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부터 제 1차 세계대전까지...
아스날 축구 클럽은 1886년 울위치(Woolwich) 아스날 군수공장의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그룹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처음 이름은 다이얼 스퀘어(Dial Square)였고, 그들의 첫 경기는 1886년 12월 11일 이스턴 원더러스와의 6-0으로 이긴 경기였다. 곧 그들의 이름은 로열 아스날(Royal Arsenal)로 바뀌었고 몇년간은 친선경기와 지역컵 대회에서만 활동을 했다.
1888년 당시 스쿼드와 현재 복원된 아스날 군수 공장.
1891년 클럽은 프로화를 추진했고 이름을 울위치 아스날(Woolwich Arsenal)로 바뀌었고, 1893년 풋볼리그(현재의 잉글랜드 축구 리그)에 등록했다. 1913년 거너스는 그들의 홈구장을 하이버리로 옮겼다(그때도 아직 2부리그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아스날은 헨리 노리스 경(Sir Henry Norris)의 교섭으로 1919년 1부리그로 올라왔고, 이후 한번도 강등되지 않고 있다.
ⓑ 채프먼과 영광의 30년대...
허버트 채프먼(Herbert Chapman) 감독은 1925년 아스날에 부임했고, 1930년 FA컵 결승전에서 허더스필드 타운(현재 3부리그)을 이기면서 아스날에 첫 트로피를 선사했다. 또한 1933년부터 1935년까지 3연속 리그 우승도 했었다. 하지만 채프먼이 1936년 돌연사 하면서 그의 시대가 순식간에 끝났다.
조지 앨리슨(George Allison) 감독은 30년대 후반을 이끌었다. 1936년 FA컵 우승과 1938년 리그 우승을 따내면서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을 가지게 되었다. 알렉스 제임스(Alex James), 테드 드레이크(Ted Drake), 클리프 바스틴(Cliff Bastin), 데이빗 잭(David Jack), 에디 햅굿(Eddie Hapgood), 조지 매일(George Male)등의 선수들은 잉글랜드 축구의 슈퍼스타들이었다.
ⓒ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서 첫 더블까지..
제 2차 세계대전은 아스날의 길을 멈추게 하였지만 톰 휘태커(Tom Whittaker)가 전후 감독을 맡은 이후 1948, 1953년 리그우승과 1950년 FA컵 우승, 1952년 준우승을 거치면서 다시한번 영광은 안았다. 하지만 60년대에는 아스날의 암흑기였다. 유일하게 트로피가 없는 60년대였다. 1968, 1969년 연속으로 리그컵 결승전에 오른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1970년 안더레흐트(현재 벨기에 1부리그)에게 원정에서 1-3, 하이버리에서 3-0으로 총 4-3으로 이기면서 페어스컵 우승을 따내는데 아스날 최초의 유럽컵이었다.
그 다음시즌은 더 좋아졌다. 찰리 조지(Charlie George), 조지 암스트롱(George Armstrong), 래이 케니디(Ray Kennedy)와 주장 프랭크 맥린톡(Frank McLintock)의 좋은 선수들이 리그와 FA컵을 동시에 석권하는 더블을 이루어냈다(1971). 리그 우승은 토튼햄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해냈고, 리버풀과의 FA컵 결승전은 연장전까지 가야했다. 이후 197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드라마틱한 3-2 승리를 따내면서 FA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0년에는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 올랐고 그레이엄 릭스(Graham Rix), 프랭크 스테이플튼(Frank Stapleton), 팻 라이스(Pat Rice), 데이빗 오리어리(David O'Leary), 리암 브래이디(Liam Brady) 같은 선수들이 포진했지만 발렌시아(현재 에스파냐 1부리그)에게 졌다.
ⓓ 조지 그레이험의 시대
1986년 조지 그레이험(Georger Graham)은 1971년 아스날의 더블당시 선수로서 활약하였다. 돈 하우(Don Howe)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으로 온 그는 1987년 FA 리그컵을 손에 얻고, 1989년 아스날에 18년만에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마이클 토마스(Michael Thomas)의 그 유명한 골로말이다. 또한 1991년에도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 '철의 4백'은 단 한번밖에 지지 않았다.
이후로 계속된 트로피가 따라왔고, 1993년에는 FA컵 우승과, 컵 위너스 컵을 앨런 스미스(Alan Smith)의 골로 따냈다. 1995년에도 결승전에 올랐지만 레알 사라고사(현재 에스파냐 1부리그)에게 패했다. 그는 브루스 리오치(Bruce Rioch)에게 바통을 넘겼는데 그때 리오치는 데니스 베르캄프(Dennis Bergkamp)와 사인을 해냈다.
ⓔ 아르센 벵거의 시대
1997-98, 아르센 벵거(Arsene Wenger)의 첫번째 풀시즌에서 하이버리의 아스날은 역사상 두번째 더블을 이루어냈다. 데니스 베르캄프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등 모든 상을 휩쓸었다. 또한 엠마누엘 프티(Emmanuel Petit)와 패트릭 비에이라(Patrick Vieira)의 프랑스는 월드컵 우승도 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2001년까지 3년연속으로 리그 2위를 차지했고, 2000년에는 UEFA컵 결승전에서 갈라타사라이(현재 터키 1부리그)에게 승부차기끝에 패배하기도 하였다. 2000년에는 리버풀의 마이클 오웬(Michael Owen)에게 골을 내주며 FA컵 결승전에서 지기도 했다. 2001년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올랐지만 발렌시아에게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2002년 벵거는 역사상 세번째 더블을 달성하였다. 막판 리그 12연승끝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실뱅 윌토르(Sylvain Wiltord)의 골로 1-0으로 이기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고, FA컵 결승전에는 첼시를 2-0으로 꺾었다. 로베르 피레스(Robert Pires)는 3달을 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사우스햄튼(현재 2부리그)과의 FA컵 결승전에서 로베르 피레스가 넣은 골을 지켜 1-0으로 이겼다. 티에리 앙리(Thierry Henry)는 2003년, 2004년 연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데니스 베르캄프는 통산 100호골을 넘겼다. 2004년 리그에서는 한번도 지지 않고 38경기를 무패로 끝내며 13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프란세스크 파브레가스(Francesc Fabregas)는 16세 177세로 아스날의 최연소 출장기록을 경신했다. 비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FA컵 4강에서 탈락했고, 첼시에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탈락하면서 트레블의 꿈이 끝났지만 2004년 8월 노팅엄 포레스트(현재 3부리그)의 무패기록을 경신했고, 2005년 FA컵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승부차기끝에 이기면서 아르센 벵거는 4번째 FA컵을 들어올렸다.
이어서 2006년에는 하이버리의 마지막 해를 맞았다. 위건과의 4-2 경기를 끝으로 하이버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 하이버리에서 2010경기를 치루는 동안 1196승 475무 393패, 4038골, 1955실점을 했다. 하이버리시대의 마지막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었는데 솔 캠블(Sol Campbell)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바르셀로나(현재 에스파냐 1부리그)에게 역전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13경기중 10경기에서 무실점을 하면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시대
2006년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경기를 시작으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시대를 알렸다. 티에리 앙리의 프랑스는 월드컵 결승전까지 갔다. 2007년에는 FA 리그컵 결승전에도 올랐다. 하지만 아스날의 역사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계속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그렇죠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거죠ㅎ
아스날에 대해 공부해야지..
채프먼 제가 알기는 1934년에 폐렴으로 죽은걸로 알고있어용. 리그 3연패는 (채프먼이 죽기전. 33/34시즌 우승), (존쇼 감독 대행 채제에서 34/35시즌 우승), (단장 조지 앨리슨이 감독으로 부임해서 35/36시즌 우승) 각기 다른 감독 채제하에서 이룩한걸로 알고 있어염.
벵거의 시대에서 파브레가스부분 16세 177세 는 오타인가요?
오타겟죠?;; 16세 177일 인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