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탄다'고 한다. 으스스하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허탈하고, 낙엽 한 잎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오려 할 때, 그래서 기운이 빠지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우울해질 때, '가을을 탄다'고 한다. 그렇게 가을을 타는 게 오래 될 때, 병으로 다가와 우울증이 된다. 이건 순전히 기분 탓만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다.
■ 줄어드는 일조량, 늘어나는 우울증
그 근거는 일조량과 관계 있다. 가을에 우울증이 많은 것은 햇빛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을에는 일조량이 점점 줄어드는 시기다. 일조량이 줄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도 줄어든다. 세로토닌은 사람의 기분을 조절한다. 분비가 많으면 기분이 좋고, 적으면 기분이 가라 앉는다. 일조량이 줄면 또 멜라토닌의 체내 농도가 높아진다. 멜라토닌의 농도가 높아지면 우울해진다. 이런 변화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한다.일조량 점점 줄어드는 가을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 분비 줄어 우울감 2주 이상 지속 땐 '병' 이상신호 나타나면 즉시 병원 상담 '조기 발견'이 치료의 열쇠 6개월 이상 꾸준히 약 복용 활발한 신체적 활동도 치유책우울증은 단순히 기분상의 문제만 초래하는 게 아니라 생리적인 문제까지 동반한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슬픔, 상실감 등 기분의 심각한 저하를 겪고 계속 눈물이 나거나 기분이 가라앉으며 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불면증과 식욕 저하에 의한 체중 감소, 성욕이 떨어지고 매사에 의욕도 없어진다. 일부는 과다 수면과 이상 식욕, 전신 무기력감이나 애매한 통증, 소화불량 등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존 질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단순히 계절성 현상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계절적 요인에 개인적인 사고나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상황이 겹치게 되면 우울증은 점점 심해져 일상의 질환으로 악화돼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2012년 한국보건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경험한 사람들의 75.1%가 스트레스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 고령층, 특히 여성 '더 위험'
우울증 환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우울증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는 2007년 47만 6천488명에서 2011년 53만 5천385명으로, 5년 만에 12.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우울증은 여성과 노인에게서 특히 많다. 201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인구 10만 명당 우울증 진료 환자는 70대 여성이 4천178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60대 여성(3천217명)과 80세 이상 여성(2천990명)이 이었다. 환자 증가 폭도 여성과 고령층에서 가장 컸다. 2007~2011년 기간 인구 10만 명당 진료 환자 수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연령대는 80세 이상의 여성으로 연 평균 8.2%가 늘었다. 그 다음으로 80세 이상 남성이 6.8%, 70대 여성이 5.2%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 수는 여성과 남성을 단순 비교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평균 2.3배 더 많았다.
공단 측은 노인층에서 우울증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경제력 상실, 신체기능 저하, 각종 내외과적 질환, 사별과 같은 생활사건, 그리고 최근 가족제도가 변하면서 독거노인이 크게 늘었고 가족 내 갈등도 증폭됐기 때문인데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악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을 더 많이 겪는 이유에 대해서는 먼저 여성 호르몬의 영향이 거론됐다. 월경, 출산, 폐경 등에 따른 호르몬 변화가 극심한 경우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할 가능성이 커지고, 특히 중년기 여성들이 폐경 전후에 겪는 호르몬 변화는 자존심 손상, 무기력증, 자신감 부족 등과 같이 자신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심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여성은 또 육아 및 가사와 직장생활의 병행, 시부모와의 갈등 등 사회·가정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많은 것도 우울증 비중이 높은 원인의 하나로 지적됐다.
■ 숨길수록 커지는 마음의 병
우울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지만 가벼운 증상이 찾아왔을 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높은 무서운 병이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며 개인적인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전문의들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초기 우울증은 대부분 1년 정도 치료하면 호전되기 때문에 신속하고 올바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초기에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한 기분 탓으로 돌리거나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자칫 큰 화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에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한 우울증은 또 더 악화되거나 회복된 이후에도 빈번하게 재발할 우려가 높다. 최악의 경우에는 자해나 자살 시도 등으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우울증이 2020년경에는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미래질환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우울증 환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률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울증의 중요한 치료로는 크게 약물치료와 상담치료가 있으며 필요한 경우 두 가지를 병행하기도 한다. 약물치료의 경우 우울증 치료제(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최소한 6개월 이상 꾸준히 하는 것이 증상의 호전과 재발 예방에 도움이 된다. 우울증 약이 몸에 해롭다는 편견이 있어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약물치료가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며 우려하는 부작용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심리치료나 상담치료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울증 예방은 특별히 입증된 방법이나 기술이 없다. 다만 평소에 햇빛을 자주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전문의들은 말하고 있다. 술이나 담배, 불법적 약물은 우울 증상을 악화시키므로 피해야 한다. 운동처럼 활발한 신체적 활동은 우울 증상을 줄여주기 때문에 걷기, 조깅, 수영 등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게 필요하다. 명상이나 요가, 호흡법 등 심신의 안정을 주는 훈련이나, 종교 활동, 봉사 활동, 취미 활동 등도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심해질수록 치료가 어렵다. 간혹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우울증 치료를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재발의 위험이 크다. 최소한 6개월 이상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 함부로 약물을 중단해서도 안되며, 피치 못한 사정으로 치료를 중단해야 할 때에는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온종합병원 정신건강센터 김상엽 소장은 '일상생활에서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만들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감정에 이상이 있을 때는 어려워 말고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보 임광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