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溪 박희용 麗陽南禪軒日記 2024년 7월 17일 월요일]
『대동야승』 제3권 「오산설림초고」 중 '太羹玄酒 不下酷酢'
매일 남선헌에 앉아 『대동야승』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40년 전 책이라 삭아가는 종이에 검정이 옅어지는 작은 활자여서 읽기가 불편해 하루에 서너 장씩 읽으며 옛 문사들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음미한다.
아래 두 이야기가 들어있는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의 저자 차천로(車天輅 1556~1615)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자는 복원(復元), 호는 오산(五山)으로 화담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 통신사 황윤길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영동(嶺東) 아홉 고을은 모두 바다에 연해 있으나 평해(平海) 망양정만은 몇 리 바다로 들어간 지점에 있다. 뛰어난 시로서는 오정(梧亭) 박난지(朴蘭之)의 시를 절창으로 삼는다. “나는 듯한 정자의 뛰어난 경치가 우리나라에 으뜸이라, 영 밖 누대(樓臺)들 모두 와 항복을 하네. 양곡(暘谷 해 돋는 곳)에 치미는 물결은 솟는 해를 떠받쳐 올리고, 고깃배 돛에 심한 바람이 불어오니, 휘청거리는 돛대만 앙상하구나. 누가 앞으로 낚시질을 배워서 자라를 여섯씩 한 줄에 꿸고, 나는 신선을 따르고자 神을 한꺼번에 둘씩 들어보네. 천고의 뛰어난 재주가 물가 성에 오니, 부끄럽게도 장관인 바다와 강을 한꺼번에 읊기 어려움이여.” 하였는데, 이 시는 오정이 강릉의 교수로 있을 때에 앞의 운으로 지은 것이다.」
「갑술년(甲戌年 1574년) 겨울 아버지께서 평해 고을에 살으실 (吾先君之守平海也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평해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상공(相公) 이준민(李俊民)이 절귀 한 수를 보냈는데, “평생에 바란 곳은 평해 망양정. 그대를 보내고 그 틈에 놀게 하오니, 벼슬길에 얻은 정이 끝이 없어라.” 하였다. 박오정이 이 글을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영공의 시가 어찌하여 평측(平側)을 잃었습니까. 모름지기 고쳐야 할 것입니다.” 하니, 이상공이 말하기를, “양념을 하지 아니한 고깃국과 현주(玄酒 물의 별명)가 초맛에 떨어지지 아니함을 자네가 어찌 알겠는가.” 하였다.」
登望洋亭 등망양정
梧亭 朴蘭之 오정 박난지
飛亭勝絶冠吾邦 비정승절관오방
嶺外樓臺盡乞降 영외누대진걸항
暘谷浪飜掀出日 양곡낭번흔출일
漁帆風急露危杠 어범풍급로위강
誰將學釣鼈連六 수장학조별연육
我欲追仙寫擧雙 아욕추선사거쌍
千古雄才慙水郭 천고웅재참수곽
壯觀難賦海兼江 장관난부해겸강
附望洋亭 부먕양정
新菴 李俊民 신암 이준민
平生大醉處 평생대취처
平海望洋亭 평해망양정
送子樂其間 송자낙기간
風塵無限情 풍진무한정
평측을 잃었다는 박난지의 질문에 이준민이 답하기를,
太羹玄酒 不下酷酢 爾豈知之 태갱현주 불하혹초 이기지지
이준민(1524~1590)은 관향이 전의이며 호는 신암이다. 남명 조식이 외숙이다. 경기관찰사와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조정의 공론이 분열해 동인·서인의 붕당이 일어나자 이를 매우 염려했고, 당론을 조정하려던 이이(李珥)를 존경하였다. 1584년 이이가 사망하자, 당인들이 그를 탄핵해 공격하니, 이에 맞서 강경하게 불가함을 주장하는 의기를 보였다.
이에 비해 박난지는 「오산설림초고」 에 시 한 편이 들어있을 뿐이고 역사에는 무명이다.
차천로가 박난지의 시 「登望洋亭」 을 절창이라고 했지만, 과장이 심하다. 박난지 역시 시에서 ’嶺外樓臺盡乞降‘이라며 망양정 자랑이 지나치다. 망양정은 바닷가에 있어 유명하지만 부벽루, 영남루, 촉석루, 영호루 등에 비하며 일개 고을 수준이다. 또한 박난지는 혈기방장한 젊은 시인답게 상공 이준민의 시가 평측이 안 맞다고 웃으며 비판했는데, 벗인 차천로의 아버지와 망양정을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썼을 신암은 점잖게 ’太羹玄酒 不下酷酢 爾豈知之‘, 상공의 반열에 오른 현인답게 경륜과 지혜, 관용의 여유가 느껴진다. 양념하지 않은 고깃국과 맑은 물도 좋은 맛이다. 조선이 5백 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의 중심이 相公(종2품 이상)들에게 있었다.
『대동야승』 은 한국인이 평생 동안 읽으며 음미해야 할 필독서이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 1971년에 국역본 전질을 발행했다. 뒤의 원문과 대조하며 읽으면 필자의 생각이 훨씬 더 생생하다. 인터넷 한국고전종합 DB 등에서도 읽을 수 있다.
우리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은 조상들이 남긴 거대한 규모의 기록문화 유산에서 나온다. 세계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만큼 거대한 기록문화 유산을 갖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