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전복껍데기 모방해 탱크 제작… 자연에서 찾아낸 첨단기술
입력 : 2022.03.15 03:30
생체모방 기술
▲ /그래픽=유재일
자연은 수십억 년의 역사 속에서 번식과 적응을 통해 자신들의 환경에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진화해왔어요. 이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과학자, 공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어요. 인간은 이런 동식물 등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각종 기술 즉, '생체모방 기술'을 통해 인류 문화와 삶의 질을 향상시켜 왔습니다.
대머리독수리와 비행기 개발
1903년 12월 17일 인류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는 대머리독수리가 나는 모습에서 비행기 개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두 형제는 대머리독수리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며 부지런히 움직여 높이 오르고, 한쪽 날개를 밑으로 내려 회전 방향을 틀고, 날갯짓을 천천히 하면서 날개를 오므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통해 상승력(비행기를 들어올리는 힘), 추진력(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조종력(방향을 조종하는 힘) 등 비행 원리를 밝혀낸 것이죠.
두 형제는 특히 내려앉을 때 날개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대머리독수리의 보조날개 깃털에 관심을 가졌어요. 실제로 비행기가 상승하거나 하강할 수 있는 것은 주날개 밑의 보조날개 때문이에요. 이것은 공기의 저항과 기류에 따라 각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접착력을 모방한 벨크로 테이프
자연을 모방해 만든 상품 중 가장 실용적인 것은 '벨크로' 테이프예요. 흔히 '찍찍이'로 불리죠.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엉겅퀴 씨앗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명한 건데요. 1941년 개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돌아온 메스트랄은 개의 털에 엉겅퀴 씨가 달라붙어 있는 걸 보고 털어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어요. 이상해서 확대경으로 확대해보니 씨가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거예요. 이걸 보고 작은 돌기들을 이용한 잠금장치 벨크로 테이프를 떠올렸다고 해요.
원리가 단순하고 제작 비용이 저렴해 옷소매나 운동화, 심지어 무중력 상태인 우주선 안의 도구를 고정시키는 데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답니다.
생물의 놀라운 표면 구조
생체모방 기술의 대부분은 동식물의 고유한 표면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표면의 질감이나 색상·속성 등을 모방하는 거예요. 대표적인 기술이 '연꽃 효과'예요. 연잎 표면은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독특한 구조로 돼 있는데요.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트로프는 연잎 표면에 미세하게 난 수많은 돌기가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의 응집력을 크게 해서 공처럼 동글동글 말려 구르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게다가 연잎 표면에서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은 표면의 먼지까지 쓸어 연잎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주지요.
바르트로프는 연잎의 이런 '자가 세정' 원리를 페인트에 활용했어요. 이 페인트를 바른 곳은 연잎처럼 표면에 자그마한 돌기들이 생겨 방수는 물론 때가 끼는 것을 방지해줘요. 물로만 세척해도 표면의 노폐물들이 같이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죠. 물과 오염 물질을 털어낼 수 있는 옷, 빗물에 젖지 않는 우산 등도 이 원리를 활용한 거랍니다.
사람의 피부에 난 상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주선에 적용한 기술도 있어요. 손을 베였을 때 공기에 노출되면 피가 응고돼 보호막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피부가 형성돼요. 이 원리를 이용해 우주선에 흠집이 생겼을 때 자동으로 수리될 수 있도록 한 건데요.
우주에서는 공기가 없어 흘러나온 액체가 응고되기 어려워요. 그래서 영국 브리스톨대 항공우주공학과 이언 본드 교수는 유리로 된 속이 빈 섬유에 수지와 특수 고화제를 넣은 특수 소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소재로 우주선 외피를 덮었어요. 이 우주선은 표면이 갈라지는 등 흠집이 생겼을 때 소재 속에 있는 액체 접착제가 자동으로 흘러나와 깨진 부분을 메우죠. 이렇게 '자가 치료'가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면 우주인이 직접 우주로 나가 선체를 수리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로봇 기술 수준 한 단계 높인 해파리
생체모방 기술은 로봇을 만드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해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와 템플대 연구진은 해파리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몸을 가진 '소프트 로봇'(soft robot)을 개발했어요. 해파리는 딱딱한 골격이 없는데 그 덕분에 자연계에 생존하는 어떤 생물보다도 물속에서 최소의 힘으로 놀라운 추진력을 발휘해요.
연구진은 수중에서 해파리와 같은 강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부드러운 소재로 외부를 둘러싸고, '공명'(共鳴) 현상을 적용한 해파리 로봇을 만들었어요. 공명은 특정 주파수에 힘이 가해질 때 큰 진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해요.
예컨대 아이들을 그네 태울 때 그네가 어떤 특정 위치에 오면 부모들이 아주 작은 힘으로도 그네에 가속을 가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예요. 이런 원리가 작동되는 소프트 로봇을 활용하면, 상처 입기 쉬운 약한 바다 생물을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고 산호초 군락처럼 민감한 환경에서도 다른 생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고 해양 생태계를 감시할 수 있어요.
생체모방의 주역 해양 생물
생체모방의 주역인 대표적인 해양 생물은 전복이에요. 전복껍데기는 '무쇠 껍데기'에 비견될 만큼 큰 충격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어요. 분필과 동일한 성분인 탄화칼슘으로 이뤄져 있지만 분필처럼 쉽게 부서지지 않죠. 원소의 배열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전복껍데기는 지름 10마이크로미터(㎛), 두께 0.5㎛ 크기의 탄산칼슘 타일 수천 개가 겹겹이 쌓인 형태의 고분자 구조로 돼 있어요.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전복껍데기의 분자 배열을 분석해 내구성이 높은 탱크의 철갑을 만들었어요.
혹등고래의 지느러미 혹을 모방해 공기 흐름을 유연하게 만든 에어컨 팬도 있어요. 혹등고래는 큰 몸집과 달리 먹이를 쫓을 때 재빨리 움직여요. 가슴지느러미 앞쪽에 붙은 수많은 돌기(혹) 때문이에요. 보통 고래는 지느러미를 활용해 비행기 날개처럼 위로 뜨게 하는 힘인 '양력'을 만들어서 바다를 헤엄치게 되는데요. 고래가 이동할 때 물이 지느러미를 그대로 타고 흘러야 기동성이 좋아요. 혹등고래의 혹은 고래가 움직일 때 소용돌이를 일으켜 지느러미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고 지느러미 표면에 착 달라붙어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에어컨 실외기 팬에 고래와 같은 혹을 붙이면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어요. 실외기 팬의 뒤쪽 면에서 공기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면 공기의 흐름에 손실이 생기는데, 혹 같은 걸 붙여 공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아 효율적으로 실외기를 가동시킬 수 있는 거랍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조유미 기자