이러면 안되는데..
진수 : (자기 자리로 가며) 교수님 또 미팅 있는 거 잊어버리고 계신거 아니에요?
남희 : 10분 내로 안 오시면 찾아봐야 되는데..아우참.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저번에는 기껏 찾았더니 개미집 들여다 보고
계셨지. 그 전에는 뇌파로 하는 무슨 게임인지 해보신다고 어떤 학생 방에 가 계셨지. 어디 짐작이라도 가야 찾아보지.
S#12. 처장실
박교수가 열을 올리고 있다.
박교수 : 홍보비디오가 제일 좋다니까요. 요즘 사람들 글 안읽어요. 그냥 비디오로 10분이고 20분이고 틀어주면 보지만요.
글로 된 건 반장짜리도 안읽어본다구요. 솔직히 매일 아침 신문마다 광고지가 다섯장에서 열장은 들어 오죠?
그 중에 읽어보는 거 있으세요?
처장 : 그야 비디오가 있으면 좋기야 하죠. 그렇지만 만들어진 게 없다 면서요.
서교수 : 전에 우리별 2호 올리고 난 다음에 제작된 거 밖에 없는데요.
처장 : 어쩐다.. 우리별 3호 발사 이후에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거든요. 학교나 연구소에서도 홍보자료를 요구하는 데가 많구요.
그러니 일단 대략의 팜플렛이라도 만들어서..
박교수 : 아이구 답답하셔라. 밥이 없다. 그럼 쌀을 씻어서 지어 먹어야죠. 여자가 없다. 그럼 거리로 나가서 헌팅을 해야되고..
에구. 이 말은 삭제하구요. 하여간 홍보 비디오가 없다. 그럼 만들어야죠. 언제까지 없어서 못 보여줍니까.
서교수 : 글세 우리도 만들 생각은 했지. 근데 그게 제작비가 만만치가 않아요.
처장 : 얼마나 드나요. 그게.
서교수 : 지난번 외부업체에 맡겼을 때 천만원 이상 들었거든요.
처장 : 허어.. 적지 않은 액수로구만요.
박교수 : 나아참. 그걸 왜 외부업체에 맡겨요. 우리 학교에 카메라 있죠. 편집기 있죠. 인력, 풍부하다 못해 넘치죠.
서교수 : 어떤 인력을 말하는거야.
박교수 : 실비로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줄 인력.
처장 : 글세 그게 누군데요.
박교수 : 저도 할 수 있는데요.
서교수 : 박교수는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몇 개씩 있다며.
박교수 : 그냥 자문위원으로...
처장 : 서교수 어때요. 우리끼리 제작할 수 없을까요.
서교수 : 글세요. 문제는 그런 경험이 있는 학생들인데..
박교수 : 있어. 있다구. 내가 다 구해줄게. (혼자 박수치고) 자아 다 됐다. 내가 여기 있길 잘했네. 나 아니었으면 두분 또..
아이구 돈이 없습니까. 그럼 할수 없죠...이러구 헤어지셨을거 아녜요. 그런 뜻에서 처장님. 저 쥬스 한잔 더 마셔도 되죠?
이상하게 목이 타네요. 제가 뭔가 또 잊어먹고 있는 모양이에요. 하하.
S#13. 운동장
병석과 자현이 만든 자작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흙먼지를 날리며.
자현이 운전을 하고 있고. 옆에서 병석이 초시계를 재고 있다.
난폭하게 커브를 돌아 온 자현의 차가 병석의 앞에 멈춰선다.
자현 : 어때.
병석 : 어림도 없어. 작년도 우승차, 최고속도가 얼만지 알어?
자현 : 이상하네에. (차에서 빠져나오며) S자 주행은 어땠어.
병석 : 글세. 가장 중요한 건 차체가 기준치보다 크다는 거야. 지금 우리 차는 대회기준보다 10센티나 길다고.
자현 : (차를 새삼 돌아보며) 복사기에 넣고 축소복사를 해버릴까.
병석 : (웃다가 한쪽을 보더니) 저 친구 또 왔네.
자현 : 누구..
하고 보면 저만치에 대욱이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보고 있다. 자현이 자기를 보자 한 손을 흔들어 보인다.
병석 : 쟤 3학년이지?
자현 : (대욱에게 자기도 손을 흔들어주며) 어. 산디과 3학년.
병석 : 쟤 혹시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
자현 : 날 좋아하는 게 아니고 책임감을 느껴서 그래.
병석 : 무슨 책임감.
자현 : 내 미니 자동차를 부숴놨거든. (대욱에게 고함 쳐서) 야 일루 와서 우리 차 만져봐. 아주 보들보들한게 아가씨 피부 같다야.
병석 : 어이어이. (질겁을 해서) 넌 그런 말 막해도 되냐?
자현 : 내가 뭐.
병석 : 넌 여자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니?
자현 : 내가 왜.
병석 : 으이그. 관두자. (차 내부를 들여다보는)
자현, 여전히 이해 못한 얼굴로 대욱을 돌아보면 대욱은 어느새 저리로 가고 있다.
S#14. 석학의 집
대욱이 비실비실 들어온다.
진영 : 어서 와요. 다들 만나기로 했어요?
대욱 : 아뇨. 혼자 있고 싶은데요.
구석 자리로 간다. 미순이 그 모습을 보다가.
미순 : 아무래도 환절기야.
진영 : 뭐가요.
미순 : 내가 이 자리에서 이 장사를 한지가 벌써 몇 년째냐. 이게 가만 보면 주기가 있드라고. 지금이 딱 그럴 때야.
진영 : 글세 뭐가요.
미순 : 보통 여름에서 가을이 넘어갈 때, 또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를 환절기라고 하잖냐.
진영 : 그렇죠. 그땐 감기를 조심해야 되죠.
미순 :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도 청년기에서 어른기로 넘어갈 때 감기를 조심해야 되는 거거덩.
진영 : 어른기라는 것이 있어요?
미순 : 좌우지간. 요때를 잘 넘겨야 나머지 인생이 편해지는 것이야.
진영 : 뭔 소린지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세요.
미순 : 어허 참. 독감주의보가 내리기 전에 독감에방 주사라는 걸 맞지?
진영 : 그렇죠.
미순 : 요 때에 바로 그 예방주사를 맞는거야. 기나긴 인생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서 말이지.
감기라는 건 일단 한번 걸리면 치료약이라는 게 없어요. 얼마나 지독하게 앓는가. 대충 넘기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해가 되냐?
진영 : 점점 더 모르겠는데요.
미순 : 쟤들을 좀 봐라. 감기 초기 증세를 앓는 사람의 얼굴 같지 않냐?
진영, 미순이 가르키는 곳을 본다. 거기 대욱이 멍하니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앉아있고.
그리고 이쪽, 대욱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정태가 혼자 앉아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S#15. 박교수 랩
박교수가 원기왕성하게 들어서며.
박교수 : 여러분 안녕. 천고마비의 계절. 여러분은 언제까지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을 것인가?
남희, 진수, 지원, 마이클 들이 앉아서 각자 작업을 하고 있다가..다른 아이들은 분분이 인사를 하고.
남희는 얼른 일어나 교수에게 다가가며.
남희 : 아유 교수님 지금 오시면 어떻게 해요.
박교수 : 왜. 내가 잘못된 순간에 들어왔나? 다시 나갈까.
남희 : 오늘 두시에 미팅하기로 하셨잖아요.
박교수 : ....내가? 우리가? 두시에?
남희 : 네에. 어디 계셨었어요? 제발 핸드폰 좀 갖구 다니시면 안되요?
박교수 : 이런.. 어쩐지 뭘 잊어먹고 있는 거 같드라.. 그럼 잊어먹기 전에 지원양.
지원 : 네?
박교수 : 전에 비디오 편집을 해봤다고 했지?
지원 : 네 몇번.. 그냥 학교 방송국에서..
박교수 : 잘됐어. 이따가 물리과 서교수님을 찾아가봐.
지원 : 무슨.. 일인데요?
박교수 : 좋은 일. 학교는 싸게 먹혀서 좋고. 지원양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지원 : 아르바이트요?
박교수 : 간단한거야. 우리별 4호의 홍보자료를 만드는 건데. 에에. 또 누구 지원자 없어? 거기 컴퓨터 그래픽도 들어갈 거 같은데.
그런 일이라면 우리 랩에 선수들이 많잖아.
남희 : 교수님. 우리 지금 할 일이 태산인데 또 무슨 일을 갖구 오신 거에요?
박교수 : 재밌는 일. 남희양 생각없어? 난 리포터 같은 걸로 출연해도 되는데..
진수 : 컴퓨터 그래픽이라면 어떤 종류를 말씀하시는 건데요?
박교수 : 오호 지원자. 좋아요 좋아.
지원, 진수를 돌아본다. 진수는 박교수만 보고 있다.
S#16. 이교수 랩
이교수와 모두 둘러앉아서 회의 중. 막 끝났는지 다들 자료를 챙기고 있다.
이교수 : 그럼 다음 미팅은 이번 주말에 해도 되겠지.
명환 :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교수 : 아참. 이민재.
민재 : 예?
이교수 : 비디오 카메라를 잘 다룬다며?
민재 : 제가요? 아 그냥 사용법만 아는데요.
이교수 : 박교수가 지원요청을 해왔는데. 비디오 카메라 다룰 학생이 필요하대. 아르바이트로 보수도 있는 모양이야. 생각 있어?
민재 : 그런거라면 정태가 나을 걸요. 이 친구는 한 때 단편 영화를 찍는다고 설친 적도 있습니다.
정태 : 야야.
이교수 : 그래? 그럼 이따 물리과 서교수님께 한번 가보지. 가서 어떤 일 인지 얘기 들어보고.
정태 : 예 알겠습니다.
만수 : 영화라면 저도 좀 자신있는데요. 저는 카메라 뒤쪽이나 앞쪽이나 다 상관없습니다. 위나 아래도 책임질 수 있고요.
이교수 : (중희에게) 만수가 이번 주에 할 일이 뭐뭐지?
중희 : 저번주에 마쳤어야 되는데 아직 못한 거하고, 합해서 보자면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이교수 : (만수에게) 들었지?
만수 : (입으로 궁시렁궁시렁)
이교수 : (일어서 자료들을 챙겨 들다가 명환에게) 참 니 약혼자하고는 연락 자주 하니?
명환 : (좀 당황해서) 예? 아 예.
이교수 : 니가 쓰고 있는 논문, 지금 중요한 시점이지?
명환 : 예.
이교수 : 이럴 때 여자 문제로 헤메거나 하면 큰일이니까 약혼자 단속 잘하라고.
명환 : 예.
다른 아이들 킥킥거리며 자기 자리로 흩어져 가고.
이교수 : 내가 너무 개인적인 거 간섭하고 있니?
명환 : 아닙니다.
이교수 : 그래. 그럼 다음주에 니 논문 되가는 거 한번 볼까.
명환 : 고맙습니다.
이교수 : 그럼 다들 수고해.
교수 나가고, 아이들 인사하고 문이 닫기자마자.
만수 : 교수님 말씀, 하나 틀린 거 없습니다. 멀리 있는 약혼자 잘 챙기세요. 괜히 잘 되어가고 있는 커플 넘보지 마시구요.
중희 : 도대체 잘 되어가고 있는 커플이 누구냐?
만수 : 에이 알면서 맨날 모르는 척. 저하구 남희 선배지 누구여요. 명환선배. 형수님한테선 메일 자주 오죠?
명환 : 나 지금 너 상대할 기분 아니니까 절루 좀 가라.
만수 : 매주 오던 형수님 메일이 요즘 좀 뜸한 거 같던데 전화라도 해보지 그러세요.
명환 : 니가 내 메일 오고 안온걸 어떻게 알어.
만수 : 아 그야 뭐 선배님 패스워드를 제가 아니까.. 혹시 연애편지의 기초를 배울 수 있을까하고.. 에구..
명환 : 뭐야?
만수 : 우체국 다녀올게요.
만수 도망쳐나가고.. 중희, 쫓아가려는 명환을 얼른 잡으며.
중희 : 그냥 저렇게 살다 죽게 냅두세요. 오죽하면 저러고 살겠습니까.
민재 웃으며 정태를 보다가 멈칫. 정태는 혼자 자기 생각에 잠겨서 의자를 건들거리고 있다.
S#17. 인공위성 센터 전경 / 낮
그 위에 들리는 경진의 경쾌한 목소리.
경진 : (E) 문제 없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쇼.
S#18. 서교수 연구실
서교수의 앞에 경진.
경진 : 그러니까 이제 구성될 홍보비디오 제작팀을 데리고 우리별의 이모저모를 구석구석 안내해주면 된다 이거지요.
서교수 : 그래. 안내도 하고, 필요한 자료가 있다고 하면 찾아주고. 대충 학부생들로 구성될 모양이니까
함께 일하기도 재미있을 거야.
경진 : 저기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에.. 그러니까 이와같은 안내일을 하게 되면 그 가이드에게도 아르바이트비가 나오나요?
서교수 : (웃으며) 왜 돈이 궁한가?
경진 : 이 지구상에서 많을수록 좋은건 바로 돈이 아닐까..합니다. 돈이 있다면 있는 그만큼 자유로와질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서교수 : 그건 별로 물리학도다운 말이 아닌데. 돈이 좋으면 물리학이 아닌 다른 걸 택했어야 되잖아.
경진 : 저는 계속 이 지구상에 살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근데.. 얼마나 주나요. 가이드에게는.
서교수 : 쓸 수 있는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까 팀이 구성되면 자네들끼리 상의해서 나누는 게 어때.
경진 : 오우 좋습니다. 그럼 알아서 나누겠습니다. 하하.
서교수 : 근데. (시계 보며) 두시에 다들 오기로했는데 난 약속이 있어서 어쩌지. 박교수가 자기 맘대로 시간을 정해버려서 말이야.
경진 : 걱정을 마시라니깐요. 제가 있잖습니까. 누가누가 오는지만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서교수 : 좋아. (종이를 내주며) 자. 이게 박교수가 보내온 명단이야. 되도록 이 랩에 있는 식구들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더니 이렇게 정해줬거든.
경진 : (얼른 받아서 보며) 제가 아는 아이들이 있는지... 어머나. 어머나..
서교수 : 왜. 아는 친구들이야?
경진 : 아이구 이를 어쩌나. 교수님. 저 이번 일 돈 안 받아도 그냥 하겠습니다. 아하하 저, 너무 행복합니다. 네.
S#19. 인공위성 센터 앞
정태가 유리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안에서 달려나온 경진이 문을 열어주며.
경진 : 어서 오십쇼. 오래 기다렸슴다.
정태 : 그래 여기 오면 너 만날 줄 알았다.
경진 : 만나는 거 뿐이 아닐걸.
S#20. 로비 내부
경진, 한쪽에 있는 대기소파쪽으로 안내해가며.
경진 : 내가 이번 프로젝트의 팀장 아니냐. 아하하.
정태 : 비디오 만드는 프로젝트 말이야?
경진 : 그렇지 그렇지. 일루 앉으세요. 다른 팀원이 곧 도착한다고 했으니까 잠시 기다리십시다.
정태 : 다른 팀원들은 누군데.
경진 : 글세요. 누굴까요. 우리 학교의 누구겠죠 뭐.
정태 : (소파에 늘어지며) 이번 아르바이트비 얼마나 주는 지 알어? 돈 생기면 며칠 여행이나 다녀오고 싶은데.
경진 : 내 말을 뭘로 들은거야. 내가 팀장이라잖어. 그니까 나한테 잘 보이라구. (하면서 연방 유리문 밖을 기웃거린다)
잘만 보이면 백원 받을 거 이백원 받을 수도 있으니까.
S#21. 주차장
진수가 문을 열고 지원이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지원 : (망설이고 섰다가) 너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거 아니잖어.
진수 : 누나는요. 애들 두팀이나 가르치면서 더 필요해요?
지원 : 그건 내 문제고.
진수 : 복잡하게 생각 좀 하지말아요. 나는 내 식대로 최선을 다하고 누난 누나 식대로 해요. 그러다 먼저 지치는 쪽이 나오겠죠뭐.
지원 : .. 그래. 그럼.
지원 차를 놔두고 걸어간다.
진수 보다가, 열어서 잡고 있던 조수석의 문을 닫더니 운전석 쪽으로 간다.
S#22. 길
지원 걸어가다 옆을 본다. 진수, 지원은 보지 않은 상태로 지원의 보조에 맞춰서 천천이 차를 운전하고 있다.
지원, 더 걷는다. 여전히 그 옆을 따라오는 차.
뒤에서 차 한 대가 따라오다가 진수의 차를 추월해간다.
앞서 가는 차를 보다가 결국 지원, 멈춰선다.
진수, 차를 멈추더니 돌아본다.
S#23. 센터 로비
정태, 신문을 읽고 있고 경진 문 앞에서 오락가락하다가 멈춰서 본다.
유리문으로 보이는 밖에 멈추는 진수의 차.
경진 : 오우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정태, 돌아본다. 유리창 밖으로 차에서 각각 내리는 지원과 진수가 보인다.
정태, 무표정하게 보고 있다.
S#24. 센터 밖
유리문으로 다가가는 진수와 지원. 안에서 문이 열리며 경진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나선다.
경진 : 어세 오세요. 홍보제작팀 여러분. 자아 안에 계신 분도 나와서 인사 하시죠.
지원이 보면, 정태가 어슬렁거리며 나서고 있다. 모두 좀 어색한 상태인데 경진이 혼자 떠든다.
경진 : 여기는 편집을 담당하실 구지원양. 그리고 CG를 담당할 정진수군. 그리고 이쪽이 카메라를 맡을 김정태군.
그리고 저는 감독 및 기타 모든 것을 담당할 민경진입니다. 에.. 우리 악수나 한번씩 돌아가면서 할까요? 누구 먼저 할까요?
S#25. 동아리방
만수, 대욱, 자현, 지민이 앉아있다.
만수 : 그 옛날, 누군가가 히말라야 산 앞에서 서서 이렇게 말했지. 나에게 왜 산에 오르냐고 묻지 마라. 산이 거기 있으므로
나는 산에 오른다. 그러더니 그 산을 정복했잖냐.
지민 : 어째 내가 아는 얘기랑 좀 다른데.
만수 : 따지지 말고. 하여간 사나이가 목숨을 걸고 일생의 목표를 잡았을 때, 그 앞을 가로막을 것은 없단 이야그다.
자현 : 그래서, 지금 남희선배가 만수형한테 넘어갔다는 얘기야? 언제?
대욱 : 넘어가는 게 뭐야. 말을 해도 꼭 양아치 쫄병같이 해요.
만수 : 음... 너희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 그녀가 워낙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이거든.
자현 : 남희선배가?
만수 : 그렇지. 속으론 좋으면서도 표현을 그렇게 하는거 뿐이라니까. 여자는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게 되면 감히 입밖에 내어
말할 수 없는 법이니라.
지민 : 나도 이사람 저사람 좋아해봤지만 만수오빠 이론은 어째 여러 가지로 수상하네.
만수 : 그게 말이지..
대욱 : (무시하고 지민에게) 이 사람 저사람? 누구?
지민 : 어떨땐 오전 오후로 나뉘기도 하고 아침점심저녁으로 나뉘기도 하고...
자현 : 임마.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런 건 그냥 호기심이라고 하는거지.
만수 : 그건 또 내가 설명할 수 있지.
대욱 : (역시 무시. 자현에게) 어이구. 선배가 그런 걸 다 알어. 아주 놀랄 일이네 그랴.
자현 : 근데 너 아까부터 왜 그렇게 비딱하냐.
대욱 : 보는 사람 눈이 비딱한거겠지.
자현 : 어째?
하는데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민재.
민재 : (휘 둘러보고) 정태 아직 안 왔어?
만수 : 일루 온다고 했어? 안 왔는데?
민재 : 그래? 그럼 하던 거 계속해. (나가버리고)
만수 : 계속하랜다. 어디까지 했지? 그렇지. 내가 이 말까진 안할려고 그랬는데,
남희 선배가 날 좋아한다는 증거가 있어요. 증거가. 내가 갈쳐줄까?
S#26. 지상국
우리별 모형과 컴퓨터들이 놓여있는 방. 경진이 지원, 진수, 정태에게 설명중이다.
경진 : 여기가 지상국이야. 우리별 1,2,3호에 명령을 내리고 모든 데이터들을 받는 곳이지.
지금은 교신시간이 아니라서 그냥 한가해.
정태 : (모형앞에서) 이게 3호야? 실물크긴가?
경진 : 어.
정태 : 이걸 다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는거지?
경진 : 그렇지. 이걸 우리 기술로 만들기까지 그 고난의 역사를 이번에 좀 살려봐봐.
이게 말이지 듣다보면 눈물이 없이는 그냥 들을 수가 없는 스토리라구.
S#27. 세미나실
책상위에 자료며 책들 쌓여있다. 세사람 그것들 뒤적거려보고있는데.
경진, 양팔에 비디오 테입들 껴안고 와 내려놓는다.
경진 : 이건 그동안 보도됐던 자료들하고 관련 영상자료야. 여기서 더 필요한건 나한테 얘기하면 되고. 학교 장비 사용하는 문제는
교수님이 알아서 처리해주실거고. 음... 다 됐나? 아, 일단 기획안을 제출하라는 서교수님의 주문이셔.
진수 : 일을 하는 시간은 어떻게 조정할까요. 지원이 누나는 편집만 하면 되니까 나중에 붙어도 되지 않나요.
지원 : 내용을 모르고 편집만 할 수는 없지.
진수 : 내내 붙어다닐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각자 분담해서 자기 할 일하고 필요할 땐 회의해서 서로 브리핑해주고
그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누나 괜히 또 매달려서 밤새지 말라구요. 어떻게 그렇게 무슨일이든 목숨 걸고 해요?
정태 : (묵묵히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다가) 경진아.
경진 : 네? 말씀하세요.
정태 : 이번 일.. 왜 필요하고 얼마나 필요한건지부터 말해봐.
경진 : 어.. 나도 잘 모르지만 우리별에 관한 자료를 원하는 곳이 많나 봐. 그런 곳에도 보내주고.
또 잘은 모르지만 이걸 보고 후원자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바램도 있고.
정태 : 그럼 대충 돈이나 좀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만들면 안되는거네.
경진 : 그렇지. 에.. 말 나온 김에 한마디만 할게. (정색을 하고 바로 서더니) 솔직히 이번 팀 구성을 보고 나 개인 적으로는
아주 좋았어. 왜? 왜냐고는 묻지마. 하여간, 그러나 한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어. 느이들, 일단 이 일을 한다고 했을 때는
어느정도 애정과 사명감을 갖고 해줬으면 해. 난 이 비디오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과 함께 자부심과 긍지를 나누고 싶어.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너희들이 먼저 우리별 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줘야 돼. 그걸 부탁하고 싶어.
(잠시 조용하다가) 그냥 한마디만 할려고 그랬는데 너무 멋진 연설이 되버렸네.
모두 조용하다가..
지원 : 그런 건 말로 약속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일단 이 자료를 보고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니가 말하는 자부심같은 게 생겨나기를 바래.
경진 : 오우 역시 냉정한 말씀.
정태 : 난 자신없는데.
경진 : 왜.
정태 : 이런 일은 사심없이,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 필요할거야. (일어서더니) 그럴만한 사람을 구해봐.
경진 : 아니 잠깐만. 그러고 일어서면 어떻게 해.
정태 : (이미 문으로 나가며) 미안하다. 나도 알아볼게. 카메라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면 되지?
정태 나가고 문이 닫기고. 진수나 지원 말이 없고. 경진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S#28. 밤 캠퍼스
민재 : (E) 그래서.
경진 : (E)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S#29. 석학의 집 / 밤
민재와 경진이 중간에 나란히 앉아있는 중.
경진 : 그리곤 일단 파장을 했지. (목 마른 듯 맥주를 들이키는)
민재 : 그럼 비디오 만드는 일은 어떻게 되는거냐.
경진 : 뭔가 클라이막스로 올라가려다가 중간에 김새버린거지.
민재 : ...넌 그게 그렇게 재밌냐?
경진 : 재밌지. 내가 그 세사람과 같이 있는데 말이지. 이건 거의 메가톤급 전류가 파지직 파지직 튀는거야.
민재 : 내가 알기로 너는 남녀관계를 좀 우습게 알지 않냐? 그런데 남의 일은 그렇게 재밌어?
경진 : 우습지. 우습고 재밌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한다는 건 말이지. 감정 호르몬의 이상분비에서 나오는 잠시동안의
환각상태라고 할까. 간단히 말해서 잠시 정신이상이 되는거야. 몽유병이라고도 할 수 있지.
민재 : 너 아주 경험자처럼 말하고 있는 거 아냐.
경진 : 꼭 경험을 해봐야 아는건 아니지. 세심한 관찰을 통해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야 이건.
민재 : 그럼 정태나 지원이는 너의 관찰 대상이냐?
경진 : 그건 아니지이. 난 그저 그애들을 아끼는 우정의 마음으로 이러는거야. 정신병에서 빨리 깨나라구. 잠복기가 오래 가면
체력이 딸려서 안돼. 빨랑빨랑 종기가 곪아서 터져야 정신을 차린다고. 안그러냐?
민재 : (턱을 괴고 경진을 관찰하고 있다가) 메두사 말야.
경진 : 메두사?
민재 : 원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했지? 그런데 어쩌다가 메두사같은 괴물이 된거냐?
경진 : .. 그건.. 일설에 의하면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다가 아테네 여신의 미움을 샀대.
민재 : 아테네 여신이 그렇게 만든거야?
경진 : 그럴걸.
민재 : 너의 아테네 여신은 누구였는데.
경진 : 뭐?
민재 : 니가 메두사가 된것에도 계기가 있을 거 아냐.
경진 : (잠시 정지해서 보다가 헤 웃는다) 이민재군. 그리스 신화하고 나를 결합시키는 건 논리의 비약이야. 그런 건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해요.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아 지원이 들어왔겠다. 얼굴 보러 가야 지. 먼저 간다.
(가면서) 언니. 계산은 민재가 할거에요.
민재, 혼자 피식 웃고, 경진의 컵에 남은 맥주를 자기 잔에 따른다.
미순이 나가는 경진을 보다가 민재의 옆으로 다가오며.
미순 : 한잔 더 주랴?
민재 : 아뇨. 됐어요.
미순 : 경진이 요즘 어때?
민재 : 어떻다니요. 경진이야 언제나 경진이답게 살고 있죠.
미순 : 정태하고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민재 : 정태하고 경진이요?
미순 : 왜 일학년때 정태하고 아주 친했잖아.
민재 : ... 정태하고 경진이가요?
미순 : 아닌가? 그 왜 단 둘이 여기 와서 책 같이 읽고 토론하고 그랬는데. 그때 보니까 죄 이상한 책들만 읽더라구.
난 또 둘이 씨씨가 될래나 그랬지.
민재 : (금시초문이다) 둘이서요?
미순 : 내가 오버해서 생각했나. 요즘 정태도 이상하길래.. 아이구. 못들은 걸로 해. 술 남았네. 팝콘 좀 더 줘?
민재 : (멍청해있다)
S#30. 전산과 건물 앞 / 낮
학생들 들고 나는데.. 캠폴차가 그 앞에 와서 서더니 운전석에서 내리는 백곰.
조수석에서 지석이 어정쩡하게 내린다.
백곰 : 여기가 전산과 건물입니다. 어느 랩을 찾는다구요.
지석 : 박기훈 교수님 랩이요. 요즘 대부분 거기 있다고 그랬거든요.
백곰 : 그 교수님 랩이라면 또 내가 잘 알지요. 조기 입구가 보이죠? 절루 들어가서 좌회전. 복도를 따라가다보면 계단이 있어요.
고 계단을 사용, 2층으로 올라가서 우회전,
지석 : (설명에 따라 외우려 애쓰며 듣고 있다)
백곰 : (계속) 다시 복도를 따라 주욱 가다보면 좌회전을 하게 되있어요. 죄회전해서 다시 계속 가면서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 방입니다.
지석 : 아.. 예. 다섯번째.. 고맙습니다. (고개 숙여보이고 들어가려는데)
백곰 : (재빨리 옆으로 붙어서더니) 구지원 학생을 찾는다구요.
지석 : 그런데요.
백곰 : 어떻게 되는 사입니까.
지석 : 아 지원이 누나하고..
백곰 : 아 연상이군요. 상관없습니다. 부디 상냥하게 대해 주기 바랍니다. 서울에서 오셨다고 했죠.
지석 : 아.. 예.
백곰 : 우리 카이스트 학생들 알고보면 불쌍합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그것도 기숙사에 박혀 살다보니까 서울 애인과 만날 수가
있어야지요. 아웃 어브 사잇. 아웃 어브 마인드. 그렇게 깨지고 공부 하던 거 중단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건 국가적인 손실이에요. 그러니까! 애국하는 마음으로 변치않는 애정을 간직해주세요.
지석 : 그러..죠.
백곰 : 그럼. 부탁하겠슴다.
경례를 붙이더니 씩씩하게 간다. 뭔가 한건했다는 뿌듯함으로.
지석 어이없어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S#31. 박교수 랩
남희와 진수가 모니터를 함께 보면서 뭔가를 체크하고 있고.
저쪽에서는 마이클이 귀에 해드폰을 끼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자기는 이어폰을 끼었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나오는 음악에 따라 괴상하게 중얼중얼 따라 부르고 있다.
남희 그런 마이클 때문에 방해를 받아 찡그리고 마이클을 보는데.
소리 : (노크소리)
남희 : 네에.
문이 열리며 지석이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본다.
남희 : 어떻게 오셨어요?
지석 : 구지원씨 안계신가요?
진수 : (보는)
남희 : 지원이 잠깐 나갔는데. (진수에게) 기숙사에 갔나?
진수 : 아르바이트 갔는데요. (지석에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석 : 저.. 지원이 누나 동생인데요. 좀 만날 일이 있어서..
남희 : 동생? 친동생이에요?
지석 : 어머니 아버지가 같으니까 친동생 맞는데요.
진수 : 그럼. 구지석?
지석 : 어. 내 이름 아세요?
마이클 이어폰을 빼고 듣다가.
마이클 : 오우 나 깜짝 놀랐어. 지원이 누나 숨겨놓은 애인인줄 알았어. 아이구 마이 가슴.
S#32. 복도 휴게공간
진수가 음료수 두 개를 뽑아들고 와서 놓아준다.
지석 : 아. 고맙습니다.
진수 : 난 정진수라고 해요. 3학년이고 지원이 누나랑은 같은 과죠.
지석 : 예에.. 그냥 혼자 기다려도 되는데.
진수 : 그럴 수는 없죠. 이건 기회니까. (미소 짓는다)
지석 : 기회요?
진수 : 가능하다면 난 지원이 누나하고 결혼할 생각이거든요.
지석 : 에? (캔뚜껑을 따려다가 놀라서 보는)
진수 : 아직은 희망사항이지만요. (미소 짓는)
지석 : (아까의 자세대로 보다가 아하하 웃더니 뚜껑을 따고 마시고) 야 이건 기절해버릴 얘기네.
진수 : 삼개년 계획으로 잡고 있으니까 아직 먼 얘기죠.
지석 : (혼자 고개를 젓다가 다시 보더니) 첫째, 나한테 말 놓으세요. 난 아직 일학년이거든요.
그리고 둘째, 웬만하면 다른 여자를 찾는 게 어때요?
진수 : 왜.
지석 : 같은 남자로서 불쌍해서 그래요. 우리 누나 아직 잘 모르죠? 몇 년 전만 해도 겉에만 얼음이었는데요. 요즘은 거의 심장까지
얼어 들어가고 있다구요. 그 왜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온 다 그러잖아요. 우리 누나는 바늘로 찌르면
그 바늘이 얼어서 부러져요.
진수 : (빙긋.. 음료수 마시고) 얼음은 빙점만 넘기면 녹게 되있어.
지석 : 음.. (진수를 새삼 살펴보더니) 놀랐는데요. 난 카이스트엔 누나같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공부에 인생을 저당잡힌 사람들. 그런데 사랑도 하고 그러는구나.
진수 :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안했을텐데.
지석 : 그럼 결혼 어쩌구 한 건 뭐에요.
진수 : 사랑해서 결혼하고 그런 말은 안 믿어. 결혼에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고 동지애 아닌가.
지석 : 동지애요?
진수 : 전우라고 할까. 함께 인생이란 전쟁터를 이겨나가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서로 도움이 되는 사람끼리 만나야지.
괜히 어수룩한 전우와 한조가 되면 함께 지뢰를 밟아 죽는 수가 있으니까.
지석 : (어이없다는 듯) 뭐야 누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었잖아.
진수 : 내소개는 이 정도로 됐고. 무슨일로 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학기 중에 여기까지 내려온걸 보면 그냥 놀러온건 아닐거 같고..
지석 : (말을 해도 되는지..해서 보는)
S#33. 전산과 건물 야외 복도
2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진수. 진수의 시선으로 보이는 아래에서 지원과 지석이 만나고 있다.
지원이 걸어오다가 지석을 보고 놀란듯 서고 지석이 달려가다시피 지원에게 가더니 웃으며 지원의 어깨를 툭 치고 뭐라고 말한다.
빠르게 뭔가를 묻는 지원. 지석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고개를 숙인다.
지원, 지석의 팔을 잡으며 뭔가를 묻고 있다.
보고 있던 진수, 핸드폰을 꺼내 단축 버튼을 누른다. 잠시 후..
진수 : 어머니세요? 저 진순데요. 중요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어요? ...저 뭔가 부탁한 적 없잖아요.
이건 정말 중요한 거에요. 이유 묻지 말고, 그냥 도와주세요.
저 아래에서는 지원이 지석의 말을 듣고 있다.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
지원, 지석의 팔을 끌고 옆으로 간다.
S#34. 캠퍼스 일각
지원, 지석을 끌고와 앉히고.
지원 : 그래서. 어디가 이상하신 건데.
지석 : 증세로 봐서는 아무래도 간이 안 좋으신 거 같애.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되는데 들은 척도 안하시는거야.
지원 : 너 아버지보다 힘세잖아. 억지로라도 모시고 가지 그랬어.
지석 : 누나도 아버지 고집 알잖아. 누나가 누굴 닮았는데.
지원 : (골치 아프다)
지석 : 아무래도 아버지, 병원비를 걱정하시는 거 같어. 버는 것도 없으신데 병원비 쓰는 게 부담스러운신거야.
지원 : 자존심이 상하시는 거겠지. 내가 니 등록금 대준다고 했을 때도 화부터 내셨잖아.
지석 : 글세. 이건 자존심 내세울 문제가 아니잖아. 괜히 큰 병되기 전에 검사부터 받아봐야 되지 않어?
지원 : (똑바로 보더니)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해봐. 증세가 어떠신거야.
지석 : 그냥 좀..
지원 : 있는 그대로 말하랬지.
지석 : ... 요즘 들어 부쩍 마르시고. 식사도 잘 안하시고.. 황달기도 있는 거 같고..
지원 : 통증은.
지석 : 말씀을 안하시니까 모르지.
지원 : 그거.. (겁에 질렸다) 암증세 아니니?
지석 : 나두.. 그게 겁나.
지원 : (똑바로 자기 앞을 보고 앉았다가)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니.
지석 : 일단 아버질 설득시켜 봐. 아버지가 그래도 누나 말은 듣잖아.
지원 : 아들은 너잖아.
지석 : (책망하듯) 누나.
지원 : ...알았어. (일어선다) 랩에도 얘기해야 되고. 기숙사에도 들러야 돼.
지석 : 누나 랩에 있는 사람한텐 벌써 말했는데.
지원 : (멈칫)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해.
지석 : 진수라는 사람. (눈치 보는)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지원 : (말이 막혀 보는)
S#35. 지원/경진의 방
지원이 분주하게 가방을 싸며 전화를 하고 있다.
지원 : 경진이니? 나 집에 좀 다녀올게.. ...하루이틀이면 될거야. 그래서 말인데 우리별 비디오 니들끼리 먼저 시작하고 있을래?
다녀오는대로 바로 붙을게. ....무슨 일인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어. 미안해. 그럼.
전화를 끊고. 잠시 망연하게 서있다. 기운이 다 빠진 얼굴.
그러다 짐짓 기운을 내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통장을 펼쳐서 안의 내용을 들여다본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S#36. 동아리 방
경진 전화기를 보며 갸웃거리고 있다.
민재는 컴 앞에, 정태는 침대에. 마이클은 로봇들을 만지고 있고.
민재 : 무슨 일이래?
경진 : 말하고 싶지 않대. 갑자기 뭐지? 뭘까. (정태를 돌아보며) 무슨 일일까. 응? 김정태. 넌 아냐?
정태 : (책을 보다가 경진의 시선을 받고) 왜 나한테 묻냐.
마이클 : 지원이 누나. 동생 왔어. 잘생긴 브라더.
경진 : 동생이? 서울서 대학다닌다는 애?
마이클 : 응. 집에 무슨 일이 있나봐. 진수형이 만났는데 나중에 진수형이 그랬어. 지원이 누나 집에 가봐야 할거라고.
경진 : 왜애?
마이클 : 몰라. 진수형 혼자만 알어. 치사해. (민재에게 로봇 보이며) 형. 이거 기어를 새로 넣은건데 어때. 멋지지.
민재 : (로봇을 받으며 정태의 기색을 살피는)
정태 : (그저 책을 뒤적거리고 있다)
경진 : 아참 김정태.
정태 : (확 짜증나며) 뭐가 또.
경진 : 너 나한테 GPS 자료 준다고 했잖아. 그거 안줘?
정태 : 지금?
경진 : 그렇지 지금. 니 방에 있대매. 지금 당장 내 메일로 보내줄래? 오늘 중으로 그거 검토해봐야 되거든.
정태 : 그치만 그거 내일까지....
경진 : (잘라서) 지금 바로 필요해. 부탁. 응? 응?
정태 할 수 없이 일어서서 나간다. 경진, 나가는 정태를 빤히 보고 있다가..
경진 : 아이구 힘들어.
손부채질을 하다가 자기를 빤히 보는 민재를 본다.
경진 : 왜?
민재 : 아니.. 그냥.. 관찰 중이야. (다시 로봇을 보는)
S#37. 기숙사 근처
정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다. 생각에 잠겨서 땅만 보고 걷다가 마주오던 스쿠터를 뒤늦게 피한다.
스쳐가는 스쿠터를 뒤돌아보다가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멈춘다.
저만치 간이 주차장. 진수가 트렁크를 열고 있고. 지석이 그 안에 지원의 가방을 넣고 있다. 지원이 그 옆에 서있다.
정태 물끄러미 그들을 본다. 지석이 앞에, 지원이 뒤에 타고. 진수가 몰아서 출발해간다.
정태, 뭔가 짜증이 나는 얼굴로 자기 얼굴을 부빈다.
S#38. 학교 내 도로
달려오는 진수의 차.
S#39. 교문 근처
신호를 받기 위해 서있는 진수의 차. 그 내부.
진수가 백밀러로 지원을 보며.
진수 : 기차역으로 가면 되죠.
지원 : (한숨을 쉬고 뭔가 말을 하려다가 앞의 지석을 의식하고 관둔다)
진수 : 그 옆에 노트북 있는데.
지원 : (자기 옆자리의 노트북 가방을 본다)
진수 : 그거 갖구 가서 써요. 그 위에 짚드라이브 놔뒀거든요.
지원 : (드라이브를 들어본다)
진수 : 우리 지금 하는 작업, 용량이 너무 커서 거기 넣어놨어요. 그것두 갖고 가요. 괜히 조바심내고 일찍 돌아올 거 없어요.
지원 : (말 없는)
진수 : (백밀러로 지원의 기색을 살피는데)
지석 : 진수형.
진수 : 어.
지석 : 아직 누나한테 말도 못 놨어요?
진수 : (피식 웃는)
지석 : 진수형.
진수 : 왜.
지석 : 파란 불인데요.
진수, 그제야 앞을 보고 출발해간다.
그들이 탄 차가 회전을 해서 멀어져 간다.
S#40. 캠퍼스 일각 / 밤
민재가 하품을 하며 걸어온다.
고개 운동을 하며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다시 몇걸음 뒷걸음질을 해서 한쪽을 본다.
보이는 곳에 정태가 누워있다. 한팔로 눈을 가리고 있어서 자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민재, 부르려다가 관둔다. 걸어가더니 정태의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정태는 기척을 알았을텐데도 꿈쩍 않는다.
그런 정태를 보다가 민재 밤하늘을 우러른다. 페가수스라도 찾는 듯. 동쪽 서쪽을 가늠해보다가 하늘을 열심히 바라본다.
S#41. 서울 변두리 동네 일각 / 밤
동네아이들이 떠들며 놀고 있고 나무 하나 없는 시멘트의 느낌. 주변 분위기가 가난하고.
그 중에서 낡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느낌의 연립. 입구에서 그 중의 한 집의 창문으로.
S#42. 연립 내부 거실 / 밤
빈한한 살림살이의 느낌. 마루 한구석에서 지원모친이 빨래를 개며 슬쩍슬쩍 보고 있는 곳.
부친이 혼자 앉아 책을 보며 바둑을 두고 있다. 그 앞에 똑바로 앉아 있는 지원.
지석은 다른 쪽에서 책을 보며 역시 둘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지원 : (한숨을 쉬더니 다시 한번 말하는 기분) 그거 땜에 왔어요. 아버지 병원에 모시려구요.
부친 : (반상 위를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돌을 하나 놓는다)
지원 : 저 학교에서 공부할 것도 많고 일도 많아요. 그런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은 못 돌아가요.
부친 : 이상하네. 이쪽을 끊는 게 상순데. 어째서 놔뒀지?
지원 : (할수없다는 듯 반상을 들여다보더니.. 잠시 보다가) 거길 흑으로 끊으면 연단수가 되잖아요. 그럼 그쪽 집이 줄어들어서
손해라구요.
부친 :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그제야 지원을 본다) 한판 해볼테냐?
지원 : 제가 이기면 내일 아침 병원에 가시는거죠?
부친 : 지금 애비 앞에 놓고 흥정하는게야?
지원 : 바둑은 내기 바둑이래야 맛이 나잖아요.
부친, 지원을 본다. 지원, 표정없이 마주본다.
부친, 놓여진 바둑돌을 흑백으로 나누어 모으기 시작한다. 지원 아무말없이 흑돌상자를 끌어다놓고 돕는다.
// (시간경과)
마루 한쪽에 걸린 벽시계가 밤 두시를 넘기고 있다.
마루 한편에서 지석이 책을 옆에 놓고 잠들어있다. 모친은 잠자러 들어갔는지 안 보이고.
마루에서는 아직도 지원과 부친이 바둑을 두고 있다. 바둑판에는 제법 돌이 가득 차있고.
부친, 궁지에 몰리는지 돌을 놓으려다 말고 장고를 계속한다. 마악 한곳에 돌을 놓으려는데.
지원 : 거긴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어때요.
부친 : 한칸 뛰는데 악수는 없어. (하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지원 : 소탐대실이라고 보는데요.
부친 : (물끄러미 반상을 보는 자세로) 병원은 안간다.
지원 : (역시 반상을 보며) 아버지 속 편하자고 우리들 속을 괴롭히실 거에요?
부친 : 내가 병원에 입원을 하면 또 너의 그 코묻은 돈을 낼거냐?
지원 : 전 이제 코흘리개 어린애가 아니에요.
부친 : 잘도 아니겠다. (돌을 딱 놓더니) 니 사는 꼴을 봐라.
지원 : 제가 사는 게 어때서요. (돌을 놓는)
부친 : 갈수록 어리석어지고 있잖아. 어리석고 둔하고 형편없어.
지원 : 제 친구들은 저보고 너무 똑똑하게 굴지 말라고 하는데요.
부친 : 그게 다 헛똑똑이란 얘기지. 뭐가 상수고 하순지도 몰라.
지원 : 그러는 아버지는.. (하다가 멈춘다. 바둑판 위의 부친의 손을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
돌을 들고 자리를 찾는 부친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가득한 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돌을 두다가 손이 떨리는 바람에 주변의 돌이 흐트러진다.
부친,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조용하다. 지원, 가만이 돌들의 자리를 다시 잡는데 어쩐지 울고 싶다.
지원 : 제가 어떻게 하면 아버지가 좋으시겠어요.
부친 : 간단해. 가서 내 맘에 드는 사윗감이나 하나 델구와.
지원 : 아버지.
부친 : 내가 죽어도 맘 편하게 눈감을 수 있게 해봐.
지원, 입술을 깨무는 기분인데. 부친이 부시시 일어선다.
지원 올려다보면, 부친은 주방쪽으로 가고 있다.
지원, 말없이 바둑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마음이 북받치면서 부친 쪽을 보는데.
부친은 찬장 어딘가에서 소주병을 하나 꺼내서 들고 따개를 찾고 있다.
지원 아무 말 없이 그런 부친을 보고만 있다. 부친은 떨리는 손으로 병마개를 따려고 애쓴다.
S#43. 인공위성 센터 전경 / 낮
튀어나오는 경진의 목소리.
경진 : (E) 예에? 언제까지라구요?
S#44. 서교수 연구실
서교수 : 나도 너무 촉박하다고 말씀드렸지. 그런데 이달 말에 우리 소장님이 중국으로 출장을 가신대잖아.
거기 기술 이전 문제도 있고, 그래서 그 홍보 비디오를 갖고 가셨으면 한대요.
경진 : 아이구.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서교수 : 왜 무슨 문제가 있는거야?
경진 : 아..하하. 문제는 없구요. 좀더 예술적인작품으로 만들고 싶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아직 팀원들 간에 의견차가 좀 있습니다.
서교수 : 기획서는 언제쯤 볼 수 있는 건가.
경진 : 금방요. 아주 금방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조치하겠습니다.
S#45. 박교수 랩 앞 복도
경진이 부리나케 뛰어온다. 남희를 지나쳐서 달려가다가 다시 돌아오더니.
경진 : 지금 랩에 진수 있어요?
남희 : 진수? 지금 수업시간일걸.
경진 : 아이구아이구. 지원이는 아직 소식 없죠?
남희 : 아침에 전화왔는데 내일 다시 전화하겠다던 걸. 집에 무슨 큰일이 있나..
경진 : 미치겠네. 증말.
하더니 오던 길을 다시 달려간다.
S#46 이교수 랩
문이 벌컥 열리며 경진이 들어서다가 아이구..해서 얼른 안의 명환 등에게 꾸벅꾸벅 절을 한다.
민재와 정태가 작업을 하다가 돌아본다.
경진 : 죄송합니다. 김정태 면회하러 왔는데요.
만수 : 여기가 무슨 군대 헌병소냐. 면회는 무슨. 자 일루 앉어. 무슨 얘긴데? (일하다 방해받아 좋기만 한)
경진 : 그냥 여기서 얘기해도 되나.
명환 : 안그래도 우리 다 머리에 쥐나고 있는 중이었어. 뭐 재밌는 얘기냐?
중희 : 은밀하고 사적인 얘기일 수도 있잖아요.
경진 : 공적인 얘긴데요.
만수 : 자아자. 모두 조용하세요. 경진이가 정태에게 할 얘기가 있답니다. 그럼 시이작.
경진 : (가운데 선 채로 정태를 향해) 정태야. 우리 홍보비디오 만드는 거 니가 좀 도와줘야겠다. 마감날짜가 당겨져서
아주 급하게 됐거든.
명환 : 그거 원래 정태가 하기로 했던 거 아냐?
경진 : 원래는 그랬죠. 그런데 정태는 삼각관계에 끼기가 자존심 상했나 봅니다. 갑자기 나 안해. 이러구 벌떡 일어나 나갔거든요.
모두 일제히 놀라서 정태를 본다. 정태 어이가 없어 말도 안나오고.
민재, 어이구.. 싶어서 외면하고.
만수 : 삼각관계? 으잉? 이 학교에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었단 말이야?
경진 : (천연덕스럽게 정태에게 계속) 그러나,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뭐냐. 그 사람이 곤란할 때 도와주는 거 아니냐.
지원이가 지금 뭔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웠어요. 그러니까 니가 나서줘야겠다 이 말이지.
만수 : 오잉. 그러니까 지원이하고 정태하고 또 누구여.
민재 보다못해 벌떡 일어나더니 경진을 끌고 나간다.
경진 : 왜애.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모두 정태를 본다. 정태, 찡그린 얼굴로 앉아 있다가 들고있던 책을 타앙 책상에 던져놓는다.
S#47. 복도
민재 경진을 끌고 나와 한곳에 세우더니.
민재 : 민경진.
경진 :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하며)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어. 나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민재 : (한 팔로 벽을 짚어 경진을 가두고) 아일랜드에서 친구란 말뜻이 뭔지 아니?
경진 : 몰라. 알아야 돼?
민재 : 나도 어디서 읽은건데 말이지. 거기에서 친구의 말뜻은 친구의 집 앞에서 친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는 사람이란 뜻이래. 이해가 되냐?
경진 : 아.. 하하. 좋은 말이네.
민재 : 너..
경진 : 나 뭐.
민재 : 너 혹시 질투하고 있는거냐?
경진 : (정지해서 보다가) 내가 뭘한다고?
S#48. 지원의 집 앞 / 낮
지원이 모친과 함께 장을 본 바구니를 들고 오고 있다.
지원이 힐끗거리고 보는 모친. 모친은 무릎이 아픈지 조금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지원 : 엄마 무릎이 영 시원찮어?
모친 : 괜찮어. 날씨가 꾸물거리면 좀 시큰거리다 말어.
지원 답답해지며 걷다가 보면 집 입구에 웬 신사복의 남자가 동네 여자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있고.
그 여자는 지원이를 가르켜 보이고 있다.
그 남자가 여자에게 인사를 해보이고 지원에게로 온다.
남자 : 구지원씨세요?
지원 : 그런데요.
남자 : 아이구 겨우 찾았군요. 아버님은 집에 계신가요. 지금 모셔가도 되겠습니까?
지원 : 모셔가다니요.
남자 : 우리 도련님이 말 안했나요? 아버님 입원실 잡아놨는데요. 박사님도 기다리고 계시구요.
모친 : (놀라서 지원에게) 이게 무슨 소리야.
지원 : (역시 놀라서 보다가) 도련님이라니 누구 말씀이세요.
남자 :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정진수 도련님이요. 아가씨가 구지원씨 맞죠?
지원 아연해서 남자를 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