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필자 살던 마을엔 TV 수상기가 4∼5대 있었다.
경찰지서, 면사무소에 각각 한 대가 있었고,
동네 유지 2∼3 집에 여닫이 문이 있는 흑백 TV 수상기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으니 저녁이면 TV가 있는 집 마당에는
동네 남녀노소 20∼30명 몰려 극장을 방불케 했다.
인기드라마 ‘여로’나
김일의 프로레슬링
홍수환의 복싱을 방송할 때면
마당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이때만 해도 월 시청료가 100원 정도 였는데,
TV가 있는 집은 부자여서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1980년대 들어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월 시청료는 2500원으로 인상됐고,
흑백 TV 시청료는 1984년 폐지됐다.
이후 시청료는 1989년 ‘수신료’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신료 거부운동은 1982년 전라남도 농촌에서 처음 시작됐다.
농촌이 황폐화하는데 마치 풍요한 것처럼
KBS에서 표현하는 데 대해 농민들이 반발하면서 시작됐고,
난시청이 해결되지 않는 것도 큰 이유였다.
이후 가톨릭농민회를 주축으로 확산했고,
1986년 1월 종교단체 주관하에 범국민운동본부가 발족했다.
9시 메인 뉴스는
시보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이라고 시작한다고 해서
‘땡全 뉴스’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당시 제1야당이던
신한민주당도 KBS 안 보기 운동을 전개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수신료 거부운동의 결과,
1984년 1256억 원까지 늘어난 수입은
1985년 1196억 원,
1986년 1012억 원,
1989년에는 790억 원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1994년 당시 홍두표 KBS 사장 시절
수신료 징수를 전기료에 합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송법 시행령이 통과되면서 안정적인
수신료 수입이 보장됐다.
현재는 연 6900억 원대의 수신료를 거두고,
한전은 6.15%의 2 대행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그러나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는 KBS는
늘 수신료 거부운동의 대상이 됐다.
정권이 KBS를 장악하고 있다 보니 이뤄지지 않다가
윤석열 정부들어 23년7월12일 시행령 개정으로
29년 만에 통합 징수가 끝나게 됐다.
국민의 압도적인 찬성 여론에
야당도 예전에 분리 징수를 주장한 바 있어 반대할 명분이 없다.
4600여 명 중
1억 원대 이상 연봉이 50%가 넘고
억대 연봉에 보직이 없는 직원이
1500여 명에 달하는 등
구조조정과 개혁을 외면하고
‘철밥통’을 자신했던 KBS의 자업자득이다.
"end"
가져온 글 https://blog.naver.com/sby5600/223172166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