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안철수 교육공약 이야기 1
. 학점제 공약 (1)
학점제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공통으로 중요시하는 공약이다.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겠습니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완전히 다른 교실이 열릴 것입니다.” (문재인 2017.03.22.)
“진로탐색학교에 진학해 2년간 학점을 쌓고 대학으로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직업학교로 진학하여 일찌감치 직업훈련을 받고 직장에 다닐 것인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성적순이 아니라 학점이수제도이기 때문에 아이는 별도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안철수 2017.02.06.)
올해 대선 때만 그런 게 아니다.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점진적으로 고교학점제를 정착시켜 학생들의 다양한 수월성이 키워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특성, 학력 편차를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 이수할 수 있어, 한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선택권과 수월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문재인 2012.11.05)
“창의 통합형, 사고력 향상과 학생 스스로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과목을 집중 선택하고,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를 학점제 하의 자율 진로탐색형 학교로 전환하겠습니다.” (안철수 2012.11.01)
그런데 2012년에는 박근혜 후보도 학점제의 취지를 담은 공약을 발표했었다. 그것도 24개 세부 공약 중 첫째 공약으로 발표했다.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해서, 학교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효과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습니다.” (박근혜 2012.07.17.)
학점제는 내용이 아닌 형식(제도)이다. 그러니까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는 ‘학점제’라는 제도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고 박근혜 후보는 형식(제도)이 아닌 내용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운영’ 하려면 어떤 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학점제라는 형식(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는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러면 개별 학교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대폭 보장하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는가? 어렵다. 현재의 학교내신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박근혜의 그 공약은 공약으로선 매우 큰 공약이다. 24개의 세부 공약 중 첫째로 제시할 만한 공약이이다. 그것은 학교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꿀 공약이다. 사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된다면 교육문제의 상당부분은 해결된 것 아닌가?
그런데 당시 언론은 이 정책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이 '고등학교 무상의무교육'이란 정책에 더 크게 주목했다. 고교무상교육은 14번째로 제시된 공약에 불과한데도 첫째로 제시된 정책보다 훨씬 더 비중이 크게 보도됐다. 그런데 고교무상교육에 비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중요한 일 아닌가.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당시 언론은 박근혜의 첫째 공약을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국민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하긴 나도 상당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박근혜의 첫째 교육공약은 립서비스인 것이 차라리 더 낫다고까지 생각했다.
학교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적절하고 올바른 실현 방안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박근혜는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살리겠다는 목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그것의 실현 방안에는 큰 문제가 있다.
당시 상황에서 교육과정에 관한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면 학생의 소질과 적성이 계발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억압당할 수 있다. 교육과정이 성적 상위권 학생을 위주로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국영수 과목의 수업 시간을 일률적으로 늘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상위권 대학이 입시에서 국영수 과목의 수능 성적 전부를 비중 있게 반영하는 상황에서 학교는 그렇게 밖에는 달리 행동하기 어렵다.
입시에서 국영수 과목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도 그것은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그것은 상위권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도 상당수 학생들은 국영수 과목 전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컨대 전문대 정시는 수능시험의 4개 영역 중 2개 영역만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다. 그렇게 하는 4년제 대학도 꽤 있다. 내신 반영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까지 상위귄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과 동일하게 국영수 수업을 받게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교육과정에 대한 개별 학교의 자율성이 대폭 강화되면 이러한 현상은 훨씬 더 심화될 것이다.
학교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의 내신제도에서 학교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교장이 된다 하더라도 달리 행동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 동안 교육부건 교육청이건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국영수 과목이 과도하게 많아져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당위성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나는 이러한 비판을 한국일보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최한 토론회에 당시 박근혜 캠프의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분이 왔기에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새누리당도 이러한 부작용을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래서 12월의 새누리당 대선정책 자료집에서는 '개별 학교에 자율성을 대폭부여' 한다는 말이 사라지고 대신 ‘중학교 자유학기제’라는 말이 등장했다.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과정 운영 ~ 중학교에서 1개 학기 동안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유학기제 운영” (새누리당 대선 종합정책 자료집 2012.12.)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되면 학점제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현재의 교육과정과 학교내신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가 2012년 대선에 이어 2017년 대선에서도 나란히 고교 학점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거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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