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연기는 물에 적신 얇은 천을 얼굴 위에 올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한장을 올리면 천이 얼굴에 달라붙어서 조금 답답하지만 숨을 쉬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위에 한장을 올리고 또 한장을 올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에 젖은 천이 서로 달라붙어서 점점 숨을 쉬기 어려워진다. 그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숨이 막혀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 삶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는데 자꾸 다른 삶을 살게 되면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그러나 역할 연기가 오래될수록 점점 숨이 막혀온다. 그러다가 더는 숨을 쉬기 곤라해지면 그때는 쉬고 싶어진다. 자신에게 맡은 바 임무를 내려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 헨리 나우웬 신부는 '하버드대 교수'로 불릴때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나 '헨리 나우웬'으로 불리는 순간 마음의 위로를 되찾았다. 자신의 가치는 화려한 명함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관계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창옥. 나는 당신을 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가 이렇게 우울증을 앓다가 '라르리쉬'라는 지적 장애인 공동체에 살게 되는데, 하버드 대학을 알리 없는 장애인들에게 신부는 자신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고 그들은 그냥 자기를 친구로 대합니다. 그리고 거짓말 처럼 우울증이 치유됐다 합니다. 돈이나 경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날 소중하게 만들거나 내 자신이 될수 없습니다. 어릴적 친구를 만나면 편안합니다. 그건 이미 날 알기에 스펙을 안보여줘도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일 듯 합니다. 나다운 내가되는것 중요합니다. 우울증 걸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