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효의 야생초 산행-미녀봉.오도산
깜짝 놀라 다시 보니 '참배암 차즈기'
미녀봉~오도산
연일 뜨겁게 달아오르던 불볕더위도 계절의 운행에는 어쩔 수 없이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처서가 내일 모레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음력 칠월은 별일 없이 어정거리는 사이 지나가버린다고 어정칠월이 했다지만 처서를 지나면 할일이 많아진다.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지면 풀이 더 자라지 않으니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해야 하고, 논·밭둑의 풀을 베고 여름내 가꾸었던 참깨를 털고 김장용 무·배추를 갈아야 한다. 여름동안 눅눅한 날씨에 젖었던 옷과 책을 말린다는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해충의 극성도 사라지니 한결 편안해진다. 무더위가 꺾이니 가을이 댓돌 앞까지 다가서 있는 듯하다.
야생초 산행은 늦여름 정취를 찾아 미녀봉(930m)과 오도산(1134m)으로 향했다. 미녀봉과 오도산은 경남의 서북부에 위치한 거창과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미녀봉은 아기를 밴 아름다운 여인이 누워있는 특이한 모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위치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미녀봉을 거창읍에서 고개를 넘어 가조면으로 내려서며 바라보게 되면 섬세한 여인의 실루엣이 틀림없다. 단아한 이마에서 뒤로 늘어뜨린 긴 머리, 까만 눈썹, 오뚝한 콧날, 가늘게 벌린 입과 턱은 물론이고 볼록한 가슴까지 도드라진 여인의 모습에 만삭을 한 불룩한 배를 보태니 의심이 필요 없는 미녀다. 여인의 모습에 눈물샘·유방샘·양물샘·여궁샘이라는 지명을 더하고, 음기·양기마을에서 기를 넣으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오도산은 높이로 따진다면 미녀봉을 능가하지만 유명세에 눌려 미녀봉을 오르다 덤으로 가는 산으로 홀대 받고 있다.
야생초산행은 두 산을 오르기 위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회귀산행에 편리한 합천군 묘산면 지실골 오도산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휴양림의 이름에 오도산이라는 지명이 붙었지만 미녀봉 오르기가 더 편해 많은 사람들이 미녀봉을 오르기 위하여 찾는다. 오도산 정상에는 한국통신에서 운영하는 통신용 탑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을 오르내리는 도로가 뚫려 있어 등산 대상지로 매력을 잃어 찾는 사람이 드물다.
등산은 휴양림매표소를 통과하여 산막 취사장 앞으로 난 도로 끝에서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을 따르면 된다. 등산로는 소나무 숲속을 지그재그로 서서히 높이를 더하며 말목재에 이른다. 여느 소나무 숲속이 그렇듯 여기서도 자라는 식물이 드물어 바닥은 텅 비어있고 메마른 마사토에 어렵게 뿌리를 내린 등황색 꽃빛깔이 아름다운 각시원추리만 곳곳에서 반긴다. 근심을 없애주는 꽃이라고 따로 망우초라 부르기도 하는 신비한 꽃빛깔을 지닌 각시원추리지만 거친 땅에서 만큼은 당할 식물이 없는 것 같다.
말목재는 미녀봉에서 숙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미녀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올라야 한다. 얼마 오르지 않아 전망 좋은 바위가 나타나고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가조 들판을 훤히 내려다보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사실 미녀봉에 들고 나면 산 아래서 보던 모습과 달리 어디가 미녀의 어느 부위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굽이치며 달리는 산줄기가 중첩되어 만들어지는 멀리서 보는 모습과 달라 형상을 짚어가기란 쉽지 않다. 다만, 유방봉처럼 뾰족하게 솟아올라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곳은 예외다.
대체적으로 육산의 모습이지만 얼굴과 가슴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약간 전율을 느껴야만 오르내릴 수 있는 암벽이 있어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능선주변에는 각시원추리가, 좀 더 넓은 풀밭에는 조밥나물을 비롯하여 꼬리풀, 딱지꽃, ‘고추나물’ 등이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물레나물과의 ‘고추나물’은 씨앗을 매달고 있는 물레나물과 이웃하여 자라고 있었지만 지금 한창 꽃이 피어 있다. ‘고추나물’이라는 식물이름은 꽃이 진 후 달리는 열매가 고추를 닮아 붙어진 이름이다.
미녀봉 정상은 펑퍼짐하고 주변에 소나무까지 있어 정상석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정상을 넘어 오도재로 향하여 계속 나아갔다. 햇볕이 좋은 능선에는 노란 마타리와 닮았지만 흰 꽃이 피는 뚝깔이 나란히 하늘을 향해 피어 있다. 그늘진 풀밭에는 층층이꽃과 쉽싸리 같은 꿀풀과의 꽃과 어울려 ‘파리풀’이 몇 개 남지 않은 작은 꽃을 원 없이 흔들고 있다. ‘파리풀’은 꽃대가 길고 가늘어 약한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기 때문에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다. 작은 꽃이지만 자세히 보면 두개씩 마주 달려 꽃부리를 쭉 내민 통꽃이 앙증맞도록 예쁘다. 꽃이 지고 난 후 맺힌 씨앗은 하나같이 꽃대에 바짝 붙어 거꾸로 매달려 있다. ‘파리풀’이라는 꽃 이름은 이풀의 뿌리를 갈아 파리를 잡는데 쓴다고 얻은 이름이다.
작은 오르내림을 몇 번 지나면 오도재다. 오도재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가조면 도리 수포대로 하산하는 길이고, 반대로 가면 오도산자연휴양림이다. 오도산을 오르기 위하여 계속 나아갔다.
낮은 오도재 주변에서 희귀한 식물을 만났다. 노란 꽃에 모양이 신비한 ‘참배암차즈기’다. ‘참배암차즈기’는 꿀풀과의 식물로 네모진 꽃대가 올라와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기이한 모양의 꽃이 핀다. 꽃이 바라보는 방향이 하나같이 비스듬하게 아래로 향하고 있어 마치 뱀이 나무줄기를 타고 혀를 날름거리며 먹이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도감에서는 주로 ‘참배암차즈기’가 분포하는 곳이 중부이북 지방의 고산에 사는 희귀식물이라고 적혀있는데, 오도재 부근에 적지 않은 개체수가 자생하고 있으니 고쳐야 할 것 같다.
오도재에서 오도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경사가 만만찮다. 급경사라고 일러도 좋을만한 등산로지만 5~6백미터만 오르면 오도산 정상으로 가는 도로가 나타난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변에는 햇볕을 좋아하는 사위질빵과 딱지꽃, 전석지 돌 틈에는 원추리와 기름나물이 멀리 조망을 즐기듯 피어있다.
나선형으로 난 임도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며 주변 경관을 빠짐없이 즐겼다. 오도산이 높은 만큼 조망도 빼어나다. 2000년 1월1일 밀레니엄 해돋이 행사를 했다는 합천군에서 세운 기념비가 오도산의 조망권을 말해주고 있다.
우두둑 떨어지는 소나기에 쫓겨 하산을 서둘렀다. 신기한 것이 합천 쪽은 먹구름에 안개가 자욱한데 오도산을 가운데 두고 거창 쪽은 거짓말같이 햇볕이 쨍쨍하다. 소나기는 소등을 다툰다는 속담이 거짓이 아닌 것 같다.
오도재로 되돌아와 서쪽의 오도산휴양림으로 향했다. 오도산휴양림까지 하산 길은 잘 손질되어 있어 어려움이 없다. 오래지 않아 사방댐이 나타나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면 계곡을 따라 난 포장도로가 이어지면서 등산도 끝나간다. 이렇게 미녀봉과 오도산을 함께한 산행은 넉넉하게 6~7시간은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거창IC > 24번국도 합천 묘산방향 > 오도산자연휴양림
-국도를 이용할 경우
33번국도 합천읍 금양삼거리 > 24번국도 거창·해인사방향 > 24번국도 거창방향 > 오도산자연휴양림 (농협중앙회 거창군지부장)
사진설명=맨 위부터
고추나물, 파리풀, 참배암차즈기, 오도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